겨울에 자주 듣는 음반 중 하나가 차이코프스키 음반이다.내가 가장 많은 판을 가지고 있는 것은 6번 <비창>연주다.므라빈스키,플레트네프,칸델리,카라얀,플레트네프,스베틀라노프.....그 중에서 가장 변칙적이면서 가장 주관적인 연주가 번스타인의 이 느린 연주다.아침 해보다도 느리게 시작된다.그러다가 힘을 모아서 폭발하는데 오래 지속되진 않는다.뉴욕필의 금관은 약간 혼란스러우면서도 앨범자켓 처럼 이른 아침의 싸늘함이 묻어있다.므라빈스키처럼 광폭하지 않다.너무 느려서 예리하지도 않다.하지만 눈내린 벌판에 불어오는 이른 새벽의 서늘함.이 음반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음반은 변종이다.
또 다른 말년 번스타인의 매력적인 음반이다.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곡이 교향곡 2번이다.다른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심심함에 비하면 군계일학이다.다른 교향곡들은 구조의 튼실함을 찾기엔 내 귀가 너무 둔감하다.반면 이 곡은 마치 베토벤 곡을 듣는 듯 하다.또한 고통 끝에 환희로의 승화도 유사하다.바비롤리의 명연과 함께 논란의 대상이 되던 음반이 바로 옆의 음반이다.문제는 말년의 번스타인에게 있다.차이코프스키 비창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극단적인 템포의 이완이 이 음반에도 적용된다.하지만 비창의 서늘함에 비하면 훈기가 돈다.빈필의 현은 여기서도 번스타인을 살려준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무수한 명연 중에서도 이 음반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이유는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음반이기 때문이다.지금은 중년의 아줌마같은 정경화지만 이 음반 자켓에는 청년의 풋풋함과 수줍음이 뭍어있다.하지만 연주는 그 반대다.정경화는 생긴 것 처럼 싸늘하게 연주한다.프레빈과의 동곡 녹음에 비해 그녀의 당당함이 돋보인다.지금와서 보면 약간 아쉬운게 샤를르 뒤트와의 서포트이다.정경화의 냉랭함에 비하면 너무 온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근데 샤를르 뒤트와의 연주는 다 그렇다.1악장의 주선율은 겨울이면 항상 흥얼거리게 된다.딴따..따라라라 ...라..라라...
지겨워도 어찌 사계의 겨울을 빼놓을 수 있으랴.특히 이 곡은 이현우의 샘플링 덕에 더 잘 기억된다.문제는 이제 이 멜로디가 끝나 "어제 하루는..." 이러고 '헤어진 다음날'의 앞구절을 따라한다는 것이다.사계 연주는 크게 현대악기 연주와 원전연주로 양분된다.최근에는 현대 악기연주자들도 템포를 조금 빨리잡는 경향이 있다.원전 연주중에서는 한때 과격함의 경주가 붙었을 만큼 격렬한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그 와중에도 중용을 지키는 미덕을 보여준 연주가 바로 The Drottningholm Baroque Ensemble의 연주이다.녹음 역시 상당히 훌륭하며 가장 즐겨 듣는 사계 음반이다. "나 나 나 나나나나 나 난난나.... 어제 하루는"
이 음반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다.하지만 카라인드로우의 음악은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멋있다.<황새의 멈춰진 발걸음>이란 음반인데... 주변에서 이 음반 들어봤다는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창 밖으로 눈이 펑펑내리는 어느날, 공항 대합실에 갖혀 이 곡을 들어보시라.굳이 공항 대합실이 아니면 어떠랴...미니멀리즘적인 바이올린 선율에 나의 세상과 눈의 세상 사이에 구분이 없어진다.
<동설>이 아니라 아쉽다만.... 황병기의 <춘설>이다.지나간 것들은 늘 아쉬움을남긴다.이제 남은 것이 그림자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이내 그 그림자도 사라지고 언젠가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창 밖을 바라보며 앙상한 가지를 휘돌아 나가는 바람소리를 가야금 소리와 어우러 보라.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짐을 기약한다.가야금이 깊은 농현도 사라지고 말 듯이.
이반 레브로프는 특이한 가수다.러시아 민요를 부르는 사람이고 베이스 가수이다.생긴 것도 진짜 동화책에 나오는 고집장이 술꾼 러시아사람 처럼 생겼다.
그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쉬트라우스의 <박쥐>에도 출연을 햇다.하지만 그의 본령이 오페라 가수는 아니다.이 음반은 러시아의 로망스,민요,대중가요등을 수록하고 있다.그의 낮은 목소리는 멀리 보이는 겨울 지평선에서 부터 울려오는 듯 하다.친숙한 러시아 민요들도 그의 목소리로 들으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겨울 노래에 <겨울 나그네>가 빠지면 너무 섭섭하지 않을까
피셔 디스카우와 마티스 괴르네의 정통파 독일 리트가 주류이다.이 둘이 부른 <겨울 나그네>는 묵직하면서 독일적인 중후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반면에 프랑스인이 부른 <겨울나그네>는 조금 다르다.훨씬 멜랑콜리하다.왠지 그가 발음하는 독일어는 낭만적으로 느껴진다.목소리 자체도 온화하면서 품위가 있다.
<겨울나그네>도 따뜻함이 필요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