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콜린 워드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학 다니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조교누나가 있었다.타과 출신이었지만 학회일 때문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했던 관계로 가까와 지게 되었다. 어느날 술먹는 자리, 그 누님 왈 "너 취향도 맘에 들고 우리 리틀 아나키 클럽에 들어와라?"  ".... .... ... "  . 내가 아나키란 말을 나름대로 고민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누님이 말한 '리틀 아나키'가 존재했었는지도 사실 모르겠다.내 생각에 그저 마음 맞는 몇몇사람들의 술자리 모임을 낭만적으로 펌프질한게 아닌가 싶다.행여 그 구성원이 있다손 치더라도 실제 아나키스트들은 그닥 많지 않았을 것이다.추측컨대 나름대로 사회의식을 가지고 운동에 참여하지만 조직적 운동세력으로 편입하기 싫은 자유주의자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아나키스트들을 두가지 오해를 받고 있다.하나는 '이상주의적 폭력주의자' 라는 것(요즘도 이런 사람이 많은지는 모르겠으나) 또 하나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특히 이런 오해에는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믿고 싶어하는 이도저도 아닌 자유주의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오해를 가중시킨다.솔직히 이도 저도 아닌 자유주의자는 좋게 말하면 상식적 시민주의자이거나 비판적 기성체제 옹호자이다. 하지만 고전적 아나키즘이건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적 아나키즘이건 아나키즘의 혁명적인 기치와는 함께 갈 수 없다.

이 책<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은 70년대 영국의 상황에 바탕을 둔 비교적 현대적 아나키즘 이야기이다.이 책은 아나키즘의 역사와 이론을 밝히지는 않는다.대신 전반적으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에 바탕을 두고 사회 각 영역에서 아니키즘의 적용을 살펴본다.이를 통해 저자는 아나키즘이 우리사회에서 어떠한 식으로 조직되고 활용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또  아나키즘이 도전하고 있는 영역과 목표로 삼고 있는 부분을 밝힘으로써 아나키즘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의 일면을 살필 수 있게 도와준다.저자가 밝히고 있는 아니키즘은 인간조직을 대하는 한 형태-즉 라이프스타일로써의 아나키즘-이다. 즉 나 자신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기존 시스템에 대해 도전해야하고 DIY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이 인간성의 회복과 행복한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기본적으로 반국가주의,반자본주의,반권위주의를 모토로한다. 아나키즘에서 국가는 최고의 악마이다. 대개의 아나키즘 이론가에게 공통으로 파악되는 것이 국가의 해체이다.국가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교육받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발을 양보해도 '미워도 우리 나라 아니인가.' 지난 광복절, 좌우파(?) 대규모 시위에서도 양쪽이 전부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며 우국충정을 불사르는데 이 싸가지없는(?) 아나키즘은 국가를 없애잖다.이러니 아니키즘이 미움을 받을 수 밖에 ...국가가 아니면 도대체 워쩌자는 것인가?  저자를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은 지역공동체의 네트워크를 주장한다.책말미에 인용된 '피라미드보다 네트워크를' 이란 말은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반권위주의와 프르동의 동맹개념에 대한 좋은 비유이다.어쨋든 이 책에서는 스위스의 자치주들의 연대를 예로 들며 어렵기는 하지만 자치연대가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치 연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은 자발적 질서이다.저자가 예를 드는 것은 60년대의 유럽의 사회운동이다.반권위주의적이면서도 자발적인 연대가 있었던 그 기간이 네트워크의 가능성과 조직의 자율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다고 말한다.

저자가 아나키즘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눈을 돌리는 분야는 도시,교육,가족,복지이다.각 상황마다 진행역사가 다르겠지만 단순화 시켜보자면 정부를 중심으로한 중앙집권형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도시계획이라는 것은 도시빈민을 도시의 바깥으로 몰아내어 도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제도 교육이란것 역시 체제의 순응적인 과목과 교육방식을 통해 제도의 영속화를 추진하는 것이다.결국 저자는 공교육의 폐지를 주장한다.이점은 70년대의 영국상황과 현재의 한국의 왜곡된 사교육시장을 감안하다면 금방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원론적인 이해가 오히려 간섭효과를 줄여준다.복지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격리라는 형식을 통해 비인간화만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모든 것에 대한 답 역시 분권과 자율화,공동체의 연대로 드러난다.저자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헤집고 들어간 아나키스트적 대안에 대한 구체적 실험과 예를 들어 독자의 시각 교정을 유도한다.하지만 저자 역시 아나키즘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을 제시하진 못한다.몇번쯤은 반대자들의 문제제기를 들먹이지만 부수적인 예를 들어 질문을 피해간다.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몇번의 문제제기는 아나키즘의 고전적인 논쟁에 해당한다.

흔히들 말하는 아나키즘과 볼세비키의 논쟁은 책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국가에 대한 맑스주의자와 아나키즘의 시각차,생산과 분배문제에 있어서 대규모의 생산양식하에서 자급자족적 아나키즘의 문제점,인간성향에 대한 규정문제,연대조직내의 권위화 등등...

아나키즘이 분명히 근대국가의 여러제반 문제에 대한 돌파구로써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위대한 이상주의의 깃발 아래서 인간의 삶을 개선하려는 방향성 역시 옳다고 본다.하지만 의문이 끊임없이 떠오른다.물론 머릿속으로 또는 글장난으로 거대한 사회주의 개혁을 하는 것보다 -어차피 그것도 요원하긴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작은 공동체에 힘을 싣는게 훨씬 실천적이다.하지만 목표는 너무 멀고 실천은 과거의 태도에 대한 절연을 전제로 한다면 대중성을 확보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결국 아나키즘은 영원한 소수자이고 끊이지 않는 비판의 샘물이고 마르지 않는 이상주의의 보고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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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2-15 16:18   좋아요 0 | URL
추천합니다. 좋은 책이 나와 있었네요. 책 구입하게 되면 땡스 투도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burningham 2007-04-08 17:24   좋아요 0 | URL
좋은 리뷰네요 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