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저널리스트들의 글을 좋아한다.아무래도 대학 전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일게다.저널리스트들의 글은 단순 명쾌하다.장황한 미사어구나 화려한 수식은 오히려 낙제점이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글을 읽는 대상을 고려해서 평이한 문체와 메시지가 정확한 글을 쓴다. 언젠가 신문을 보다가 한 학자가 우리사회를 분석하며 "아비투스"라는 단어를 쓴 글 본 적이 있다. 학자니까 충분히 이해가 된다.그런데 신문을 보던 대학을 갓 졸업한 후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한다. 그 용어가 학자와 그의 동료들에게는 일상적인 용어일 것이다.하지만 손님 기다리는 택시 기사나 좌판에 앉아 시간 때우는 상인들이 신문을 보며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그 단어를 알 지 못한다. 저널리스트라면 그 단어를 좀 풀어쓰거나 다른 용어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 <미국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 미국사>는 저널리스트형 역사서로서 훌륭하다.저자 케네스 데이비스는 미국 역사를 총 9개 장으로 나눈다.그리고 역사적 사안마다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알기 쉽게 미국사를 풀어가고 있다.이 책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가 '읽기 쉽게 쓰여졌다'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 밖에 없다.대개 역사서는 좀 고리 타분한 책으로 평가를 받는다.사실 역사서 만큼 읽기 쉽고 재미있는 책도 그다지 많지 않다.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사람들은 기가 질려서 역사서를 멀리한다.그리고 대개는 '국사 교과서형 역사의식'에 만족한다.아니면 손쉽게  TV 드라마가 제공한 'TV사극형 역사'로 자신의 정보를 한정짓는다.전자는 역사를 현(또는 역사적 사건의 현)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로 제단된 역사만을 정사로 이해하게 만드는 편협성의 위험이 있다.또 하나 TV사극형 역사는 드라마작가의 상상력을 역사로 이해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 케네스의 <미국사>는 미국에서 대안교과서로 이용될 만큼 흐름과 내용에 있어서 훌륭하다.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가치에 있어서도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치지 않는다.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그들이 만든 규범을 신화화한 세태를 비판한다.또 흑인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권리문제를 따라간다. 30년대 미국 재벌들의 역할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또 나름대로 의미로 인정한다.역사를 쓰는 사람이 그 나름대로의 사관을 버리기는 불가능하다.케네스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 하에서 적당한 줄타기에 성공하고 있다.그가 미국내 사회운동이나 사회주의에 대해 그다지 크게 다루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가능하다.하지만 일단 600페이지 정도의 통사에 그 모든 것을 꼼꼼히 다루기는 불가능했으리라 본다.일단 미국의 주류 역사에 대한 온건한 비판형 역사서로 파악하면 될 성 싶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역사서 틈틈이 들어가 있는 '유머'이다.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의 글에 하나의 포인트로 유머러스함을 가미한다. 이 유머는 촌철살인의 요소를 지닌다.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동떨어진 유머는 생뚱맞을 뿐이다.가끔 진중권,강준만,김규항등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글을 잡지에서 본다. 내용의 정당성과 당파성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그들의 글의 미덕은 유머이다.물론 가끔 과할 때도 있다고 본다.하지만 사람들이 그들의 글을 읽고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촌철살인의 유머러스한 문장이 한 역할을 할 것이다.이 책의 저자 케네스 역시 뛰어난 표현력으로 자신의 문장을 기억나게 한다.

"미국에는 늘 정신 질환을 앓는 이모 사진을 가족 앨범에서 떼어내려는,요컨대 과거의 어두운 부분은 지우려는 경향이 있었다."

"레이건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그의 방망이로 후퇴한 것으로도 모자라 백악관을 아예 깡패설교단으로 만들어 놓았다.그의 설교는 좋았던 옛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90년대들어 케네디 암살사건등 각종 음모론 영화가 사실인 양 평가되는 것에 대해) " 이 세대는 반정부 음모의 과대망상증을 텔레비전 예술로 승화시킨 x파일과 함께 자라난 세대이기도하다"

(클린턴과 조지부시의 TV토론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그의 리무진이 엔진과 미터기가 돌아가는 상태에서 이중 주차가 돼 있기라도 한 듯 연신 손목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미국사는 사실 미국인에게나 우리에게나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익숙하다.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은 반젤리스의 웅장한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1492>로 남아있다.미국 독립전쟁은 멜깁슨이 나왔던 영화 <패트리엇>이 기억난다.미국의 흑인노예사는 알렉스 헤일리 원작의 TV시리즈 <뿌리>가 명작으로 남아있다.저자가 미국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파악하는 남북전쟁은...내가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본 TV시리즈 <남과 북>을 떠올리게 한다. 웨스트포인트에 같이 입소하는 두 친구가 나중에 서로 남과 북군으로 갈려서 싸우는 내용이었다.그외에도 1차대전이나 대공황 시절을 다룬 영화는 수도 없다.그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다.2차대전 이후는 오히려 다큐멘터리가 익숙하다.미국의 매카시 열풍이나 케네디의 암살,닉슨의 워터게이트 등은 다큐멘터리로도 영화로도 수십편이 제작되었다.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듯이 내가 알고 있는 미국사의 대부분도 이렇듯 영상 이미지에 고착되어있다.이러한 영상 이미지의 역사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역사를 왜곡하고 낭만주의적으로 채색한다.남의 나라 역사이긴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듯 하다.

 나는 오히려 촘스키나 하워드 진의 책들 통해 비주류 미국사에 대해 먼저 알았던 것 같다.내가 미국민이 아닌 이상 비판적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더 옳다고 믿는다.하지만 이 책을 골랐을 때는 왠지 그냥 그 아이들의 주류 역사를 한 번 주욱읽고 싶은 욕구가 생겼던 것 같다.머리도 식히고 정리도 하는 기분에서 말이다.화장실에서도 읽고 사무실에서도 읽고 하면서 6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읽었다.쉬운 역사서이자 또 중도주의적인 미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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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9 11:29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원제가 재미있네요. Don't know much about history.

시리즈물인 것 같네요. 이 책은 역사편인 것 같고...

보관함에 넣었어요. 미국사는 TOEFL reading에 항상 나오쟎아요. 예전에 TOEFL 선생님이 가람기획의 미국사 101장면을 읽으라고...그 책을 읽으면 지문을 대충 읽어도 내용 안다고 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 이후로 비판적 시각으로 쓴 책들만 읽었지, 주~욱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반가워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사마천 2005-01-09 22:38   좋아요 0 | URL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가 참 좋은책인데 한번 살펴봐주시죠.

도서관여행자 2005-01-10 09:38   좋아요 0 | URL
이 책, 작년에 읽었었는데 저도 그 유머들이 기억에 나는군요^^

마냐 2006-02-11 03:59   좋아요 0 | URL
간만에 땡스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