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터 아내의 진통이 심해졌다.하루 종일 집에서 아내의 진통 주기를 기록하는 서기 노릇을 했다.대략 10분 간격이었다.오후 들어서면서 조금 템포가 불안정해졌다.미리 가기로 되어있던 조산원에 전화를 했다.주기적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면 전화를 하고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다.밤 늦도록 진통은 있었지만 5분 간격은 아니었다.나는 12시 조금 넘어 침대에 골아 떨어졌다.
아내의 앓는 소리에 눈을 떳을 때는 2시 30분 이었다.목소리가 다급해져 있었다.전날보다 통증의 강도가 심해졌다는 것을 목소리의 두께로 알 수 있었다.진통 간격을 적는 서기의 일은 전날에 이어 새벽에도 내 임무였다.달리 할 사람도 없으니 당연하다.진통 간격의 대략 3-4분대로 주기적이었다.처음에는 새벽이고 하니 아침까지 기다려 볼 까 했다.새벽 부터 조산원들 깨우고 하는게 민폐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30분 정도 아내의 고통을 지켜본 후 마음을 바꾸었다.지금 아이와 산모보다 중요한게 어디있나 싶었다.민폐도 끼칠 때는 끼쳐야지 할 수 없다.또 그들은 이것 보다 더 급한 상황도 경험했을터 그닥 민폐도 아닐것이라는 생각도 스쳣다.조산원에 전화를 했다.두 개의 전화가 계속 통화중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산모을 출산을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어제 저녘 싸놓았던 짐을 챙기고 아내를 태워서 일단 조산원으로 달려갔다.새벽 4시가 아직 안된 시간이었다.
조산사 선생님이 기초적인 조사를 했다.적절한 타이밍에 잘 왔다고 말씀하셨다.일단 집에서 앓는 것보다 전문가가 옆에 있으니 앓는 소리를 들어도 훨씬 덜 불안했다.아내는 나와 동갑이고 이번이 첫 출산이다.주위에서 조산원보다는 병원을 가라는 이야길 많이 했다.하지만 아내의 뜻은 완고했다.병원의 냉기 속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나는 아내의 주장에 동의했다.조산원이나 가정분만이 얼마나 더 인간적인지는 병원과 조산원 둘 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하지만 간접 경험에 의해서 우리 부부의 가치와 병원출산은 맞지 않는다고 결론 지었다.우리가 찾은 조산원은 가정집을 개조한 것으로 산모 셋 이상이면 더 이상 받을 수도 없는 아담한 곳이다.조산사의 경력도 훌륭했고 인근에서 평판도 좋았다.
본격적인 분만의 통증은 9시부터 시작되었다.아내는 2-3분 간격으로 힘을 써야했다.나는 아내의 머리맡에서 아내가 힘을 쓸 때 붙잩을 수 있는 팔뚝을 제공해야 했다.또 헬스장의 트레이너 마냥 구호를 붙이기도 했다.이완기에는 요가강사처럼 호흡에 숫자를 새기기도 했다.초산이고 노산이어서 결코 쉽지는 않았다.우리 아이의 태명은 '아침'이다.조산사가 '아침'에게 '아침 나절에 세상에 나오자'라고 독려했다.11시 가까이 까지 힘을 썻다 뺏다 반복되는 과정이 이어졌다.아내는 그래도 잘 버텼다.힘을 쓸 때 무척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비명도 지르지 않고 조산사가 시키는데로 잘 따라했다.대견했다. 11시 넘어가면서 아이의 머리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이웃에 있는 조산사가 품앗이를 하러 왔다.뭐 특별히 상태가 안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서로 서로 안바쁠때는 도와주는 친구 사이인 듯 했다.조산사가 내내 틀어놓았던 명상음악 CD를 빼내고 클래식 CD를 한 장 플레이어에 걸었다.분만의 클라이막스에서는 그 CD를 자주 튼다고 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 부터>였다. 얼핏 앨범 자킷을 보니 게오르규 솔티-시카고 심포니의 연주였다.왠지 앞으로 이 연주를 아이와 자주 듣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11시 15분쯤 되면서 부터 분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두 조산사는 앞에서 땀을 흘렸고 나는 뒤에서 아내의 팔을 꼭 잡았다.....그리고...
11시 28분에...10개월 동안 세상을 궁금해 하던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렸다.그의 감긴 두 눈에게 새로운 두께의 빛 이 비쳐들었다.나에게도 아들이 생긴 것이다.'아침'이가 이름처럼 '아침'이 다 가기 전에 나왔다.탯줄에 묶여 있던 태고의 아이를 엄마 배 위에 올려놓았다.아내가 '아침아 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다.나는 반갑기도 했지만 아이의 뒷머리가 길쭉해서 걱정되었다.조산사에게 그걸 먼저 물어봤다. '왜 아이 머리가 길쭉해요' 조산사는 원래 처음에 다 그렇다고 했다.아이를 바라보니 그 작은 손과 발때문에 눈물이 났다.힘든 길을 그래도 잘 나오주어서 대견스러웠다.아이의 탯줄을 끊고 아이를 거실 마루에서 풍욕을 시켰다.<황금똥을 누는 아이>에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면역력과 뭐에 뭐에 좋다고 했다.여기 조산원에서는 다들 그렇게 시켰다.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한 쪽 눈만 뜬 그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찾고 있었다.아이와 눈을 보며 몇 가지 말들을 건넸다. ..... ..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라...그리고 너 보다 더 약하고 없는 사람들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라고 말이다.
아이를 낳고 아내는 조산원에서 산후 조리를 한다.장모님이 출산 직후 멀리서 내려오셨다.나는...집에 들어왔다.잠깐 눈을 부치고 저녘 무렵에 몇 가지 물품을 챙겨서 돌아가야 한다.
아빠가 되었다.감격적이기보다는 실감이 아직 안간다.기쁘기는 하지만 아내를 만난 날 보다 기쁘지는 않다.아직 아빠이기보다는 아내의 애인이어서 그런가보다.이기적인 나는 아빠가 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사랑한다.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