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유폐되면서 점점 더 감정이 널을 뛴다.


1857년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나무처럼 잎을 떨군다. 바람에 견딜 재간이 없다. 매일 나뭇잎 몇 장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한 번에 많은 가지들을 부러뜨리는 폭풍도 있다. 봄이 되면 자연의 푸르름은 다시 돌아오지만 마음의 푸르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5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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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을  거의 일주일 가까이 걸려 읽어치웠다. 재미없는 만화책이 아님에도 징그럽게도 읽히지가 않았다. 뭐, 집중할 수 없는 사정도 있고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는 것이기도 해서 호기심이 반감하니 후다닥 읽을 수가 없었다 해도,  일주일은 너무했다.

 

 

 

 

그런데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받자마자 번개같은 속도로 읽고 나자 어쩐지 허망한 것이 아닌가. 이게 소설인가 만화인가라는 정체성의 의심부터 들만큼 디자인과 내용이  파격이긴 했다. 읽는 내내 낄낄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만화책을 읽나보다 단정할 정도로 휙휙 페이지는 넘어가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할머니의 그만 자라는 성화라니. 덕분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긴 했다. 무슨 스트레스를 받았냐고 물어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없지만, 일상의 묵은 때가 벗겨진 것만은 분명하다.  

1권에서는 기상천외한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기겁을 하는 초등학생 지로에게 적잖은 공감과 동정을 하며 이 콩가루 집안이 장차 어찌될까 싶어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더랬다. 그러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아버지의 대단한 이력들과 과격한 정의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었다. 과격하고 극단적이긴 해도 그의 말은 옳았다. 너무 당연해서 까마득하게 잃어버렸을 뿐. 국가 없는 게 낫고, 학교 다니지 않아도 바른 인간이 될려면 된다. 백인백색의 인간들을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으로 제단하여 학교라는 감옥에 밀어넣는 지금의 교육 행태, 끔찍하다. 세금, 내면서 억울한 적 많았다. 국가라는 기관이 너무 거대해서 차마 반항을 못할 뿐이지 누군들 기쁜 마음으로 낼까. 세상은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왕따 당한다. 그래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석에 끌려가듯이 여기 저기의 숱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혼자, 개인을 인정해 주지 않는 풍토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꽁꽁 묶여 사는 가여운 족속. 조금 다르게 살라치면 괴물 취급을 당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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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지 않고 뭐든 읽는다는 비슷한 취향의 사람의 만나면 기쁘다. 싼 값에 사 두고 읽기를 미루고 있다가 그녀에게 먼저 건넸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만 다들 재밌다 하니 지루하진 않을 거라는 코멘트와 함께. 나이 어린 그녀, 다음날 와서 하는 말이 “진짜 재밌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싸게 산책인데 재미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싱글싱글 웃는 그녀를 따라 내 입도 하 벌어졌다.

 

책이란 묘하다. 누군가 좋아요, 재밌어요, 하며 행복한 낯빛을 하면 그 책에 대한 애정이 마구 솟구친다. 빌려준 책을 가져와 눈을 반짝거리며 감상을 얘기하는 그녀에게도 역시. 주변의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바보도 악인도 속물도 없다. 더 없이 사람만 좋아서 오히려 이런저런 손해를 보고 산다. 남을 탓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 안에서 찾으려 한다. 끊임없이 속죄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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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0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좋아하는데 그분하고 저하고는 정반대군요
오늘도 누구를 신나게 욕했답니다.
그리고 자주 속물도 되고요.
책을 뭣하러 읽는지 저같은 사람은 모른다지요 쯥쯥
그나저나 넘 오래만이셔요..

겨울 2006-05-0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여우님이야말로 딱인데요? 세상 일에 무심하지 않고 마땅히 화낼 일에 격렬히 욕할 줄 아는 님을 존경해요.^^ 저 역시 입이 걸다면 건 편이라죠. 요즈음,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증세에 시달리고 있어요. 오늘은 회복모드입니다.

어릿광대 2006-05-0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엔 제대로 책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없내요. 그래서 부럽습니다. ㅜㅜ 어찌된 애덜이 책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지. 그래도 꿋꿋하게 생일 때마다 책을 사서 선물로 줍니다. ㅋ 언젠간 이 친구들도 이런 제 맘을 알아주겠지요?

물만두 2006-05-0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게 안되니 참 걱정입니다.

겨울 2006-05-0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릿광대님^^ 저도 꿋꿋히 책을 선물하는 사람입니다.
만두님은 무슨 말씀을, 님이야말로 산증인!!

비로그인 2006-05-0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저도 이 책보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겨울 2006-05-0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변호사 비숍 가정부가 되다라는 가정을 하면, 충분히요.^^

stella.K 2006-05-0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제가 생기면 도서목록을 뒤지지요. 읽지도 않으면서 혹시 이 책 읽으면 도움이 되려나? 하나가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전 책은 좋아하지만 남 원망 참 많이해요. 아주 지능적이고 조직적으로. 아무래도 책의 영향 같아요. ㅜ.ㅜ

겨울 2006-05-0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능적이고 조직적으로, ㅎㅎ 님이 그렇다면 그럴 법 하니까라고 생각해요. 효율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도 현명한 처세라고 보는데요? 누군가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을 보면 죽일 놈 나쁜 놈 하면서 마구 욕을 하라고 부추기는 걸요. 그래서 응어리가 풀릴 수만 있다면^^

잉크냄새 2006-05-0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선물해주었는데 가타부타 말도 한마디 없어요. 가끔 섭섭하기도 하더군요.^^

겨울 2006-05-0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그 사람에게는 책이 행복한 선물이 아니었나 봐요. ^^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p.22~23)


나는 자전거를 탈줄 모른다. 어려서 오빠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놀다가 벼랑으로 굴러 떨어진 후부터 바퀴 달린 모든 게 무서워졌다. 십수 바퀴를 구르는 대형사고였음에도 사방천지가 흙투성이였던 시골인지라 몸은 멀쩡했다. 십대에 이십대에 그리고 삼십대에 몇 번이나 자전거를 타려고 시도했지만 불행히도 실패했다. 내 머릿속의 기억이 죽어도 탈 수 없다고 쾅쾅 대못을 때려 박기라도 한 것처럼.


뜰 앞에 제멋대로 가지를 뻗치고 선 목련나무에 봉우리가 맺혔다. 많아봐야 열댓 개 정도? 키가 너무 커 흉물스럽다고 덜컥 베었다가 후회막급이었는데, 예상대로 작년 여름 내내 사정없이 가지와 잎을 피워 올리더니 드디어 꽃이 피려나 보다. 기원한다. 어서어서 자라 한낮의 볕이 따가워도 끄떡없는 그늘을 낳아다오. 네가 있을 땐 그 유익함을 몰랐다가 네가 사라지고 나니 뼈저리게 알겠더라.


봄이라고 좋아만 할 것도 아니다. 봄이 오니 몸과 마음이 들썩이고 근질거리고 숨이 막히고 짜증이 솟구친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이 참을 수가 없어진다. 최소한의 밥벌이조차도 확 집어던지고 가출하고 싶다. 묵묵히 견디던 삶이 지독히도 환멸스럽다. 할머니의 병이 깊다. 봄이 되면 당당히 두 발을 떼어 땅을 밟으리라 믿었건만, 할머니는 머릿속에 망상과 회한을 품고 호령하신단다. 아파도 좋으니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만 있어달라는 바램이 지나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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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1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읽었으면서도 왜 저 시를 놓쳤을까 몰라요...
목련이 등불처럼 피어나는데...
할머니....너무 많이 아프시면 안되요. 저 목련 등불 다 지기전에는...안되요

겨울 2006-03-1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는 글귀가 가슴에 와서 박혔어요. 목련꽃잎을 말리면 독한 향을 품은 진한 갈색으로 변해요. 떨어진 게 예뻐서 몇 번이나 주워 말렸다가 낭패를 봤던 기억이... 할머니는, 할머니는 많이 아파 하시지만 힘을 내서 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요.

잉크냄새 2006-03-1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시절이었죠. 편지속에 떨어진 목련을 넣어보낸 기억이 있어요. 아마 편지가 도착했을 즈음에 가장 남루하고 참혹한 모습이었겠군요. 그래서인지 그 편지의 추억도 결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않은건가봅니다.
근데, 김훈의 목련에 대한 표현. 어쩌면 저의 머릿속을 환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 2006-03-1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뽀샤시한 꽃잎이 그리 변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김훈의 글은 천천히 읽으면 구절구절이 시 같아요. 목련에 관한 저 부분에서 멈춰서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네요.^^
 

 

<수상한 식모들>이란 책을 읽는 내내 체증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가치 혹은 체제를 전복하는 발상의 신선함이, 식모라는 이름 밑에 깔린 불우하고 어두운 시절의 상처가 보상받는 듯해서, 통쾌했다. 식모살이를 했던, 그 과정에서 학대받고 홀대받았던 소녀, 여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깔깔대고 웃었으면 좋겠다. 식모라는 이름에 그런 놀라운 비밀이 있었음을 진짜로 믿은들 어떤가.   

    

소설과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어릴 적 살던 시골에 도시로 식모살이를 떠났던 먼 친척이 있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올 때면 화려한 치장을 해서 시선을 빼앗겼는데 부러움 반 시샘 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겨우 먹고살 정도의 농사가 대부분이었던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식모살이는 신부의 상승에 가까웠던 듯도 싶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식모살이를 한 경력이 큰 흠이 되었던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니면 흠조차도 잡지 못할 만큼의 형편없는 남자와의 결혼이었던가. 직접 만나 얘길 들어보질 못했으니 진실은 모르겠다.


당시에는 좀 산다싶은 집에서는 일꾼을 부렸다. 문서에 있는 종이 아니니 머슴은 아니었고 그냥 뭉뚱그려 일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무의탁 노인이나 노숙자 비슷한 형편의 중장년쯤 되는 그들은 마을 사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누구도 존대를 하지 않았고, 하물며 아이들조차도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아닌 ‘일꾼’이라는 호칭으로 하대를 했음에도 당연시 되었다. 일꾼들만이 입을 법한 낡은 옷에 몸에서 지게를 내려놓는 법이 거의 없었고 홀로 술을 마시고 홀로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 익숙했다. 악덕 주인을 만나면 혹독하게 부려졌고 좀 너그러운 주인집에 사는 일꾼은 종종 술에 취하는 약간의 여유도 있었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들의 삶을 수긍하고 관조했다는 사실이 이제야 생각해 보면 놀랍다. 그들의 노동에 대가가 있었던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였을까. 일꾼을 부렸던 악덕 주인 중에는 친구네 집도 있었다. 그 집에 놀려가기를 꺼렸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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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진출이 신분상승이 되는 경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시골로 이사와서 살다보니 노인네들의 말씀에 매번 이런말이 들어가더군요
"울 아덜이 안산 아파트에서 사는디..."
"울 큰 딸이 성남 아파트에서 이번에 30평으로 이사갔어. 가보니께 대궐갔더라니께"
경제적 수치로 신분이 상승되는 세상에서 저는 신분하락을 기꺼이 맞이하고 삽니다.
살만합니다. 뭐 하하하하^^

겨울 2006-02-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같은 신분하락이라면 저도 기꺼워 할랍니다. 시골에 다녀와서 비몽사몽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지금도 졸음을 무릅쓰고 앉아있고요. 여행이랄 것도 없는 외출에도 몸은 비틀대고 큰일입니다. 참, 송아지가 태어나는 경사가 있었네요. 그 전 달에, 한놈이 죽어서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부모님의 상심이 크셨는데 이번엔 아주 건강하고 예쁜 놈(?)이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