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흡을 하자. 깊고 길게. 그러다가 숨쉬기를 멈추고 들어봐. 아니 바라봐. 뇌수 저쪽에서 떠오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는 넓은 평원이 있지. 부드러운 경사로 내려가는 초원의 끝에 강이 흐르고 있어. 가만히 강안(江岸)에 앉아 그 강물을 바라봐. 그 강물의 흐름을 좇아가노라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지. 이상하게도 뇌리에 흐르는 그 강물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이야. 누구나 동일하게 매번 같은 시간, 같은 풍경을 불러낸다는 것도 예사롭지는 않아. 이를테면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햇살이 수면 위에 쏘아대는 금화살의 방향으로 보아 나는 남쪽을 마주하고 있고, 물 위에서 일렁이듯 반짝거리며 이동하는 햇살 가루의 온기로 느끼건대 머물러 있는 시간은 아마도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쯤의 시간. (그 집 앞, p.15)


좋아해마지않는 최 윤의 글은 손이 닫지 않는 거리의 마음과 귀를 씻긴다. 잠깐의 우울로 가라앉은 기분도 덩달아 축 늘어지는 팔다리도 그래서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눈을 감아도 잠들지 못하는 불안에 떨던 영혼을 달랜다.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을 부를 수도 없고 반복해서 읽으며 길라잡이가 되어줄 성서도 없지만 간혹 이렇게 몇몇 글들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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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허구일 거라는 전제하에 읽으면서도, 작가가 아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어디쯤일지가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윤수의 ‘블루노트’를 읽다가 청승맞게 눈물을 흘린 것은 슬플 수밖에 없도록 쓰인 글 때문이라고 투덜투덜 댔다. 한 사형수가 흘린, 건넨 삶의 자잘한 부스러기를 조잡한 기술로 엮은 거라고. 사형수를 잉태하는 세상, 사회의 부조리에 새삼 분노하는 척하다 체념하는 척하다 결국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보기 좋게 빚은 소설이 아니냐고, 사형을 위한 사형이라는 비난과 성토, 호소 말고는 전부 다 가짜가 아니냐고, 속살거리는 혀 때문에 솔직히 맥이 빠졌다. 온전히 소설을 소설로,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망각을 체험하지 못한 것은 내 탓일까 아니면 작가 탓일까. 정말 대단한 작가라면 가짜도 진짜처럼 진짜는 진짜처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건 신파고 상투적이고 뻔해. 물론 이렇게 툴툴거리는 건 비겁하다. 겨우 한 번,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읽어치운 주제에 말이다. 그러나 유정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존재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은 것은 내내 용서라는 빈말만 남발한 것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또박또박 악랄하게 엄마와 싸웠어야 했고 가해자인 사촌오빠를 찾아가 분노를 터트렸어야 했다. 얼렁뚱땅 세월을 탓하며 용서라는 이름으로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되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고? 그거야말로 위선이고 위악이다.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게 뭔데? 현실 혹은 사실을 뛰어넘은 치열함, 순결함, 맹목성 혹은 현실같은 비현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만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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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1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맨날 그렇고 그렇게 얽힌 글은 맥이 풀린답니다.
저 역시 이 작가가 왜 계속 자기구멍속에 빠진 이런 글만 쓰는건지 이해가 안되어요
도대체 글은 왜 쓴답니까. 우리 소설가(여성작가)들의 한계점을 그녀로부터 발견하면 속이 상해요. 헉..너무 악평이었죠?^^;;
 

 

제프리 디버.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가. 읽는 내내 자꾸 심술이 불만이 꿈틀댄다. 맛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확 뱉어 버리고 싶어지는 책이다. 링컨 라임이 등장할 때와 아멜리아 색스가 등장하는 장면 말고는 전혀 흥이 나질 않는다.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적당히 소설로 엮은 듯해서. 하긴 소설의 영화화든 영화의 소설화든 대다수의 작가들이 꿈꾸는 일이니 이런 푸념은 단지 푸념일 뿐인가. 그렇담 뭘 기대했는데? 적어도 이전에 읽은 퍼트리샤 콘웰 정도의 감수성? 그럼에도 ‘코핀 댄서’까지는 읽어주겠다. 한 작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려면 적어도 두 편 정도는 읽는 게 예의일 테니. 이거 다 읽고 영화랑 비교하려고 덴젤 워싱턴과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비디오도 빌려왔다. 사실 이게 더 기대가 크다. 비교하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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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1-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보고서 책을 읽었는데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어쩌면 무언가 감성이 맞지 않는 시기에 읽으셨는지도...^^
코핀댄서가 저는 더 재미있었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참.. 닉네임을 바꾸셨군요...^^

비로그인 2006-01-2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핀댄서 원츄..;;;

겨울 2006-01-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성이 맞지 않는 시기라, 날개님 말씀을 들으니 아, 그렇구나 싶어요.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읽어놓고 불평이라니 경솔하죠? 사실 첫페이지부터 문장들이 마구 거슬리는 거에요. 지문이나 묘사도 이상하고 번역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그랬어요.

비숍님, 본컬렉터 읽으며 코핀댄서 괜히 샀나 싶어 소심을 떨고 있었어요. 하지만 님이 원츄 하시니 안심이 됩니다. ^^
 

 

소설읽기를 마치고 든 생각. 아니, 이렇게 악덕한 인간이 있을 수가. 설령, 덜 사랑하는 딸이라고 해도, 그 딸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라는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 산 사람은 살자, 그건가?


신선하고 매끄럽게 흐르는 글에 맹목적으로 빠져 재미나게 읽는 것은 좋다. 좋은데, 기분은 영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아버지가 딸이 가족이 정말 이렇게 막 가도 되는 건지. 단지 재미있자고 이런 소설을 일부러 선택해서 읽지는 않겠다. 말 그대로 게임이라면 마지막까지 유쾌한 게임이었으면 좋았겠다.


어쩌면 취향차이인가. 그런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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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오히려 누구나 자기 분신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발견하지 못해 사람들은 고독한 것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긴 숨이 터져 나왔다. 꽤나 긴장을 하고 읽었던 모양이다.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는구나. 세상에 오직 둘 만이 남겨진 것 같이 고립된 상황에서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안도했다. 수줍게 레몬을 꺼내 갈증을 해소하며 마주보고 선 자매, 가족, 너인 동시에 나. 라벤더 꽃밭에 선 그들의 미래는 한없이 투명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영화 비밀과 만화책 헤드를 통해 이미 접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선뜻 흥미가 동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이벤트가 아니라면 과연 내가 이 책을 샀을까. 소설은 물론 재밌다. 나에게 재밌지 않은 소설이 과연 있을 지가 의문이지만.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소설 자체로도 영화를 보는 듯 실감이 나고 박진감이 있다. 도시에서 도시로 현재에서 과거로 뻗어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쫒다보면 마치 이전에 본 영화를 상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생명공학의 최첨단이라는 현재, 아슬아슬한 그 경계에 선 문제를 다루고 있음이다. 솔직히 읽는 내내 무서웠다. 이게 현실이 되면 이미 현실이 되었다면 하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과학이라는 맨 꼭대기 층에 군림한 사람들이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권력에 희생될 약자가 나일 수도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오싹 했다. 소설속의 정치가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로 선택한 방법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있을까.


후타바와 마리코, 그녀들은 용감했다. 과거의 망령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끝까지 싸웠고 결국은 이겼다. 그들은 둘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어쩌면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긍정적 사고방식이 마음에 든다. 누구인들 어떤가. 나는 태어났고 살았고 앞으로도 쭉 살아야만 하는 것을. 소설의 끝은 마치 시작 같다. 두 여자가 떠나는 멋진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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