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93년 8월이었다. 작고 얇은 한 권의 책이지만 어지러웠던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고 대변하는 독특한 양식에 매료되어 하룻밤을 샐 만큼 내게는 특별한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다스리지 못하여 울고 웃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이름으로 그림 속에 깃든 역사를 추적하여 다니는 서경식의 여행기는 잠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역사는 고통으로 얼룩져 왔고 그것을 기록하는 화가들의 영혼은 치열할 수밖에 없음이다. 두 형을 독재정권의 손아귀에 빼앗기고 부서진 가족의 파편을 먼 이국의 땅에서 발견하고 감회에 젖어 기록하는 사람 또한 또 하나의 예술가임은 분명하다.

회화에는 일자무식이었던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감동받으며 잊을 수 없는 그림 몇 개를 가슴에 각인 시킨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그림이든 역사를 캐고 읽으며 이야기를 만드는 습관이 생겼으니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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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일본과의 불협화음으로 마음이 쓰라릴 때, 이 만화의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왠지 싫지만, 어느나라의 것이든 흥미롭고 재미난 만화에 끌리는 것은 본능일 뿐.

일본인 중에는 한국에서 자국의 문화가 유행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고 드러내서 잘난 척을 한다고들 하는데, 잘난 것을 잘났다고 하는데 어떤가. 아닌 것을 기라고 하는 것 보다야 백 배는 솔직하다. 그래, 당신들 잘난 것 알아, 아니까 왠만하면 실수도 인정하지 그래.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은 현재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인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의 사상과 이상은 현재의 일본이 있기 위한 주춧돌이 되었다.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로 바다 건너 다른 세상를 지향하고, 신분제도의 부조리와 무지몽매한 국민을 깨운 그의 세계관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발판이 되었다.

만화는 료마의 천진난만한 어린시절을 다루고 있다. 못생기고 어리숙한 료마는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고 집에서는 천덕꾸러기 바보취급을 당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착하고 여린 소년이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놀기를 좋아하던 그에게 바깥 세상의 이해되지 않는 부조리가 하나씩 다가온다.

귀여운 그림체와 유머러스한 글과 어우러져 료마가 저지르는 실수들과 생각들은 웃음과 가슴 찡한 감동을 동시에 준다. 결핵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료마의 마음과 저보다 무지하고 가난한 친구를 돕는 무의식적이고 사소한 행동이 그렇고 검술을 배우는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도 유쾌하다.

청년 료마는 아직도 요원하지만 기대된다. 비록 만화를 통해서지만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전의 일본 사회를 엿보는 재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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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1-3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동아공영권으로 대표되는 일본 군국주의의 발흥과 임진왜란을 혼동하신거 아닌지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시바 료타료의 료마가 간다 도 본다본다 하면서 아직 안봤는데요.

겨울 2004-02-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뭐든 대충대충 얼버무려 쓰는 성격이 여기서... 야마오카 소이치의 '사카모토 료마'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만은 또렷한데, 아쉽게도 그 책은 아는 이에게 빌려주어 내게 없다. 만화를 보면서 소설을 다시 봐야겠다 작정은 했지만 이왕 보는 거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싶은 바램이다. 근데, 무려 10권이란다.
 

첫 권을 펼쳐놓고 읽기가 참 망설여졌던 만화다. 가벼운 오락용으로 읽기엔 페이지수와 글자수가 장난이 아닌 듯 해서 그저 열심히 주변의 반응만 훔쳤다.

이 만화 어떤가요? 재미있나요? 딱딱하지 않나요?

생각외로 반응들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쌓아놓고 읽히는 만화는 아니지만 지적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입을 모았다.

제로. 국적, 신분, 본명을 알 수 없는 남자. 그러나 그의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복제가 가능한 전지전능한 존재. 진짜가 아니면 만들지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객이 원하는 무엇이든 상응하는 대가와 함께 이루어지게 만드는 미스테리한 인물.

때로는 단 돈 1달러로, 때로는 고객의 전재산을 요구하며 자신이 해결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홀연히 사라지지만 세계각국의 역사와 유물, 유적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으로 그것이 업지러진 물일지라도 제로에겐 주워담는 게 가능하다.

소멸한 과거를 재현하고 부활케 하는 제로를 보노라면 한동안 잊었던 꿈을 꾸고싶어진다. 그리고 이런 만화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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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난 후에야 그 사랑의 진실을 발견하는 쥬리.

정체성을 잃은 채 무표정의 인형처럼 존재하는 카제미치.

이것은 아주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혹시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품게하는 무서운 이야기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을 실험용으로 팔아먹은 천륜을 거스른 아버지와 무력하게 그 음모에 동조하고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엄마라니 끔찍하다. 또 하나뿐인 누이동생은 그 어머니에 의해 비소에 중독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끊임없는 폭행을 당하며 성장한 쥬리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않는 여자가 되어버린다. 동거인인 카제미치가 실종되자 비로서 마음의 문을 열 결심을 한다.  

가정, 가족의 해체를 이렇듯 무시무시한 코드로 그려내다니, 가벼운 만화로 읽었다가 앗, 뜨거워라고 소리지른 기분이다. 몸의 절반이상이 기계인 사람을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고력과 분별력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이제 시대는 사고력과 분별력만큼은 능숙한 로봇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으니까. 인공심장에 인공피부, 인공안구까지 설령 뇌의 일부가 내 것이라해서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나일지는 의문이다.

카제미치가 자폭을 선택하는 과정도 그런 일련의 고뇌의 결과다. 노예처럼 이용당하다 쓸모없이 버려지기 보다는 자존을 지키겠다는 그리고 죽어가는 누이를 살리겠다는 필연적인 선택인 것이다.

자신을 닮은 여자 쥬리를 만나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녀가 자신의 흔적을 찾아 주리란 희망을 품고, 찰나의 순간에 소멸한 카제미치의 영혼에게 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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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가끔씩 한 마리의 새가 되거나 한 포기의 풀이 되거나 혹은 한 방울의 빗방울이 되어 머나먼 옛날부터 살아오다가, 우현히 이번엔 인간이 된 것은 아닐까?

과학적으로 생각해서 생명을 머금고 있는 물질순환이라는 굴레의 속에 지금의 자신을 넣어본다면 꽤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는 아주 조그만 '생명'이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두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계는 부조리가 서로 얽혀있는 광주리 속 같아서 이즈미처럼 똑바로 살고 있더라도(사회적인 의미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하자면, 타인이 지닌 고독의 사슬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정도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압도적인 외로움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 주이치는 마음을 깊이 '생명'의 인연을 행복하게 믿으면서 이즈미를 영원히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조그만 구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문인용)

 작가: Seiki Tsuch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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