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소설에는 '깊은 슬픔'이 가볍게 드리워져 있다. 그 안의 선택받지 못한, 실패자, 버려진, 상처투성이의여자, 남자, 사람에게 스스로의 어떤 부분을 투영시키며 공감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아, 뭐 이런 개떡같은 일이 다 있을까 싶지만, 사는 게 뭐 다 그런 거지 싶지만. 그럼에도 한숨이, 아주 깊은 한숨이 날 수밖에 없는. 그와 그녀와 요한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푹 빠져들어 읽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가 길고 긴 편지를 보내온다. 이해못할 것도 없지만 이해못할 이유로 사랑하므로 떠나야한, 지나치게 못생긴 여자의 입장이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부당한 놀림과 멸시,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그래서 그녀의 영혼에는 적나라한 상채기가 새겨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치유되었노라 고백한다.  그의 존재와 배려와 관심에 행복하고 또 행복했지만 믿을 수도 믿어서도 안된다고 역설하는 달의 뒷면처럼 어둡고 어두웠던 그녀.....

.......... 저는 언제나 '진행형'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였습니다. 끝없이 덧나고 영원히 이어질 그런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흉터를 가진 여자일 뿐이에요.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차이인지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여자에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도 짐작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하자면 제게 당신은 그런 남자였습니다. (286p) 

바라는 모든 걸 얻는 것이 인생의 가치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겨우, 가까스로 얻은 것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인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포기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저 같은 여자에게... 인생의 가치는 그런 것입니다. (28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란, 샛노란 표지가 화사하게 핀 해바라기 같아서 오래도록 바라만 봤었다. 아니면, 불꽃이었을까. 그건 보통 보다는 특별에 가까운 감정. 내 손 가득한. 인간, 사람, 남자이거나 여자, 누구라도 마주칠 감정, 불안, 고독, 소소하지만 오래가는 상처에 대한 고백이자 기록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가수라는 걸 알고 놀랐고, 노래를 찾아봤다. 그는 꿈이 없어 절망했던 시절을 이렇게 들려준다. 청소년들이여,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마라, 그럼 관객이 되면 되니까, 그 뿐이다.   

만약, 사는 게 힘이 부친다면, 이런 책 어떤가요.  이런 위로 어떤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째서 그 열 살짜리 말라깽이 소녀가 이토록 오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방과후에 다가와 내손을 잡았다. 그 사이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뿐이다.

하지만 아오마메는 그때 그의 일부를 가져가버린 모양이다. 마음이나 몸의 일부를. 그리고 그 대신 그녀의 마음 혹은 몸의 일부를 덴고 안에 남기고 갔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런 중요한 주고받음이 이루어졌다. (BOOK2,110페이지)

 

디킨즈의 소설에 나오는 고아들처럼. 상처받은 영혼이 상처받은 또 다른 영혼에게 끌리듯이 그렇게 무심코 다가갔던 소년과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스침과도 같은 마주침의 기억이 영혼에 각인되었다. 삶의 목적이 되고 존재의 이유가 될 만큼의 무게감이다.

 

손에서 놓을 수가 없도록 재미있다. 아주 빠르게 읽힌다. 무섭고도 두려워서 타본 적 없는 롤러코스터가 이럴까. 흥미와 스릴, 연민과 안타까움, 조바심과 기대치의 카타르시스가 마치 내면에서 폭발하는 듯했다.

 

덴고와 아오마메. 그들이 언제쯤 어떻게 만나질까 하는 당연한 기대는 나뿐일까. 이 소설에 빠져든 사람 전부가 아마도 똑같은 예상과 추측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당연함이 비극의 전조라는 것도 짐작한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 평범해져 버리니까. 
 

후카에리는 부서질 듯 연약한, 매혹적인 이미지에 반하여 실제는 팜므파탈적이다.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녀의 ‘자각’으로 인해 시작되었으므로. 아버지, 후카다가 리시버가 된 것도 그로인해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 던져진 것도, 의지와는 무관하게 십대의 어린 소녀들과 성관계(다의적인 교접)를 가지게 된 것도 그리하여 아오마메로 하여금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모두 시작은 후카에리였다. 그녀는 아오마메가 간절히 간절히 원하지만 가지지 못했던 사람(혹은 사랑)도 아주 쉽게 갖는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선한 눈망울로 응시하면서. 한 세계를 깨웠고 그 세계에 반하여 도피하여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아 대항마를 세운 장본인이다.

 

내 의문은 새로운 리시버가 된 덴고의 역할이다. 그는 첫 번째 리시버였던 후카다와 다른 역할인가. 죽음에 이르러 공기 번데기가 된 아오마메를 과연 구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까. 후카에리는 선일까 악일까.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게야. (book2,289p) 
 

아오마메, 나는 반드시 너를 찾아낼 거야~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젖은 길은 이내 말라버리곤 했지만, 나는 그 길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길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 나 역시 그 밭의 채소들처럼 할아버지의 발소리를 기다리게 되었다. 반 통의 물을 잃어버린 그 발소리를.  (28쪽)   

 

몸이 불편한 할어버지가 물을 길어 채소밭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시인의 시선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마음이 울렁거린다. 자박자박 느리게 걷듯이 읽기에 좋다. 가는 한해를 무심히 바라보며 내가 뱉은 일그러진 비틀린 말들이 잊혀지기를.   

 

산사의 고요한 종소리 같은. 내 손에 들린 것은 투명한 비닐로 깔끔히 커버를 씌운 헌책이다. 이전 주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을,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중고시장에 팔려나오게 됐는지. 허긴 영원한 사랑의 맹세는 책에 관해서도 의미가 퇴색하더라. 목숨이라도 줄 듯 품던 것들도 세월과 함께 정리될 품목으로 분류한 게 엊그제니까. 이사 다니면서 악착같이 챙겼던 많은 책들이 너무 낡았다는 이유로, 다시는 볼 일이 없다는 이유로,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묵은 먼지와 함께 재활용 되거나 팔려갔으니. 요즘은 사실 새 책을 사서 꽂는 일보다 묵은 책을 골라내는 횟수가 더 많다.  혼잣말로 나이 탓을 해가며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아 났음을 자축하며.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지금의 비워가기 이후는 무엇이 올까.

눈 내리는 회색 하늘과 마주선 창가에 작은 화분 두 개가 있다. 로즈마리의 푸르른 잎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 다양한 화초들과 인연을 맺은 한해였다. 난생 처음이었다. 진지하고 바른 자세로 마주한 식물과의 교감은. 벌써부터 봄 여름 가을 화단에 심을 씨앗을 생각하며 설렌다. 이것도 지나가는 한때라고들 하지만 이런 한때가 있는 삶이 싫지 않으니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찰라 속으로 들어간다




벌 하나가 웽 날아가자 앙다물었던 밤송이의 몸이

툭 터지고




물살 하나가 스치자 물속 물고기의 몸이 확 휘고




바늘만 한 햇살이 말을 걸자 꽃망울이 파안대소하고




산까치의 뾰족한 입이 닿자 붉은 감이 툭 떨어진다




나는 이 모든 찰라에게 비석을 세워준다




오랜만에 내 맘을 홀리는 시집(가재미)을 샀다. 근데, 가재미가 어떻게 생겼더라.




***엄마가, 도토리묵을 쑤어 오셨는데 함지박 안에서 출렁거린다. 적당히 굳어야 모양 좋게 잘라낼 텐데, 하룻밤을 재워도 출렁거린다. 시외전화를 걸어 왜 이러느냐 하소연을 했더니 엄마의 한숨 섞인 말; 누가 도토리와 밤을 반반으로 섞어 묵을 만들면 맛이 좋다하길 레 덥석 사고를 쳤노라고.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굳지를 않아 썩은 밤새 한잠도 못 잤노라고. 그리하여, 당분간 흐물흐물 출렁거리는 도토리와 밤이 섞인 묵을 열심히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는 묵 맛을 알고 먹었나. 간장 맛으로 겨우 먹었지. 청포묵, 메밀묵은 아는데 밤묵은 처음이다. 그런 묵이 정말 있기는 한 건가. 아님 울 엄마가 순진하신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