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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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크고 오래사는 생물. 나무는 동물과 바람에 씨앗을 묻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가로지른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고 가을이 오면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멈추었다가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난다. 폭풍, 짐승, 해충, 세균, 박테리아, 인간에 의해 나무는 일상적으로 상처를 받고 그것을 치료하는데 평생을 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나이테를 만들면서, 땅 속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리면서, 하늘 높이 더 멀리 잎을 튀워 올리면서 오직 한자리에서 수천 년을 살아가는 나무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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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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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에는 작은 열매를 좋아하는 작은 새가 많았다. 새는 섬 곳곳을 날아다니며 작은 열매를 먹었다. 새의 몸을 통과하고도 파괴되지 않은 씨앗은 흙 위에 떨어졌다. 씨앗은 파묻혔고 수많은 동물이 그 흙을 밟았다. 다람쥐처럼 작은 동물은 씨앗을 모아 곳곳에 숨겼다. 숨겨둔 씨앗을 까맣게 잊고 거듭 숨겼다. 그중 어떤 씨앗은 움텄다. 새싹이 올라왔다. 새싹 근처에는 새싹이 많았다. 동물은 새싹을 밟았다. 새싹은 죽지 않았다. 새싹은 흙과 비와 태양으로부터 스스로 양분을 구하며 수십 년 동안 뿌리와 줄기를 만들었다. 새싹은 어린 나무가 되었다. 9p-

나무를 좋아하지만 나무에 대하여 깊이있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냥 거기에 있기에 바라보고 지나가고 이파리를 모으거나 가지를 잘랐을 뿐이다. 오늘도 대추나무와 감나무의 가지를 잘랐다. 너무 키가 크다는 이유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잔가지 굵은 가지를 순식간에 잘랐다. 어떤 설명도 양해도 없이 무자비하게. 마치 이 모든 노동의 이유가 나무 탓인냥 그렇게 뭉툭한 모양새로 잘라진 나무의 굵은 기둥을 보면서 처음으로 죄책감을 가졌다. 넓은 세상에 심어졌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다른 하늘 아래였다면 멋진 새둥지도 이고 지고 맘껏 키를 세우고 높이 날아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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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 개 두 마리

 

화가이자 은둔자인 토니오는 3년에 걸쳐 지은 작은 오두막에 살고 있다. 해발 1000미터의 산록에 기대어선 무덤처럼, 혹 테이블의 끝에 웅크려 앉은 사람처럼 서 있는 집이다. 그 계곡에는 또 다른 남자 소몰이꾼 안토닌이 종종 모습을 보였다. 그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말하는 법도 서툰 사람이었다.

 

전혀 접점이 없는 그들은 그저 멀리서 경계하거나 경외하며 바라보지만 대화라고는 나눠보지 못한 관계였다. 어느 날 토니오가 안토닌을 식사에 초대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날씨가 어떤가라고 묻듯, 가볍게 식사를 하자고 청하는 토니오에게 아마도 안토닌도 아무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그런데, 그 식사는 안토닌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깨끗하고 정갈한 풍경이었다. 테이블에는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가 있고, 잔과 포도주, 빵이 있었다. 토니오에게는 별거 아닌 일상이 안토닌에게는 생경하고 엄숙한 경험이었다. 창 밖에는 안토닌의 개 두 마리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토니오의 부드럽고 조용한 배려가 안토닌을 점점 평화롭게 했다. 식사가 끝난 후 안토닌은 머뭇거리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내 놓았고, 토니오는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안토닌은 모자를 양손에 잡고 서 있다가 어느 순간 가만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토니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두 남자의 조용한 눈물과 포옹, 이를 지켜보는 두 마리의 개가 있는 풍경이 이 짧은 에세이의 전부다.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이미지가 새겨진다. 인적도 드문 깊은 산 속, 도시에서 온 화가와 일생을 그 계곡에서 살았을 소몰이꾼은 이후 어떤 생을 살았을지 상상할 수 있다. 오랜 우정을 지속했을 수도 있고, 사정이 생겨 곧바로 헤어져 다시는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그들은 서로를 응원하고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공유한 그 짧은 오후의 식사는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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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리 동네에는 거대한 교회들이 유독 많다. 건축물로서의 교회가 가진 상징성이 있다. 유년시절 이웃 동네에 있던 딱 하나의 교회가 그랬다. 작고 낡았지만 따뜻했던 기억,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은 트리가 빛나고 소소한 다과와 선물이 기다리는 곳, 작은 오르간과 음악, 성경 구절이 적힌 작은 메모장을 손에 꼭 쥐고 달려가던 그 곳이 진심 하느님의 나라였다. 그 교회는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었다. 아무리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도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곳이었다.

 

반면 지금의 교회는 곳곳에 울타리를 치고 외부인 접근금지를 선언한다. 그중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외부인 주차금지라는 표시다. 외부인도 주차금지도 과연 이 곳이 하느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다. 거창하게 종교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누구의 교리가 옳은가를 두고 피터지게 싸우는 모양새도 우습다. 비종교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고 피장파장,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본질적인 진리는 안중에 없는 싸움이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다 교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하루는 그 교회의 전도사라는 청년이 나와 어린아이들 어쩌고 하면서 완곡하게 금지했다. 교회와 어린이에게 강아지가 그렇게 큰 폐해일까. 모든 땅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소견도 우습고, 잠재적 위험성을 따지는 비논리와 편견에 화가 난다기 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증오와 용서의 기본 개념도 없는 철옹성에 순간 이런 세상이 희망이 있을까 싶었다. 무언가에 대한 대책 없는 혐오는 무섭다. 그것이 인간이건 동물이건 혐오에는 잠재적 범죄성이 있다. 교회에 들어가면 선하고 그 외는 악이라는 이분법의 극대화다. 산책하는 강아지를 몰아내는 그 전도사의 눈빛과 행위가 증오라는 악이라면, 교회 주변과 마을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아저씨의 얼굴은 사랑이라는 선이었다.

 

톨스토이 단편선 첫 째 이야기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는 종교와 신의 본질에 대한 아주 쉬운 성찰이다. 천사 미하일은 하느님에 의해 인간세상으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시고 답을 찾아 돌아올 것을 명하셨다. 첫 번째는 <인간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 가>, 두 번째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였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죽어가던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 그 신사는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사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살아서 신을 장화인지 아니면 죽어서 신을 슬리퍼인지 그것을 알 수 있는 힘은 허락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사람이 되었을 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 나를 불쌍히 여겨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 두 고아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도 한 여자의 진실한 사랑이 있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자는 하느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천사가 다시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는 이 짧은 이야기는 간결하지만 명확하다. 톨스토이는 가난과 불운으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부를 축적하고 과시하며 천국이라는 성채를 짓고 있는 대형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우화 같은 소설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성경과 하느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들의 장황한 설교에 벌써 질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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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148-149페이지)

 

청년 의사 폴은 성공과 명예를 눈앞에 두고 폐암을 선고 받는다.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며 버틴 레지던트 최고참으로 머잖아 모교 스탠퍼드에서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위대한 의사이자 과학자의 반열에 오르리란 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이다. 꿈이, 미래가 산산조각이 났다. 돌아갈 길이 없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최대한 느리게 천천히 읽어갔다. 단번에 읽어치울 수가 없다. 그동안 읽어온 흥미진진한 여타의 소설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전도유망하던 청년의 실제 상황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모습을 상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읽는 것도 이렇듯 고통스러운데,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정리하는 마음은 얼마나 비장했을까.

 

그럼에도 문체는 유려하다. 막힘없이 흐르고 성찰하고 통찰한다. 건강하던 시절의 생을 향한 의지와 열정은 불처럼 뜨겁고 먼 바다의 심연처럼 깊다. 건강을 잃고 병과 마주하는 순간조차 반성하고 회고하며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죽음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슬플 정도로 들여다본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숨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142페이지)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죽음 없는 삶이라는 것 없다(161페이지)

 

폴은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계속 나아가야할지, 멈춰서 다른 설계도를 그려야할지 실존적 진정성과 마주한다. 그는 늘 치료과정의 고통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했지만 그 고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의사였던 그는 역시 의사인 아내와 함께 끊임없이 암과 수많은 치료법들, 수반되는 고통과 망가지는 육체와 정신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 한다. 삶에는 죽음이 필연으로 따르므로 어떤 상황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의사이자 과학자, 문학도를 꿈꾸었던 그는 자신의 짧은 생을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점점 죽음에 이르지만, 한순간도 무너지진 않는다. 슬픔에 잠겨 통곡은 할지언정 불안에 떨진 않는다. 그는 가족들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아내가 있고 8개월 어린 딸이 있어 완벽한 삶이었노라 말한다. 마지막 순간, 호흡이 불안정할 때에도 삽관 대신에 존엄한 의미 있는 이별을 위해 산소마스크를 벗고 가족들과 마주한다.

 

안타깝고 슬픈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 앞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져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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