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라니. 이유가 있을까. 그냥 책이 있고 시간이 있고 재미와 흥미가 있으니까 읽는다. 거창한 목표나 목적을 위해 읽기도 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내게 읽는다는 건 삶과 삶, 일상과 일상 사이의 틈을 메꾸는 일이다. 틈은 공허일 수도 있고 무료함이기도 하다. 빛 뒤의 그늘, 밝음 후의 우울이랄까.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면 안될, 맹한 그 순간을 채울 수 있는 건 책읽기 뿐이다. 혼자 있기를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울려 말할 상대를 찾아나서는 친구가 있다. 웃고 떠드는 수다를 통해 삶의 빈틈을 메꾸는 그녀의 방식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내리지 못한다. 단지 다를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때가 있다. 삶은 그런 일들의 연속이고 다행히도 내겐 책이 있어 행운이다. 만약 책이 없다면? 끔찍한 상상이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우물 같은 깊은 공허가 시시때때로 입을 벌린다. 가장 많은 시간은 가족들과 가끔은 친구와 일상을 공유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매일 음악을 듣고 매일 정원에 나가 일한다. 그리고 온전하게 홀로인 시간이 오면 어김없이 책을 읽는 것으로 공허의 입을 닫는다. 책의 존재 이유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하여.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 P33
진정한 복수는 모욕을 주는 것도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를 동정하는 것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 P77
86년생 그녀의 고군분투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고 웃는 이야기는 마치 잘 쓴 장편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데, 이 글은 논픽션이다. 슬픈 내용인데 씩씩해서 힘을 얻고, 화가 나는데 유머러스 해서 하하 웃고 있다. 제목부터도 심상치가 않더라니. 딱 그 느낌의 글들이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작가는 보이지 않는 눈을 탓하고 불평하기를 거부하고 반대한다. 대신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녀 주변의 장애를 가진 친구와 동기의 보도 듣도 못한 신선한 에피소드도 유쾌, 통쾌하게 막힌 숨을 뻥 뚫어준다. 불가항력인 장애를 피하고 숨는 게 아닌 정면으로 맞서는 그들 모두의 삶에 화이팅이다.
모근 것은 이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요 -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