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장을 샀다. 파란색과 연두색의 줄무늬는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도 없다. 디자인도 근사하고 색도 예쁜 다른 것도 많았지만 내가 산 것은 구시대의 유물 같은 고전적인 스타일의 것이다. 한쪽 벽에 척 걸쳐놓고 나니 왜 이리 행복한 건지. 건강은 물로 환경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아늑해서 불면의 밤이 생길 리 없고, 무엇보다 여름다워서 좋다. 그래서 은근히 주변사람들을 부추겨 하나씩 장만하라고 유혹하는 중이다.
집에서 슬프거나 따분할 때면 가볼 만한 곳이 공항이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다. .... 그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레를 감상하러 가듯이 공항을 감상하러 가는 것이다. (‘공항에 가기’ p.20)
공항으로의 산책이라니 별스럽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단, 저 글에, 공항이 집에서 가까울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으면 좋겠다. 이 도시에선 공항은 어렵지만 전철역이나 기차역은 고려해볼만할지도.
까마득한 시절, 가족이나 집보다 친구와 밖이 좋았던 때, 먹고 놀다가 지치면 보통씨처럼 우리도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돌 벤치에 앉아 어디론가 떠나거나 돌아오는 혹은 마중하거나 배웅하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구경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떠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렵고 불안하기만 했던,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여행가방과 기차시간에 늦을까 종종거리는 걸음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그리고 혹여나 우리가 아는 누군가가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어림없는 기대감에 설레며. 정신없이 웃고, 놀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녔지만 뭘 해도 채워지지 않아 불안했던, 마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시리고 허전했던 때이다.
밤이 깊어 버스가 끊어지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의 유희는 달콤했다. 차비를 구걸하는 허우대 멀쩡한 청년들을 이상한 눈으로 흘기며 깔깔거리며 웃으며, 근처 노점에서 산 노란 귤을 쉼 없이 먹으며, 보내버린 철없고 유치찬란했던 20대였다.
훗날 단짝이었던 친구가 서울로 직장을 잡게 되면서 그렇게 소원하던 기차역에서의 배웅과 마중은 실현되었다. 서울역에 내려 까마득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손을 번쩍 들고 선 작은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린 생이별을 한 자매처럼 팔짝팔짝 뛰며 눈물을 글썽였다.
배웅을 받고 돌아서는 순간은 또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돌이켜보니 내 눈물의 가장 서러웠던 기억은 전부 역에서였다. 역에서의 가슴이 미어지는 헤어짐의 순간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혹은 기차에 올라 내가 사는 도시에 다다르기까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당황했던 기억과 함께한다.
'동물원에 가기'는 얇디 얇은 책이다. 너무 얇아 억! 소리가 날 정도. 시작은 그렇다. 다섯 살 난 조카가 막판에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홀로, 처량히, 풍선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본격적인 동물 탐색에 나선 보통씨. 그런데 웬 걸, 시간이 갈수록 동물은 인간 같고 인간이 마치 동물처럼 느껴져 어지럽단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장식용 수집품도 아니고 살아있는 야생의 동물들이 눈을 껌벅이며 감정을 죽이고 좁은 울 안에서 불안해 하는 것을 보는 건 진짜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경험이니까. 정해진 구역에서 먹고 자고 짝짓기를 하는 권태로운 동물의 일상을 동정하는 인간의 짓거리도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씁쓸한 비애를 안고 동물원을 나오면서도 그는 조만간 다시 또 오리란 예감을 한다. 닮은꼴을 통해 얻는 무언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