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박완서 지음, 이성표 그림 / 작가정신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그여자네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의 책은 한국전쟁이라는 가슴 아픈 비극, 가난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책을 펼치고서야 고운 그림과 '시' 한 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시' 어릴 땐 시가 왜 좋은지 몰랐다. 아니... 오히려 시 쓴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특히 시를 읽고 문제를 풀때면... 더욱 그랬다. 지금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겨 든 생각은 이토록 아름답고도 다채로운 영역을, 이 진귀한 보석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광물이라 탓하기만 했었으니...

하지만 이 탓하기의 가장 큰 잘못?은 나에게 있지 않을까? 시를 읽기 싫으닌까 이런 저런 핑계를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설적이게도 내게는 이런 일련의 과정 덕분에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짧은 글귀 속에 담긴 지혜와 깨달음을 음미하게 된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를 때... 등 따숩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갈 때... 나이 드는게 쓸쓸해서, 죽음이 두려워서... 시를 읽는다. 맞다. 이 시를 읽으니 더 '시'가 읽고 싶어진다. 아이에게도 일기 쓸 내용이 없으면 시를 한 편 적어보라 한다. 지금은 의미 없는 작업처럼 보일지라도 ... 시간이 지나 아이도 나 처럼 알게 되기를... 그 짧은 글 귀 속 긴 여운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적 영역의 글쓰기 장르는 일기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독자와 작가의 심리적 거리가 훨씬 좁게 느껴진다. 그녀 덕분에 반지 검색을 하게 되었고, 그녀 덕분에 중국 상해 임시 정부를 버킷리스트에 넣게 되었고, 그녀 덕분에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발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솔직하면서도 (내가 쓴 일기와는 달리)이불 킥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그녀 입장에서는 이불 킥이 있었을까?) 그녀의 편안한 글쓰기 내공에(31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않는데... 어른스럽다.)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난다.

일기는 2015년 8월 21일을 시작으로 해서 2020년 12월 1일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인 사정이 여의치 않는 한 꾸준히 일기를 써 오신 것 같고, 그 내용들 중 일부 공유해도 좋을법한 에피소드를 시간순으로 나열해 놓았다. 

자신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나열한 듯하면서도 시나브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 놓는다. 박서련 작가님의 일기는 꽤 솔직하고 흥미롭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면서 영화 [보통의 연애]가 생각났다. 여주인 공효진이 맡은 선영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자유로운 영혼이랄까? 일기는 쓴 사람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상상을 하게 해준다. 관심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고 난 뒤 어떤 이는 시원한 맥주가 땅길 것이고, 어떤 이는 달콤한 잠자리가 그리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예쁜 걸 먹고 싶을 것이다. 박서련 작가님은 예쁜 걸 먹고 싶어 한다. 나도 그렇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총동원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 때, 멋진 장소에서 맛있거나 예쁘거나 아무튼 내게 소소한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

서련아,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내가 완성하길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세상이 원치 않는다고, 그러니까 안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니까 오히려 끝까지 써야 하는 거야. 아무도 원치 않는 이 글을 - 146쪽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서평이라 불리든 독후감상문이라 불리든 지금은 엉성하고 이불 킥할 정도로 글쓰기가 조잡? 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고 관심도 없겠지만, 이런 소소한 나날들이 모여서 결국엔 '나만의 진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이다.  

남경동로를 빠져나와 와이탄에서 외백도교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냥 죽을까 지금,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죽기 너무 좋은 도시였다. 외백도교는 그다지 안전장치도 없어서 그냥 포강을 향해 넘어지면 죽을 수 있을 거였다. 만약 구출된다고 해도 강물이 구정물이라 병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251쪽

진지하게 잘 나가다가 강물이 구정물이라 병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구절에서 빵 터져버렸다.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해 청소년 시절 딱 그 기간을 빼면 두려움을 갖고 사는 것 같지 않다. 플라톤도, 사후 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체험도 그것이 진실이든 무엇이든 지옥을 갈 만큼 나쁜 짓을 하며 살지는 않았다는 어떤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원자보다 더 작은 물질들로 이루어진 세상이고 나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난 이 문장 마지막 부분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로알드 달이나 진 웹스터나, 훗날 소위 거장이 되었는데, 그들의 초중등 시절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리라는 걸 전혀 예감하지 못했을까? 철자법 때문에 그들을 구박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 275쪽

이 문장을 접했을 땐 그래 에디슨도, 히가시노 게이고도 어릴 적엔 그저 평범한 인물 혹은 약간 모지란 인물로 불렸다는 생각이 났다.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를 여기에 빗대어도 되는 걸까? 암튼 그는 책 읽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일본 추리 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잔고가 20만 원일 때랑 200만 원일 때랑 문장이 달라요."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이 꾀주머니가 없어도 살지만 돈주머니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279쪽

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윤여정 배우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내가 최고의 연기력을 펼쳤을 때는 배고팠을 때라고... 인간 욕구는 최하위 욕구가 채워져야만이 상위 욕구로 나아간다.(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아니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 슬픈 현실이다.

소비일기라는 에세이를 여러 편 써 보려고 했는데, (- 포털 사이트 쇼핑 AI가 내가 속한 성별과 연령에 추천하는, 즉 '삼십 대 여성이 좋아하는/ 즐겨 찾는'이라고는 절대 소개해주지 않을 것 같은-물건을 정말 많이 산다. 301쪽
 

정말 그랬다. 나는 작가님과는 너무 반대편에 서 있는 소비를 좋아하고, 나름 많이 하지만, 신발의 종류가 그리 많은지(각각 모양마다 이름이 있다. 세상에나...) 치마 종류가 그리 많은지, 화장품 종류가 그리 많은지 모르고 산다. 사실 이런 걸 좀 알고 싶은데... 역시 관심 밖이라 그런지... 하지만 누군가 이런 게 있다고 알려주면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기도 한다. 그래서 클라다 링이라는 단어에 혹해 책 완료 놔두고 1시간 반지 검색을 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혹은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난 어떤 불안을 안게 될까? 인간의 이성으로 그 고독과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님 신에게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매달리게 될까?

얀 마텔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 안겨준 상실감과 종교적 믿음에 대해 독자들에게 어떤 의문을 던지는 듯했다.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집을 잃다.


1904년 리스본 고미술 박물관 학예 보조사인 토마스는 숙부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도라와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 사이에선 사생아 가스파르가 태어난다. 숙부에게 미움받을까 우려했던 도라는 토마스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했고 그 과정에서 도라와 가스파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장례를 치른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연이어 죽음을 맞는다. 이 충격으로 그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토마스는 신앙적으로 표류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순종했지만 내적으로는 무심했다.  ... 토마스는 완전한 믿음과 완전한 불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십자고상을 바라보았다. ... 그는 운명이 어떻게 되던지 십자고상을 유품으로 간직하리라 생각했다. ... 하지만, 토마스가 십자고상을 빼내려고 침대에서 주검을 들어 올리는데도 손과 팔이 그것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 토마스는 십자고상을 노려보면서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 당신! 당신 말이야! 내가 당신을 상대해주지, 두고 보라고!" 29~30쪽

신은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 짓의 대가를 이 물건을 통해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104쪽 

깊은 상실감에 빠져 살던 토마스는 우연히 성공회 기록 보관소에서 낡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일기장은 아프리카 기니 만에 있는 식민지 섬 상투메에 파견된 율리시스 신부의 것이었다. '이곳이 집이다'라는 문장으로 가득 찬 페이지를 읽으며, 도라가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십자고상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해 강한 의문을 지니게 된 토마스는 율리시스 신부가 고안한 십자고상을 찾기로 결심한다.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한 교통수단은 말이었는데, 부자 숙부 덕분에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2부 집으로 
1938년 12월 그믐, 포르투갈의 브라간사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는 미스터리한 사고로 죽은 아내의 이상한 방문을 맞게 된다. 에우제비우는 영국 추리 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아내와 추리 소설과 복음서의 유사성을 언급하면서 종교와 믿음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아내가 돌아간 후 다시 들려오는 문밖의 노크 소리! 죽은 남편의 시체를 가방에 넣어 부검을 의뢰하는 노부인이 서 있다. 그녀는 에우제비우에게 부부와 아들의 삶을 들려주며 부검이 끝날 쯔음 자신을 남편의 시신 안에 넣어 꿰매달라고 청한다. 남편의 시신 그곳이 바로 노부인의 '집'이었던 것이다. 

3부 집
1980년대 캐나다 상원 의원 피터 토비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삶의 의미를 잃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방문한 미국의 영장류 연구소에서 운명처럼 오도라는 침팬지를 사게 되고, 그동안의 캐나다에서의 삶을 정리한 후 자신의 고향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평소처럼 오도와 산책을 하던 중 높은 바위에 오르게 되고, 피터가 지병으로 앓고 있던 심장이 멈춰 오던 순간 그는 전설의 동물인 이베리아 코뿔소를 보게 된다. 오도는 피터의 주검을 뒤로 평원 속으로 사라진다.

세 편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이후 보인 상실감과 외로움이란 감정을 통해 종교와 믿음이 무엇인지, 남겨진 이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자 하는 듯하다. 이 소설은 상당히 환상적인 기분을 갖게한다. 에우제비우를 방문한 죽은 아내 마리아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나 부검을 의뢰했던 노부인 마리아 남편 시신 안에 있었던 침팬지와 새끼 곰, 그 침팬지의 털을 잘라달라고 요청한 노부인 마리아...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상징성을 갖는 듯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마다 의미가 있는 곳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그 부분들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더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솔직히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공통점이 발견되었고, 세 편의 이야기가 더 선명히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 소설은 재독을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그런 마법같은 힘을 가진 책이다.

책 내용이 쉽지 않은 만큼 번역에 상당히 공을 들인 인상을 받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번역을 참 잘하셨구나 했는데, 그래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독자로서 이런 작은 디테일의 발견은 작가정신 출판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심어 주는 것 같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지원 받은 도서로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이 법이 될 때 - 법이 되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변론
정혜진 지음 / 동녘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김용균, 태완이, 구하라, 민식이, 임세원, 사랑이, 김관홍,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모두의 이름에서 발견한 '닮음'이 어떻게 법과 문화와 언어를 바꿔나가는지를 담고 있다. 11쪽


추천인의 글 귀 한 구절입니다. 이 문장이 계속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하나의 법이 탄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항이 있었을지, 얼마나 인내하며 긴 세월 싸웠을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법의 보호를 당연히 받아야 하는 이들과 법이라는 이름을 악용하는 이들의 사례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법' 그것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 정혜진 변호사는 기자로 활동하다가 변호사가 되었고, 우리 사회의 이름법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하며, 자문을 얻으며서 책 한 권을 냈습니다. [이름이 법이 될 때]바로 이 책이지요. 저도 언론을 통해 위에서 언급된 7인의 이름은 익히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들 법이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정되었는지, 그 과정은 적법하였는지, 법 제정에 따른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등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김용균법

IMF 이후 우리의 노동 시장은 비정규직 혹은 하청 근로자가 엄청나게 생성되었고, 그들은 늘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일해 왔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일상처럼 먼지처럼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고, 잊혀져갔습니다. 우리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저도 군대간 아들이 있는 엄마라 앞날이 창창했을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원의 시간 속에 살다 태완이법

처음 태완이 사건을 접했을 때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마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신 분들이 많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 안타까웠던 사실은 태완이 부모님이 16년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이 기각으로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관련자들은 여론의 몰매를 맞게 되고, 그제서야 태완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태완이를 위해 노력했던 이 법이 정작 태완이는 혜택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16년 그 긴 세월 법 제정을 위해 달려왔을 태완이 어머님의 그 허탈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자격, 상속의 자격 구하라법

이 부분을 읽으면서 법이 참 야속하고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을 낳기만 하면 부모인가? 부양의 의무도 책임도 지지 않은 이가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돈부터 챙겨가는 비정한 부모들을 법이 앞장서서 보상해주는 꼴이라니... 


어린이가 어른이 되려면 민식이법

민식이법은 처음 여론의 힘을 입어 크게 방향을 불러일으키다가 가해자가 규정 속도로 달렸다는 CCTV가 공개되면서 여론의 몰매를 맞은 법입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터인데 여론의 비난까지 받아야 했을 민식이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했을까요? 법이 과하다 악용의 소지가 있다. 이 책을 읽어보심 법 제정에서 국회의 안일한 태도를 보실 수 있어요. 단순히 민식이 부모님을 비난할 일도 아닐뿐더러 우리 사회는 약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의식 또한 가져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신생아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다들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생명보다 어른들의 편의가 왜 더 우위여야 하나요? 우리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게 임세원법

강북 성모병원 정신과 의사였던 임세원씨는 정신질환자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 죽음이 억울해서 엄중한 법 처벌을 요구해도 모자랄 판에 임세원 유족의 입장 발표는 이러합니다.


"우리 가족의 자랑이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50쪽


유족의 심정이 어떠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그들은 오히려 '아픈 이'들을 걱정했던 유족들... 이런 가족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태어났기에 당연한 것 사랑이법

저는 사랑이 아버지의 방송을 직접 보았습니다. 미혼부가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 그러면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 강인한 부성애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방송 이후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딸을 출생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놓인 미혼부를 돕기 위한 활동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의로움에 대하여 김관홍법

7명의 이름법 중 가장 가슴 아프면서도 분했던 이름이었습니다. 의로운 일을 했다는 대가가 고작 비난과 조롱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거 일제 강점기부터 불의를 보고 저항하는 이들은 늘 죽임을 당하거나 누명을 쓰거나 했었지요. 국가가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 그래서 민간인 잠수부들이 앞장서서 솔선수범 한 일을 이제 와서 그 책임을 묻고 따지는 행위에서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생각났습니다. 김관홍씨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고인이 되셨습니다. 승선자 476명 중 구조된 172명을 제외한 304명을 구조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민간 잠수부들... 물에 잠겨 있는 시체를 단 한구라도 찾아내려 애쓴 사람들... 하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엄청나게 가혹했고 냉정했으며,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 점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위 이름법이 시행되고 있거나 예정이거나 누더기가 되어 제정이 되었거나 그렇더군요.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법'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이 법을 만들기 위해 피해자 가족분들이 감당해야만 했을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법 제정을 위해 피해자 가족분들 및 관련자분들께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들 이 책을 읽어 보셨음 좋겠습니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최수현 낭독 / 오티움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최초의 한국인 정신과 의사 이유진! 그녀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좋은 삶과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좋은 삶'과 '죽음' 여러분들은 '좋은 삶'은 그렇다 치더라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직업상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 늘 보살피는 생활을 합니다. 삶과 죽음이 불가분의 관계이다 보니 그녀가 임종을 목전에 둔 그들과의 관계에서 깨달은 경험의 공유는 우리에게 값진 앎을 안겨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갑작스러운 죽음 혹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어디에 삶의 의미를 두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며 누구를 만나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누구에게 연락해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하며 남은 가족들을 위해 어떤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 환자의 가족들 역시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표정과 말투로 대해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나의 슬픔은 어떻게 다스릴지 모든 것이 어렵다. ... 죽어가는 과정도 삶의 일부다. 24쪽

사망 선고를 받은 이들의 삶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 중 일부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하거나 직접 실행에 옮긴 이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라는 생각에서부터 환자의 고통을 끝까지 외면한 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 역시 옳은 생각일까?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진정 환자를 돕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논의도 제법 많은 지분을 할애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 자체보다는 병이 들었을 경우 그 고통과 가족이 부담 가져야 할 트라우마 그리고 경제적 부담이 가장 힘든 점으로 다가옵니다.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고통 그리고 남아 있을 가족들이 혹여나 짊어질지 모르는 그 고통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도 오랜 기간 요양원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셨고, 당뇨병과 치매 외 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으시며 돌아가셨지요. 저는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서 생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유진 저자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책에서 다룹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의 삶마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미 죽을 목숨이기 때문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그것이 옳은 것일까? 

외할머니 입종을 맞이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외할머니의 임종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떠나는 이와 남은 이가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됩니다. 

주변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으신 분이 계신다면 그리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가독성도 좋고 좋은 삶과 죽음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 나는 정신과 의사로 10년이 넘는 삶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지 고민하고 배웠다. 25쪽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나를 세상 밖으로 내어놓아야 한다. 그려내고 표현하며 행동해야 한다. 34쪽

▶ 현재에 집중하는 평범한 일상에는 더 많은 고민과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평범한 일상이란 밋밋하고 지루한 삶이 아니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언제나처럼 충실히 하고 건강과 안녕을 돌보며 내 곁의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다. 72쪽

▶ 꿈을 내려놓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꿈을 품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꿈꾸는 자가 월터에게 알려준 삶의 '본질'을 떠올려 본다. ... 행복은 내 안에 있고 나다움 속에 있다는 것을. 73쪽

▶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통해 죽음의 실체는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 즉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된 삶을 살도록 이끈다고 했다. 이것은 죽음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죽음의 공포를 통해 내게 주어진 현재를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주어지는 것이다. 184쪽

▶ 당신은 병보다 더 큰 존재이고 당신의 삶은 당신이 앓고 있는 병보다 훨씬 넓고 깊다. ... 남들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삶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의 삶이다. 268쪽


이 도서는 다산북스 오티움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