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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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적 영역의 글쓰기 장르는 일기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독자와 작가의 심리적 거리가 훨씬 좁게 느껴진다. 그녀 덕분에 반지 검색을 하게 되었고, 그녀 덕분에 중국 상해 임시 정부를 버킷리스트에 넣게 되었고, 그녀 덕분에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발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솔직하면서도 (내가 쓴 일기와는 달리)이불 킥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그녀 입장에서는 이불 킥이 있었을까?) 그녀의 편안한 글쓰기 내공에(31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않는데... 어른스럽다.)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난다.

일기는 2015년 8월 21일을 시작으로 해서 2020년 12월 1일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인 사정이 여의치 않는 한 꾸준히 일기를 써 오신 것 같고, 그 내용들 중 일부 공유해도 좋을법한 에피소드를 시간순으로 나열해 놓았다. 

자신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나열한 듯하면서도 시나브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 놓는다. 박서련 작가님의 일기는 꽤 솔직하고 흥미롭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면서 영화 [보통의 연애]가 생각났다. 여주인 공효진이 맡은 선영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자유로운 영혼이랄까? 일기는 쓴 사람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상상을 하게 해준다. 관심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고 난 뒤 어떤 이는 시원한 맥주가 땅길 것이고, 어떤 이는 달콤한 잠자리가 그리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예쁜 걸 먹고 싶을 것이다. 박서련 작가님은 예쁜 걸 먹고 싶어 한다. 나도 그렇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총동원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 때, 멋진 장소에서 맛있거나 예쁘거나 아무튼 내게 소소한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

서련아,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내가 완성하길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세상이 원치 않는다고, 그러니까 안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니까 오히려 끝까지 써야 하는 거야. 아무도 원치 않는 이 글을 - 146쪽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서평이라 불리든 독후감상문이라 불리든 지금은 엉성하고 이불 킥할 정도로 글쓰기가 조잡? 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고 관심도 없겠지만, 이런 소소한 나날들이 모여서 결국엔 '나만의 진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이다.  

남경동로를 빠져나와 와이탄에서 외백도교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냥 죽을까 지금,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죽기 너무 좋은 도시였다. 외백도교는 그다지 안전장치도 없어서 그냥 포강을 향해 넘어지면 죽을 수 있을 거였다. 만약 구출된다고 해도 강물이 구정물이라 병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251쪽

진지하게 잘 나가다가 강물이 구정물이라 병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구절에서 빵 터져버렸다.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해 청소년 시절 딱 그 기간을 빼면 두려움을 갖고 사는 것 같지 않다. 플라톤도, 사후 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체험도 그것이 진실이든 무엇이든 지옥을 갈 만큼 나쁜 짓을 하며 살지는 않았다는 어떤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원자보다 더 작은 물질들로 이루어진 세상이고 나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난 이 문장 마지막 부분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로알드 달이나 진 웹스터나, 훗날 소위 거장이 되었는데, 그들의 초중등 시절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리라는 걸 전혀 예감하지 못했을까? 철자법 때문에 그들을 구박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 275쪽

이 문장을 접했을 땐 그래 에디슨도, 히가시노 게이고도 어릴 적엔 그저 평범한 인물 혹은 약간 모지란 인물로 불렸다는 생각이 났다.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를 여기에 빗대어도 되는 걸까? 암튼 그는 책 읽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일본 추리 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잔고가 20만 원일 때랑 200만 원일 때랑 문장이 달라요."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이 꾀주머니가 없어도 살지만 돈주머니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279쪽

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윤여정 배우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내가 최고의 연기력을 펼쳤을 때는 배고팠을 때라고... 인간 욕구는 최하위 욕구가 채워져야만이 상위 욕구로 나아간다.(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아니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 슬픈 현실이다.

소비일기라는 에세이를 여러 편 써 보려고 했는데, (- 포털 사이트 쇼핑 AI가 내가 속한 성별과 연령에 추천하는, 즉 '삼십 대 여성이 좋아하는/ 즐겨 찾는'이라고는 절대 소개해주지 않을 것 같은-물건을 정말 많이 산다. 301쪽
 

정말 그랬다. 나는 작가님과는 너무 반대편에 서 있는 소비를 좋아하고, 나름 많이 하지만, 신발의 종류가 그리 많은지(각각 모양마다 이름이 있다. 세상에나...) 치마 종류가 그리 많은지, 화장품 종류가 그리 많은지 모르고 산다. 사실 이런 걸 좀 알고 싶은데... 역시 관심 밖이라 그런지... 하지만 누군가 이런 게 있다고 알려주면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기도 한다. 그래서 클라다 링이라는 단어에 혹해 책 완료 놔두고 1시간 반지 검색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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