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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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혹은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난 어떤 불안을 안게 될까? 인간의 이성으로 그 고독과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님 신에게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매달리게 될까?

얀 마텔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 안겨준 상실감과 종교적 믿음에 대해 독자들에게 어떤 의문을 던지는 듯했다.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집을 잃다.


1904년 리스본 고미술 박물관 학예 보조사인 토마스는 숙부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도라와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 사이에선 사생아 가스파르가 태어난다. 숙부에게 미움받을까 우려했던 도라는 토마스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했고 그 과정에서 도라와 가스파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장례를 치른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연이어 죽음을 맞는다. 이 충격으로 그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토마스는 신앙적으로 표류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순종했지만 내적으로는 무심했다.  ... 토마스는 완전한 믿음과 완전한 불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십자고상을 바라보았다. ... 그는 운명이 어떻게 되던지 십자고상을 유품으로 간직하리라 생각했다. ... 하지만, 토마스가 십자고상을 빼내려고 침대에서 주검을 들어 올리는데도 손과 팔이 그것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 토마스는 십자고상을 노려보면서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 당신! 당신 말이야! 내가 당신을 상대해주지, 두고 보라고!" 29~30쪽

신은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 짓의 대가를 이 물건을 통해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104쪽 

깊은 상실감에 빠져 살던 토마스는 우연히 성공회 기록 보관소에서 낡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일기장은 아프리카 기니 만에 있는 식민지 섬 상투메에 파견된 율리시스 신부의 것이었다. '이곳이 집이다'라는 문장으로 가득 찬 페이지를 읽으며, 도라가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십자고상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해 강한 의문을 지니게 된 토마스는 율리시스 신부가 고안한 십자고상을 찾기로 결심한다.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한 교통수단은 말이었는데, 부자 숙부 덕분에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2부 집으로 
1938년 12월 그믐, 포르투갈의 브라간사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는 미스터리한 사고로 죽은 아내의 이상한 방문을 맞게 된다. 에우제비우는 영국 추리 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아내와 추리 소설과 복음서의 유사성을 언급하면서 종교와 믿음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아내가 돌아간 후 다시 들려오는 문밖의 노크 소리! 죽은 남편의 시체를 가방에 넣어 부검을 의뢰하는 노부인이 서 있다. 그녀는 에우제비우에게 부부와 아들의 삶을 들려주며 부검이 끝날 쯔음 자신을 남편의 시신 안에 넣어 꿰매달라고 청한다. 남편의 시신 그곳이 바로 노부인의 '집'이었던 것이다. 

3부 집
1980년대 캐나다 상원 의원 피터 토비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삶의 의미를 잃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방문한 미국의 영장류 연구소에서 운명처럼 오도라는 침팬지를 사게 되고, 그동안의 캐나다에서의 삶을 정리한 후 자신의 고향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평소처럼 오도와 산책을 하던 중 높은 바위에 오르게 되고, 피터가 지병으로 앓고 있던 심장이 멈춰 오던 순간 그는 전설의 동물인 이베리아 코뿔소를 보게 된다. 오도는 피터의 주검을 뒤로 평원 속으로 사라진다.

세 편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이후 보인 상실감과 외로움이란 감정을 통해 종교와 믿음이 무엇인지, 남겨진 이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자 하는 듯하다. 이 소설은 상당히 환상적인 기분을 갖게한다. 에우제비우를 방문한 죽은 아내 마리아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나 부검을 의뢰했던 노부인 마리아 남편 시신 안에 있었던 침팬지와 새끼 곰, 그 침팬지의 털을 잘라달라고 요청한 노부인 마리아...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상징성을 갖는 듯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마다 의미가 있는 곳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그 부분들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더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솔직히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공통점이 발견되었고, 세 편의 이야기가 더 선명히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 소설은 재독을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그런 마법같은 힘을 가진 책이다.

책 내용이 쉽지 않은 만큼 번역에 상당히 공을 들인 인상을 받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번역을 참 잘하셨구나 했는데, 그래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독자로서 이런 작은 디테일의 발견은 작가정신 출판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심어 주는 것 같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지원 받은 도서로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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