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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법정
조광희 지음 / 솔출판사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법정] 책을 읽을 때마다 파편처럼 떠올랐던 무수한 생각들이 윤곽을 보일 듯하면서도 흩어지곤 했습니다. 작가의 생각이 많이 함유된 책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만난 [인간의 법정]이 그랬습니다. 조광희 작가분의 오랜 사유의 흔적들이 소설 곳곳에 담겨져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줄거리
때는 2110년 미래,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인공 지능을 탑재한 인간 복제 로봇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이르게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한시로는 혼자 사는 생활에 지쳐 반려동물과 가정 로봇 중 무엇을 들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는 늘 보아왔던 안드로카인드의 동영상을 기억해 내고는 가정용 로봇을 구매하기 위해 안드로카인드로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과 똑닮은 한시로 X를 만듭니다. 하지만 의식이 없는 한시로 X, 즉 (자신이 붙여준 이름) 아오의 한계에 불만을 가지게 되고, 한시로는 인공지능도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불법적으로 아오에게 의식 생성기를 탑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부작용 때문인지 아오는 자신이 진짜 한시로라 착각하게 되고, 한시로의 여자친구 미나가 아오에게 성적 위협을 당한다 여기며 그를 살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인 로봇은 자신의 주인을 살해한 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감상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 본성, 무료함, 성적 욕구, 존재의 의미와 범위, 인간중심주의 등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많은 장르들 중 SF를 선택한 이유로는 자신의 오랜 범민의 사유들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주의 사회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소설은 다가오는 미래의 인간 삶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시대의 문제점을 은밀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동물에 대한 잔인한 행위, 로봇에 대한 애매하고도 모호한 태도 등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 인간이 느끼는 무료함과 외로움 과학 기술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한시로는 미나라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피곤하도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여자친구는 단순히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줍니다. 물질적 풍요로움 조차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 오늘날 결혼 기피 현상이 소설 속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인간중심주의 사회, 우리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두 변호사의 변론들에서 작가분께서 오랜 시간 인간과 존재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인공 지능을 탑재한 AI 판사가 재판을 하는 세상, 하지만 인간들의 다툼을 논리로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보여지는 인공지능 판사의 판결 역시도 결국 인간의 개입으로 판결이 달라집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아오는 의식 생성기를 빼앗기고 그의 육체는 수면 모드로 경찰 창고에서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아오를 향해 윤표가 던지는 사과의 말은 참 심오하게 다가옵니다.
"저곳은 결국 인간의 법정이었을 뿐이었네.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분의 인간중심주의 세상에 대한 자각과 반성적 시각이 담겨 있는 의미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상기후 징후들과 무분별한 벌목 그리고 인간의 식탐으로 인해 과잉 생산되고 있는 육식 환경, 그 환경적 조성으로 인해 다른 생명들이 죽음에 놓이는 환경에 대해 일침을 놓는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미래 사회에서는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까요? 인간만의 행복을 위해 다른 생명의 생활 터전과 그들의 생존 권리를 마음대로 훼손해도 되는 것일까요? [인간의 법정]은 제게는 다양한 철학적 물음을 던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코로나 19로 자유를 억압?(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억압인 것인데도 말이죠.) 당하는 요즘 '공존'과 '인간 중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소설을 통해 가져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