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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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관습이나 선례인 것 같다. 그러나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진리는 여러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한 사람에 의해 발견되는 법이다. 이것은 여러 사람의 동의가 진리의 타당성을 확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데카르트, <방법서설>)-25쪽

철학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낯섦과 차이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필요로 한다. 철학은 현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친숙한 생각을 문제 삼으며, 항상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을 바꿔 놓기 때문이다.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음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6쪽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다는 것은 여행하고, 번역하며, 교환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타자의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고, 질서 파괴적이라기보다는 횡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타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담보로서 보증된 상품을 서로 매매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헤르메스, 즉 네거리의 신, 메시지와 상인의 신이 있는 것이다. (세르, <헤르메스1 : 커뮤니케이션>)-43쪽

"나는 국가를 가진 자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더러운 도랑 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면서 놀겠다."(장자)-86쪽

장자는 유가나 묵가의 사유는 모두 개체의 삶보다는 초월적 이념을 긍정하는 철학, 다시 말해 삶의 유쾌함을 부정하고 죽음의 우울함 혹은 초월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철학이라고 고발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삶을 부정하는 초월적 이념을 표방하는 모든 태도를 ‘꿈’이라고 비유하면서, 반드시 이 꿈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92-93쪽

타자의 발견은 항상 자신의 선입견이 좌절되는 경험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타자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자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존재이다. 이 말은 결국 타자가 자신의 선입견으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104쪽

"규칙을 다를 때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나는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105쪽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오직 사다리를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면, 나는 거기에 도달하려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로 가야만 하는 곳, 그곳에 나는 원래 이미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다리에 의해 도달될 수 있는 곳은 나에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121쪽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건한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내지만, 이 동물은 이제 그 반대 능력, 즉 기억의 도움을 받아 어떤 경우, 말하자면 약속해야 하는 경우에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을 길렀던 것이다. (니체, <도덕의 계보>)-139쪽

판단중지의 상태가 중요한 이유는 저공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타자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이쓴 마음 상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만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143쪽

송견은 타자와 갈등하고 대립하지 않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으로 ‘모욕을 받아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준칙을 제안하였다. 모욕을 당한 수치감에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품으면서, 우리는 타자와 갈등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보통 우리는 남이 모욕을 하면 수치심을 느끼고 남이 칭찬을 하면 흥분하고 기뻐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수치심과 명예욕이라는 욕망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추론하기 쉽다. 그러나 송견에게 있어 이것은 위계적 사회에 살면서 불가피하게 내면화된 사회적 욕망 구조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수치심과 명예욕은 결코 본질적인 욕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욕망은 우리에게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적’인 것을 ‘내적’인 것으로 착각한다면, 혹은 이런 선입견을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는 타자와 치명적인 갈등 관계에 놓이고 말 것이다. -167쪽

국가주의에 대한 스피노자의 진단은 기본적으로 루소의 생각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권력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를 자발적으로 양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기만한다. 물론 그 대가로 국가는 피지배층에게 일정 정도의 권력, 부 그리고 미인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이로부터 국가는 피지배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전도된 생각이 출현한다. 이런 착각으로부터 피지배층은 국가나 군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지고한 영광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것은 국가에 대한 자신들의 복종을 마치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28-229쪽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되도록 해야 한다"(與物爲春)(장자)-234쪽

노자에게서 도는 모든 개체들 앞에 미리 존재하는 바탕이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근거, 모든 것을 지탱하는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장자에게서 도는 모든 개체들 앞에 먼저 올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뒤에 때늦게 찾아온다. 더구나 개체들이 소통을 거부하면, 소통의 결과로서의 도는 흔적조차 남길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결국 장자에게 있어 애초에 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타자와 만나서 그와 소통함으로써 사후적으로 발생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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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8-0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리라이팅도 재미없는 글도 있고 어설픈 글도 있는데... 장자를 한번 사 볼까나~

이잘코군 2008-08-05 09:2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습니다만, 미리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별 넷이에요. 리라이팅 컨셉과는 조금 맞지 않아보이는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새로운 해석이긴 한데, 뭐랄까 흐음. 내용의 서술 흐름이 새롭지는 않달까요.
 




 갑자기 예전에 재밌게 봤던 그렘린이 떠올라서 토욜 퇴근 후 집에 와서 1,2편을 연달아 봤는데, 이거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전에 봤을 땐 그냥 아 귀여워 귀여워, 이러면서 봤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이건 굉장한 메세지를 담은 영화였습니다. 1984년, 1990년 미국에서 나온 그렘린은 지금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는 듯 했달까요.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모습, 그리고 현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렘린 1,2편에서 제가 본 것들을 나열하자면,

* 스포일러 경고

1. 이명박식 불도저 개발계획
- 2편에서 무슨 거대한 센터를 세운다고 포크레인으로 다 찍어누른다. 놀란 우리의 귀염둥이 기즈모는 쭐래쭐래 겨우 도망나오지만. 그곳에서 살겠다고 절대 나가지 않겠다던 할아버지 윙이 병으로 죽자 요때다 하고 바로 삽질. 그래도 명박이보다 양심은 있는 게, 떠나지 않겠다는 할아버지 죽고 난 뒤에 포크레인으로 부숴버린다는 거. 살아있을 때는 돈으로 설득하다가 안 되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했다. 명박이는? 청계천 공사를 떠올리자.

2. 이명박식 친환경 개발
- 우석훈이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랬다. 지금의 청계천은 수도꼭지에서 물틀어 연결해놓고, 진짜 청계천은 그 아래 흐르고 있다고. 우리(?)가 데이트 장소로 종종 활용했던 그 청계천은 청계천이 아니다.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말. 친환경 친환경 하면서 보기 좋은 공원이나 분수나 이런 것들 세우지만, 그건 친환경이 아니다. 그냥 인공환경이지. 나무 있고, 풀 있고, 물이 흐른다고 다 친환경이 아니란 말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마라. 

3. 효율과 경쟁 시스템 
- 이명박식, 공정택식 경제 논리. 뭐든지 경쟁시키면 다 되는줄 안다. 경쟁 시켜서 올라갈 놈 올라가고 안되는 놈 떨어지고. 클램프 센터의 7단계 승진 시스템. 주인공 촌놈이 클램프 센터에 취직한 후 영화 속 여러 장면에서 목격할 수 있다. 뭐든지 효율이 최고고, 경쟁이 최고다는 식의 사고. 결국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는 그렘린 2편을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 

4. 유위(有爲)
-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인위적으로 조치를 취하려 하면 안 된다. 자연을 거스르지 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렇게 된다. 무위가 최선의 해결책이다. 유위의 방법은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5. 바보상자 
- 그렘린을 티비를 좋아한다. 부우우우웅 자동차 경주도 좋아하고, 야한 것도 보고, 폭력적인 영화도 즐긴다. 아니 즐긴다기보다는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고 따라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티비를 못보게 한다. 바보상자라고. 맞다. 티비는 바보상자다. 20년전에도 티비는 바보 상자였고, 지금도 바보 상자다. 티비 볼 시간도 없지만, 시간 돼도 티비는 잘 안 본다. 한번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되는데 얻는 것도 깨닫는 것도 없다.

6. 80년대 미국은 그래도 살만했다?
- 오늘날의 미국은 살기 안좋은 국가 중 하나. 부자들에겐 모르겠지만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엔 살기 좋은 동네는 아닌 듯 하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영화 속 미국 사회는 지금의 한국을 보는 듯 하다. 점차 각박해져가는, 타인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인공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다 그렇다. 영화에서 그런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그때는 아직 과도기였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닐지.  

7.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샐러리맨의 삶 
-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다달이 봉급받는 월급쟁이들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장소를 한국으로, 때를 현대로 옮겨놓으면 가장 극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OECD국가 중 근로시간이 압도적 1위인 국가.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자고,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자고, 주말에는 출근하는 삶은 이땅에선 흔히 볼 수 있다. 

8. 유전자 실험 
-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코 좋아할 게 못된다.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막무가내 유전자 실험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온다. 각종 유전액(?)을 먹은 그렘린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변해가는가를 2편에서 목격할 수 있다. 바퀴벌레도 웬만해서는 약 먹고 안 죽는다. 예전에는 바퀴약 설치해놓으면 먹고 나와서 헤롱헤롱 거렸는데 요새 바퀴들은 먹어도 도통 발걸음이 느리지 않다. 쌩쌩하니 잘 달리는데 이젠 더 센 약을 뿌리고 먹여야 한다. 약이 강하면 강할수록 바퀴도 내성이 강해진다. 거기에 아예 유전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돌연변이가 출연한다면? -_-

9. 쉬운 고용과 쉬운 해고
- 클램프 센터는 엄청나게 크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줄곧 5%안에 들어온 수재들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삼성 같달까. 그런데 회사 안을 잘 들여다보면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 공부만 잘해 자기 이익은 잘 챙기는 엘리트 유형과 박봉에 시달리며 온갖 굳은 일은 다 하는 소외된 비정규직 유형을 볼 수 있다. 고용된 배우가 투덜대며 문을 박차고 나오고, 일하는 시간에 몰래 담배를 피던 노동자 한 명이 즉각 해고 당한다. 거대 기업은 필요할 때 쉽게 사람을 채용하고, 쉽게 사람을 버린다.

10. 미국 우파 할아버지 
-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사람인 듯 한데, 러시아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우파 할아버지를 잠깐 볼 수 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것 같은 냉혈한들의 모습이 아닌 다정다감한 인간적인 모습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놀라운 발언을 한다. 마치 대한민국 사회에서 빨갱이로 몰아버리면 바로 처단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러시아인이 그런 대상이 된다. 남한과 북한, 미국과 러시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11. 동거 커플 
- 영화는 1990년의 미국. 지금 보면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을 한 그래도 얼굴은 잘생기고 이쁜 두 남녀가 동거생활을 한다. 같은 직장에 다니고,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결혼은 아직 아닌 두 사람의 동거는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동거는 문란함의 극치이다. 어떻게 동거를 하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지, 동거를 하느냐 마느냐가 기준이 되어선 곤란하다.

12. 최신식 건물의 잦은 고장 
- 최신식이라고 좋을 게 하나 없다. 과거에 손으로 하던 걸 지금은 손도 안대고 리모콘 버튼만 눌러 실행시키거나 손가락 까딱도 하지 않고 모든 걸 하려고 하는데 그런 물건일수록 고장이 잦다. 한번 고장나면 고칠 수가 없다. 최신식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발상, 수동보다는 자동,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이라는 발상에 대한 비판. 

13. 약한 학생 무차별 폭행, 왕따, 고문
- 영화에 학생은 안나온다. 그런데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즈모로부터 나온 나쁜 그렘린들이 약한 기즈모를 어떻게 괴롭히고 학대하는가를 보면 그게 딱 우리네 교실 안 모습이다. 어제 기사였던가 여고생들이 친구 하나를 변기통에 처박고 물을 먹이고 사진을 찍고 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어디 하루 이틀 벌이지는 일이랴만. 이런 게 아직도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뉴스란 모름지기 일반적으로 벌어지지 않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야 하는데 이런 건 너무 흔하잖아. 폭행하고 왕따시키고 감금하고 전기고문하고. -_-

14. 어리버리한 경찰
- 이 어마어마한 사태를 어찌 해결할 것인가. 언제나 경찰은 사건이 다 해결된 뒤에 나타난다. 아니면 해결되지 않고 해결할 수 없는 시점에 나타나거나. 사건종료되고 나타나 어리버리하게 여기저기 부딪치며 사건 현장을 바라보는 경찰들을 이 영화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도처에서 강간이 벌어지고, 시체가 발견되지만 그곳에 경찰은 없다. 권력에 빌붙고 엄한 사람들 잡아가려고 어떻게 법을 적용할까를 고민하느라구. 촛불집회 현장에서 뻘짓하지말고 돈 빼돌리는 교수들, 국회의원들, 기업인들, 정치인들이나 잡아라.

15. 공동체로의 복귀
- 크게 한 탕 벌어지고나서 다행히도(?) 클램프 사장은 깨달음을 얻고 공동체로 가자고 하는데, 내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은 비현실적이다. 무슨 사건이 터지고 수습하다가 사장이 깨달음을 얻어 자연과 공동체로의 복귀를 외치는 경우는 없다. 반성하는 척 잠깐 쇼만 하면 만사 오케이인데 뭐하러 깨달음을 얻어. 권총들이민 한화그룹 회장이나 국가를 지배하려한 삼성그룹 회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깨달음을 얻고 갑자기 정의로워지고 착해지는 경우는 없다. 
 
16. 전지적 작가 시점
- 요건 그냥 보너스인데 중간에 깜짝 놀랐다. 영화 끝난 줄 알고. 감독은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찍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영화에 개입했다. 잠시 등장한 그 사람이 감독인지는 잘 모르겠다. 얼굴을 몰라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던 영화가 갑자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깜짝 전환한다.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17. 총평
- 온갖 사회적 문제를 곳곳에 맛깔나게 버무려 메세지를 잃지 않은, 재밌고 귀엽고 괴기스러운(?) 완벽한 영화다. 이명박과 똘마니들이 함께 모여 감상해야 할 영화. 청와대에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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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정치 : 이제 소수를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4
이남석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구판절판


차이를 무시한 정치는 지배 집단에게도 불이익이다. 왜냐하면 비교 대상이 없음으로 인해, 지배 집단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이를 무시한 정치가 전횡적으로 진행된다면, 차이 집단은 지배 집단의 문화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도록 강요당하게 된다. 그 강요가 강화되면 될 수록 차이 집단은 스스로 자기들의 고유한 문화를 무시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들의 존재 이유마저도 상실한다. 결국 차이를 무시한 정치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렇듯 차이의 정치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가장 큰 난점은 위와 같은 사실에서 비롯된다. 차이를 배제함으로써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지배 집단이나 차이 집단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롭지 못하다. 이것은 특정 차이 집단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이 집단에 적용된다. 따라서 모든 차이 집단은 지배 집단의 억압적이며 배제적인 권력에 저항하게 마련이다. -19쪽

차이의 정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단까지 몰고 간다. 현대 국가의 정부는 대부분 국민투표를 통해 형성되므로, 국민 개개인이 지닌 다양한 차이는 그 정부 아래서 은폐된 채 하나의 동일성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동일성에 의해 다양한 차이는 ‘국민’이라는 통칭 명상로 통합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 점에서 차이의 정치론자들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동일성의 정치’라고 한다. -20쪽

개인은 모두 평등한 존재로서 법적․정치적 권리를 부여받은 ‘동일성’으로 존재하며, 법적․정치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은 존재로서 근대 정치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정치의 주체인 개인은 자연적 성이나 사회적 성, 타고난 부, 지위, 인종과 무관하다. 개인은 모두 기본적으로 동등하며, 차이와 불평등을 거부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정치의 주체로서의 개인은 모든 인간의 구체성을 사상해버린 추상 명사이다. ‘개인’이란 말 속에는 형태상의 차이와 질적인 차이는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추상 명사로서의 ‘개인’만 남는다. (중략)
근대 정치의 주체를 구성하는 추상적 개인은 지배 권력을 구축하는 존재로서 삶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단일 규범을 제시한다. 이 규범이 곧 지배 규범이 된다. 지배 규범이 강하면 강할수록 차이의 주체는 대다수 사람들이 속해 있는 규범 밖의 주변적 존재로 전락한다. -22쪽

대의제 민주주의의 ‘1인 1표’의 형식적 평등 아래, 차이 집단은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출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직접 대표하지 못한다. 또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표성을 강조한 나머지 차이 집단의 견해를 수용하지도 못하고, 차이 집단의 대표성을 인정하지도 못한다. 이로써 차이 집단을 정치 과정에서 배제하는 한계성을 갖게 된다. 이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시민의 형식적 평등을 정당화할 뿐 실질적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38쪽

차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진리는 의견의 무제한적인 충돌에 의해서 발견될 수 있으며, 경쟁은 조화를 창출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이르기는커녕 조화도 창출하지 못한다. 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는 지배 이익의 봉사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이 곧 그 사회의 주류 구성원이자 주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차이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41쪽

권력 교체의 이면에는 다수결의 원리가 있다. 다수결의 원리는 자유토론의 보장, 다수의 소수 포용,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존중, 소수와 다수의 상호 역전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전제되지 않는다면, 다수결의 원리는 다수와 소수의 항구 불변을 초래하여 정당성을 잃게 된다. 소수가 자유로운 토론과 설득에 의해 다수가 될 수 없다면, 그 국가는 이미 다수에 의한 전횡 국가이다. 따라서 다수결 원리의 존재만이 전횡 국가를 막을 수 있고,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한다. 상대적 소수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다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 ‘진정한 동의’를 하고,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중략) (계속)-43-45쪽

(이어서) 그러나 소수와 다수의 상호 역전 가능성은 다수결의 원리의 한계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 다수결의 원리의 근본적인 한계는 사회적 약자와 차이 집단을 정치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이들(소수)에게 ‘1인 1표’는 소수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감옥에 영원히 묶어두는 주술에 지나지 않는다. 소수의 다수 가능성은 그 정치 체제의 주류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사회적 약자나 소수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영원한 소수이고 영원한 약자이다. 어떤 조건이 변화해도, 소수는 투표를 통해 다수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소수가 다수결의 원리에 의한 결정에 순응하는 것은 ‘진정한 동의’가 아닌 ‘마지못한 동의’일 뿐이다. -43-45쪽

다수의 견해는 사회 내에서 보편성으로서 도덕적 지위를 획득하는 반면, 소수의 견해는 도덕적 지위를 상실하고서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마저 포기할 것을 강요받는다. (중략) 보편성을 획득한 집단은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집단에게 보편성에 따를 것을 강요함과 동시에 고유한 정치적 가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소수 집단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가치에 회의를 품게 되어 결국 가치의 자포자기 상태를 초래한다. -49-50쪽

하버마스는 권력과 관련된 ‘진리의 생산’을 사회의 구성원들이 억압과 왜곡이 없는 이상적 담화 상황에서 토론한 결과에서 도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푸코는 이상적인 담화 상황에 근거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진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이상적 담화 상황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루소주의적 환상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각 개인이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그 개인이 사회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인간의 마음이 소통할 수 있으며, 각 개인의 관점이 장애물에 가로막히지 않으며, 모든 사람의 견해가 각 개인의 견해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몽상이다."-66-67쪽

차이 몰이해의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반면, 차이 집단의 특수성 자체는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하는 대다수 자유주의자들이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에 해당한다. 모든 개인은 평등하며 존엄성을 지닌 주체이므로,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개인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고, 존엄성을 존중받는 인간은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을 받지 않으므로 사회에 차이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차이 집단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들을 배려할 필요가 없고 자연스럽게 차이 집단에 대한 중립성을 지키게 된다. -75쪽

개인은 최대의 사회적 선의 실현이라고 하는 목적을 위한 대체 가능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아미 거트먼)

자유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완전성을 보호해주며, 다른 자유의 행사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아미 거트먼)

국가에게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파괴할 권리가 허용되서는 안 된다. (아미 거트먼)

자유주의적 토대에 근거한 정부는 내 동료 시민들의 요구가 아무리 가치 있다 할지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내 동의 없이 내가 행동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아미 거트먼)-80-81쪽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의 구속을 받는 개인과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가정하며, 이러한 공동체는 중앙 국가의 기능 중 일부를 양도받아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지는 정치 구현을 전제한다. 이와 같이 가정함으로써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혁명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의미 상실, 신사회 운동과 다양한 주체의 성장에 따른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상의 밑바탕에는 다원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 깔려 있다. -86쪽

울린에 따르면 정치란 집단의 공적 권위에 유용한 자원을 둘러싸고서 조직화되고 불평등한 사회 권력들이 합법적인 동시에 공적으로 경쟁함을 의미한다. 반면 ‘정치적인 것’이란 공적인 협의에 의해서 권력이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될 때, 다양성으로 구성된 자유로운 사회가 공공선의 계기들을 향유할 수 있는 데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정치적인 것‘이란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 협의를 거쳐 하나의 공통점에 이를 수 있는 공동선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이상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은 다양한 차이 집단들이 정치적인 소외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동선 구성의 한 주체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90쪽

무페는 정치를 정형화된 고정체로 파악하여, 정치란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고 통일체를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페는 이러한 포괄적인 공동체와 최종 심급의 통일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완전한 통일체를 가정하는 어떤 정치 공동체도 그 안에 포용되지 못한 소수 집단을 항상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영역에서 이익 갈등은 균형에 이르고 의견 분열은 동의에 이르기는 하지만, 이러한 균형과 동의는 항상 부분적이며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에서는 적대적 행위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정치는 항상 ‘갈등과 분열’로 특징지워진다.
무페는 갈등과 균열로 특징지워지는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을 제안한다. 무페의 ‘정치적인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다원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사회적 성과 자연적 성, 인종, 계급, 환경 등의 민주주의 투쟁의 구체화된 범주를 수용할 수 있다. -91-92쪽

개인이 아닌 집단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히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집단을 권리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차이를 권리 주체이자 정치의 주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로크 이후 근대 정치의 주체인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천부적인 권리의 양도 불가능성과 마찬가지로, 집단도 천부적인 권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권리는 양도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100쪽

인간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연히 함께 결사를 구성해야만 하고, 자유 선택의 토대 위에서만 그것이 가능하다. (허스트)-101쪽

차이의 권리는 양도 불가능하다.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나 동양인 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성적 소수자, 가난한 자라는 이유로, 정치적인 소수 의견의 주장자라는 이유로, 기타의 이유로 권리르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 집단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이익을 대표할 대표자를 선출할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다. (중략)
이 차이 집단이 권리를 특정 정부에게 양도하는 것은 그 정부가 차이 집단과 결사의 정치적 권리를 보호했을 경우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차이 집단과 결사의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차이 집단과 결사 집단은 정부에 저항해야 한다. (후략)-104-105쪽

차이의 정치는 집단이 정책의 피동적 대상에서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집단 해방의 논리이다. 집단의 해방 논리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해 배제되고 억압된 집단이 정치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배제된 집단이 정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을 뜻한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집단이 스스로 정치적 권리와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배 사회에 문제를 던지는 것이 차이의 정치이다. 차이의 정치는 모든 집단이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는 ‘민주주의=평등’이라는 등식을 본질적 의미에 더 가깝게 만든다. 따라서 차이의 정치는 민주주의 지향적이다. -112쪽

토론은 다양한 견해를 하나로 모으고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해준다. 그 결론은 다수의 견해가 모아진 것으로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사회의 구성원은 다수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결론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수결의 결과는 사회의 구성원이 수용해야 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차이 집단은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토론이라는 과정 자체가 ‘문턱이 높은’ 기획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은 토론과정에 진입하는 것조차 힘들 뿐만 아니라, 토론 과정에 진입했다 해도 자신의 견해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수용시킬 만한 결론으로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토론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토론 과정의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토론 결과에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토론 과정에서 배제된 집단이거나 차이 집단이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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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7-3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읽으면...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싶습니다... 한민족의 참견하는 습관, '뿌리'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쌩무시하는 무시무시한 단결력... 이런 것 정말 무섭지요. 한국도 자꾸 유목적 사고에 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 - 기획의 발상부터 인간관계까지
와시오 켄야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5년 2월
품절


편집자의 머리에 떠오른 기획이 저자의 두뇌를 통과한다. 그럼녀 누에가 실을 분비하듯 저자는 글을 뽑아내기 시작한다. 집필을 뜻한다. 그런데 글만으로는 명주실이 될 수 없다. 분비물을 모아 가공하고 처리해야 비로소 명주실이 완성된다. 편집공정이란 저자라는 누에를 발견하고 분비된 것을 명주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보면 된다. 저자를 누에 취급해서 실례짐나 양질의 누에 없이는 양질의 명주실을 얻을 수 없다. 가공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과 저자는 세트다. 한몸이다. 그래서 뛰어난 저자를 발견하는 능력도 기획력에 들어간다. -63-64쪽

인터넷은 과거의 정보를 정리한 데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지식을 축적한 데 불과하다. 그러나 앞으로 짜내려 하는 누에에서 어떠한 명주실이 나올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누에에 따라 달라진다. 더군다나 성격도 행동양식도 모두 다르다. 기획이란 그러한 누에를 상대해야만 하는 일이다. 편집자가 발로 뛰는 걸 귀찮아하고, 호기심도 희박하며, 생산 현장을 겁낸다든지, 저자가 오타쿠화하면 기획은 당연히 무미건조해지고 만다. 오늘날 있으나마다g나 책이 홍수를 이루는 배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72쪽

원고를 읽을 때는 다음 사항을 늘 염두에 두자.

-의미가 있다. 학문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임팩트가 있다.
-화제성이 충분하다. 사회의 반향을 기대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읽힐 만한 근원적 주제를 다룬다.
-신선한 주제, 새로운 접근방식, 새로운 발상.
-저자가 대중성이 있다.
-오랜 세월을 들인 역작이다. 귀중한 자료를 발견했다.
-문장력이 뛰어나다. -125쪽

넘치는 것은 지우고 모자라는 것은 채우도록 요구한다. 말할 것도 없이 어디까지나 편집자의 시점에 서서다. 이미 말했듯이 저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자를 잊어버리는 존재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책을 사주는 독자보다 증정하는 동업자 쪽으로 눈이 가게 마련이다. 넘치는 부분은 동업 경쟁자에 대한 경쟁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점(주장)과 독자가 흥미 있는 부분이 다른 사례도 많다. 편집자는 그 양쪽을 볼 줄 안다. 저자의 의견도 이해한다. 동시에 독자가 그 책을 내동댕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편집자의 실력이 요구된다. 어느 장은 빼자, 라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저자는 한번 완성된 원고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저자의 씁쓸한 얼굴을 보면 편집자도 마음이 약해지지만 타협은 금물이다. -133-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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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상우와 손태영이 사귄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본지 얼마 안돼 두 사람이 9월에 결혼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리고 다음날을 기다릴 것도 없이 기사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비난하는, 손태영의 남성편력(?)을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헤프다느니, 창녀라느니,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달면서 손태영이 마치 몹쓸 잘못이라도 저지른양 취급받고 있다. 무슨 잘못을 했는데? 권상우란 결혼한다는 게 잘못이니, 아니면 여러 남자를 사귄 게 잘못이니, 둘 다니. 아마도 후자가 문제가 되는 거 같은데, 여러 남자를 사귀다가 결혼하면 안 되는 건가. 왜 안 되는건데?! 

  비난하는 이들은 아마도 오로지 결혼할 남자만을 만나기 전까지 연애도 안하는 순수한(?) 위인들인가본데, 그건 자랑이 아니다. 그냥 당신의 연애관이 그럴 뿐이다. 왜 당신의 연애관을 타인에게까지 적용해 들이미는겐가. 비난하는 이가 결혼하기 전까지 어떤 남자하고도 연애를 하지 않으면 그건 본인의 연애관이 그런 것일 뿐이다. "공식적으로 너무 헤펐다." 이게 할 말인가. 헤프긴 뭐가 헤펐다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손태영이 이전의 남자들과 사귀면서 스킨쉽을 어디까지 했는지, 섹스까지 했는지 등은 알 필요도 없고, 안다 해도 그것을 비난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스킨쉽의 정도와 섹스를 하고 안하고가 누군가를 비난할 근거가 되는가.

  비난의 댓글을 단 네티즌들처럼 세상 사람 모두가 고상하고(?) 순수하게(?) 연애하지는 않는다. 나의 잣대를 기준으로 삼아 그들을 비난할 기회를 준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니들이 더 변태적이다." 아니 어떻게 연애를 하면서 손도 안잡고 뽀뽀도 안하고 키스도 안하고 포옹도 안하고 섹스도 안할 수가 있니. 요렇게 말하면 나도 걔네들과 같은 년놈이 되겠지. 내가 그 네티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게 폭력이듯, 그들이 손태영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제 연애사와 연애 취향을 근거로 들어 타인을 욕하는 이들은 그 입을 닥치라. 

  나는 손태영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렇듯 이전의 연예인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기사를 통해서만 접해온, 오히려 그녀에 관한 '연애' 기사를 통해서만 접해온 피해자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접할 때면 언제나 그녀는 사냥감이 되어 숲속에서 울고 있었다. 헤어질 땐 어땠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녀에겐 그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했고, 각각의 남자와 함께 했던 시간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녀가 유혹해서 돈 뜯어내고 버린 꽃뱀도 아니고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이라도 그들은 알고 있는건지. 단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자 했을 뿐인 한 여자로서 그녀의 사랑을 내버려둬라.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이어갈수 있도록.

  연애의 목적이 결혼은 아니다. 연애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하다가 죽고 못살아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이 연애의 목적이라면 그건 매우 불행한 연애다. 재산은 어느 정도고, 차는 있는지, 학벌은 어찌되는지, 직업은 평생 먹고 살만한지 등의 조건이 앞서게 마련이고, 그 사랑은 자체로 순수하지 못하다. 자체로 100% 순수한 연애도 물론 없겠지만 결혼이 목적이 된 연애에는 확실히 더 많은 조건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비난하는 이들은 제 자신의 연애가 순수했는지를 생각해보라. 이렇게 되면 내가 손태영의 그간의 연애를 결혼이 목적이 아닌 순수한 연애로 확정지어주게 되는 거 같은데, 내가 볼 땐 그녀의 사랑은 순수했다.

  그녀를 비난하는 이들은 회계사, 변호사, 변리사, 의사, 펀드매니저 등의 전문직 직종 남성을 찾아 헤매지 말고,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한번 해봐라. 사랑은 잠깐이라고 생각하겠지. 사랑은 금방 사라진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랑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변화할 뿐이다. 그 변화는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는 변화일수도 있고, 뜨거운 불같은 사랑이 친구같은 따뜻한 사랑으로 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권상우와 손태영이 결혼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난 모른다. 그들이 나중에 알콩달콩 잘 살지, 아니면 헤어지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그들의 모습은 내 눈엔 순수해보인다. 두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지말자. 내버려두고 제 자신의 사랑이나 찾아보라. 그렇다고 또 조건 찾지말고.

p.s. 손태영을 비난하는 이들 중에는 남자와 여자가 섞여있을텐데, 이 글은 여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 '마초스러운 남자들'이야 말해 입만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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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7-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까지 결정되었으니 오래오래 행복하게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랍니다.
그리되지 않을 때의 그 어마어마한 찌라시 기사와 섬짓한 댓글들의 홍수는 보고 싶지 않아요..^^

이잘코군 2008-07-20 15: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둘이 잘 살길 바랍니다. :) 헤어지게 되면 둘 다 시궁창에 빠져 나오지 못할테니까요. 이별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제 몸은 추스리지도 못하고 전국적인 비난에 시달리게 될테니까요. -_-

bookJourney 2008-07-2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손태영 팬은 아닙니다만 ... 손태영에게 차였다며 모씨가 TV에 나와 울고 불고 했을 때, 저보다 10년이나 위인 분(성별: 남)에게 "아니, 둘이 결혼을 했어요? 약혼을 했어요? 살다가도 안 맞으면 헤어지는 세상에, 이제 스물이 갓 넘은 사람이 연애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거지, 왜 욕을 하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 주변의 여자들은 남의 예쁜 사랑에 험담을 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이잘코군 2008-07-21 00:1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손태영이 어디 나왔는지도 몰라요. 연애 기사 뜰 때마다 이름을 접해서 알죠. 연애는 두 사람의 문제로 끝내야지 제 3자가 개입하면 헝클어져버립니다. 두 사람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든 그건 두 사람의 문제로 놔둬야합니다. 주변에서 왜 궁시렁궁시렁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Jeanne 2008-07-2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의 목적이 결혼은 아니다. 연애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하다가 죽고 못살아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이 연애의 목적이라면 그건 매우 불행한 연애다. 재산은 어느 정도고, 차는 있는지, 학벌은 어찌되는지, 직업은 평생 먹고 살만한지 등의 조건이 앞서게 마련이고, 그 사랑은 자체로 순수하지 못하다. 자체로 100% 순수한 연애도 물론 없겠지만 결혼이 목적이 된 연애에는 확실히 더 많은 조건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글 참 잘쓰셈~

이잘코군 2008-07-21 00:17   좋아요 0 | URL
...... ^^a

순오기 2008-07-2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남의 사랑 험담하지 말고 자기 사랑이나 잘 지키고 아름답게 가꿔가면 좋겠어요. 연예인이라면 무조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도 문제에요. 그들을 연예인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로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싶어요.

이잘코군 2008-07-21 00:19   좋아요 0 | URL
네.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도마에 오르내리는 거라면 이해하겠지만, 이건 잘잘못의 영역이 아닌데 근거 없이 비난받고 있죠. 남의 아름다웠던, 아름다운 사랑을 놓고 왜 자기들끼리 험한 말들을 쏟아내는지.

Heⓔ 2008-07-2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손태영 욕하는 워리어들이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특히나 그 욕하는 이유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죠 -__-....aaa

이잘코군 2008-07-21 00:20   좋아요 0 | URL
네. 아주 많아요. -_- 관련 기사마다 다 달려있습니다. 욕할 이유가 없죠. 뭐 때문에? -_-a

LAYLA 2008-07-2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너무 당연한건데 말이에요.

이잘코군 2008-07-21 08:51   좋아요 0 | URL
네 너무 당연한건데 너무 당연하지 않게 이야기들해서 끄적였답니다. :)

BRINY 2008-07-2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변명할 것도 아닙니다.

이잘코군 2008-07-21 09:59   좋아요 0 | URL
네 변명할 것도 안되는데 너무 어이 없는 말들이 나와요. -_-

앨런 2008-07-2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 다 팬은 아니지만, 잘 살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결혼에 험한 글을 써갈기는 사람들 참 심리가 묘합니다. 남이사 결혼을 하든 말든 그들의 일인걸 왜 왈가왈부하는 겁니까?

이잘코군 2008-07-21 18: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둘 다 그냥 그렇다는. ^^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니고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울보 2008-07-2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테넷 신문을 보니 둘은 정말 잘살아야 할것같아요,,
잘살기를,,,,바랄뿐입니다,

이잘코군 2008-07-21 18:07   좋아요 0 | URL
네 잘 살아야죠. 이혼이 죄악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에 결혼했으면 잘 사는게 ^^

다락방 2008-07-2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아침에 아프락사스님의 이 페이퍼를 보고 좀 이해가 안됐어요. 왜 손태영을 위한 변명을 아프락사스님이 여기에 하는지 말이죠. 그리고 지금 인터넷을 보니 악플이 어마어마하게 달렸었나 보군요! 권상우도 팬까페에 글을 썼다고 하구요.

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고 사는것 같네요. 휴..

이잘코군 2008-07-21 16:27   좋아요 0 | URL
저는 누가 여기서 그렇게 말해서 그런게 아니구, 언제나 그렇듯 주변에서 느끼는 것에 대한 단상을 여기에 풀어놓는 것이랍니다. :) 그냥 아침에 엠파스나 네이트 같은 포털 들어가서 눈에 보이는 거 몇 개 클릭해보고 그러는데 그런 일이 있더라구요.

무스탕 2008-07-2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남의 연애사에 너무 관심들이 많아요.
관심이 지나치면 투기로밖에 생각이 안드는데 말입니다 ^^

이잘코군 2008-07-21 18:08   좋아요 0 | URL
네. 관심이 너무 ... -_- 제 연애에 신경을 그만큼 쓰면...

2008-07-2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2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