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두번, 세번, 네번, 그 횟수가 하나씩 더해질수록 난 점점 변하고 있다. 2005년의 2월, 난 자신 있었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도 시험봐서 들어가는 이 대학원에 - 다른 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았다 -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 자신했고(뭘 믿고 그랬는지 알 수 없다만 '평상시의 실력'이라고 한다면 1보단 0에 더 가깝다), 자신한 바대로 남들 초조하게 면접보고 있을 때 그냥 뭐 대충 보면 되는거지 하며 홀로 청바지에 캐쥬얼 차림으로 빨리 안끝나나 이런 생각이나 하며 면접을 끝냈고, 당연하게도 붙었다. 대학원 합격 뒤에는 이제 기간제 교사 구해볼까, 라며 천천히 느긋하게 준비를 하던 나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두달이 지난 작년 이맘때쯤에야 알았고, 예상을 빗겨간 나의 인생계획에 항로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철학연구소라고 하는 사설 토론/논술 교육기관에 취직을 했고, 다시 나와 중학교 때 제일 못했던 국사과목을 도덕과 더불어 가르치는 시간강사 생활을 지내고, 2학기에는 드디어 본래 계획대로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해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또 난 자신했다. 그래 이제 경력이 붙었으니 돌아오는 겨울엔 쉽게 방학 꽉꽉 채운 1년짜리를 구할 수 있을거야. 널널한 교육대학원 생활과 넉넉한 2학기 여유자금에 4개월은 매우 달콤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좌절감을 맛보며 저 넓은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짧은 4개월간의 기간제 경력으로 다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가고, 고용자 측은 1년 이상의 경력자를 찾았고, 난 그들의 선호대상에서 당연히 제외되었다. 그리고 2월 28일. 개학 바로 전 날, 끝내 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매우 쓰다. 무슨 자신감으로 당연히 날 채용해줄 것이라 믿었던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내가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 스스로 생각했던건지, 근원은 알 수 없다.
한번 이력서를 들이밀고, 두번 이력서를 들이밀고, 세번, 네번, 다섯번, 여섯번 들이미니 어쩌다 면접을 오란다. 한시간 반, 두 시간 출퇴근 거리 마다 않고 불러준 것만으로 감사하여, 찾아갔으나 나이가 어리다, 집이 멀다, 경력이 없다 등등의 이유로, 되돌아올 수 밖에. 또 일곱번, 여덟번, 아홉번, 열번 들이미니 한번 또 기회가 찾아오더라. 하지만 이미 자신감을 잃어버린 나는 예전의 그 당당하고 패기있는 내가 아니었다. 에휴, 이번에도 안되겠지... 그래 결국 안됐다.
실패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한번의 실패는 주의라고 치자,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계속 되다보면 자기자신에 대한 존중감마저 상실해버리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날 탈락시켰든 그 이유가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존중도는 떨어질 밖에. 그거 밖에 안되는 놈이었다는. 내가 죽음 따위를 선택할 인간은 아니지만, 취직이 안됐다고, 오랫동안 고시준비하다 다 늙어 이제 더이상 가족 바라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신문에 오르내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가더라. 뭐 이제 겨우 그거 해놓고 공감은! 그래 아직 내가 겪은 이 정도의 실패는 매우 약과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그런 일들이, 이보다 더한 실패와 좌절감을 맛봐야 할지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초기, 난생 처음 찾아온 성적하락과 슬럼프는 졸업 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난 실패를 현명하게 받아들여 대처하지 못했다. 다시 그런 일이 찾아오면 같은 짓은 저지르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더라. 날 이뻐하던 선생님들이 성적이 자꾸만 떨어지자 관심도 갖지 않더라. 난 고등학교에 교생실습 문제로 한번 문의하러 간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같은 학교를 나온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그때의 내 모습을 지우고 싶어서. 올라가기는 힘들어도 떨어지기는 한 순간이다.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한순간이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말자. 세상은 냉정하다. 지금의 실패로 인해 밑바닥에서 헤맬 필요는 없다. 기회는 온다.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