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터넷 공간 중에서도 개인 주소를 가지고 있는 홈페이지냐, 아니면 미니 홈피냐, 포털의 블로그냐에 따라서 그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개인이 만든 홈페이지의 경우 포털에서 잘 검색되지도 않고, 방문객이 지인 등 제한적이다. 미니홈피의 경우 기본적으로 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라 누구나 접근하기는 쉽지만 방문객이 어떤 콘텐츠를 볼 수 있는가는 순전히 운영하는 이에게 달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체'에게 개방하기보다는 일촌만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중에서도 그룹을 나누어 제한한다. 

  포털 블로그의 경우는 좀 다르다. 포털에 속한 블로그는 무엇을 쓰든 포털 검색에 먼저 보이고, 방문객이 많은 블로그라면 더더욱 쉽게 노출된다. 알라딘은 어떤가. 알라딘에서 개인이 서재를 운영하며 작성하는 콘텐츠도 포털에 검색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노출의 빈도 문제일 것. 포털 블로그처럼 일일 방문객이 많은 것도 아니고, 검색으로 들어오는 경우보다는 알라딘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재를 운영하거나 서재를 운영하지 않더라도 책, 음반, 영화 등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오는 경우가 많을 것. 이번 논란에서는 서재를 운영하는 한 알라디너의 글이 알라딘 고객 발송 메일에 링크되었고, 이를 타고 들어온 어떤 분이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받은 알라디너는 충격 받았다. 그리고 해당 알라디너는 알라딘 운영상의 문제로 돌렸다.

  인터넷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 행위에는 내가 쓴 글을 불특정인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수가 백 명이건 천 명이건 글쓴이가 감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 얼토당토않은 댓글을 단다면, 그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든 아니면 그냥 무시하든 글쓴이의 마음이다. 때에 따라서는 어떤 글이 누군가에 의해 펌질을 당할 수도 있고, 펌글을 본 또다른 이가 본래의 블로그를 찾아와 댓글을 달 수도 있다. 댓글이 호의적일 땐 기분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땐 별로일 것. 전자일 땐 글쓴이는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전자나 후자나 많은 이들이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데 전자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후자에 대해서는 문제 삼는다면 이 또한 이상한 일.  

  알라딘 회사가 서재에서 화제가 되는 글들을 모아 메일로 발송했다고는 하나, 그 글을 선정한 데에는 어떤 정치성이나 모종의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슈가 되는 글을 엮어서 발송한 것일 뿐. 문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글이 발송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 중 한두 명이 링크를 타고 들어와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남겼다는 데 있다. 해당 알라디너는 전자에 대해서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상 후자의 문제인 것. 만일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단 이가 아무도 없고, 칭찬과 동의 일색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주제가 정치적인 사안이었다고는 하나, 어떤 주제를 민감한 것으로 보고 어떤 주제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볼지를 판단하는 것도 고역이다. '화제의 서재글' 코너에서는 많이 오른 주제인데, 막상 또 알라딘 측의 고객 메일에서 빼버린다면 혹자는 이를 정치적이라고 비판할 것. 알라디너들 사이에서는 화제 거리였는데, 화제가 된 글을 골라 엮는 메일 코너에서 제외하면 '제외했다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느냐, 는 등의 반응도 가능하다. 민감한 주제라고 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 개인이 알라딘 내에 서재를 만들고 글을 쓴다는 것.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글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신변잡기나 영화, 뮤지컬 이야기도 역시 마찬가지. 내 아이의 얼굴을 다수의 사람들이 보지 않기를 원한다면 내 아이의 사진을 올리지 말아야 하고, 내 계좌번호가 노출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쓰지 말아야 하고, 내 직업과 내 학력 등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 역시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내 정치적 성향, 가치관 등도 마찬가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도, 그 글을 공개했다면 그로 인한 책임도 개인이 져야 한다. 나 또한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많이 쓰는지라 이 점을 항상 의식하고 있다. 알라딘에서 쓰는 글 중엔 민감한 부분이 많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미 쓴 글인데 나중에 어떤 이가 안 봤으면 하는 글은 비공개로 돌려놓기도 한다.

  알라딘에서 '다음뷰'를 체크하면 포털 다음에 노출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의서재&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함'을 체크하면 알라딘 내에서 나를 즐겨찾는 이들에게만 내 글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딘 계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할지, 아니면 불특정 다수 누구든 달 수 있게 할지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신분을 알 수 없는 아무나 배설하는 댓글-익명으로도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글을 쓰는 분들도 있다-을 보기 싫다면 차단하면 된다. 

  알라딘 회사 측이 고객들에게 발송하는 메일에 링크된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알라딘 회사의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당혹스러움이 잘못으로 바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그것이 메인에 링크됨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 링크를 타고 들어온 이의 댓글로 인한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후자라면 이 일을 계기로 공개된 공간에서 쓰는 글의 주제를 가리는 등 각 개인이 스스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어떤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건 때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엔 상처가 되지만 겪다보면 무던히 넘기게 된다.


댓글(28) 먼댓글(0) 좋아요(10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1-09-0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여기에 댓글을 다는것도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특히 이부분,

'화제의 서재글' 코너에서는 많이 오른 주제인데, 막상 또 알라딘 측의 고객 메일에서 빼버린다면 혹자는 이를 정치적이라고 비판할 것. 알라디너들 사이에서는 화제 거리였는데, 화제가 된 글을 골라 엮는 메일 코너에서 제외하면 '제외했다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느냐, 는 등의 반응도 가능하다. 민감한 주제라고 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늘빵 2011-09-09 16:04   좋아요 0 | URL
민감한 주제가 실려서 문제라면, 민감한 주제를 부러 뺐을 경우도 역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했어요. ^^

레와 2011-09-0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추천 한번밖에 못해요?!
한 백번은 하고 싶은데.

마늘빵 2011-09-09 16:04   좋아요 0 | URL
^^ 고맙습니다.

치니 2011-09-0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점 정리 확 잘 되네요. 저처럼 논란의 선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보여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11-09-09 16:05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번 관련 글들을 쭉 읽어보면서 정리해서 글도 그렇게 나왔나봐요. ^^

마태우스 2011-09-0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라딘의 리더 아프락사스님, 님은 언제나 한방에 쟁점을 정리해 주시네요. 전 앞으로도 쭉 님한테 이끌림을 받겠사와요. -팬 드림-

마늘빵 2011-09-09 16:06   좋아요 0 | URL
이러시면 곤란하다는... ^^;; 기생충 알 찾느라 고생하십니다. 거의 고고학자 활동이던데요.

건조기후 2011-09-0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시원하네요.

마늘빵 2011-09-09 16:06   좋아요 0 | URL
^^ 이제 바람이 좀 시원하기는 해요. ( '')

turnleft 2011-09-0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상의 글을 단지 공개와 비공개로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 시키는게 아닐까 싶네요. 글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글이 어떤 맥락에 배치되는가도 중요합니다. 글에 대한 작성자의 권리는 내용만이 아니라 그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노출되는가도 포함해야 한다고 보구요.

비록 공개글이라고는 하지만 문제의 글이 뉴스레터를 통해 배포되는 것은 분명 글쓴이가 예상치 못한 맥락에 글이 놓여 버린 경우라도 생각이 됩니다. 글쓴이가 애초에 원한 것은 지인들이 먼저 보고, 화제의 서재글이 되어도 알라딘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보는 정도 아니었을까요. 공개된 글이기 때문에 검색 등을 통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서 볼 수는 있지만 확룰상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을 테구요. 하지만 뉴스레터로 배포된다는 것은 훨씬 더 큰 집단이 그 글을 보게 된다는 것인데요.. 과연 알라딘의 모든 이들이 공개글을 쓸 때마다 그 가능성을 상정하고 글을 써야 할까요? 제 생각엔 공개를 했으니 감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 같네요

물론 알라딘 측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다거나 완전히 잘못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약관 등을 들어 별 문제 없다고 단순히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세심한 고려와 정책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늘빵 2011-09-09 16:12   좋아요 0 | URL
네, 턴님 오랫만이에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맥락의 문제. 없다고는 못하는데, 이번 논란 건으로만 한정해서 보면, 문제제기하신 분의 글이 이전에 메일에 두 번 링크되었다는 글을 본 거 같은데, 그렇다면 의식을 못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글을 쓰면서 어디까지를 상상하느냐, 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블로그 초기 운영 시에는 이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했는데, 오래 블로그질을 하다보니 느끼겠더라고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이트 운영자가 유저들이 요구할 때마다 맞춤형으로 보완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알라딘은 지금도 충분히 다음뷰와 즐찾서재에만 보이기를 통해 선택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이걸 활용하면 될 듯 하고요.

BRINY 2011-09-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프님. 추천합니다.

마늘빵 2011-09-10 00:17   좋아요 0 | URL
^^

Kir 2011-09-0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눌렀습니다. 종종 알라딘에 추천만이 아니라 동감 혹은 동의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금도 그래요.
아프님, 잘 읽었습니다!

마늘빵 2011-09-10 00:18   좋아요 0 | URL
^^

글샘 2011-09-0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출판사에선 신문같은 데 글을 실어도 되냐고 분명히 물어보거든요.
별거 아니니 실어도 된다고 하면, 엄청 고마운 체를 하구요.
그게 업계의 상식이자 매너라고 보는데요.
약관에 어떤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따질 때나 쓰는 거라 생각합니다.
뉴스레터 같은 걸 만들땐 반드시 글쓴이에게 전화나 문자로 게재 사실을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 그게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매너가 없는 행동을 한다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경찰차 출동하거나 수갑채워 잡아가진 않습니다만, '호의적인 댓글'이나 '악성 댓글'이 붙는 건 글쓴이의 책임이라 하더라도, 매너 없는 일인 건 기분나쁜 일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늘빵 2011-09-10 00:22   좋아요 0 | URL
보기에 따라서 글샘님처럼 알라딘 고객 메일을 신문란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보는데, 알라딘에서 서평 쓴 글을 신문이나 출판사 뒷표지에 실을 때는 별개의 매체이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알라딘 고객 메일의 경우는 알라딘 서재란의 '화제의 서재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별도의 매체라면 매너의 문제일 수 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번 건으로만 보면, 만일 해당 알라디너께서 이것을 매너의 문제로 문제제기하고 싶으셨다면 처음 메일에 링크됐을 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하시고, 이번에 하시게 된 건 결국 링크를 타고 들어온 '불특정인의 댓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논의의 촛점을 알라딘 시스템에 맞추면서 문제제기하신 건 출발이 잘못된 것 같아요. ^^

turnleft 2011-09-10 02:37   좋아요 0 | URL
포인트는 그럼 뉴스레터가 화제의 서재글과 같은 매체로 볼 수 있는가, 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노출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성격의 매체로 봅니다. 화제의 서재글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라딘 서재 페이지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뉴스레터는 알라딘에 등록된 모든 사용자들이 받아보는 매체니까요.(맞나요? 저는 뉴스레터 같은거 안 오는데;;)

그리고, 당사자의 최초 반응을 가지고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건 옳은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너도 좋았으니 가만 있었던거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발끈하고 그러냐" 라는건, 어디서 많이 봤던 논리구조 아닌가요.

마늘빵 2011-09-10 07:32   좋아요 0 | URL
뉴스레터는 아마 등록을 원한 이들에게만 가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매번 오는데 인문, 사회, 자기계발, 교육 등 여러 분야 중 받아보고 싶은 메일을 설정한 부분에서 달라질 거에요.

저는 포인트는 '불특정인의 댓글'로 봅니다. ^^ 관련된 글들이 모두 뉴스레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제기자가 화가 났던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라 '불특정인의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이었다고 보니까요. 다만, 화살이 잘못 나간 거죠. 화가 났다는 결과의 원인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테러를 화제의 서재글과 같은 매체로 볼 건가'는 이와 별개로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요. "결국 너도 좋았으니 가만 있었던거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발끈하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성폭행 논리에 비유하기에는 사안의 성격이 너무 다른듯 합니다. '화'의 원인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연휴가 시작됐네요. 미국에서는 한국 명절에 어떻게 하나요? ^^

turnleft 2011-09-10 09:31   좋아요 0 | URL
음.. "성폭행"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뒤늦은 반응을 가지고 당사자의 심리상태를 "추정"해 들어가는 논리구조를 말한 겁니다. 뒤늦게 반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악플이 직접적인 반응을 촉발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 제기된 문제가 아닌 기타 정황을 통해 문제 제기자의 심리 혹은 의도를 추정하는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자꾸 논쟁이 잘잘못을 가리는 방식으로 흘러가면서 어느 쪽이 더 문제냐는 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현재 뉴스레터가 취하는 방식이 글쓴이의 글에 대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정도로 제 의견을 한정하고 싶네요. 저야 철저하게 즐찾공개로만 글을 남기기 때문에 어차피 적용되지 않지만, "블로그 플랫폼 내에서 글쓴이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선 한국 명절에... 일합니다 ㅠ_ㅠ

마늘빵 2011-09-10 10:00   좋아요 0 | URL
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 연휴에 전 영화나 많이 보러 다녀야겠습니다. 추석에 일하신다니... 그치만 또 미국 공휴일도 한국만큼 있겠죠? 별개 이야기지만 대체 휴일제 시행한다 어쩐다 하더니 국회에서 쏙 들어갔습니다. -_-

신지 2011-09-10 13:27   좋아요 0 | URL
실제 제기된 문제가 아닌 기타 정황을 통해 문제 제기자의 심리 혹은 의도를 추정하는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ㅡ> 그렇다면 조중동의 사설을 곧이곧대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제기에만 집중해야겠는데요. 실제로는, 문제제기 이면에는 정치적 의도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을 텐데 말이죠.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아이를 심하게 혼냈는데, 아이의 잘못은 표면적인 이유고, 실은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서일 수도 있거든요.

turnleft 2011-09-10 14:05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제 아무리 조중동이 한 소리라도 문제제기에 대한 판단이 먼저지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먼저 까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 후에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들어가아조. 이건 오히려 평소의 신지님이 주장하셔야 할 내용 같은데 왜 제가 적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마찬가지의 논리라면 신지님은 스스로가 왜 이런 댓글을 남기는지 모르시겠네요. 배가 고프신걸지도 모르겠고... 서로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비난을 돌리려면 굳이 피곤하게 논쟁이라는걸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신지 2011-09-10 15:04   좋아요 0 | URL

1.관련된 글들이 모두 뉴스레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제기자가 화가 났던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라 '불특정인의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이었다고 보니까요. 다만, 화살이 잘못 나간 거죠. 화가 났다는 결과의 원인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테러를 화제의 서재글과 같은 매체로 볼 건가'는 이와 별개로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요.
3. "결국 너도 좋았으니 가만 있었던거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발끈하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사안의 성격이 너무 다른듯 합니다.

저는 아프님의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도 거의 같은데, 턴님은 거듭 이의를 제기하시는 것이 저로서는 의아합니다. 턴님의 댓글(자꾸 논쟁이 잘잘못을 가리는 방식으로 흘러가면서 어느 쪽이 더 문제냐는 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은 이미 앞에서 '대답'이 된 것입니다.

즉, 서로 다른 이야기로, 별개로 이야기해 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다시 말해보겠습니다.

ㄱ.
만약에 ㅡ 이번과는 반대의 경우였다면ㅡ 마고님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아서 마고님이 칭찬을 많이 받았다면, 의외의 그 방문자들이 꼭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사태에 깜짝 행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마고님 글에 있다.

ㄴ.
온라인에서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뭔가 불안해서 안 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도 결국 본인이다. 엄연히 나름대로 조심하는 사람이 있고, 덜 조심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마고님 본인에게 있다.

이는 논리적인 활동(추론)이지, 점을 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락방 2011-09-11 19:35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을 적기 위해서 왔다가 신지님의 댓글을 읽고나니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아프락사스님의 페이퍼도 그랬지만 신지님의 댓글도 지금의(아니 이젠 과거가 되어버렸고 종결되어 보입니다)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보셨고 그렇기 때문에 합당하며 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지님의 댓글에 동의합니다.

마립간 2011-09-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의 수양은 아프락사스님의 글처럼하고 있습니다.
CCTV를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金慶子 2012-07-2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읽기쉽게 쓰여졌지만 행간나눔이 또 하나 배울점이네요.
글의 흐름이 알맞은 장소에서 나누었다는 것이고,
재미있게 썼다는 것이고, 그래서 추천했네요.^^
 

 

 

 

 


  철학을 전공했으나 들뢰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 시절엔 프랑스 철학을 다루는 강의가 아예 없었고, 들뢰즈는 당시 한국 강단에 막 수입된 최신(?) 학문이었기에 학부생들이 다룰 만한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학부 때부터 들었고, 졸업한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듣고만 있다. 대학원에 가서도 윤리학을 공부했기에 존재론, 형이상학을 다루는 들뢰즈는 역시 전공 외 영역에 있었다.  

  르네21에서 들뢰즈 강의를 한다. 지난 수요일 첫 강의를 들었고, 들뢰즈의 철학에 입문했다. 정확히 그 강의는 들뢰즈와 바디우를 다룬다. 바디우는 들뢰즈보다 늦게 이름을 접했고, 모르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첫 강의는 들뢰즈 존재론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배웠다. 수강생들은 대학생 또래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했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한 10여명 정도. 그 분들은 모두 왜 이 강의를 들을까. 단지 들뢰즈를 알고 싶어서, 아니면 강유원 선생님의 말마따나 노후를 즐기기 위해서. ^^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적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들뢰즈를 함께 듣는다.  

  강사 박정태 선생님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엮으셨다. 들뢰즈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들뢰즈의 초기부터 이전 철학자들에 대해 쓴 논문을 모아 번역/엮은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를 따라가기에는 적절한 교재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소개했고,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닌 만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다. 입문해보자. 들뢰즈의 철학은 다음 다섯 가지 바탕을 깔고 있다.  

  첫째, 들뢰즈의 존재론은 내재주의의 특징을 보인다. 반대되는 말은 초월주의. 존재는 존재자들에 내재하고, 존재자들은 존재에 내재한다. 신은 양태들 속에, 양태들은 신 속에 들어있다(스피노자를 받아들임).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에 내재하고,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은 생명에 내재한다(베르그송을 받아들임).  

  둘째, 분간불가능성. 식별불가능성이라고도 한다. 반대되는 말은 식별가능성, 분간가능성. 존재와 존재자, 신과 양태, 생명과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들이 서로 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간, 식별 불가능하게 된다. 고로 존재의 일의성이 유지된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와 이데아가 깃든 것은 엄밀히 구분되지만 들뢰즈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은 잠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것. 이때 '동시에'라는 말이 분간불가능성을 일컫는다.  

  셋째, 등가성 또는 동등성. 반대말은 비등가성 또는 비동등성. 들뢰즈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가치가 다 똑같다. 가치의 우위와 서열을 들뢰즈의 일의성이 참아내지 못한다. 존재와 존재자들의 가치를 동일하게 본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가치는 엄밀히 구분되고, 가치 또한 다르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분유한 것이기에 가치 측면에서 이데아 아래 줄을 서게 된다. 이데아를 기준으로 참의 정도에 따라 사물을 줄 세운다. 국가의 지도자 또한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 철인을 설정한 것이다.  

  들뢰즈는 이데아와 현실 사물의 가치 체계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복이다. 현실 사물을 이데아의 위에 놓는 방식으로 뒤집는다면 그건 여전히 비등가적이고, 비동등한 것. 들뢰즈는 이를 동등하게 함으로써 플라톤을 전복한다.  

  넷째, 생기주의. 유기체로 나타나기 이전 생기주의에 따른 머리의 생산이 있어야 한다. 생기주의는 유기체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존재는 존재자들의 역능이고,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의 역능,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의 역능, 신은 양태들의 역능, 존재는 존재자들을 생산함으로써 실재하는 파워.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고 동력이며 구조가 된다. 역능이란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역능은 또한 자기 원인적인 힘이다.  

  플라톤의 경우 영혼이 세 가지로 나뉘어진 것과 같이 국가도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영혼들이, 각 계급들이 제 역할을 잘 할 때 온전한 몸, 온전한 국가가 된다. 들뢰즈는 잠재적인 것을 선험(경험보다 논리적으로 앞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적인 장으로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것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선험적.  

  다섯째, 매개가 배제된 종합. 존재, 신, 생명, 잠재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 존재자들, 양태들,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현실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가 각각 있지 않고, 매개를 배제한 종합으로 이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삼각형에서는 이데아 안에 현실의 여러 삼각형들이 포함되고 포섭된다. 하나가 다수를 엮고 종합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현실 삼각형은 이데아의 삼각형과 유사한 것일뿐이다. 플라톤도 종합을 보여주지만 여기엔 매개가 개입되어 있다. 존재가 집합과 비집합으로 나누어진다. 유사한 이데아의 범주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분화된다. 우리 현실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나와 너와 그에게 어떤 의무,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매개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그 둘이 서로를 해하지 않고 종합이 되려면 매개가 없어야 한다. 다수인데 종합, 두 개인데 종합되는 것. 잠재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에 매개가 개입되어 있지 않고 둘을 묶어 종합한다.

  어렵다. 하지만 플라톤과 대비하여 쉽게 풀어주셨다. 대략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고, 다음 강의를 듣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존재론은 현실의 문제와는 많이 다르다. 철학에서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등은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존재론은 다소 구름에 붕 뜬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존재론은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던 세계의 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존재론, 형이상학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강의를 기대한다. 르네21에는 서양, 동양철학 강좌가 지난주부터 진행 중이고, 금요일마다 매번 다른 책의 저자와 함께 하는 교양 강의가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로. http://www.renai21.net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화 2011-09-0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 살기 바쁜 우리는 '행동하기 위한 사유하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유하기 위한 사유하기'에 어려움을 느끼지요. 하지만 '행동하기 위한 사유하기'에는 반드시 뺄셈 작용이 필요해요, 가장 경제적인 행동 패턴을 만들어야 생산성과 유용성이 높아지니까. '사유하기 위한 사유하기'에는 그러한 뺄셈 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의 사유와 인식은 '있는 그대로의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에서 출발한 인식은 필요에 따른 인식보다 더 정확할 수 있고, 존재 그 자체의 본성에서 출발한 윤리는 유용성에 따른 윤리보다 더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11-09-06 09:03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 존재론 자체는 일상과는 좀 떨어져 있어보이지만, 윤리는 존재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yamoo 2011-09-0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저하고 같군요^^ 진짜 학부때는 프랑스철학을 거의 안 다뤘고, 특강 형식의 강의가 개설되어도, 베르그송과 푸코 사르트르만 다루더군요~ 철학과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영문과과 불문과 대학원 과정에 프랑스 사상사 강의에서 들뢰즈를 다루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들뢰즈는 까막눈이었다는..ㅎㅎ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이 책은 저도 들뢰즈에 입문하기 위해서 들뢰즈를 잘 아시는 분한테 문의해서 구입한 책이에요. 렘브레이트 서양철학사를 거의 다 보고 봤던지라 상대적으로 무척 쉽게 읽었던 책입니다.

르네21에서 강의가 있군요~ 이 강의는 몇시부터 어디에서 하는 건가요?? 저도 한 번 가봤으면 하네요~ 좋은 정보에요!

근데, 아프락사스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잘 아시는지 궁금합니다요..ㅎㅎ

마늘빵 2011-09-06 09:06   좋아요 0 | URL
학부에서 프랑스 철학 다루는 데가 없지 않나 싶어요. 요즘엔 또 모르겠는데. 정말 거의 불문학과 이런 쪽에서만 하는 듯하고. 아무래도 기존 교수들이 미국,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들이다보니.

르네21 동, 서양 철학 강의는 수요일 일곱 시에 있고, 교양 강의는 금요일에 있어요. 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확인할 수 있다는. 위치는 시청역 안쪽(광화문 방향 시청 건너편) 성당입니다. 저야 돌아다니다가 정보를 줍고... ^^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싫어할 이유가 충분한 누군가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화해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계속해서 문제를 유발시킨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욕망인가. 또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은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가. -22쪽

선거 때만 되면 각종 교육 정책들이 난무하는데, 그 정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사교육비 절감을 이야기한다. 선심 공약 치고 이만한 것이 없다. 사교육의 폐해는 누구나 동의하는, 정말 안전한 문제니까. 아무도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학교의 근본적인 사명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사교육만, 사교육만 잡자고 한다. 그러고 나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대학 입시 제도에 있다고 뜻을 모은다. 위원회가 생기고,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정부의 예산이 새 입시 제도를 만드는 데 쓰인다. 많은 대학 교수들과 전문가들이 이를 통해 부수입을 챙기고 경력을 추가한다.
이제 입시 제도가 바뀐다. 게임의 규칙은 더 복잡해지고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75-76쪽

우리 사회의 큰길, 즉 규칙과 질서가 사회에 자리 잡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사회에는 어떤 의미로든 더 큰 힘을 가진 자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질서가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세뇌한다. 이 질서는 지배하는 우리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야, 세상 모두에게 좋은 것이야, 그러니 이 질서가 무너지면 세상은 끝장나는 거야, 하고 말이다. 처음에는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얄팍한지, 곧바로 질서가 지금과 다른 시절도 있었고 앞으로 다른 질서를 가진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 질서를 수용한다. -84-85쪽

지혜 있는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해 두 마음을 갖지 않고, 자비로운 사람은 미래를 결코 걱정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자)-1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하기 - 흥미진진 철학 여행
매슈 모리슨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08년 7월
절판


철학적 논쟁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우선 갖추어야 할 자세는 신중함이다. 선의의 논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악의의 논쟁은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으로 가득 차 있다.
나쁜 의도가 있는 논쟁은 이상하고 거짓인 것을 믿게 하려고 사용된다. 재치 있는 논쟁은 누군가를 속이기는 쉽고 겉으로 보기에는 타당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면에는 수상한 점이 많다. -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줄 긋는 남자 (보급판 문고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5월
품절


당신이 알고 있는 대로, 나는 젊은 여자이고, 몽상적인 데가 있으며, 갈색 머리이고, 혼잣몸이에요. 산다는 것이 내겐 아주 두려워요. 나는 이렇게 사는 삶의 끝이 어디인지, 이 모든 습관과 몸짓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 잘 모르고 있고, 아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단계에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존재해요. 이 종이 위에 묻은 이 잉크가 꿈은 아닐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혼잣몸으로 자족하며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불완전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나를 채우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 진정으로 살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을 원해요. 내가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아는 어떤 사람, 그리고 흔히 하는 말로 나를 사랑해 줄 어떤 사람이 내겐 필요해요. -131-132쪽

나는, 우리가 뭔가를 착각한 게 틀림없으며, 두 개의 고독을 합친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160쪽

사내란 모름지기 처음엔 차갑고 신비스럽게 보여야 미더운 느낌을 주는 법이다. 처음부터 꿀 같고 캐러멜 같아서는 안 된다. -162쪽

사랑에는 살을 섞는 일이 필요하다. 그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18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