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를 알아가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작가를 알기 위한 방법이니 작가의 글을 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방법이라기보다는 전제가 된다. 작가는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글을 통해 알 것인가?

  첫째, 작가가 지금까지 쓴 책 중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 책, 베스트셀러를 먼저 집어든다. 지금까지 책을 깔짝거리며 읽어본 바로는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듯 하다. 더불어 이미 책을 읽은 독자들의 평을 살펴보는 것도 작가에게 한 발 다가서는 좋은 방법이다. 평이 극과 극을 넘나드는 경우, 그 작가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대박작가일 수도 있다.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이 가장 많이 읽혔다는 말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지만 대개는 팔린 만큼 읽힌다고 봐야 할터. 많이 읽혔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독자들로부터 검증받은 책이라는 말. 그러니 이 방법은 좋다.

  둘째, 딴에 자기식의 방법을 사용한다며 대개의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과 달리 작가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하나는 작가의 저서들을 시간순으로 읽어가는 방법이다. 이것은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괜찮은 방법이다. 젊은 시절의 글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의 글은 분명 다르다. 진정 작가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에서 현재까지 차근차근 살펴보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번째 방법은 잘 모르는 작가를 접하는데 있어 첫만남에서 실망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전략이라면 두번째 방법은 실망감으로 첫만남을 할지 모르나 꾸준히 참아가며 천천히 작가를 살피기만 한다면 끝에 가서 방긋 웃을지도 모르는 방법이다.

  셋째, 둘째방법과 달리 최근의 저작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나이 먹은 작가에서 젊은 시절의 작가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인데,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유행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들고 다니며 읽고 있는 최신 책을 나도 읽고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책의 유행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것이고, 그것은 책읽는 재미의 하나가 될 터.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면 또 다른 책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른 책 역시 또 최근의 신작이 될 것은 분명하고, 그리되면 최근의 책만 따라가다 고전을 등한시 하는 결과도 발생하게 된다. 한 작가를 놓고 현재에서 과거로 거스르는 방법은, 신간서적을 읽는다는 신선한 기분으로 시작하여, 점점 옛날 작품을 손에 들며 흙덩이 속에 깊숙히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나는 세 가지 방법 모두 사용하고, 때로는 네번째 방법인 무작위로 선택하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타인의 추천에 의해서 믿을만한 작가다, 검증받은 작가다 라는 인상을 받으면, 첫번째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첫번째 방법은 작가를 만나는 첫만남에 있어서 그에게 실망할까 두려워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을 선택함으로서 그 실망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검증받은 작가라면, 두번째 내지는 세번째 방법이 적절할 것이다. 옛날 것부터 최근의 것까지 살펴보는 것은 작가의 저서가 많을 경우 꽤나 깊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또 인내심 끝에 결국 작가에게 실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오래도록 참아온 참을 인자 세개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방법은 좀 위험하다. 세번째 방법은 최근의 유형을 타는 저서를 먼저 접함으로써 신선도를 높이고, 괜찮다 싶으면 해당 작가의 다른 저서들을 최근작에서 과거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위험도는 낮다. 최근작을 읽고 실망했다 하더라도 나 최근 신작 읽었어 라는 자부심(?)을 갖게 만드니 그것으로 족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함에 있어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꽤나 책을 읽는다는 인상을 주는, 내가 책의 흐름을 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니 나쁘지 않다.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사랑을 생각하다>를 읽었다. 최근. 이 작가에게 접하는 방식은 세번째의 것이다. 최근 신작을 먼저 읽고 그 다음 그의 저서들을 거꾸로 하나하나 들춰볼 생각. 몇권의 책이 있는데, 혹 마음이 바뀌어 중간에 무작위의 방법을 택할런지도 모르겠다. 그와의 첫만남은 대략 별루였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 아직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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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2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의 작품 가운데 최하라고 보시면 됩니다 ㅠ.ㅠ 그리고 저는 장르 먼저 봅니다~

히피드림~ 2006-03-2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향수나 좀머씨 이야기는 괜찮아요. 문체가 속도감이 있고 기발하고 개성이 넘치죠.^^

마늘빵 2006-03-2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다른 책들은 기대를 좀 해봐야겠네요. 흠. 이거 서평 오늘 중 써야지.

하늘바람 2006-03-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수도 너무 재미있고 비둘기도 재미있지만 깊이의강요는 두고두고 볼 책같아요
 



  영화를 보기전까지는 그냥 멜로영화인줄 알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멜로보단 컨츄리 음악계 가수의 실화로서 더 다가와있다. 영화보는 내내 이거 실화야, 라는 의문을 가지긴 했지만 정말 실화일 줄이야. 실화인줄 모른채 영화를 보러갔다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뜨며 실화임을 알렸을 때의 그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더불어 미국 음악계를 강타한, 소녀들의 우상으로 순식간에 떠올랐다는 쟈니 캐쉬, 난 처음 듣소.

  <앙코르>는 쟈니 캐쉬의 일대기를 담아낸 영화이다. 한편의 로맨스이기도 하고, 또 한편의 음악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는 얼마전(?) 봤던 <레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재즈계의 거목, 레이 찰스를 다룬 영화 <레이>. 영화에 너무나 감동 받아버린 나머지 이 영화의 디비디를 구입하고, 또 봤다. 음악 영화하면 또 하나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흑인들이 주름잡고 있는 랩의 세계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고 래퍼의 최정상으로 발돋움한 에미넴을 빼놓을 수 없지. 영화 <8 mlie> 또한 나로 하여금 굉장한 감동과 흥분을 전달해준 영화이다. 이 역시 디비디로 소장중.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음악과 영화가 한데 묶인 뮤지션의 삶을 줄거리로 삼고 있는 영화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잘 모르는 뮤지션이라도 좋다.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라도 좋다. 영화를 통해서 음악을 찾아가는 것도 즐겁다. 평소에 듣던 음악이 아닌, 랩, 컨츄리, 정통재즈 등등 영화에서 다루는 음악들은 나로하여금 새로운 장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고, 새로운 뮤지션과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든다.

  영화 <앙코르>의 주인공 쟈니 캐쉬의 음악은, 정말이지 너무 컨츄리하다. 옛날 티가 팍팍, 시골 티가 팍팍.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삶이 묻어나는 가사들. 아 좋다. 중간에 딴지 하나. 근데 왜 리듬과 멜로디는 계속 똑같고, 가사만 바뀌는 거지. 그리고 대중은 매번 똑같은 멜로디와 리듬에 지겨워하지 않는다. 음 신기한 일이야. 러닝 타임 135분. 두 시간 훌쩍 넘겨버린 이 영화는 90%가 노래하는 장면이다. 아 같은 리듬과 멜로디에 정말이지 노래만큼은 지겨웠다. 영화 <8mile> 덕분에 에미넴을 접했고, 그의 음반을 모두 구입했다. 또 영화 <레이>를 통해 레이 찰스를 알았고, 그의 음반을 구입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쿠바의 음악을 접했고 음반을 구입했다. 하지만. 하지만. 영화 <앙코르>를 통해 내가 쟈니 캐쉬의 음반을 구입할 것 같진 않다. 너무 똑같애. 너무 똑같애. 



* 준과 쟈니. 쟈니는 그동안 준에게 수없이 많이 고백했고, 준은 쟈니의 청혼을 수없이 거절했다. 하지만 쟈니의 재기 이후 함께 한 공연에서, 쟈니의 청혼을 결국 받아들인다. 짝짝짝.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으나 전업음악가로 나선 뒤의 성공, 그리고 같은 레코드사 소속의 아리따운(?) 여가수 준 카터와의 만남, 그리고 사랑, 약물중독, 폐인 또 재기, 새로운 삶. 그의 인생은 어린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부터 쟈니를 인정하지 않았다. 음악으로 대성공을 거둔 뒤에도 아버지 눈에는 그저 쓸모없는 놈 쯤으로 비춰졌다. 인정받고 싶다고.

  쟈니는 결국 준의 도움으로 약물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고, 다시 투어를 시작한다. 준과 함께. 그동안 수없이 많은 편지가 도착을 했지만, 읽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눈에 들어온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편지. 그는 첫번째 투어로 교도소를 택했다. 또 사랑에도 성공했다. 수없이 많이 40여 차례나 청혼을 밥먹듯 했으면서도 준으로부터 거절당한 쟈니. 하지만 결국 준의 승락을 받아내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았다는 이야기. 2005년 준이 죽고, 몇달 뒤 쟈니도 세상을 하직했다 한다. 평생을 투어를 함께 하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결국 죽음까지 함께 한 쟈니와 준. 애초 영화를 보기전 기대했던 한편의 아름다운 로맨스 일 뿐 아니라 한 뮤지션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고백이다. 이 영화 또 디비디로 지를까봐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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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3-2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 ^^; 33으로 들어가면서 괜찮은 숫자들이 꽤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히피드림~ 2006-03-2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어즈'의 자서전을 보면 재기한 자니 캐쉬를 자신들 공연의 오프닝가수로 초청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자니캐쉬가 몸만 와서는 도어즈 멤버들에게 악기를 빌려달라고 하죠.^^ 그러자 멤버들이 뭐든 맘껏 쓰라고 선배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멋진 오프닝공연을 보여준 자니에게 큰 감사를 표시하죠. 혹시 영화에 그런 부분은 없던가요?^^;;;

마늘빵 2006-03-2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펑크님 도어즈 얘기는 전혀 안나오던데요? 음. 자서전을 한번 봐야겠네요. 관심이 가요.

Kitty 2006-03-23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앙코르가 뭔가 했더니 walk the line이로구만요..
앙코르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받았다길래 영화를 두 개나 찍었나 했더니만..;;;;
이 영화 재밌다고 하데요~ ^^

마늘빵 2006-03-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키티님 제목을 바꿔걸었더라구요. ^^ 재밌어요.
 
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품절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9쪽

시인이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비록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주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알지-못함>, 즉 <도대체-나는-그것이-무엇인지-모르겠다>는 사실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붓이나 펜, 혹은 악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동력이 된다. -11-12쪽

플라톤에 의하면 바보들은 그들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나 선함, 혹은 성스러운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들 역시 이미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단지 중간에 있는 사람들, 바보와 현자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만 그것을 추구한다. -22쪽

사랑에 빠지게 되면 누구나 어느 정도 멍청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확인하려면 자신이 쓴 연애편지를 한 20-30년쯤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라.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 멍청함, 치기, 우월감, 그리고 맹목적인 사랑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내용은 얼마나 유치하고, 문체는 또 얼마나 격정적인가. 평균 이상의 지적인 사람조차 그런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어리석은 내용을 써내려 간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좀더 너그러운 시각에서 말한다면, 순진무구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에서 오히려 공감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은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멍청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입증해 줄 뿐이다. -36쪽

사랑은 언제나 이성의 상실, 자포자기, 그로 인한 미성숙함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잘 해야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되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세계 정치사의 대재앙이 되는 것이다. -38쪽

나 살아있는 그 존재를 찬양하리,
불꽃같은 죽음을 동경하는 그런 존재를.

사랑의 밤들의 서늘함 속에서,
당신의 증인이었고, 이제 당신 자신이 증인이 된 그 속에서,
촛불이 고요히 타오를 때,
낯선 느낌이 당신을 사로잡네.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어둠 속 그늘에 싸여 있지 않네,
새로운 욕망이 당신을 사로잡네,
더 높은 곳에서의 성교라는 욕망이.

그곳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당신은 두렵지 않네,
당신은 황홀경에 빠져 훨훨 날아오르네,
그리고 빛을 열망하는 당신,
이제 당신은 드디어 나비로 불타오르네.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네,
그렇다 : 죽으면 그리 되리라!
이 어두운 지상에서는
당신은 단지 우울한 손님일뿐.

괴테 <행복한 동경> -56-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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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작품이고 세상이 된 책이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라는 제목을 단 출판사는 정말 탁월한 선택을 했다. 어쩜 이렇게 이 책을 압축적으로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제목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동시에 책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 그 자체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 책 안과 밖에 모든 세상이 담겨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듯이 사람은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의 빛 깊은 곳에서 나는 보았노라. 우주에 흩어진 모든 것이 사랑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것을"

  이 책에 딱딱하게 곧이곧대로 부제를 붙이자면 '책의 역사'가 가장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제 1장의 책 만들기 에서부터 시작해서, 책값과 책수집가들, 책도둑을 살피고, 3장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의 변천사를 다룬다. 4장에서는 책에 그림을 그린 채식사들의 작업과 그 예술의 결정체들을 보여주며 마무리 한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손쉽게 책을 구경하고, 약간의 돈만 지불하면 쉽게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그때 그시절에는 책이 매우 귀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이고, 돈 많은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고가의 보물이었다. 종이가 아닌 양피지와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책들은, 성서의 경우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양 200마리를 죽여야 한다고도 했다. 아 이런 불쌍한 양들. 양만 죽느냐. 아니다. 소가죽도 쓰인단다. 또 책장을 만들기 위해 양과 소를 죽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쓸 필기구가 필요했다. 펜이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에, 가장 고급스럽게 사용되었던 것이, 거위의 깃털이라고 했지. 거위의 깃털 중에서도 네번째 깃털이 가장 부드럽게 쓰여졌나보다. 그러니 종이에 필기구에 벌써 동물들의 희생과 거금의 돈이 따른다. 여기에 오늘날처럼 글자만 쓰여져있는 책이 아닌, 책에 삽화를 넣고, 그림을 그리고, 꾸미는 작업을 하는데에 또 대단한 노력이 들어간다. 그런 작업을 하는 이들을 채식사라 불렀는데, 이 책 안에 소개된 그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떡 벌어진다. 정말. 책에 들어간 삽화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박물관에 걸려있어야 할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도 같다. 그러니 책이 비싸고, 귀할 수 밖에 없다. 아무나 책을 소유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자신만이 소유하는 책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길 바랬고, 하나뿐인 책을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중세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 의해 책이 만들어졌으나, 이후 도서관과 학교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필경사라는 직업과, 채식사라는 직업이 따로 생겨났다. 책이 있음에도 공부를 하지 않는 지금의 우리들은 너무나 행복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비싼 책값과 그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고. 책이 귀했기에 또 책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는데, 마치 오늘날 고가의 노트북이나 피엠피를 훔치는 도둑들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13세기의 한 성서에는 이런 경고문구까지 적혀있었다.  

"이 책은 파리 생빅토르의 소유이다. 이 책을 훔치거나 이 경고문을 숨기거나 지우는 자는 천벌을 받을지어다. 아멘. 이 장서는 프랑스 왕비이며 성왕 루이의 모후였던 블랑슈가 파리 생빅토르 교회에 기증한 것이다."

 "이 책을 훔치는 자는 교수형을 당할지어다"  

  아니 어떻게 교회에서 이런 문구를 사용할 수가 있는가. 사람들의 행복을 기도해야 할 교회에서,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실천해야 할 교회에서 어찌 이런 문구가 사용될 수 있단 말인가. 하기야 오늘날의 일부 교파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눈감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책을 훔치면 천벌을 받고, 교수형을 당할 것이라니. 아 정말 무섭다. 책 하나 훔쳤다가 지옥가게 생겼다. 얼마나 책이 귀했고, 책 도둑이 극성을 부렸으면 저런 문구가 붙여있었을까 싶다.  

  고대와 중세를 거슬러 올라오는 책의 역사는, 한마디로 문명의 역사이고, 세상의 역사이다. 책 안에는 모든 세상이 담겨있다. 그 안에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있고, 왕과 왕비가 있고, 음악이 있고, 건축이 있다. 책은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그림과 음악과 건축 등등의 예술,문화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책 안에는 모든 역사와 세상이 담겨있었다. 

  "어떤 이들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더 큰 책이 있으니 창조된 세계 자체가 그것이다. 사방 위아래를 둘러보고 눈 여겨 보라. 그대가 발견하고자 하는 신은 먹물로 글씨를 쓰는 대신 지으신 만물을 그대 눈 앞에 두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원죄 이후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 세상이라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신이 인간에게 그 뜻을 계시한 책 곧 성서를 주셨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상은 신의 손가락으로 씌어진 한 권의 책과도 같다. ... 그러나 까막눈이는 책을 펼치고 글자를 들여다보아도 읽지 못하듯이, 어리석은 자연의 인간은 성령에 속한 것을 알지 못한다..."(위그 드 빅토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 책 한권을 소장함으로써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그 귀했던 책들 못지 않게 이 책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종이 위에 책의 역사를 서술하고, 선명하고 눈에 부신 아름다운 그림들을 담아낸 하나의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고, 이 한 권은 세상을 담고 있다. 책 수집가들은, 애서가들은, 결코 이 책을 지나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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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3-2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엄청난 지름질 리뷰로 임명합니다ㅠㅠ
그냥 순순히 꾸욱.

마늘빵 2006-03-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책은 절대 안사고는 못배기는 책이에요. 고대와 중세의 책에 관한 모든 역사와 뒷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책을 논하는 책 답게 종이도 최상급입니다. 삽화의 질도 최고최고.

반딧불,, 2006-03-2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댓글로 지름질. 아프락사스님 나뽀요.

마늘빵 2006-03-2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비로그인 2006-03-2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디북에서 읽었는데요.역자해설도 친절하고, 번역도 잘되었고 갖고싶은책이죠. <독서의 역사>의 오역을 생각하면.. 요시미 순야의 <소리의 자본주의>와 함께 읽으면 연결점이 있어요.책을 낭독하다가 묵독 했는데 현대에는 라디오를 통해서 생각이 전달되는 시대의 변화!!!

하이드 2006-03-2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봤을때는 재미없어보이던데 =3=3=3

마늘빵 2006-03-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하이드님 책의 역사를 멋드러진 삽화와 함께 살펴보는 재미라고나 할까요.

드팀전 2006-03-2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탱스 투.... 기록한번 세워보삼.

마늘빵 2006-03-2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드팀전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06-03-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중세시대 교회가 좀 무섭긴 하죠? 저런 글을 써놓다니...그만큼 교회가 책을 중하게 다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비싼 시절이었고...교회 권위라는 것도 있고...하지만 기독교가 책의 발전에 이바지 했던 점도 있지요? 특정 종교 옹호하는 것처럼 들려 조심스럽긴 합니다요.
요즘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인류발전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그런 거 생각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요.^^

마늘빵 2006-03-2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텔라님 네 이 책에서도 기독교가 책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어요. 필사라는 것도 다 수도원에서 시작한 것이니까요.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구판절판


"그의 빛 깊은 곳에서 나는 보았노라.
우주에 흩어진 모든 것이
사랑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것을"
-단테의 <신곡> '천국편' 中--5쪽

호화로운 수서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피지를 자주색이나 검정색으로 물들여 금색이나 은색으로 글씨를 쓰기도 했다. 가죽은 파피루스나 종이보다 더 견고하고 불에도 잘 타지 않는다. 장정을 하는 데 다시 쓸 수도 있고, 이미 쓴 글씨를 긁어내고 새 글씨를 쓸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덧쓴 수서본을 '팔랭프세스트'라 한다. -18쪽

"이 책은 파리 생빅토르의 소유이다. 이 책을 훔치거나 이 경고문을 숨기거나 지우는 자는 천벌을 받을지어다. 아멘. 이 장서는 프랑스 왕비이며 성왕 루이의 모후였던 블랑슈가 파리 생빅토르 교회에 기증한 것이다." (밑줄그은 이 주 : 13세기 어느 성서에 쓰여진 말)

"이 책을 훔치는 자는 교수형을 당할지어다" -90쪽

책 한권을 소유하거나 빌리는 것, 손에 책을 드는 것, 읽어나가면서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 우리 시대에는 대수롭지 않은 이 모든 동작들이 중세에는 극히 드물고 엄숙하기까지 한, 학문이나 재산을 많이 가진 특권층에 국한된 것이었다. 기독교는 책이라는 물건을 거의 신성한 위치에 두어 '책의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독서란 비록 소수에게 국한되기는 했지만 긍정적인 함의를 지니는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93쪽

"어떤 이들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더 큰 책이 있으니 창조된 세계 자체가 그것이다. 사방 위아래를 둘러보고 눈 여겨 보라. 그대가 발견하고자 하는 신은 먹물로 글씨를 쓰는 대신 지으신 만물을 그대 눈 앞에 두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214쪽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원죄 이후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 세상이라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신이 인간에게 그 뜻을 계시한 책 곧 성서를 주셨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상은 신의 손가락으로 씌어진 한 권의 책과도 같다. ... 그러나 까막눈이는 책을 펼치고 글자를 들여다보아도 읽지 못하듯이, 어리석은 자연의 인간은 성령에 속한 것을 알지 못한다..."(위그 드 빅토르)

"인간이 원죄로 타락하면서... 자연이라는 책은 파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책의 뜻을 밝히기 위해 또 다른 책이 필요해졌으니, 그것이 바로 성서이다."(보나벤투라)-214-215쪽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들과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대인들보다 더 많은 것을 더 멀리까지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높직한 어깨 위에 올라앉은 덕분이다."(베르나르 드 샤르트르)-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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