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피천득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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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는 월간 <샘터>의 400호 발간기념으로 <샘터>를 통해 글을 쓰고 계신, <인연>이라는 수필집으로 유명한 금아 피천득 선생과 샘터사 고문인 우암 김재순, 그리고 굳이 법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법정스님, 그리고 소설 <상도>로 유명세를 치룬 작가 최인호 선생의 대담을 채록한 책이다.
 
 네 분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고, 피천득 선생과 김재순 선생이 만나 각각 90대와 80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삶을 살아온 이들의 삶의 경륜을 담아낸 1부와 70대인 법정스님과 60대인 최인호 선생이 만나 종교, 죽음, 사랑, 가족, 행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우연찮게 90대에서 60대까지 고르게 분포되었는데 이들의 삶에 녹아든 생각과 경험이 어우러져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내고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때로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대담을 통해 또다른 사유로 연장해가는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대체로 묵직하고 깊이있는 주제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것이 어쩌면 또 '대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루어졌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책도 두껍지 않아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틈틈히 읽기 좋다. 나 역시 지하철을 오가며 어느새 한권을 다 읽어 버렸다. 가볍게 일독을 권한다. 

 읽다 인상적인 구절을 여기 발췌해본다.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늘 있습니다. 내가 직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법정 스님)

 "사랑이라는 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저 아이가 좋아할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겁니다."(법정 스님)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말에서 습관이 나오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을 이룬다."(법정 스님)

 "참된 지식이란 깨어있음인 것 같아요. 지성인이 지식인과 가장 다른 점은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깨어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최인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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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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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만한 책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나를 비롯한 독서애호가들은 일간지 책소개란이나 인터넷서점 메일을 통한 정보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또한 한국일보에서 금요일마다 싣는 책소개란을 통해 접하게 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매우 싸다. 3.300원으로 요즘 대부분의 책값이 만원에 육박하는 시점에 3천원 남짓하는 책이 나왔다는 것은 책을 구입하는데 있어서도 부담감이 덜하다. 알고보니 살림출판사에서 나오는 '살림지식총서' 중 한권이었다. 책 자체가 얇고 크기도 작아서 주머니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다.

 저자 강성민은 교수신문의 기자이다. 그 자신이 교수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 사이에서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내어 얇은 책으로 낸 것인데, 머리말에서 저자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여기에 등장하는 주제들은 이미 지금껏 무수하게 다루워왔던, 사실상 '금기'에 속하지는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또 다루기 어려운 주제, 다루기 예민한 주제라는 점에서 금기라면 금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스승비판, 전공불가침의 법칙, 논문형식의 실험, 이성의 세계에서 추방된 주제들, 생존인물에 대한 탐구,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 김우창 혹은 학제성, 참을 수 없는 생태의 비생태성, 문화비평에 '문화'와 '비평'이 없다,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 근대성 콤플렉스의 장으로 나누어져있으며,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학계의 관행과 불가침의 법칙을 비롯해 상식을 깨는 글들이다. 물론 이 '상식을 깨는 것'또한 강성민 기자 뿐 아니라 그 이전에 다른 이들이 시도한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각각의 글들이 실명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생생하다. 지식인 논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들을 좋아할 듯 하다. 대단한 뭔가를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비판들을 한데 모아 지금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비판들이 그저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이 글을 읽는 학계의 주인공들에게 이성적, 심정적 영향을 끼쳐 학계의 변화를 가져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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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를 다녀왔다. 종로에 위치한 피카디리 극장 개관기념 시사회였나보다. 26일에 개관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다시 극장이 열었음을 알리기 위한 시사회여서 그런지 같은 영화를 두고도 여러 상영관에서 동시에 시사회를 가졌다. 한국 영화관의 오랜 역사인 서울극장과 피카디리, 그리고 단성사. 이제 피카디리가 개관했고, 단성사 또한 맞은 편에서 공사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서울극장으로 편중되던 종로의 영화관객들이 세 곳으로 분류되면 한층 복잡스러움이 가실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 <노트북>은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다른 어느 로맨스보다도 깊은 여운과 잔향을 일으키는 영화였다. <병 속에 담긴 편지>와 <워크 투 리멤버>를 영화화 한 원작 소설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또다른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또 이 영화는 작가 스파크스의 장인의 실제 러브스토리라고 하여 더욱 감동을 배가해준다. 스파크스가 장인의 러브스토리를 듣고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니 그에게도 이 작품은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17살 여름 어느 한 시골마을에 놀러온 도시 소녀와 목공 일을 하는 시골 청년과의 뜨거운 사랑. 그리고 7년간의 헤어짐. 재회. 그리고 사랑. 그 사랑이 맺어졌고, 두 노인이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힘겨운 사랑이었고, 힘겹게 맺어진 사랑이었던 만큼 이들의 사랑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절실하다. 마치 17살 처음으로 두 젊은이가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말이다.

 7년간의 공백동안, 두 사람에게는 각기 연인이 있었다. 노아에게도 마을의 전쟁미망인이 있었고, 엘리에게도 돈많고 근사한 마음착한 청년 론이 있었다. 어쩌면 이들 두 사람은 노아와 엘리의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또다른 아픔의 주인공들이다. 엘리는 노아를 다시 만나기전까지 론을 무척이나 사랑했으니 론에겐 이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노아에겐 언제나 미망인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녀의 눈에서 엘리를 찾았지만 말이다.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중간중간 간혹 두 사람의 서투른 행동과 엉뚱함 때문에 즐겁기도 했던 영화였다. 다시 보고픈 영화.

 P.S.
 뒷 좌석에는 어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혼자 오셔서 영화를 봤는데, 아니 시사회를 어떻게 신청하고 오셨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고, 그리고 왜 또 혼자오셨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영화 내내 "아 참 감동적인 영화야" "사랑은 저렇게 하는거야" "나도 17살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지선엄마랑 함께 와서 봐야지" 등등의 영화해설(?)을 하는 바람에 영화에 감정몰입하기 힘들었지만 재밌기도 했다. 할아버지~ 늦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이쁜 사랑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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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효과. 고등학교 때 <카오스>란 책을 보다 알게된 이론이다.

 "중국 상해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미국 뉴욕에서 태풍이 일어난다."

 카오스 이론은 98년 당시 수능문제지에 자주 등장하던 지문이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아련한 먼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고...

 영화 <나비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정말 대단한 영화였다. 물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어떤 이들은 뭐 이런 영화가 있냐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극찬을 한다. 나는 극찬을 하는 입장이다. 놀라운 소재를 대중적으로 잘 풀어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아리송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슬슬 감을 잡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이 '나비효과'인 것은, 주인공의 끊어진 기억이 6년후 10년후의 주인공과 친구들의 미래를 뒤바꿔놓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은 일이 큰 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쓰인 듯 하다.

 영화 속에서 켈리를 사랑하는 에반은 자신의 여러 기억의 통로를 통해 이동한 미래의 현실이 자신에게 혹은 켈리에게 너무나 암울한 것을 발견하고 다시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미래를 뒤바꾼다. 켈리는 때로는 에반과 사랑하는 대학생으로 나오고, 때로는 창녀로, 때로는 고향 음식접의 서빙녀로 등장하며 다양한 인생살이를 보여준다. 결국 에반은 켈리와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온전한 삶을 위하여 켈리와 자신이 모르던 사이가 되는 길을 택하고 만다. 비록 사랑하는 켈리와 헤어지더라고 말이다.

 극장판에서는 에반이 켈리와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감독판에서는 에반이 어머니 뱃속 태아로 돌아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전자가 좀더 로맨스적이고, 자연스럽다면, 후자는 스릴러적이다. 감독판은 후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 디비디로 감상하고, 전자의 줄거리가 좀더 대중적 인기를 끌기에는 적합한 듯 하다.

 오랫만에 대단한 영화를 본 느낌이다. 영화 팜플렛에 나온대로 이 영화는 <메멘토>와 <매트릭스>를 섞어놓은 듯한 대작이다. <메멘토>의 단점은 영화를 여러번 봐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지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나비효과>는 영화가 의도하는 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좀더 대중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비효과>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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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4-11-2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게 감독판인 모양이네요 감독판이 훨씬 나을 것 같은데요? 뱃속에서 죽은 걸로 끝나야 점성술사가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게 맞죠^^
 
칸트 평전 - 한 꼬마가 세계적 현자가 되기까지 미다스 휴먼북스 10
만프레트 가이어 지음, 김광명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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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칸트의 사후 2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적으로 동시 출간되는 로볼트 출판사의 <칸트 평전> 한국어판인 이 책은 칸트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라고는 하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의 촘스키 언어학을 공부한 철학자이며, 역자는 나의 학과 선생님이신 김광명 선생님이다. 김광명 선생님은 서울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칸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우리학교에서 칸트를 가르치시고 있다. 그래서 더욱 눈이 가는 책이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중에도 칸트의 생활상의 에피소드를 가끔씩 말씀해주시곤 한다. 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칸트평전>을 읽어봤다.

 일단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어렵다다. 나는 석사과정생이 아니라 칸트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 그래도 서양철학에 더 관심을 가지고 4년을 보냈음에도 칸트는 잘 알지 못한다. '칸트연구'라는 수업을 들었음에도, 칸트는 헤겔과 더불어 알기 어려운 철학자 중 하나이다. 오히려 헤겔보다 칸트는 더 어려워 보인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정말이지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전기이지만 칸트의 생활상보다는 그의 학문적 줄거리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탓에 칸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렵고 지루하다. 지나치게 칸트의 학문적 업적이나 다른 철학자들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후반부에 칸트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나오기는 한다.

 칸트의 일생은 생의 말미에 좀 풀리기는 했지만, 그가 교수직을 얻기까지는 너무도 암울했다. 그는 교수직에 여러번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계속해서 방 두개짜리 조그마한 집에서 세를 얻어살며 생을 근근히 이어가야했다. 칸트는 3살과 22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고, 홀로 생활해야했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자 학비를 벌기 위해 개인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그의 생활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물론 나중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형이상학 논리학 교수직을 얻은 뒤로는 대체로 경제적으로도 여유있는 생활을 했고, 말미에 가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려운 책인 <순수이성비판>을 우여곡절 끝내 출판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시간이 지난후에 정당한 평가를 받았지만 말이다.

 칸트의 고독한 생활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칸트는 누이와도 25년간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결혼을 해서 부인과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교적인 생활을 좋아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길 즐겼다.

 칸트의 결혼에 대한 에피소드를 번역자인 김광명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는데, 이 책에는 그 재미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칸트는 사귀던 여자에게 청혼을 받았는데 그는 이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도서관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나왔더니 이미 여자는 결혼한 뒤였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칸트의 철학의 성격과 그의 생활상의 성격이 들어맞는 절묘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체계적이고 이성에 의한 명석판명함을 좋아했던 그는 시간 약속에 있어서도 철저했다고 한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독서를 자고 자고 일어나는 시간들이 매사에 정확했다고 한다.

 서양철학에 있어서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다, 라고 말한 화이트헤드의 말도 있지만, 같은 의미에서 칸트의 이후의 철학은 모두 칸트의 주석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적 단편>이라는 책에서, 리오따르는 <차이>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칸트의 윤리학적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어쩌면 칸트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철학함에 있어 플라톤만큼이나 칸트를 알아야하는지도 모른다.
 
p.s. 나는 대체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탓에 어느 한 친구로부터 "니가 칸트냐?"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럴때마다 난 웃곤한다. 내가 아무리 규칙적이라 할지라도 칸트를 따라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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