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에 대한 단상 #1
먹을만치 나이 먹었지만 난 사랑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말 할 자신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마다 자신의 인생에서 몇 차례의 이성을 만나고, 좋아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물론 몇 차례가 아닌 단 한차례 일수도 있고, 수십차례일수도 있다.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고 좋아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미 과거가 된 그들을 두고서,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사랑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난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누구를 '사랑했던 여자'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누구를 '좋아했던 여자'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누구를 '그냥 잠시 만난 여자'의 카테고리로 분류해야할까. 물론 이 세 카테고리는 후배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선배로서, 그냥 아는 여자로서 만난 친분이 있는 여성들을 제외하고, 적어도 호감을 가지고 만났던 이들에게만 해당될터. 잠시 만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짧게 헤어진 이들도 있고, 호감만 가지고 있고 말도 제대로 못붙여보고 마음에서만 떠나 보낸 사람도 있고, 아주 오랜 기간 좋아하다가 사귄 사람도 있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이 사람이다 싶을 정도로, 내 안에 이런 열정이 있구나 느낄 정도로 만났던 사람도 있고, 혼자 좋아하다 보낸 사람도 있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유형의 만남을 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를 좋아함의 카테고리로, 사랑함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것인가. 부질 없는 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난 지금껏 두 사람을 사랑했었다, 단 한 사람만을 사랑했었다, 내 인생에서 사랑은 아직 없었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 역시도 두 사람을 '사랑'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었지만 그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물음이 곧 다가왔다. 내게 두번의 사랑이 왔었다. 그래서 뭐. 난 정말 몰라서 묻는거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사랑에 대한 단상 #2
어쩜 난 사랑을 해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걸. 어쩜 난 사랑이라는 걸 애초 할 수 없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난 나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한다. 니 까짓게 뭐가 그리 대단한데? 뭐가 그리 중요한데? 어떤 이들은 사랑하면 내가 아닌 그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단 한차례도 난 그런적 없다. 그 어떤 순간에조차도 난 내가 우선이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그게 솔직한 거니깐. 내 목숨을 바쳐 그녀를 사랑한다? 난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 머리 속 이성의 작동방식에 따르면 난 절대 그러지 못한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다. 난 그런 짓 못한다. 만약 정말 그게 사랑이라면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로는 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다. 사랑이 도대체 뭘까. 어떨때 두 사람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야하는거지.
누군가를 사귀고 있는 동안에, 좋아한다, 사랑한다 라는 말 한다. 그렇게 자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기는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내뱉고 있는 동안에도 정말 이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내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랑이 뭔지 모르니깐. 뭘까? 그게.
* 사랑에 대한 단상 #3
만남은 주변인들로부터 축복받지만 헤어짐은 외면당한다. 그리고 주변인들이 두 사람을 배려하는 것으로 그게 가장 최선의 방책이다. 왜 헤어졌니? 어쩌다 그리됐어? 아이구 이런 썩을 놈의 자식. 불쌍해라. 등등의 감정 표현들은 오히려 두 사람의 감정정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유야 어쨌든 이미 헤어진 각각의 그들에게 주변인들의 당사자를 대신하는 듯한 질책 혹은 동정, 이유탐색 등은 방해가 될 뿐이다. 침묵함으로써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더 나은 주변인의 자세. 만남에 이유가 없듯, 좋아함에 이유가 없듯, 사랑함에 이유가 없듯, 헤어짐에 이유가 없다. 이유랍시고 대는 것들은 이미 엎지러진 상황에 대해 자기 스스로 이해-이건 머리로 하는거다- 하기 위해 갖다붙이는 한낮 근거들에 불과하지 않다. 만남과 사랑, 이별 그것은 두 사람만의 문제이고,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