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영화판. 책과 영화를 모두 읽고 본 주변인들에 따르면 -나를 포함하여 - 모두가 일제히 책보다 영화를 외친다. 원작 소설을 쓴 로렌 와이스버거는 좀 서운해하겠지만.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둘다 즐길 수 있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으면 재미 하나도 없다. 나도 1권만 봤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기 이전에 이미 번역되어 출판사와 번역자는 이미 한 몫 잡았을 것이다.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더더욱 팔려 나갔을 것이고, 나중에 입소문에 따라 책보다는 영화더라 이런 말이 퍼지면서 주춤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



  원작 소설은 저자 로렌 와이스버거의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77년생으로 나보다 기껏해야 두 살 밖에 많지 않은 아직 젊디 젊은 이 여자는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99년말부터 '보그'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고 한다. 패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학문을 전공하고, 유명패션지의 편집장 어시스턴트라니. 그녀의 짧은 이색 경력이 두뇌를 자극했나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이 책을 읽고, 또 영화를 본 영화 속 메릴 스트립의 실제 모델인 안나 윈투어는 과연 이 작품을 접하고 어땠을까. 영화 속의 메릴 스트립이라면 마치 관심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웃고 있을테지.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시골뜨기 촌녀의 신데렐라 되기로 볼 수도 있고, 또 샤넬, 돌체, 아르마니 등등의 명품들을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 눈요기로 만족할 수도 있다. 일종의 패션쇼. 이 영화 개봉 이후 아마도 영화에 등장했던 각종 옷과 신발, 가방의 명품회사들은 간접광고의 효과를 톡톡히 봤을게다. 어떤 쇼핑몰에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했던 옷가지들을 캡쳐사진으로 편집해 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리다 보니 이에 대해 해설해주고 쇼핑몰 홍보도 하고 아이디어 잘 짰지.



 

 

 

 

 

 

 

 



* 야 이 아줌마 카리스마봐라. 그냥 저러고 가만히만 있어도 광채가 난다. 오른쪽엔 촌녀에서 쌈빡녀로 변신한 앤 해서웨이. 이쁘다. 옷의 힘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사람들의 패션을 비롯한 외양새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이다. 사람들이 가꾸기에 관심이 있는 만큼 패션을 다룬 이 영화를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온갖 명품들을 다 선보인다. 영화는 온통 간접광고의 장이다. 간접광고라고 하기도 뭣하게 아예 대놓고 보여준다. 이건 프라다, 저건 돌체, 저건 샤넬 등등 명품 이름을 몰라서 쓰지도 못하겠다. 보여줘도 뭔지 잘 모르는게 내 솔직한 고백이지만 보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는 말 못한다. 솔직히 남자 건 별로 나오지도 않는데 왜 이리 눈이 즐거울고. 외양 꾸미기에 관심있고, 패션에 민감한 여성들이 보기에 딱 인 영화. 영화비 8,000원이 아깝지 않을테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엔 여성패션지 몇개를 쭉 훑어본 것과 같을테니깐.

   p.s. 앤 해서웨이와 메릴 스트립의 연기도 매우 볼만했다. 단 젊고 아리따운 해서웨이의 연기가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에 눌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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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아이 2006-11-1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욕'을 배경으로 한 패션 영화니깐 사람들이 보는 거겠죠?
딴나라 패션 영화라면 볼 생각도 안 할 거 같아요...저만의 생각일까요? ^^;;

비로그인 2006-11-1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흰 코트! 영화 내도록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옷이었어요! 하지만 저런 네크라인은 아무나 쉬이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서 마음만 꼴깍.

마늘빵 2006-11-1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 ^^ 네. 그야 말할 것도 없죠. 뉴욕이니깐 가능하죠. 일본패션, 독일패션 이럼 안보죠. -_-
쥬드님 / 아 저도 옷 바뀔 때마다 눈이 샤샤샥 돌아가요. 정말 이쁘더라구요. 남자옷 패션영화 이런건 없나. 저 이 영화보면서 막 꾸미고 싶어졌어요. 그러나 영화 끝나구 지름신 막 내리려할 때 통장잔고를 확인하고는 눈 깔았습니다.

비연 2006-11-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릴 스트립은 정말 명배우다 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배우더군요.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그런 카리스마를 내뿜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늘바람 2006-11-1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저는 둘다 아직 안 보아서요

비로그인 2006-11-1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선택을 잘하셨네요!! ㅎㅎ 앤 해서웨이는 꼭 마네킹같아요~ 참 예뻐요..ㅠㅜ

이리스 2006-11-1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책이 훨씬 더 재미있었는데. 영화는 지루해서 보다가 졸았음. 옷나올때만 빼고.

마늘빵 2006-11-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래? 난 책 영 밍숭맹숭하던데.

이리스 2006-11-1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면서 말 그대로 '포복절도' 했었음. 그러면서 머리로 그려놨던 영상이 실제 영화에서 보니 기대치에 훨씬 못미쳐서 그랬던 듯. 너무 쉽게 인정 받는 듯이 보이는 것도 별로였고 볶이는 과정이 축소된데다가 남자 친구와의 갈등 과정, 친한 친구와의 관계도 다 축소되어 버리고 앤틱 제품 찾아 헤매는 모습도 없었고 실제 일에 대한 내용이 반 정도로 잘라지니 재미가 반감되었나봐. 메릴 스트립에게 박수를 쳐줄만큼 연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봐도 '0' 사이즈의 몸매는 아니라서 낭패. (헐리웃에서 과연 저 나이대에 '0' 사이즈을 입을 수 있는 배우를 찾기는 힘들었을거라 생각하지만.)

마늘빵 2006-11-1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난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가 -_- 메릴스트립의 카리스마와 이쁘게 잘 늙은 외모도 좋았구, 앤 해서웨이의 촌녀에서 명품녀의 변신도 볼만했지. 누가 나 저렇게 안꾸며주나. 한번 받아보고 싶다 뭐 이런거. -_-

해적오리 2006-11-18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싶은데..에공 .. 요즘 시간이 별루 안나네요...
 

  * 계획된유치뽕짝영화감상기

  이것이 진짜액션이다. 한국액션영화란 이런 것이다. 뭐 기타 등등의 영화 홍보 문구들. 내가 세뇌당한건지 아니면 정말 영화가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오 의외로 괜찮다. 딱 시작과 동시에 눈 떼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된다. 눈을 뗄 새가 없다. 시종일관 치고박고 싸우는 장면 일색이고, 줄거리도 매우 단순하지만, 정두홍과 류승완의 액션 연기를 보다보면 시간 다 간다. 한국액션영화의 틀을 마련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단순 액션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영화 괜찮게 봤다면 괜찮은게 아닐까?

  그나저나 포스터 잘 만들었다. 흑백으로 된 잘 그려진 만화책의 한 장면을 떼어다 만든 것같은 색다른 포스터. 그치. 일종의 만화지. 액션만화. 조폭들 등장하고 정의의 사도 등장하고 치고 박고 싸우고 그러다 아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뭐 이런 만화. 이 영화 정말 만화같다. 두 영웅이 등장하고, 강호를 휘어잡는다. 짧은 세라복 조폭녀 한 무리가 골목을 막고, 한 무리의 야구빠따 든 녀석들이 한 골목을 막고, 또 한 무리의 엑스피드 동호회(?) 녀석들 막고 있고, 아 정말 유치했다. 만화의 한 장면이다. 수십명이 되는 이 무리들을 단 둘이서 막으며 절대 지지 않는다. 또 마지막 장면을 향해 가는 그 과정은 또 어떤고. 카지노를 들어서고 식칼 든 요리사들과 한판 뜨고, 일본도(?)든 녀석들 주루룩 앉아있고, 얘네 꺾고 들어가면 더 센놈들이 기다린다. 완전 오락실 스트리트파이터. 철권.

 

  하지만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눈이 즐겁다. 아주 난폭하고 잔인하지도 않으면서 - 그래도 조금 잔인한지라 18세 이상 관람가 - 자로 잰 듯한 정두홍과 류승완의 액숀환타지. 정두홍이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대표적 액숀감독이니 이해가 되지만서도, 류승완은 언제 그렇게 다 배웠대. 원래 액숀스쿨 출신 아냐? 감독도 하고 액숀도 하고. 그런데 영화를 잘 보고 있으면 눈치 챌 수 있다. 고난이도의 액션은 정두홍이 소화한다. 열나게 맞다가 꼬꾸라지는 장면이나 완전 중국무협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무술은 정두홍이 맞고, 류승완은 옆에서 보조해준다. 그래도 멋져 멋져. 쵝오쵝오.

  아 안길상인가 하는 그 분. 검색해봤더니 나이는 많던데 정말 카리스마있다. 주연은 정두홍과 류승완이었지만 이 아저씨도 멋있었음. 그리고 그리고 이범수 따라다니는 네 무리 중에 한 여자. 정말 이쁘다. 싸움도 잘 하던데. 와 정두홍 액션스쿨에서 데려온 사람인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두홍 스쿨 소속이라고 들은거 같은데. 끝내 엔딩 크레딧에도 이 여자분 이름이 안나온다. 궁금궁금.



* 여기여기 이범수 바로 뒤에 있는 여자분. 자꾸 시선이 간다. 액숀연기로 봐서는 정말 무술유단자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받고 짜증날 때, 당분간 잊고 싶어, 하는 기분일 때 보면 딱 좋은 영화. 야한 장면도 없고, 이쁜 여자 배우도 안나오지만, 그래도 눈이 즐거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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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액션도 액션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범수의 연기가 돋보이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충청도 사투리로 느릿느릿 사람 약올리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부아가 나죠. 류승완의 연출력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기뻤어요. 하지만, 최근에 개봉한 '잘 살아보세'는 예고편만 봐도 질리더군요. 어쩜 '짝패'에서의 그 말투를 그대로 가져왔는지... 한숨만 푹푹 쉬었어요.

마늘빵 2006-11-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맞아요. 이범수 연기 짱이었어요. 이범수가 주인공 같아요. 주연은 맞죠. 나쁜놈이라 그렇지. 번드르르 기름 좔좔 흐르는 느끼한 눈빛에 올백 머리하고 하하. 이범수는 이런 연기가 잘 어울려요. 이미지가 안좋아져서 개인적으로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지식의 성장 살림지식총서 72
이한구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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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 또 이 책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일상용어로 최대한 쉽게 풀어쓰려고 했다. 지식의 성장을 논의하면서 끝까지 견지한 나의 입장은 이것이다. - 지식의 성장은 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들을 우리는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앎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해주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이성은 언제나 틀릴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에 빠져서는 안된다" 라고.

  저자는 이 얇은 책자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지식의 성장의 역사를 간단하게 훑어보며, 지식의 종류와 이에 대한 각각의 의견, 서로에 대한 비판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지식은 크게 두 가지, 대상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으로 나뉘어지며, 대상적 지식이라는 것은 표상적 지식 또는 명제적 지식이다. 이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대상에 대한 상으로 이를 알기 위해서는 대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야한다. 기술적 지식은 대상에 관한 어떤 정보를 갖는 것은 아니며, 규칙이나 규범에 따라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안다고 했을 때, 그 '안다'는 개념은 내가 자동차의 구조원리와 작동원리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는 단지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달릴 수 있다는 것, 그 행위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지식의 종류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 저자는 지금까지의 지식이 성장해온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합리적인 지식의 모형이라 여겨지는 반증주의 인식론은 비판적 합리주의가 강력히 주장하는 이론이며, 이는 우리의 삶과 실천이 비판적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독단적 이성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독단적 이성이 이성의 절대적 확실성을 주장하는 데 반해, 비판적 이성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비판적 합리주의는 객관적 진리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므로 판단을 보류하자 라는 회의주의도 아니며, 진리는 그것을 파악하는 자에 의존하므로 절대적 진리란 없다고 이야기하는 상대주의도 아니다.

  정리하자면, 비판적 합리주의는 독단주의와 회의주의도 아니고, 상대주의도 아니며, "이성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우리가 진리로 점차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주장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거쳐, 20세기 대표적 철학이론인 논리 실증주의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검증가능성의 원리를 제기하며, 모든 의미 진술은 두 가지, 경험적 진술과 동어반복적 진술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험적 진술은 일상생활의 사실적 진술을 포함, 자연과학의 진술을 말하며, 동어반복적 진술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등장하는 개념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이런 지식이론들을 소개하면서도, 흄, 러셀 등의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바들을 소개하고, 객관적 진리를 얻기 위해 치고 받고 논쟁을 거친 지식의 역사를 소개한다. 과학과 비과학, 귀납이론과 연역이론, 반증가능성 등등. 이 책은 철학의 한 분과인 과학철학, 그리고 인식론을 공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알고 넘어가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을 숙지한 뒤에 정식 입문서를 본다면 그 책이 더 쉽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단지 지식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 책 하나로 충분하지 싶다. 차근차근 저자가 소개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다지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p.s. 읽을 때는 다 이해 됐는데 꼭 보고난 뒤에는 기억이 안나는 이것은 뭘까. 읽으며 쉽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별로 없다.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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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아프락사스님 저의 서재에 들러주셨더군요.
고맙습니다.
 
토론은 기싸움이다 - 탁석산의 글쓰기 5 탁석산의 글쓰기 5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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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제 5권 완결판. 1권에서 글쓰기 뭔지조차 몰랐던 멘토를 만난 현민은 4권을 통해 직장에서 보고서 쓰는 법, 프리젠테이션 하는 법을 익히고, 글짱을 거쳐 말짱에 이른다. 토론은 기싸움이다. 현대사회는 글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만큼 대접받는다. 연봉협상에 있어서, 면접에 있어서 머뭇머뭇 말을 못하고, 집단토론에서 조용히 있다 토론이 끝나면 그제서야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연봉협상에 있어서도 말을 못하면 다른 능력이 있어도 제 몸 값을 받지 못한다. 협상은 말에서 이루어진다.

  제 5권 <토론은 기싸움이다>에서 탁석산은 글 뿐 아니라 말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1권에서 멘토에게 글쓰기가 뭐에요, 물었던 현민은 이제 글짱을 넘어서 말짱까지 넘보고 있다. 또한 탁석산은 과감히 소피스트를 자청하며 제자 소피스트를 기르겠노라 말한다. 오늘날은 소피스트의 시대이니 각자 소피스트가 되도록 노력하라.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소피스트들이 많았다. 이들은 다른 말로 궤변론자로 불리기도 하며 진리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에 비해 안좋은 이미지로 찍혔지만, 지금은 현실이 다르다. 진리를 추구하는 소크라테스는 딱 밥 굶기 쉽상이다. 하긴 당시에도 소크라테스는 그리 부유하진 않았던 듯 하다. 소피스트=궤변론자, 심하게 하면 말로 사기치는 녀석들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피스트가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이렇다. 오늘날의 법원이 있고, 판사가 있고, 배심원이 있지만, 얘들은 누가 나를 고소하면 내가 잘못했든 안했든 간에 일단 소송이 걸렸기 때문에 법원에 출두해서 변론을 해야했다. 그런데, 말을 못하는 녀석은 죄를 지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말빨에 놀아나는 판사와 배심원들 때문에 없던 죄가 생겨버린다. 환장할 노릇이지. 그러니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쓰는 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말 잘하는 법을 배워야했고, 소피스트들이 차려놓은 학원은 그러니 장사가 잘 될 밖에 없었다.

  한 일화가 있다. 한 제자가 스승을 고소했는데, 제자는 스승에게 수업료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재판에서 이기면 이겼으니깐 안내도 돼고, 지면 스승이 날 제대로 가르친 것이 아니니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반박했다. 아니지 아니지 너는 재판에서 나한테 지면 졌으니까 수업료를 내야하고, 이겼으면 내가 널 제대로 가르친 것이니 나한테 수업료를 내야지. 과연 누가 재판에서 이겼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누가 날 고소한다고 바로 법원에 출두해 나를 변론할 필요는 없지만, 말을 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대학 면접에서, 또 취업시 집단토론, 면접에서, 여자 꼬실 때, 강의실에서 앞에 나가 발제할 때 말을 못하면 그만큼 손해본다. 글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웅변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다. 아주 어릴 적 웅변학원에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여기서는 말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긴 하지만 논리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우렁한 목소리로 강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하기 이런 거였다. 그것도 말 잘하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부족해. 부족해. 많이 부족해.

  탁석산이 애초 1권에서 이야기했던 논증의 구조는 말하기에도 곧바로 적용된다. 보고서를 쓸 때 논증의 형식으로 1/4만 쓰라고 했던 4권에 이어, 이 책의 말하기에서도 기본은 논증이다. 그 다음이 크게 말하기, 목소리에 색깔 입히기, 퍼포먼스 잘 하기 등등의 주변기술에 대해 가르친다. 탁석산은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잡소리를 많이 한다. 글은 딱 글만 주어져있으니 그것만 보면 되는데, 말은 그렇지 않다. 앞에 나가 말하는 사람, 그리고 토론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와 외모, 옷차림, 행동거지까지 다 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는 순수한 논증만으로는 그칠 수 없다.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탁석산은 이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4장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에서 이를 안내하고 있다.

  이제 다 배웠다면 연습에 연습을 거치고, 또 반복 숙달하여 글짱, 말짱으로 탄생하는 길만 남았다. 그리고 아 이제 됐다 하산하자 생각이 들 때, 나도 한번 탁선생을 고소해볼까? 책 값 내놓으라고. 이기면 이겼으니까 책 값 받고, 지면 제대로 못배웠으니 수업료 돌려받아야지. 근데 소송비가 더 들지 싶다. 안하는게 이득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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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권력관계다 - 탁석산의 글쓰기 4 탁석산의 글쓰기 4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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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시리즈가 완간 되었다. 1,2,3권이 연달아 나온 뒤 한참 뒤에 등장한 책이라 그런지 표지가 많이 바뀌었다. 그냥 보기에는 시리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1,2,3권이 하나, 4,5권 따로로 보인다. 그러나 본래 탁석산이 의도 했던 것은 1권부터 5권까지 한꺼번에 시리즈로 묶는 것이었고,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이라는 시리즈 이름 아래 다섯권이 모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책의 겉모양 보기대로 1,2,3권과 4,5권을 따로 묶어 보아도 상관없을 듯 하다. 1,2,3권은 논증적 글쓰기에 관한 책이고, 4,5권은 토론과 보고서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1,2,3권에서 얻는 내공을 가지고 실전에 적용하는 안내서라고나 할까. 그리 보면 될 듯 하다.

  4권 <보고서는 권력관계다>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보고서 작성부터 시작해 대학생의 레포트와 학위 논문에 이르기까지 '보고서'라 총칭되는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 한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먹으면 탈이나기마련이지만 탁석산은 이 얇은 책자에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담아냈다. 탁석산은 시시콜콜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왠 잡소리가 이렇게 많아, 하고 투덜댈 독자도 있겠지만 잘 읽어보라. 시중에 나와있는 경영/실용서에 분류되는 다른 실용적 글쓰기 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탁석산은 잡다한 소리 다 빼놓고 '보고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논술에 비유하자면 맞춤법, 띄어쓰기, 문단 나누기 이런거 지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논술을 잘 쓸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대해 풀어놓는다고나 할까. 실용적 글쓰기 책을 보고서도 우리가 글을 잘 못쓰는 이유는 핵심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탁석산의 책이 뛰어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치한 어디서 주워온 듯한 사진들 하며, 지들끼리 웃기다고 좋아라하는 만화들 하며 이런 것들은 독자로 하여금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책이 가볍게 보인다고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보고서는 1/4쪽에 담아낼 수 있다고 한다. 대학 레포트든, 직장 보고서든, 학위논문이든 모든 보고서라 총칭되는 것들은 다 1/4쪽안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자신이 쓰려고 하는 보고서의 핵심을 본인이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레포트를 쓰고서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보고 이해 안돼끙끙거린 적이 한번쯤 있을터다. 나도 어제 대학원 발제하면서 그랬다. 발제지는 잘 만들어놓고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끙끙, 내가 쓴 글보고서 왜 뭐지 뭐지 다시 공부하고 이랬다. 1/4쪽 안에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을 담아낼 수 있다면 게임 끝난다. 길게 쓰는 것보다 줄여 쓰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요약을 하려들지 말고, 논증을 구성해라. 그것이 탁석산의 비법이다.

  탁석산은 이미 이전의 글짓는 도서관 시리즈 어떤 글에서 논술 시험에 가기 전에 쪼꼬렛을 먹으라는 등 뭘 책에 담기 뭣한 소리까지도 담아냈다. 이번에도 그는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일부러 틀리라는 등 헛소리(?)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글은 매우 쉽고 유치한 듯 하면서 또 엉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전문적인 글쓰기 책이 담아내야 할 부분까지도 다 다루고 있다. 이게 이게 굉장히 어려운 거다. 레포트를 쓸 때 '나'를 주어로 써라. '자기 글을 써라' 누가 모르나. 그런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까지 하면서 독자를 배려한다. 레포트 한번 안써본 대학 신입생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직장인까지 참고할 수 있는 보고서 작성법의 안내서다.  다른 글쓰기 책처럼 너무 뻔하고 딱딱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보고서를 써야겠는데 머리 끙끙 싸매고 있는 사람, 어떻게 하면 상사가 내 보고서를 맘에 들어할까, 어떻게 하면 내일 강의 발표에서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강력 추천. 요 시리즈의 그의 다른 책들도 모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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