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기싸움이다 - 탁석산의 글쓰기 5 탁석산의 글쓰기 5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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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제 5권 완결판. 1권에서 글쓰기 뭔지조차 몰랐던 멘토를 만난 현민은 4권을 통해 직장에서 보고서 쓰는 법, 프리젠테이션 하는 법을 익히고, 글짱을 거쳐 말짱에 이른다. 토론은 기싸움이다. 현대사회는 글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만큼 대접받는다. 연봉협상에 있어서, 면접에 있어서 머뭇머뭇 말을 못하고, 집단토론에서 조용히 있다 토론이 끝나면 그제서야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연봉협상에 있어서도 말을 못하면 다른 능력이 있어도 제 몸 값을 받지 못한다. 협상은 말에서 이루어진다.

  제 5권 <토론은 기싸움이다>에서 탁석산은 글 뿐 아니라 말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1권에서 멘토에게 글쓰기가 뭐에요, 물었던 현민은 이제 글짱을 넘어서 말짱까지 넘보고 있다. 또한 탁석산은 과감히 소피스트를 자청하며 제자 소피스트를 기르겠노라 말한다. 오늘날은 소피스트의 시대이니 각자 소피스트가 되도록 노력하라.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소피스트들이 많았다. 이들은 다른 말로 궤변론자로 불리기도 하며 진리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에 비해 안좋은 이미지로 찍혔지만, 지금은 현실이 다르다. 진리를 추구하는 소크라테스는 딱 밥 굶기 쉽상이다. 하긴 당시에도 소크라테스는 그리 부유하진 않았던 듯 하다. 소피스트=궤변론자, 심하게 하면 말로 사기치는 녀석들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피스트가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이렇다. 오늘날의 법원이 있고, 판사가 있고, 배심원이 있지만, 얘들은 누가 나를 고소하면 내가 잘못했든 안했든 간에 일단 소송이 걸렸기 때문에 법원에 출두해서 변론을 해야했다. 그런데, 말을 못하는 녀석은 죄를 지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말빨에 놀아나는 판사와 배심원들 때문에 없던 죄가 생겨버린다. 환장할 노릇이지. 그러니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쓰는 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말 잘하는 법을 배워야했고, 소피스트들이 차려놓은 학원은 그러니 장사가 잘 될 밖에 없었다.

  한 일화가 있다. 한 제자가 스승을 고소했는데, 제자는 스승에게 수업료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재판에서 이기면 이겼으니깐 안내도 돼고, 지면 스승이 날 제대로 가르친 것이 아니니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반박했다. 아니지 아니지 너는 재판에서 나한테 지면 졌으니까 수업료를 내야하고, 이겼으면 내가 널 제대로 가르친 것이니 나한테 수업료를 내야지. 과연 누가 재판에서 이겼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누가 날 고소한다고 바로 법원에 출두해 나를 변론할 필요는 없지만, 말을 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대학 면접에서, 또 취업시 집단토론, 면접에서, 여자 꼬실 때, 강의실에서 앞에 나가 발제할 때 말을 못하면 그만큼 손해본다. 글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웅변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다. 아주 어릴 적 웅변학원에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여기서는 말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긴 하지만 논리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우렁한 목소리로 강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하기 이런 거였다. 그것도 말 잘하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부족해. 부족해. 많이 부족해.

  탁석산이 애초 1권에서 이야기했던 논증의 구조는 말하기에도 곧바로 적용된다. 보고서를 쓸 때 논증의 형식으로 1/4만 쓰라고 했던 4권에 이어, 이 책의 말하기에서도 기본은 논증이다. 그 다음이 크게 말하기, 목소리에 색깔 입히기, 퍼포먼스 잘 하기 등등의 주변기술에 대해 가르친다. 탁석산은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잡소리를 많이 한다. 글은 딱 글만 주어져있으니 그것만 보면 되는데, 말은 그렇지 않다. 앞에 나가 말하는 사람, 그리고 토론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와 외모, 옷차림, 행동거지까지 다 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는 순수한 논증만으로는 그칠 수 없다.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탁석산은 이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4장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에서 이를 안내하고 있다.

  이제 다 배웠다면 연습에 연습을 거치고, 또 반복 숙달하여 글짱, 말짱으로 탄생하는 길만 남았다. 그리고 아 이제 됐다 하산하자 생각이 들 때, 나도 한번 탁선생을 고소해볼까? 책 값 내놓으라고. 이기면 이겼으니까 책 값 받고, 지면 제대로 못배웠으니 수업료 돌려받아야지. 근데 소송비가 더 들지 싶다. 안하는게 이득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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