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비80 > 문학의 과거와 문학 연구의 미래

위 책에 대해 짤막한 서평 하나를 올렸는데 의외로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이 많아 내용을 좀 더 갈무리 해둔다. 서평도 좀 더 내용을 보강해 두었다.
또 마침 권보드래 선생이 이 책에 대한 비평문을 써둔 것이 있어(서평 격인데 스무페이지가 넘는다!?)
요약 정리한다. 현재까지 나온 평문중 가장 강위력한 것이긴 하지만 그 일목요연을 살펴보면 황호덕의 책에 대한 경탄이 밑바탕이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목은 <문학의 과거와 문학 연구의 미래>다.
-권보드래, 「문학의 과거와 문학 연구의 미래」, 『사이/間/SAI』창간호,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2006. 11.
Ⅰ. 2006년, 근대문학 연구의 현재
① 황호덕의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소명출판, 2005)은 ‘문학’은 물론이고 ‘문학’의 전사(前史)를 논하는 데 포함되지 않을 다양한 텍스트와 이국종(異國種)인 시각자료,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무수하게 산포되어 있는 박사학위 논문이다.
② ‘문학의 위기’와 ‘인문학의 죽음’ 속에서 한국 문학 연구는 ‘근대성 자체에 대한 성찰’에 집중하며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이 도출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문학 텍스트의 관습적인 경계가 무너지고 있지만 그 경계 너머를 탐사하는 방법이 소극적 실증주의로 수렴되고 있는 것은 문학-인문학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Ⅱ. 1876~95년과 ‘문학’의 가능성
①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은 “개항기에서 갑오경장 직후의 시기”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독특하다. 1876~95년이라는 시기가 1894년부터의 시기를 낳은 선조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에서 소외되어 온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갑오개혁 이전, 조선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가 명백히 천명되기 이전이며 또한 민간단체나 신문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오직 이 시기에 있었던 것은 갑신정변 주도 세력이었던 소수의 개화파들과 관 주도의 몇 가지 근대적 조치뿐이었다. 과연 제도적 틀이 구비되지 않은 이 시기를 한국 근대 형성기로 볼 수 있을 것인가?
② 1894년 이후 한반도에서 근대적 국민국가는 점차 현실화되어 가지만 1876~95년에 그 현실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황호덕은 이 시기를 1894년 이후 전개된 국어 - 국민국가 -민족문학의 현실을 매개하는 ‘지반’이요 ‘가능성’의 형성으로 보고 있다. 이 판단은 김옥균 - 박영효 - 유길준 등의 특정 인물군에 크게 기대고 있는데 김기수와 김홍집의 일본 체험 기록을 제외하면 이 책은 전적으로 갑신정변 주도 세력의 사상과 텍스트를 문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갑신정변 주도 세력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1894년 이후와 직선적 연결을 맺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1876~95년 시기의 내부의 모순과 균열을 보기보다 1894년 이후와 연결될 수 있는 선진적 요소들만을 선택해 보려는 의도적 집중이 눈에 띈다. 갑신정변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가 없다면 이 책의 논리 자체가 구성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동일한 요소라도 배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띠기 마련인데 1876~94년의 문명 - 독립 구상과 1894년 이후의 구상이 동일시 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시간이 개입해 있고 또한 사회 . 정치 . 문화 및 담론 지형의 차이가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③ 1894년을 1876~95년과 구별짓게 하는 것은 신문 독자층의 성장이며 만민공동회 같은 대중 운동의 경험이다. 사대와 독립을 상호배제적 범주로 인식하는 논리는 고립된 개인의 인식으로 머무르는 한 결코 독립 - 문명의 대중적 운동과 동일시될 수 없다. 책 2장의 『일동기유』, 『대청흠사필담』, 『사화기략』은 분열과 갈등 자체를 조명하기보다 직선적 전진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다. 2․3년의 시차로 글쓰기의 ‘진화’를 도식화한 서술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은 근대 문학의 담론 지형을 20년쯤 소급하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재를 낳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다른 과거, 분열 .산포하는 이질적인 목소리를 복원하지 않고 ‘다른 역사’에 대한 관심을 소홀한 것이 아쉽다.
Ⅲ. 화폐 . 문학 . 에크리튀르
①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은 ‘문학’과 ‘화폐’가 가상의 체계이며 국가의 존재를 각인 시키면서 국가 수준에서 유통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질서를 매개한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야 말로 국가-사회라는 주체를 형성하고 그 서사를 만들어낸 동력이라는 것이다. ‘문학’과 ‘화폐’가 하나의 분석 단위가 될 수 있다면 국가와 세계체제 간의 연결되어 있는 악의 연쇄를 끊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② 제 3장에서도 문학-화폐라는 개념은 시안(試案)으로서 제시될 뿐이다. 도로 . 우편 . 신문 등과 함께 ‘교통’이라는 개념으로 묶여 있다. 1876~94년 이 시기에 개화론의 토대가 되었던 것은 ‘문명’이 아니라 ‘교통’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교환체계와 부르주아 공공영역을 동일시하는 발상은 도로 . 우편 . 신문 . 화폐 = 교환의 체계 = 담론의 공공영역 = 평등론의 세계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 구체적 매커니즘은 밝히지 않은 채, 유추와 비약의 상상력에만 지탱하고 있다.
③ 화폐-문학을 제창하면서 황호덕은 근대초기에 ‘계몽’이라는 코드 외에 ‘시장’이라는 코드를 추가하고 있다. 에크리튀르에 대한 관심도 이처럼 물질적 근거를 확인하려는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화폐-문학의 동일성에 대한 강조는 곧 문학의 물질성에 대한 강조였던 셈이다. 문학과 글쓰기라는 추상적 활동에서 시장과 경제의 구체적 현실을 읽어내는 작업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자칫 속류 사회학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경제-제도, 국민국가 역시 허구적이기 때문이다.
Ⅳ. 에크리튀르와 표기의 체계
①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에서 ‘네이션’에 대한 개념은 정확하게 소개되지 않았다. 민족 . 국민 . 국가 같은 번역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이션’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까닭은 이 책의 문제의식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용어를 입장 표명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또 ‘민족국가’와 ‘국민국가’ 사이의 선택이 곤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선택이 자신의 관점을 좀 더 명료하게 해줄 수 있다.
② 제 4.5장에서는 근대 한국어의 에크리튀르 일반이 아니라 표기체계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근대 국어의 표기체계 형성 과정과 국문체와 국한문체의 경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근대 초기 표기 체계의 성립 과정 연구는 이미 상당량 축적되어 있고 황호덕의 책이 그것을 넘어서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1876~95년에 주목하겠다는 애초의 의도가 4.5장에 와서 무색해져 버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논의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진폭이 심한 것도 문제다. 일본의 국어 성립 과정을 중요하게 참조하고 국한문체의 성립 과정에 있어 강위라는 개인의 역할을 길게 논의하고 『독립신문』에서는 국문 논의를 살피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논의 전개는 결국 국한문체의 혼종적 특징을 강조하는 데로 귀결되고 있을 뿐이다. 외부와 상부로부터 받아 쓰인 국한문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순국문체로 점차적 이행을 불가피한 결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국한문체가 국가의 문자로 공식화될 수 있었던 까닭은 국문의 내 . 외부에 대한 구분이 실제적인 것이라기보다 상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며 조선의 인문과 글자, 음성을 강조하면서 한자는 떨쳐야 할 불순물로 인식하며 국문체로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국한문체를 정치 담론’, ‘국문체를 서사 담론’으로 양분하는 시각은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국한문체는 1920년대까지도 서사를 자기 영역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 왔지만 국문체의 압도를 뒤집지 못했을 뿐이다. 서사 양식의 문자가 신성한 문자, 지식의 문자를 대치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 두 영역이 각기 순수한 실체로 존재하진 않았다. 순국문체의 모아쓰기 방식이 한자를 전제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국가 외부의 배제란 언어의 층위에서도 언제나 상상적인 것이며 국한문체에서 순국문체로의 이행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질성과 혼종성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표기체계 자체를 실체화 . 고정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③1876~95년의 각종 구상을 과연 이후의 현실과 일직선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 시기에 각종 ‘교통’ 제도=공공영역의 확장은 실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구상’되었을 뿐이다. 우편제도도 현실화되기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도로 정비나 화폐의 통일 ․ 보급 역시 난항을 겪었다. 관(館)의 도움을 받았던『한성순보』를 그 시기 이후의 신문으로 전진되었다는 것은 지나치게 역사주의적 판단이다. 사후적으로 보장되고 지지된 역사 없이 1876~95년을 탐색하기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은 혼종성을 강조하고 전대의 질서가 균열 . 해체되어 간 지점을 역설하고 미래를 점치기보다 당대의 산포하는 가능성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갑신정변 역시 근대의 여러 갈래와 노선 중의 하나였으며 그들 사이에서도 분열과 갈등이 없었을 리 없다. 근대 사회가 전지구적 보편으로 보이긴 하지만 한국에 있어 오늘날과 같은 근대 제도의 형성은 당연한 결론이 아니었으며 국민국가의 형성과정 자체에도 우연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Ⅴ. 분열의 생산적 효과
①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은 역사주의적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국민국가의 의식이 형성되고 언어의 변모 과정을 살필 때 진화-발전의 구도에 의지하고 도로 . 신문 . 화폐 등을 논할 때는 1894년 이후를 전제한 후 그 의의를 소급하며, 표기체계의 형성을 다룰 때도 순한글 모아쓰기라는 결론을 염두에 두는 식이다. 결국 이 책이 1876~95년을 지지하는 것은 이후 1백여 년의 역사이자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변의 실체가 아니다. 앞선 이행기를 살피면서 오늘날의 현실을 결론으로 전제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외부화되어 버렸던 다양한 가능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대 초기 연대 . 합방론의 존재라거나 그 모순을 기억해야 한다.
②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은 화석화된 과거를 상대하는 훌륭한 응답으로 본보기가 된다. 문학을 국민국가와 국어로 환원하는 독특한 개방성은 주목할 만하다. 문학의 실제를 ‘경제’와 ‘에크리튀르’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다른 모든 요소들을 잉여에 불과하게 만든다. 또 문학은 오직 출발점일 뿐 귀환점일 까닭도 없다. 이 책은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강렬한데 반해 모색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문학 이전과 문학 이후의 속하는 문학 연구가 어떻게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개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은 기억해 두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