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봤다. X-man의 능력을 가진 주인공 장. 모든 냄새의 세세한 분자까지 기억하고, 수십키로 떨어진 곳의 냄새로 사람을 추적하고, 열쇠를 찾고, 냄새만으로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안다. X-man이 아니고서야!

그러나 정작, 자신은 냄새가 없다. 텅 비어있다. 그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13명(?)의 여성의 냄새를 혼합하며 마침내 궁극의 향수를 만든다. 이 냄새를 맡은 사람은, 주인공 장을 사랑하고 경배하게 된다.

주인공 장 또한 처음 향기를 보존하려고 했던 것도, 어떤 소녀의 향기에 끌려서이다. 우연히 그녀를 죽이게 되고, 그녀의 향기는 죽음에 따라 사라진다. 이에 장은 향기를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는 것.

주인공이 탐구하는 인간의 '향기'라는 감각은 신비스롭다.  물론 '잘 씼냐 안 씼냐'를 넘어선 각 개인 본래의 '향기'를 의미한다 ^^; 근대적인 시각을 넘어서, 향기라는 것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고, 자기 자신은 모르지만 남은 '반의식적'으로 아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리스어로 '프쉬케'가 영혼과 숨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만큼 '숨'이 드나드는 장소인 코의 신비함과, '향기'의 의미심장함을 암시한다. 또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때 코를 통해 뇌를 끄집어 냈다고 한다. 예전 우리의 시인 소월도, '엄마의 냄새'를 이야기하면서 근대적인 것을 넘어선 신비스러운 영적인 느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향기는 영혼의 본질로 이야기된다.

마침내 궁극의 향기를 만들어서, 그 궁극의 '영혼'을 통해서 타인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자, 그는 자기가 지금껏 했던 '소유'의 방식이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고, '관계'내지는 소통이 자신이 바라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니면 그는 '소통'을 맺을 수 없다. 그는 주체의 자리, 텅빈 자리, 냄새가 없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러기에 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의 의지에 따르게, 그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는 정작 자신을 사랑하지는 못하고, 상대방과의 상호적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계몽의 주체는, 상대방을 폭력적으로 동일화할 뿐, 그들과 소통하거나 연대할 수 없는 것. '주체'의 자리는 텅비어 있다. 그러면 이제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타자를 자신에게 동일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할 것인가?

이의 해결로 영화의 마지막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궁극의 향수를 듬뿍 뿌리고, 그 곳 빈민들에게 '먹힌다'. 먹힘으로서의 소통. 자기 자신을 완전히 타자에게 내주는 것. 지금까지 그가 타자를 전적으로 소유했다면, 이제 전적으로 자신이 타자에게 소유가 되는 것. 소통이나 연대를 위한 몸부림이지만, 이것은 거꾸로선 계몽일 뿐. 그러나 소통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너와 나 사이의 변증법적 계몽이고, 그것이 또 나라는 '주체' 공간에서 시간에 따른 변증법적 계몽이 아니겠는가? 그럴때, 우리는 '계몽'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것을 '연대'나 '소통'이라고 이름붙인다.

* 냄새라는 것을 향기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냄새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구성물이, 나의 분자들이, 날아서 상대방의 코의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것. 결국 나의 일부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광자의 반사로서의 시각과는 다르다. 근대적 시각은 서로 단절되어 서로 영향을 받지 않고, 다만 광자의 튕겨남을 서로 저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나의 '내어줌'에 후각이 있고, 서로 냄새맡음에 서로를 '내어줌'이 바로 후각이다. 소통의 방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서로를 '내어줌' 서로 냄새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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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3-2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평론 쓰셔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