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부때부터 그리스-로마나 동아시아 고전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그들의 정치체제의 발생적 과정이나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서술은 나를 매료시켰다. 특히, 대의정치의 허위성이나 폭력성에 신물이 난 입장에서, 페리클레스 즈음의 그리스나 카이사르 이전 로마는 매력적이었다. 노예라는 집단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겠지만... 근미래에 기계가 노동을 대체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소그룹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정치집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상상해보곤 한다. 이러한 정치적 관심이 ‘아테네’와 ‘로마’에만 집중되었다면, ‘스파르타’에 대해서는 이종격투기에 대한 관심과 비슷하게 인간의 원초적인 육체적 강함의 극한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빼어나게 아름답고 매끈한 육체들. 태어날 때부터, 전사로서 길러지고 훈련된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300. 이 영화는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100만 페르시아와 싸운 전쟁을 매력적인 화면으로 구성해낸다. 자유-이성-아름다운 육체-스파르타-서구 라는 계열과 노예-복종-기괴한 육체-페르시아-아시아라는 계열이 충돌한다.(반지의 제왕에서 백인-유색인종의 대립과 같다.) 자신의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스파르타와 이들에게 ‘단지’ 복종의 표시만을 바라는 페르시아. 스파르타 왕이 무릎을 꿇기만 하면, 자칭 신인 페르시아의 왕은 만족할 테지만, ‘자유’를 위해 스파르타 300전사들은 몰살당하는 것을 선택한다.

페르시아는 아랍인들의 인종적 특성을 지녔고, 스파르타인 들은 유창한 영어를 하는 백인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이를 이라크 vs 미국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후세를 위해, 머나먼 세계인들에게, 스파르타의 왕은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하고, '이성'을 위해 싸웠다고 잊지 말라고 전한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를 계승한 것은 정작 누구인가? 최근 다시금 불거진 미군의 인권유린 사태! 텍스트의 의도는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침략’해온 아랍인(9.11/이라크 생화학무기에 대한 루머)과 이에 대한 ‘적극적’ 방어로서의 미군의 개입으로 생각해보면.

권위와 존경으로 뭉친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 왕, 그리고 의회가 있는 스파르타. ‘신’은 섬기지만, 이성을 신뢰하는 스파르타. 아름다운 육체를 드러내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스파르타. 스파르타라는 집단적 주체.

왕이 복종을 강요하고 군림하며, 할렘에 사지가 잘린 창녀가 웃음짓고 있는 페르시아. 왕이 신인 페르시아. 추하고 기괴하게 변형된 육체로, 왕의 명령과 채찍에 꿈뜰대는 페르시아. 페르시아는 왕만이 주체로 홀로 서고, 나머지는 왕의 수족이다.

민주주의라는 집단 주체 vs 독재라는 하나의 주체. 영화는 이렇게 둘을 끊임없이 대비시키면서 의미를 발생시킨다. 민주주의가 마침내 독재에 승리하는 것으로서. 영화의 영상은 매력적이고, 스파르타인들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와 폭력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스파르타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은 ‘노예’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유를 위해 싸우지만, 그들의 물적 토대 자체가 노예제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았다는 사실! 스파르타 사회에서 ‘자유인’인 전사의 수보다 이들을 위해 일하는 노예의 수가 훨씬 많았다는 사실. 스파르타 육체파들은 ‘자유’를 부르짖으며, 노예를 부린다. 마치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을 내세우면서, 경제적 이득을 채우고 인권유린을 행하듯...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지점에서, 텍스트는 많은 것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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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3-2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영화자체만으로 보고 싶은데...이게 요즘시국과 맞물려보면....
유쾌하거나 즐겁기만하진 않는게 사실이에요..^^
사실 현재 서구를 대표한다는 미국,영국과는 그리스는 근본적으로
많이 틀린데 말이죠..^^

기인 2007-03-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ㅎ 저는 전공이 문학이라서 그런지, 문학이나 영화나 그것을 '자체로' 보는 학파랑 안 친해서 그런지, '그 자체'만 보는 것은 별로 재미없는 것 같아용 ㅎ

기인 2007-03-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 영화 재미있던 데요! :)

2007-03-28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3-29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ㅎ님/ ㅋ 감사합니당. 주위에서 모두들 그 책 강추라고 해서요 ^^;

2007-03-2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3-2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ㅎ님/ 옷; 가지고 계신 것 아니었어요? 오옷; 안 그래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ㅎ 님 생일때 기대하세요 :)

2007-03-29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트소녀 2013-06-07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안 봤는데 꼭 보고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