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오석윤 옮김 / 양철북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이타니 겐지로. 정말 탐구해볼만한 작가이다. 등단작 '선생님이 좋아요'는 그야말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작품.

이 "태양의 아이"는 일본 민족국가 형성 과정 속에 억압된 균열인 '오키나와'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은 땅이었는데, 일본에 의해서 1871년 본토에 복속된다.

그 후에도 끊임없는 차별이 오키나와 인들에게 아로새겨지고, 이에 대해 발언하는 소설.

정말 절묘하게 잘 짜여져 있다. 오키나와 출신 아버지는 정신병을 앓고 있고, 어머니는 오키나와 음식점을 하는데, 이 곳에는 오키나와 출신 노동자들이 모여서 일종의 유사 가족 형태를 이룬다. 이 가족의 따뜻함과 주인공 '후짱'이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정도는 동화적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병 아버지가 서서히 그 상태가 악화되며 죽는 것과, 후짱이 '오키나와'에 대해서 공부하고 깨달아가는 것이 서사 속에서 어우러지면서, 깊은 감동을 주며 계몽효과를 지닌다.

아, 일본 아이들이 겐지로의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을까... 반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우리도 겐지로에게 배워, 우리식의 이런 동화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이주노동자, 빈부격차 등에 대한 동화적 해법이 아닐까. 얼마전 놀란 사실은, 초딩때부터 빈부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고 뿌리깊게 머리 속에 박혀서, 고딩이 되면 이미 어찌할 수도 없을 만큼 부에 대한 맹목적 추구만이 남는다는 것..

동화에 집중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마지막 영토로서의 동화?

하이타니 겐지로의 등단작만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가능성과 의의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대중적이라는 의미에서, 또 그 감동의 깊이에서) 작품이 있을까.

그것은 '동화'라는 데에서, 계몽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고, '작위적' 설정이 보다 쉽게 눈감아 질 수 있는 '장르'의 문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칭 '리얼리스트'들은 역시 자신의 눈길을 '동화'로 돌려야 되지 않나 싶다. 남한도 소위 386세대들에 의한 동화들이 많이 창작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쓰레기 처리장이라는 상징적 장소 속에서, 노동자 계층의 삶과 투쟁을 그려내면서, 승리라는 전망을 힘있게 그려낸 소설. 그 속에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지식인의 매개 등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송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였을까, 소설을 읽은 후, 감동하고, 소설의 의의에 대해서 확고하게 재확인 했던 때는..

기억력이 안 좋기 때문인지, 금방 떠오르지는 않는다.

 

게이치로의 장송은 그러했다. 예술가 소설, 역사소설이라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빠지기 쉬운 장르에서, 히라노는 진정 예술가소설, 역사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예술, 역사, 죽음에 대한 고찰.. 순간순간의 사색들도 뛰어났고, 예정된 절정은 눈물겨웠다.

요즘 남한에서도 역사소설이 붐을 이르고 있는데, 거대서사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시대에 너무 쉽게 서사를 채용하기 위한 술수(?)는 아닌지, 소설에 대한 불확신을 역사(소설)로 대체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게이치로는 '역사'소설로서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일본의 자신감. '탈아입구' 등... 괜히 '로마인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아니다.

기존 소설의 최정점에 올라가 봄으로서, 새로운 방향전환을 하려 했다는, 게이치로의 성실성. 배워야 한다.

문학도들에게 강추하는 소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oonta 2007-06-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사놓기만하고 책장에만 꼽아 놓은 책인데..기인님의 극찬을 들으니 마음이 동하네요..^^

기인 2007-06-0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세계관은 쫌 다르지만.. 감동적인 작품이었어요. 일권 읽으시면서 분명 불만이 느시다가 이권 읽으시면서 다시 역시 그렇군 하실 듯 ㅎㅎ 일권도 압권이고 이권은 죽음이에요! :)

가넷 2007-06-06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관심을 안 두고 있었는데, 극찬을 하시니... 저도...

양이 많군요.두권 합해서 1700페이지 정도 되는 것 같네요. 지금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있는 중이고 곧 시험 기간이기도 해서 끝나면 한번 봐야겠네용.^^;

기인 2007-06-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두권 합해서 1700 페이지.. 이런 소설 쓰고 읽어야 되는 것 같아요. ㅋ
이와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또 두꺼운 소설인 '산자와 죽은자'도 추천이에요 ㅎ
 

조수빈 기자 
“참세상 조수빈입니다. 그간 블로그에 쓰신 ‘육아일기’로 책 내신다해서요. 인터뷰를 했으면 합니다. 이번 주 안이면 좋겠는데...”
“음..... 제가 한 시간 있다가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어요?”
“예, 그러시죠”

하필 점심시간도 가까워오고 해서 “2시쯤 내가(기자가) 다시 연락하겠다” 하고 끊고 났더니, 강상구에게서 약속한 시간에 못 미친 1시쯤 연락이 왔다. 이야기즉슨 “오늘 저녁 6시에 자기 집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것. 준비치 못한 채 온 연락인데다 당장 인터뷰를 잡자는 요청까지 겹쳤지만 외마디 ‘윽’ 소리도 못하고서 전화를 끊었더니 가슴에 응어리가 남은 듯 한참 후에야 ‘집에서?’, ‘오늘?’ 이라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후 생각해보니 그 요청에 당연한 듯 담담하게 대답하고 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한참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풋풋하다.

다시 돌아와서, 사실 ‘당장 보자’는 것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집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그 심심한 걱정이라는 것은 기자로서 라기 보다 인간적인 면모(?)에서 드러나는 것 이었다. 갑작스런 초여름 날씨 축축한 땀이 싫어 신고 나온 슬리퍼형 신발 속에 꼭꼭 매어진 ‘맨발’이 문제였다. ‘윽 맨발이라니...’ 내려다본 맨발이 그날따라 어찌나 꼬질꼬질해 보이던지, 센스 있게 매니큐어라도 칠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뒤로 하며 가기 전에 ‘발이라도 닦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상구와 미루 사진이 보인다.

사적 공동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는 남성에 대한 낯설음이..

대방역 공군회관 앞, 강상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이 5시20분, 6시에서 약속시간을 30분 당겼던 터 이른 시간은 아니었다. 도보로 15분 거리의 아파트라고 안내한 강상구는 “걸어오는 길이 생각보다 기니 산책한다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오란”다. 습관적으로 적당한 시간을 벌기 위한 멘트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모르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걷는 길이 강상구 말대로 생각보다 괜찮기도 했지만, 사적 공간으로의 진입이 수월치 않은 공적 관계를 맺어온 경험으로 봤을 때, ‘남성’이 자신의 사적영역을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의 사회경험으로 봤을 때, 가부장제를 비판하던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잔존된 가부장성을 드러내거나(가정 자체의 가부장성은 차치하고라도) 회의석상에서의 소통을 전부로 아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적감정(오히려 더 정치적인)을 은폐하기 바쁘거나, 사적영역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공사분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이 남자, 겁도 없이(?) 너무도 선뜻 사적 공동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맨발’을 보여주기 싫었던 심리도 습관적으로 몸에 밴 사적영역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은 아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겹쳤다.

강상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보였다!

‘J아파트 1402호’, 버스를 갈아타면서 정신없이 들었던 주소를 더듬어 기억에 가장 근접한 호수를 떠올렸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14층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안도에 웃음이 번졌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벨을 누르지 마시고 꼭 문을 두드려주세요’라고 문 앞에 붙여진 종이가 가장 먼저 기자를 반겼던 것. ‘문을’과 ‘두드려주세요’ 사이에 첨부표시로 붙여진 ‘살짝’이라는 단어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문 안쪽으로 인기척은 충분히 전달되면서 아이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힘조절에 공을 들였다.

“들어오세요” 문 안쪽에서 들려온 것은 맞는데, 강상구가 아니었기에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는데 또 그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현숙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강상구 역시 “어서오세요”라고 반긴다. 그는 목욕탕에서 17개월 된 아들, 미루와 씨름 중이었다. 등만 보인 채 강상구는 “누가 왔어? 왜 궁금해?”라며 미루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강상구는 미루를 씻기느라 욕실에 있었다. 미루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관심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강상구는 사실상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자 또한 제대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강상구는 주어진 1시간 동안 미루 옷을 입히고, 잠시 놀아주고, 밥 먹이는 데 소요했고, 기자는 처음 보는 노트북을 거칠게 만지려는 미루의 손을 조심히 밀어내느라 애를 먹어야 했지만, 대체로 강상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보였다. 심지어 강상구는 저녁밥이 부족해 햇반을 사온다면서도 주현숙를 대타로 세워놓는 치밀함도 보였다.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인권침해”

강상구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알아서 말을 이어갔는데, 그의 말은 호소력이 짙고 하소연(?)에 가까웠다. 그는 최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편집위원 중에 자고 일어나면 아이가 죽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육아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더니 그는 사회가 모성을 강요하며 책임지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강상구가 “극단적인 생각하다가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한 달에 한 명 꼴로 진짜 죽인다는고 한다. 인터넷 검색하다보면 애가 너무 많이 울어서 버렸다, 던졌다, 목을 졸랐다는 등의 사례 본다. 나 역시 애기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가 방치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주현숙이 “아이를 보는 시간이 늑대의 시간에 가깝다”고 거든다.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힘든 것이 은폐되어 있는 일이죠. 애 이쁘니깐 뭐 이런 감정에 넘어가서 또 낳는데, 절대 둘째는 없어요. 절대 안 낳을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키웠던 것 잊고 애 커가는 거 보면서 이뻐서 또 낳는다고 하는데, 저희는 블로그 글 써놓은 것도 있고 글 보면서 둘째는 절대 낳지 않을 겁니다”

강상구는 미루 밥 먹이는 일을 육아의 어려운 3가지 중 한 가지로 꼽았다.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강상구는 육아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몸으로 말로 설명했다. 맘 먹고 오해할라 치면 6월 출간하게 될 강상구의 육아일기는 ‘절대 애를 낳지 마시오’라는 이야기로 오인 받기 적당해보였다. 그러나 사실 그의 책은 사적영역으로 몰아져 여성에게만 전가된 ‘육아’의 사회화를 고민하는 내용에 더 가깝다.

강상구는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전국의 가정집에 갇혀서 신음하고 있는 엄마들이 자기애들을 다 맡길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육아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흥분한다”

육아를 경험한 남성에게서 기대되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이다. 강상구에게서도 그러한 고민이 엿보인다. 사온 햇반을 기자의 얼굴에 들이밀며 “엄마의 정성으로 만든”이라는 광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어떻게 기회를 만든 “외식자리에서 다른 테이블에 한 여성이 혼자 밥도 못 먹고 아이 밥 먹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민다”는 그의 말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강상구는 일상에서 은폐되어 있는 폭력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문제에 있어서 전투적이 되었다. 노골적이다. 앞으로 당에 가서는 싸울 것이다. 어떤 남자가 나보다 더 많이 알겠는가. 저에게는 블로그는 기록과 기억의 의미가 동시에 있다. 사람들과 싸울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과 함께 그 시간을 기억을 할 수 있다.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런 강상구에 대해 주현숙은 “(여성문제에 있어)육아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흥분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고백

육아는 휴직 여부와 관계없지만, 6월 1일부터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는 강상구는 육아를 운동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책출판도 그런 의미이지만, 육아휴직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만큼 이후 가사분담을 위한 6시간 칼퇴근 쟁취투쟁과 함께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도 가져갈 각오를 보였다.

인터뷰 내내 미루는 노트북에 관심을 보였다. 강상구는 미루의 시선을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으로 끌기 위해 애썼다.

“민주노동당이라면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데, 똑같다. 이 문제(여성주의)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좌파와 민족주의자 모두 똑같다. 민족주의자는 원래 무개념이고, 이들은 심지어 애기엄마 만나서 설득하겠다고도 했다. 좌파도 똑같다. 당외부라고 다르지 않다. 당 밖에 사회단체에도 운영위원으로 있는데 그 단체에서도 일 많이 할 수 있겠다는 반응이었다. 제도적으로 할 수 있고 막지는 못할 뿐이었다.

육아휴직한다고 했을 때, 0.1초내에 참 잘했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브르주아적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육아문제를 포함한 여성주의적 내면화 말뿐이다. 육아휴직 전에 사무실(당) 사람 100명 중 98명은 하지마라였다. 가봐야 할 일 없다, 남자가 있어봐야 도움이 안된다, 육아휴직 이후 뭐 할거냐, 바쁠 때 해야겠냐 라는 질문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밀어붙였다. 토론의 문제가 아니었고,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토론하기 너무 힘들었다”

강상구는 육아휴직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육아휴직의 계기를 묻는 기자에게 강상구는 “다음부터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 왜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물으라”고 반응했다. 앞서도 육아를 여성이 혼자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했으니,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육아는 부모가 동등한 책임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상구는 “자신의 운동성에 따라 생활도 조직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 가서 남편이랑 싸웠으면 좋겠다”

“육아휴직 동안 블로그에 매일 하루에 한 개씩 글을 쓰려고 했는데, 끝날 무렵 보니 300개 정도 썼더라. 이번 책에는 그 중에서 100개를 뽑아 담았다. 블로그에 쓸 때, 몇 가지 방향이 있었는데, 미루 커가는 모습과 커가는 과정에서의 아기의 변화과정, 미루를 키우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 등이었다. 또 애 키우는 것과 별도로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 예전에 몰랐던 변화, 정체성의 변화들을 담았다. 또 애를 키우면서 느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사회에 나갔을 때 불편한 점, 얘를 키우는데 사회적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을 중심으로 썼다. 이번 책은 그 중에 미루 커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글을 골랐다. 그 내용에는 육아의 어려움이나, 가사를 분담하게 된 경험들이 들어가 있다”

강상구는 이번 책을 남성들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여성들이 집에 가서 부부싸움하고 사회를 향해 싸워 쟁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모성이데올로기에서의 자유와 일상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하여 불온한 상구씨, 이 책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제도가 갖춰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의 하나라는 것이다.

강상구, 주현숙에게 마지막으로 육아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부모의 자녀교육관 중 부정적 표현으로 쓰이는 ‘치맛바람’이 모성이데올로기로 부터 기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계몽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던져본 질문이었다. 역시 이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기는 소유물이 아니다. 쉽게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길게 왔다가는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갈 때까는 잘 보살피는 거다. 나중에는 우리가 독립해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컸음 좋겠다. 어떻게 널 힘들게 키웠는데 이런 말 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애들은 절대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루가 너무 움직여 여러번 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물론 수전증도 문제이지만, 결국 깨끗한 사진을 얻기는 실패.

길게 왔다간다지만 손님 치고 두 사람에게 육아의 무게는 퍽 무거워 보였다. 물론 미루는 기자가 보기에도 이쁜 아기였지만. 6월 7일 발간을 앞둔 그의 책이 육아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열정의 역사가' 홉스봄을 만나다

오마이뉴스에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방한을 회고하는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13708&ar_seq=7). 그의 책들을 많이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사장의 회고인데(연재물인 '책의 탄생, 시대의 풍경'의 한 꼭지이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홉스봄은 20년전, 그러니까 지난 1987년 5월에 한국을 다녀갔다. 전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던 모양이다(6월 항쟁 한달 전이니까 사실 '적응'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스럽다. 적응해야 할 대학생활이라는 게 있었나?). 어쨌든 흘려보낸 시간의 이면을 들추는 듯해서 흥미롭다. 최근 그가 편집한 <만들어진 전통>(휴머니스트, 2004)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도 기사에 대한 흥미를 느낀 또 다른 이유이다. 방학때 그의 자서전(<미완의 시대>)이나 읽어볼까 싶다.

오마이뉴스(07. 05. 31) '열정의 역사가' 홉스봄을 만나다

1987년 5월 12일 화요일 오후 5시 영국의 세계적인 사회경제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 )이 안암동에 있는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참으로 귀한 손님이었다. 이런 석학을 모실 수 있다니 출판사·출판인으로서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정현백·박지향 교수가 안내했다. 나는 홉스봄에게 한국사회에서 당시 힘차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운동과 출판운동에 대해서 설명했다. 책과 권위주의적 권력이 갈등하고 있는 양상에 대해서도 말했다. 홉스봄은 어떤 책들이 판금되었는가를 저자 이름, 책 이름을 일일이 메모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진실을 추구하는 노학자의 정정한 모습이었다.

"한국사회는 지금 격동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간평등을 주창하는 젊은이들의 운동과 정신은 일련의 젊은 출판인들이 펼치는 출판운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으로 '독서'하고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젊은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두려워하면서 그런 책들을 판매금지시키고 있지만, 독자들의 문제의식은 엄청나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금서정책'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정부의 금서조치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대석학은 나의 설명을 경청했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출판상황은 선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회사적 자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해 4월 28일 서울지검 공안2부는 '좌경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젊은 출판인 5명을 구속했다. 녹두출판사 김영호(27) 대표와 사계절출판사 김영종(32) 대표, 동녘출판사 이건복(33) 대표, 세계사 윤후덕(30) 대표, 거름 편집인 강경철(26)씨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괄호 속 나이는 1987년 당시 기준)

나의 방에서 나는 선생과 한 시간 정도 한국의 사회상황·출판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많은 책들이 판금되거나 강제 수거되며, 때로는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젊은 출판인들은 계속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 대화를 홉스봄 선생과 나누던 그 80년대는 나에게 분명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홉스봄은 서울대 이인호 교수가 재직하던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초청하고 국제문화협회의 협찬을 받아 방한했다. 한길사와 서울대 서양사학과가 공동주최하는 '홉스봄 교수 초청 학술강연회'가 5월 9일 오후 동숭동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열렸다. 그날 '최초의 산업국가의 흥망 : 영국 1780~1980'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홉스봄은 당대의 석학답게 신념에 찬 목소리로 열강 했다. 영국의 상황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조건도 비교해가면서 강연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그의 이론과 사상은 열려 있었다.

한길사는 일찍이 홉스봄의 <의적의 사회사>(Bandits, 1969)를 1978년 11월에 펴냈다. 공업화되기 이전의 농업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비적 내지 의적현상을 분석하는 책이다. 역사 연구의 주류에서는 이제까지 별로 연구되지 않은 사회적 반항, 또는 민중의 원망(願望)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저술이다. 로빈 후드에서 양산박(梁山泊)의 산적들, 멕시코 초원의 혁명아 판초 비야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에서,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으로서, 민중과 더불어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나이들의 이야기다.



한길사는 다시 '오늘의 사상신서' 제71권으로 <자본의 시대>(The Age of Capital, 1975)를 1983년 12월에 펴냈다. 이어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colution, 1962)를 '오늘의 사상신서' 제74권으로 1984년 8월에 펴냈다. 그리고 <제국의 시대>(The Age of Empire, 1987)를 '한길그레이트북스' 제14권으로 1998년 10월에 펴냈다. 이 세 권의 책은 홉스봄의 대표적인 저술로 이른바 '자본주의 역사 3부작'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1914년까지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세계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홉스봄의 이 3부작을 읽으면, 역사란 이렇게 흥미진진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당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생활상까지를 생생하게 재현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역사란 제도사(制度史)나 경제사만이 아닌 인간이 엮어내는 경이로운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필력을 홉스봄은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읽어서 재미있고 즐거운 책'이라는 격찬을 받은 저술이다.

홉스봄이 그려내는 역사라는 풍경화는 '역사서술이란 당초부터 탁월한 문학'이라는 명제를 일깨워준다. 나는 홉스봄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대하소설 속에 들어서 있는 듯한 감흥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넓게 열려 있는 시야와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역사란 참으로 위대한 교훈이자 오락이라는 명제도 아울러 확인하게 된다.

한길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행하고 있는 대형기획 '한길그레이트북스'의 제12·13·14권으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배치했다. 이 '자본주의 역사 3부작'은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되고 있지만, 홉스봄 선생의 고전이란 또 다른 문학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1987년 5월 12일, 나는 홉스봄과 우리가 펴낸 <혁명의 시대>와 <자본의 시대>를 들고 현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세미나실을 보여드리면서 그때 우리가 펼치고 있는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한길사회과학강좌 등을 설명했다. 나는 홉스봄에게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홉스봄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은 '역사'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토가 분단되고 동족끼리 전쟁을 하는 참으로 비극적인 현대사의 아픈 체험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이 분단시대사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설명을 들은 홉스봄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을 건다는 것입니다"라는 말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삶의 희망과 미래의 지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연구해보면, 역사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대 역사학의 거장 홉스봄은 1980년대에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이 총체적으로 체험하던 민주화운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안암동의 그 작은 세미나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한길사의 책들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나는 홉스봄을 인사동으로 모시고 가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한국적인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국악을 연주해주는 '산촌'으로 갔다. 스님이 경영하는 음식점 산촌에서는 고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저녁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국악과 춤을 선생은 흥미롭게 보고 들었다. 홉스봄은 특히 국악기 아쟁의 소리가 좋았다는 코멘트를 했다. 재즈 전문가로서 재즈에 관한 책과 글들을 쓰고 있던 그에게 한국 음악에 대한 관찰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1986년 1월 6일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발표한 글에서 홉스봄은 "1950년대 미국 대중음악에서는 존속살인이 일어났다. 록이 재즈를 살해한 것이다"라고 썼다. 이 같은 표현을 두고 <옵서버>지는 "재즈에 대해 쓸 때 그는 자신이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을 옹호하고자 사나운 채찍을 휘두른다"고 했다. 그러나 "홉스봄은 역사까지 이런 식으로 서술하지 않았다는데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이 전문가의 시대에 홉스봄 선생만큼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갖춘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세기의 노동운동, 아방가르드 운동예술과 사회주의와의 관계, 농민운동, 베트남전, 듀크 엘링턴과 빌리 홀리데이 같은 재즈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과 천착은 놀랍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보통 사람들이, 사실은 역사를 만들고 일으켜 세우는 역사의 주역이라고 말하는 홉스봄, 통상 평범한 사람들(Common People)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Uncommon People)이다. 이름 없는 이들이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이다. 홉스봄은 바로 '참으로 위대한 보통의 사람들'을 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라는 제목으로 영림카디널에서 2003년에 번역되어 나온 < Uncommon People >(1998)도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자본주의 역사 3부작'에 이어 1994년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를 저술한다. 이는 20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극단의 시대>는 까치글방에 의해 1997년에 번역출간 되었다. 또 <역사론>(On History)을 1997년에 저술했다. 이 책은 2002년 민음사에서 번역출판 되었다. 2002년에는 자서전 <흥미로운 시대(Interesting Times)>를 저술한다. 이 책 역시 <미완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민음사에서 번역출판 했다.



홉스봄은 참으로 독특한 삶을 살아온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가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핵무기확산 반대 시위운동을 벌였고,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를 위해 통역을 해주었으며, 런던에서는 재즈에 심취했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해서 이스라엘에서는 왕따 당했다.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지만 소련에서 그의 저서는 판금 당했다. 영국의 비타협 노동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회정의를 위해 90살이 넘어서도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는 열정의 역사가다. 그는 그 정신과 사상이 살아 있는 20세기의 현자다. 역사의 힘, 역사의 지혜를 실증해보인 실천하는 현자!

홉스봄이 한국을 방문하던 1987년 5월 그 무렵 나의 '일기'에는 이른바 '판금도서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1982년부터의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1980년대에 창출된 책 또는 책의 정신과 사상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다. 70년대와 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과학적 인식을 시대를 거쳐서 한국사회는 오늘 이만큼 성장했다.(김언호 기자)

07. 06. 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