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전집 1
염상섭 지음 / 민음사 / 1987년 7월
평점 :
절판


당대의 풍속사와 정신사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923년에 쓰여진 이 소설의 결혼 장면에서 벌써 면사포를 쓰고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에 따라 진행되는 '신식'결혼이 등장하며 신여성 신부인 '영희'는 폐백과 같은 '구식'습관도 같이 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 '영희'는 꽤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오버스럽게(?)' 똑똑한 신여성으로 설정된 그녀는, 이에 대비되는 남자 인물 '순택'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병자삼인>의 세 남편, 이광수 <<무정>>에서 병욱과 대비되는 그의 오빠, 그리고 1930년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4컷만화 '얼간선생' 등이 그러한 '순택'과 같은 인물이다. 바로 똑뿌러진 신여성에 대비하여서 다소 '얼간이'같은 남성들.

신여성들은 남성들을 비판하고 조롱한다. 염상섭은 줄기차게 영희를 통해 그의 남편 '순택'을 비판한다. 순택 또한 나름의 엘리트로 동경유학을 다녀오고 총독부토목 초탁이라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신분이지만 영희에게는 바보취급을 당할 뿐이다. 이는 소설가, 예술가가 바라보는 권력과 돈에 대한 시선을 반영한다.
당당하게 영희는 자신의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자신을 여신과같이 우러르는 '순택'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예술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면 예전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영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만, 현실에 조금씩 타협을 하는 면을 보인다. 평소에도 결혼식 같은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목적과 주위의 시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실행하며 자기 자신에게 변명을 하며 내적갈등을 겪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어찌보면 이는 현실인 염상섭의 고민이요 변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희는 가부장제와 이를 반영하는 법률 자체를 비판하는 수준에 이르지만 순택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허 웃을 뿐인 애처가이자 공처가의 수준을 보여준다.

본 소설은 영희가 순택과 결혼을 하는 날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영희가 순택과 신혼여행을 떠나서의 몇일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이 여행은 영희가 독단적으로 계획한 것이고 순택은 다만 이를 좇을 뿐이다. 영희는 여행을 하면서도 목적지와 취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내비출 뿐이다. 그리고 이 여행은 영희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 홍수삼의 묘에 비를 세우러가는 것이다. 영희는 순택이 자신을 위해 희생한다고 맹세를 하고 결혼을 했지만, 실제로 아직 희생한 것은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며 이기적으로 순택을 자신의 경제적 필요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비정함을 보인다.
순택은 묵묵히 따를 뿐이다. 마지막은 영희가 수삼의 묘에 비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순택의 쓸쓸함으로 마무리가된다. 마치 얼마전 유행했던 '고개 숙인 남성'류의 씁쓸함을 보는 듯 하다.
 
이러한 설정이 식민지 시대 소설, 희곡 등에 종종 '남성작가'에 의해서 쓰인 것은 왜일까. 이광수에게 있어서는 '계몽된 여성'이라는 등장인물이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병자삼인>이나 이 소설 <해바라기>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성 작가가 소설 속에서나마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 소설 속의 '신여성'이라는 인물들의 양태는 복잡다단하면서도 시대를 반영하고, 또 그 속에서 작가의 개성도 들어나서 언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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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전집 1
염상섭 지음 / 민음사 / 1987년 7월
평점 :
절판


너희들은 무엇을 어덧느냐
 
정말이지 실망한 지리한 장편. 장편은 상업적 질이 낮고, 단편은 예술이라는 예전(?) 편견이 어디서 비롯되었었나 알 수 있다.
어느새 임화식 혹은 카프식 문학관이 내안에 뿌리를 박았는지 도대체 이런 기생끼고 노는 인텔리계층의 이야기를 해서 뭘 어쩌겠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만세전'을 쓴 작가가 말이다.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는 남녀의 연애문제이다. 이는 불륜과 이혼, 서로 친구의 애인 뺏기 싸움이다. 그 중 기생집에서 기생을 꼬시기 위한 대작전이 작품의 3분의 1은 차지한다. 안타까울 뿐이다. 조선의 사회가 기생과 학생만의 사회가 아닌데 이 둘의 연애담만을 그린다는 박영희의 분노 어린 비판이 생각난다. 이태준과 같이 기생을 조선 전통의 담지자로서 일본에 의해서 농락당하는 조선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요즘의 룸살롱 마냥 놀아나는 인텔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지리하게 묘사해 놓은 횡보의 이 글은 심히 짜증이 난다.

열라게 어이없게도 '사랑의 곳은 성욕의 충동이라는 원소의 동화작용으로 피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성욕의 충족만이 련애의 전체로 아는 천박한 남녀에게는 성욕을 충족식힐 긔회가 업시 그 련애관계가 깨트러질 때에는 피차의 인상이 아름답고 깁게 남을 수 잇는 것이다. 독자는 나의 이 론리가 정확한가 아니한가를 마리아라는 처녀로 말미암아 증험할 수 잇슬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염상섭의 문학관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중요한 대목이지만, 솔직히 어이없음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라 자부하던 횡보의 자태이다.

소설적 기법면에서는 눈에 띄는 면들이 없지는 않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남녀를 등장시켜서 그 텍스트를 새롭게 해석하고 서술하고 있는 면모는 마치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를 생각나게 할 만큼 과감한 방식으로 보인다. 그만큼 길게 인용을 하면서 이에 대해 토론하는 남녀가 나온다.
이것이 의도한 장치라기 보다는 근대적 서사에 대한 이해나 능력의 부족인듯 하다. 돌연 논설조로 웅변을 토하는 인물들이 잊을만하면 등장하여서 자신의 종교관, 연애관, 인생관, 여성관등을 피력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조선을 '타자'로 인식하는 듯이 보이는 '조선은 이래서 안되', '조선 사람은 꼭 이렇지', '조선 여자는 못쓰겠어' 등의 발화가 무진장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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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1학년, 나는 홀로 조조영화를 보는 것을 즐겨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영화를 보면 보다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혼자 영화를 본다음에 카페에 혼자 앉아서 책을 보는 것도 즐겨했다. 그때는 샤르트르나 보부아르 같은 프랑스 작가들의 글들을 좋아했고, 그들처럼 카페에 혼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게 멋있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학과일도 생기고, 공부도 많아지고 등등의 이유라기보다는 여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에 영화를 혼자 보러가는 일이 없어졌다. 또 영화를 하도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 대중영화는 시시해졌고, 예술영화에 시간을 쏟을 바에는 사회과학서적이나 철학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머리가 굵어졌다는 이야기.

그래도 오늘처럼, 가끔 혼자서 영화를 보러갈 때가 있다. 그런데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이 영화도 내가 좋아하는 류승범이 출연하였기 때문에 보았지만, 별반 감흥이 없었다. 추자현이 마약에 중독한 여자로 나와 충격적인 영상(마약에 취한채로 8시간 동안 섹스 등)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의 연기변신에 놀라움이 있었지만(내게 그녀의 이미지는 왈가닥으로, 아마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만서도 이상하게(요즘은 이게 정말 이상한게 되어버렸는데) '메시지' 혹은 '내용'을 중시한다. 때문에 항상 '내용'이 무엇인지를 묻고,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내용'/'형식'의 이분법은 철지난지 오래지만, '구조'라고 이야기해버리면 너무 '형식주의'적인 냄새가 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충격적인 영상에 있어서는 서구의 마약중독 관련 영화들을 넘지 못하고, 느와르적 느낌에서는 홍콩영화를 넘지 못한다. 류승범과 황정민의 연기는 볼만했지만, '연기'를 보러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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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스필버그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들려주는 동화. 혹은 스필버그라는 수조원대의 갑부 아이가 꿈꾸는 미국 사회.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라던가 'E.T.'를 통해서 외계인에 대한 기존의 공포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제 '동구권'이 대상인가. 어쩌면 9.11. 이후 동구권은 미국에게 예전만큼 큰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는 물론 이슬람이쥐.


근데 재미있는 것은, 본 영화가 '이란'인이 실제로 난민보호 서류를 잃어버려서 11년동안 공항에서 산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란인'을 캐스팅했을 수는 없겠지. 관객이 안되니까. 이 영화도 관객이 별로 안 들었다고 한다. 톰 행크스는 대표적인 백인 미국 남성이었는데, 갑자기 동구권 아저씨로 나오니 말이다. 사실 영화 초반에 이는 관객들에게 극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저해 요소가 된다.


동화 답게. 선인은 승리한다. 온 동네를 다 친구로 만들며. 재미있는 것은 블루칼러 일들은 모두 유색인종이 맡았고 그들의 감독은 백인이라는 것이다. 아. 물론 주인공도 백인이다. 요리담당은 멕시코 사람이고 청소부는 인도 경찰들은 흑인인 식이다. 음. '리얼'하게 현실을 그려서 비판적 의도가 있는 것인가(별로 그런것 같지는 않는데..) 아니면 실제 청소부나 요리담당을 '백인'으로 그리면 관객들에게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인물로 받아들여지게 되어서 그들을 그리기 위해 쓸데없는 정보가 필요한 것인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정된 '스테레오타입'은 캐릭터를 설정하고 관객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기 쉽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캐릭터는 이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한국 드라마에서 예를 들면 못생긴 재벌집 아들 같은거 -_-; 사실 이거는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서도. 음. 여주인공 아닌 착한 부잣집 딸 같은거; 말이다. 이건 반드시 관객들에게 설명이 필요하다. 사실 그런 캐릭터는 스토리의 전개상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역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쩝.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풍기었던 스필버그 아저씨는 다시 이를 꺼내든다. 음...


스필버그에게 해주고 싶은말. 'grow up' (알아보니 이는 예전부터 많은 평자들이 스필버그에게 지적한 것이라 한다... 혹자는 불안한 유태계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스필버그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피터팬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라고 하던데.. 영화 '후크'를 떠올려보자..)


혹은.. 원래 그래야 돈 버는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귀엽고 이쁜 영화 아니면 단순무식 때려부시는 액션 영화.. 인가...


아니면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일까.

9.11. 테러 이후 부쉬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


-.-; 너무나도 단순해서 이래저래 복잡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실사 디즈니 영화. 터미널.

인생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기다리는 것일 뿐이라는 교훈(?)과 함께 착한 사람이 승리하고 모든 사람들은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격언(?)을 내려준다.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끝나면 한숨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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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하늘
신채호 지음, 송재소 엮음 / 동광출판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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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암살을 지지하는 국수주의적이며 전투적 독립운동가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나'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육체나 자아 자신도 쪼개진 부분이지만 '가족주의의 시대에는 가족이 '나'요 국가주의의 시대에는 국가가 '나'라'고 하면서 지금이 국가주의 시대임을 말하고 있다.

일곱놈들이 적과 대적하려 길을 떠나는 우화적인 부분에서 알레고리가 보인다. 적들에게 베푼 '仁厚'야 말로 조선 패망의 원인이라 하며 적에게는 죽음을 선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힘만이 승리의 유일한 길이고 정의타령을 하거나 문화운동, 외교론 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 소설을 쓰고 3년 후에 작성된 그의 '조선혁명선언'과 연계되는 부분들이 있다.

주인공 '한놈'은 단재를 떠올리게 한다. 국사를 공부하며 '을지문덕'을 쓴 것이 동일하다. 본 소설은 이데올로기로의 지향이 매우 강하다. 실제로 단재가 역사를 서술했던 이유는 독립운동을 위해서였고, 이 책은 유실된 역사나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부분을 가상적으로 꾸며서 마찬가지의 효과를 나타내려고 한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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