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 - 2003 제3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방현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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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다. 

'그대 계속해서 가라. 그러면 어딘가에 닿게 되리라.'라는 레지투이, 시인 반레의 말이 가슴에 울린다.

'무언가를 꿈꾸려는 자는 그 꿈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줄기차게 묵묵히 투쟁하는 창은의 말.


의심의 눈초리로, 아니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목소리를 문태는 레지투이에게 던진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싸운 건 아니잖아요?'


나는 중국에 잠깐 다녀왔을때, '공산주의'의 흔적을 보기 위해 애썼다. 중국 대학생들, 회사원들에게 중국 현재를 물었고, 공산주의를 물었고 자본주의를 물었다. 당연한듯이 '많이 나아졌다, 자본주의화'되어야 한다, 고 답했다. 그래도 나는 어떤 징후, 어떤 소박한 행복의 징후를 찾기 위해 애썼을 때, 우리 가이드를 해준 조선족 누님은 한족과 조선족의 차별대우, 천안문 학살을 말해 주었다. 자금성 앞에 모택동 사진이 걸린 것이 바라다보이는 천안문. 경찰들이 사복차람으로 항시 근무하고 있단다. 나는 이들이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중국에서 떠오르는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명문대 대학생으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며 미국 유학을 꿈꾸는 경제학도가 이틀 동안 우리의 가이드였고, 다른 날 동안에는 중국에서 선망받는 '외국계 기업인 삼성'의 회사원이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과 베트남은 다르다. 내가 알기로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대외 정책을 펴지 않는다. 굳건히 공산주의 체제를 지켜나가고 있으며 자조자립의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준주변부 국가의 대표주자인 한국인이 보기에는 베트남은 턱없이 가난하다. 그래서 변호사-자본주의의 하수인의 대표적 직업!-인 문태는 이렇게 묻는다. 아마 자신에게 묻고 싶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자신의 현재가 묻고 확인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싸운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을 끝냈을 뿐이지요. 다음 세대에게는 또 다음 세대가 해결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요. 우리가 다 해버리면 다음 세대는 뭘 하고 살겠어요? 어떤 세대도 다음 세대가 할 일을 미리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들으니까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갈까요. 제가 보기에는 참 위태로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을 얻기위해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바친 희생은 너무 큰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후회가 없단 말이에요?'

'우리는 공산주의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를 살았어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쪽에서 우리는 십년을 싸웠지만, 최소한 그 십년 동안 나와 내 친구들은 공산주의의 삶을 살았어요. 자기가 살지 않은 것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겠어요? 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기르면서 가르쳐준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내가 군대에 지원해서 전쟁터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말했어요. '아들아,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고 욕할 수는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을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일까. 문태와 재우 사이에 있지 않았나. 아니 그 보다도 멀지 않았을까. 내 주위 창은과 레지투이들. 문득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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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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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데뷔작. 38세에 첫 소설을 쓰고, 그 이전에는 시를 썼다 한다.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의 세계를 바라본다. 마침내 맥주를 마시고 독에 빠져서 죽는다. 본 작품은 죽음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빈번히 묘사하지만, 실로 소세키 자신은 죽음과 친숙했고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14세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7세때 폐결핵 진단 이후 끊임없이 질병에 시달려서 기절하기도 몇번 한다. 30세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아내는 유산을 한다. 히스테리 증세로 31세에 자살 기도를 하고 영국에 유학해서는 경제적 빈곤과 고독감에서 신경 쇠약에 시달린다. 신경 쇠약이 심해져 아내와 별거하기도 한다. 한국 근대 문인들이 신경증을 호소한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음은 소세키 곁에 있었다. 결국 49세에 내출혈로 죽는다. 소세키는 자살 예찬론을 본 소설에서 주인의 절친한 친구 미학자인 메이세쯔의 입을 통해 역설하기도 한다.
또한 소세키의 글에서는 근대를 마주한 일본인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루쉰이나 이광수와는 물론 다르다. '자기본위'를 주장한 만큼, 근대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전근대를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는 뒤의 <산시로>에서 잘 나타난다.

'나체 신봉자만 해도 그렇다. 그토록 나체가 좋은 것이라면 자기 딸을 벌거숭이로 해서, 덩달아 자기 자신마저 벌거숭이가 되어 우에노 공원을 산책이라도 해보란 말이다. 못하겠다고? 못하는 게 아니고, 서양인이 하지 않으니, 자신도 안 하는 게 아닐까. 사실상 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예복을 입고 데이코쿠 호텔 같은 데로 출입하지 않는냐. 그 사연을 물어보면 별것이 아니다. 그저 서양인이 입으니까 나도 입는다는 것뿐일 테지.
서양인은 강하니까 무리하든 바보스럽든 흉내내지 않고선 못배기는 거겠지. 긴 놈에겐 감겨라, 강한 놈에게 꺾여라, 무거운 놈에겐 눌려라, 그렇게 빌빌거리며 기기만 한다면 못난 수작 일변도가 아닌가? 못난 수작이라도 별수없지 않느냐 한다면 용서할 테니, 너무 일본인을 잘났다고 여기면 안된다.' (288~289)

그럼에도 주인은 '영어' 선생이다. 항시 입에 올리는 것은 일본의 학자라기 보다는 라틴 학자거나 '희랍어'를 한다고 뽐내거나 하는 것이다. 부정하는 근대지만, 어느새 '근대인'이 되고만 일본 근대인의 표정이다.

'신체시는 하이쿠와는 달리, 그렇게 졸지에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지어내기만 하면, 좀더 인간 영혼의 핵심을 건드리는 신묘한 음이 나옵니다.'(447)
 
이는 주인의 문하생이었던 신체시 작가의 말이다.

이처럼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대화로 작가의 사상을 드러내 보인다. 미학자, 철학자, 신체시작가, 이학자, 기업가 등이 등장해서 다투고 논쟁하고 서로 논다. 소세키는 이광수의 '형식'과 같이 독단으로 연설하지 않는다. 실로 '등장인물'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작가가 '근대 소설의 효시인 소세키의 작품이 이렇게 완벽한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라고 했다는데, 실로 그렇다.

소세키 소설은 매 작품이 매우 상이하다고 하지만, 인물군에 있어서는 유사점이 발견된다. 희곡에서도 자주 쓰이는 수법이지만, 주인공의 '친한 친구'가 등장하고 이 인물은 보통 말이 많고 익살스럽다. 그래야 주인공의 내면심리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과묵한 영웅이어야 한다. 이 설정이 교묘하게 패러디 되어서 그려져 있다.

여기서 주인공이라 하면 아무래도 '주인'이다. 학교 선생님인데, 소세키 자신도 학교 선생이었던 관계로 심하다 할 정도로 선생을 비꼰다. 이 선생은 기업가에게는 관심도 없고, 사못 경멸하기 까지 한다. 산시로에서도 나타나는 인물이다. 세속에는 관심없고 학문에만 매진하는 인물.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보다 근접해서 그들의 허위와 심리를 묘파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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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한문독해법
최완식 외 지음 / 명문당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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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수준은, 대학교 1학년생 정도이다.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대학교 1학년 생이라면, (고등학교 시간에 한문1, 한문 2정도는 수강했으면 더욱 좋다) 대학교 한문 수업과 병행해서 학습하면 적절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같은 저자들이 쓴 <<한문독해법>>까지 마스터한다면, 이제 비로소 무궁무진한 고전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안내서를 손에 잡은 것이 된다.

<<장자>>나 <<도덕경>>을 주석 없이 본문만으로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지만, <<맹자>>와 <<논어>>를 원문으로 읽으면 한문 읽기의 참맛을 어느정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문을 모른다면, 오랜 역사를 바탕에 둔 동아시아에 태어난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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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 kg 라고 하면, 살이 빠진 것 같지만 아니다. 헬스를 한 직후 헬스장에서 잰 몸무게이기 때문에 평소(?) 무게 보다 1kg정도 적게 나온다.

결국 여행 후의 몸무게는 체중계 고장이라는 이야기.... 쩝.

 

토요일에 박사시험인데, 공부도 잘 안되고 그렇다. 대충 공부는 해야 할텐데. 대학원에 들어와서 치어살다보니 오히려 '인문학적 마인드'라는 게 옅어지고, 직업 인문학도 같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무언가 매너리즘에 빠진듯이 발표문을 쓰고, 논문을 쓴다는 말.

인문학이라면, 결국 인간학이고 인간 존재의 의미 같은 것을 물어야 한다. 아니면 인문학이란 쓰잘데기 없이 사회 생산물에 빌붙어서 나무나 죽여서 종이나 낭비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 박사시험 끝나면. 석사학위가 생기면, 이제는 학술지 등에 투고할 수 있다. 일종의 예비 연구자가 되는 셈. 나의 글이 한국문학 연구의 최전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해야한다.

 

아.. 그나저나 피곤하다. 살은 안 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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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대학국어 학생들의 '첫사랑'에 대한 글을 채점하고 첨삭했다. 60여명의 학생들의 글을 읽으니 진이 다 빠졌다. 각자 학생들은 자신만의 소중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했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대동소이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또 경영대 학생인지라,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친구도 없었다. 더군다나 서울대 경영대이니 -_-; (뭐 이미지만 그럴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친구 중 한명은 연대 경영을 갔다가 재수해서 서울대 경영을 들어갔는데, 새내기 때 연대 학생증을 가지고 다니면서 미팅을 하기 까지 했다. 서울대 경영대는 이미지가 별로라고 -_-;;; )

어쨌든, 그래서 나도 내 첫사랑 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도 대학교 2학년때 첫사랑에 대해서 쓴 글이 있어서 찾아서 올려본다. 정말 나도 많이 변했다. 4년도 넘게 지났으니 그럴만도 하다. 나는 무척 시니컬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담배 불에 화상을 입었다. 흐음. 이런 것이 담배빵인가. 뭐 한 0.1초 정도 데인 것에 불과한데. 무지 아프다. 자고 일어나니 더 아파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발랐다. 그러니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앞의 문장은 사실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도 일종의 상징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화상이라는 것은 불에 의한 상처를 일컫는다. 그리고 불은 사랑과 밀접히 연관된다. '불장난'과 '사랑'(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로)과의 연관은 상투적이다. 불같은 사랑. 뭐 그렇다. 어쨌든 담배에 화상을 입고 보니 문득 첫사랑의 상처가 떠올랐다고 하면, 어느정도 말이 되는가? 잘 모르겠다. 담뱃불에 의한 화상 때문에 문득 첫사랑이 생각 낳는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일정 기간 동안 보지 못 본다는 것. 나를 괴롭히는 것. 때문에 첫사랑의 기억이 생각났는지 말이다.

담배라는 것 또한 묘하다. 담뱃불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 담배라는 것은 성인에게 허용된 마약이다. 사랑은 어떠한가? 담배-사랑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사랑과 첫담배에 대해서도 말이다. 첫담배의 쓴 고통.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참. 그리고 첫사랑.

뭐. 대충 담뱃불에 디였다. 그런데 문득 첫사랑이 생각났다. 이 중간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첫사랑 생각이 났고. 조금은 우울했다.

나는 그녀를 매일 보았다. 그녀가 나를 매일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녔다거나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나는 조금 귀찮음증 환자였다. 그녀는 나를 꽤 좋아했고, 나는 그 당시 꽤 조용했음으로. 그녀가 주로 떠들고. 나는 주로 들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말을 했음으로, 나는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그녀가 원하는 것들과. 그녀의 하루일과.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들. 그녀의 부모님. 그녀의 동생. 그녀의 걱정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나에 대해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죽음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무관심했음으로. 내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할 이야기도 없었다. 나는 항시. 죽음과 피와 파괴와 신과 악마와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만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음으로.

그녀는 항상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속으로. 내가 훗날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의 이미지란. 너무 뻔하고 심심한 것 이였기 때문에. 그다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도대체가 그 때는 결혼을 하는 사람이란 뭐든 뻔하게 멍청한 자들로써. 오직 유신론자들이나 무신론자들 중 일부 멍청한 이들만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짐짓 너 바보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잡지에서 잘 생긴 모델을 오려서 방의 거울에다 붙여 놓거나, 어떤 영화배우의 팬클럽에 든다고 야단이었다. 그 당시 나는. 모델이나 영화배우라면 모두 멍청한데다가 하루라도 섹스를 하지 않으면 -그것도 매일 다른 여자와- 미치는 인간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으로.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또 너 바보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나는 '너 바보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그래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떠들었다.

그렇게 얼마간 우리는 비슷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끔 그녀는 '키스해 보고 싶지? 내 가슴 보고 싶지?' 라는 등의 말을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면 하고는 했다. 나는 '너 바보냐?' 라는 표정을 짓는데 익숙해 졌다.

그러다가, 그녀가 온 동네에 자기의 남자친구 자랑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멍청하고 형편없는 -물론 착하기는 했다. 그런데 멍청함에 부속된 착함이 무엇인지는 극명하지 않는가!-녀석이었다. 그저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실실 웃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온 동네 떠들고 다녔다. 물론 그전처럼 나에게 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스쿨버스에서 내 대각선 왼쪽에 앉아서. 내일 그 녀석과 파티를 가기로 했는데, 치마를 입어야 되겠다고 큰 소리로 그녀의 여자친구한테 얘기하고는 했다. 사실 나는 그녀가 치마 입은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고. 그전에 그녀는 공공연히 치마를 입는 여자들을 경멸하는 발언들을 했던지라, 나는 새삼 더욱 기분이 나빴다. 아.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미국 교육제도하에서 중학교 1학년) 이었다.

그 당시 나는 환경보호 써클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해서. 방송국에 나가기도 하고. 우리가 다국적 사람들로 구성된 것을 이용해서. 여러 국제 행사 때. 마스코트 비슷한 것으로 초청되어서 많이 돌아다녔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 나라에서 특권층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외국인 학교였음으로. 매우 바쁘게 불러 다녔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 사람들을 모두 경멸했고.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들과 향수 통들과 같은 '사치'와 '반지구적인' 것을 사용하는 뭐든 것을 '멍청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연관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마'라는 것도 무언가 '멍청한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인지. 나는 죽음의 문제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되었고. 매일 밤, 잠을 자기를 두려워했다. 잠에서 깨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에 온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어쩌면. 그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서 그 멍청한 그녀의 남친과 헤어졌다. 그 당시에 여러 소문으로 알게 된 바로는 그녀는 그애와 사귀기 전에도 몇 명과 사귀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친과 헤어진 이후로. 그녀는 어떤 뚱뚱한 고등학생이랑 사귀기 시작했고. 그녀와 친한 줄 알았던 여자아이들은 뒤에서 그녀를 '창녀'라고 불렀다. 모두들 그녀가 고등학생이랑 사귄다는 것에 어이없어 했다. 그 고등학생은 공부만 하고 뚱뚱한 왕따였는데, 그녀가 수학이나 작문을 물어보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뒤 얼마 후에. 나는 그 왕따와 같이 스쿨버스를 애프터 스쿨 (방과후 서클 활동)이 끝난 뒤 둘이서만 타고 오게 되었는데.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매우 어이없이 했고.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울었고. 버스 기사는 무슨 일이냐고 했다. 다음날 그는 유기정학을 받았다. 그녀는 나를 비난하는 듯이 말했지만. 그다지 강한 비난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왕따를 골려주었다는데, 모두들 통쾌해 했음으로. 나는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을 바보 만들었다고. 나름대로 영웅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그녀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나는 월반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가 어쩌면 월반을 해서 중학교 2학년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내 스스로에게는, 중3 문법은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녀도 월반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었고.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서로 친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나와 그녀는 골프를 같이 배울까. 테니스를 같이 배울까.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내 생각으로는. 골프를 치면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닐 듯싶어서. 테니스를 배울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녀와 내가 같이 선생님한테 배웠다. 2:1 수업을 하다가. 그 다음날 그녀는 기존에 한 달간 배웠던 것이 있어서. 나와 같이 수업을 받는 것보다 단독 교습을 하자고 선생이 그래서. 나와 그녀는 따로따로 수업을 받게 되었다. 나는 곧 테니스에 흥미를 잃었다. 그 당시 엄마에게 했던 말은. 강사가 너무 늙었다. 인종차별을 한다. 성실하지 못하다. 등이였다. 엄마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골프나 같이 치러 다니자고 했지만. 나는 싫다고 했다. 그녀는 테니스를 잘하게 되었고. 매일 테니스를 쳤다. 나는 조금 울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끝나자. 나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은 더러웠고 항상 시끄러웠다. 선생들은 회초리를 가지고 다녔고. 여자들은 모두 못생기고 멍청하거나 못생기고 잘난척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나는 한문 시험을 20점을 받았고. 수학은 30점대였다. 나는 언제나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의 책을 끼고 다녔고, 모든 사람들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물상 선생과 매시간 싸웠고. 그 선생은 화장을 찐하게 하는 노처녀였기 때문에. 나는 화장을 찐하게 하는 노처녀가 물상 선생을 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다닌다는 것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공주병 환자였다. 가끔 예전에 자기 제자 중 한명이 자기에게 사랑고백과 결혼하자는 말을 했다는 것을 말했고. 나는 토하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때쯤이 되면. 노을이 졌고. 눈물이 났다. 밤하늘에는 별도 하나도 없었고. 과외 선생들은 모두가 다 과외를 너무 오래했다.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고.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몰래 냉장고에서 맥주를 마셨다. 썼다. 뱉었다. 무라카미 류를 읽게 되었다. 섹스를 하고 싶었다. 돈이 없었다. 류는 계속 읽었다.

시는 고2때부터 많이 썼다. 대부분 사랑에 대한 시였다. 그리고 살인에 대한 시였다. 당연히도. 나는 하루키와 류를 읽고 있었음으로. 친구들이 많이 가져갔다. 사랑에 대한 시를. 살인에 대한 시는. 나만 읽었다. 죽기 전에 누군가 죽일 수 있을까. 밤이 되면. 그녀와. 살인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죽이고만 싶었다. 항상 이불을 덥고 잤다. 추웠다.

맑스를 읽게 되었다. 윤리 발표 때문이었다. 감동했다. 울었다. 윤리 발표를 했다. 다시 류를 읽었다. 에코의 전날의 섬을 읽었다.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읽었다. 카프라의 동양사상과 현대물리학을 읽었다. 장자 내편을 읽었다. 모의고사 때는 항상 제일 잘 보거나 두 번째거나 했고. 내신은 중간고사 때는 항상 제일 잘 봤지만. 기말고사 때는 전교 10등쯤을 했다. 수능을 보았다. 수능 보기 전날에 기뻤다. 그저. 이제. 다시 그녀를 찾아가리라 했다. 그녀는 고3일 터일 거니까. 전국 수석쯤 하면. 그녀를 과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는 중3때 한국에 왔다.

수능을 봤다. 망했다. 아무 생각 없었다. 장자 내편을 읽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임 선생이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이제. 그녀와 동기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수능을 보았을 때. 언어만 틀렸음으로. 언어만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언제나. 내 답이 옳다고 믿었다. 답이 틀렸다. 답이 틀렸다. 모두들 바보다. 언어학원에. 그녀가 다녔다. 우연히 학원 앞에서 마주쳤다. 나는 크게 놀랐다. 우리는 인사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원외고를 다니고 있었음으로. 나는 대원외고 반을 물어봐서. 그 반에 들어갔다. 20명 정도 수업을 듣고 있었다. 두근거렸다. 첫날. 그녀가 왔다. 놀랐다. 우리는 인사하지 않았다.

둘째 날. 나는 용기를 냈다. 안녕. 안녕. 혹시. 네 옆에 앉아도 되니? 어. 그녀는 웃었다. 나는 집에 갔다. 웃었다. 시를 썼다. 잤다.

그저 그랬다. 우리는 같이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나는 회사원들처럼. 일요일을 항상 기다렸다.

수능을 봤다. 이번에도 언어만 틀렸다. 그녀는 고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갔다. 나도 고대 법대 특차를 쓸까 했다. 그 전에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그녀는 창밖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했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조용했다. 나도 조용했다. 나는 안녕.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고대 특차를 넣지 않았다.

가끔 그녀에게 연락이 온다. 나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그녀가 보고 싶지 않다. 다행이다. 가끔 그녀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만난다. 그녀의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고대 교수였기 때문에 고대에서 공부를 잘 하고 있다. 나는 가끔 시를 썼고. 그녀에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가끔 내게 연락했고. 나는 편지를 썼다가, 지웠다. 그녀는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가 법대를 간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법대생들을 경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고시 공부를 한다는 사람과는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나는 많은 것을 경멸하는데. 사실 언제부턴가 관심이 없다. 많은 것들에 대해. 마음을 닫았다. 비가 내리면 말을 조금 한다. 눈이 내리면 말을 조금 한다. 이제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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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5-2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4년전 글을 다시 읽으니, 내가 많이 변했다는, 또는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상처가 많은 어린 나르시스트였던 것 같다. 요즘은 생각이 없어서 문제다. -_-a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 발표문이다 논문제출자격시험이다, 석사논문이다, 이제 박사시험이다 등등 일상이 너무 빡빡하게 짜여져 있어서 사람이 정말 바보가 되는 듯...
얼른 박사시험을 보고, 다시 감수성 풍부한 인문학도로 돌아가야지. 정말 못 살겠다 -_-;;;;

비자림 2006-05-2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짧은 소설을 읽은 듯.. 시간 나시면 소설로 써 보시면 좋을 듯..
"사실 언제부턴가 관심이 없다. 많은 것들에 대해. 마음을 닫았다. 비가 내리면 말을 조금 한다. 눈이 내리면 말을 조금 한다. 이제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이 부분도 좋네요. 상심한 사람, 그런데 아직 껍데기를 벗고 싶지 않은 젊은 영혼..
제목에 혹해 들어왔다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가끔 들러도 되겠지요?

기인 2006-05-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이지요 ^^ 사실 저도 소설을 매번 쓰고는 싶은데, 계속 포기만 합니다. 이번에 박사시험 보는데, 그거 끝나고나면 정말 써보려고요 ㅎㅎ

비자림 2006-05-2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세요. 잊지 말고 꼭. 그 불꽃 꺼지기 전에 꼬옥..
호호. 저는 능력 없어서 능력 있는 사람들 바람 넣기 대장이랍니다.

기인 2006-05-2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고맙습니다~ ^^

werpoll 2006-06-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어요. 정말 소설 읽는 기분이었어요.
아,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
(무턱대고 꼬리 남겨서 놀라실거같아요 ㅎㅎ) 가끔 놀러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