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대학국어 학생들의 '첫사랑'에 대한 글을 채점하고 첨삭했다. 60여명의 학생들의 글을 읽으니 진이 다 빠졌다. 각자 학생들은 자신만의 소중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했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대동소이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또 경영대 학생인지라,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친구도 없었다. 더군다나 서울대 경영대이니 -_-; (뭐 이미지만 그럴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친구 중 한명은 연대 경영을 갔다가 재수해서 서울대 경영을 들어갔는데, 새내기 때 연대 학생증을 가지고 다니면서 미팅을 하기 까지 했다. 서울대 경영대는 이미지가 별로라고 -_-;;; )
어쨌든, 그래서 나도 내 첫사랑 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도 대학교 2학년때 첫사랑에 대해서 쓴 글이 있어서 찾아서 올려본다. 정말 나도 많이 변했다. 4년도 넘게 지났으니 그럴만도 하다. 나는 무척 시니컬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담배 불에 화상을 입었다. 흐음. 이런 것이 담배빵인가. 뭐 한 0.1초 정도 데인 것에 불과한데. 무지 아프다. 자고 일어나니 더 아파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발랐다. 그러니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앞의 문장은 사실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도 일종의 상징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화상이라는 것은 불에 의한 상처를 일컫는다. 그리고 불은 사랑과 밀접히 연관된다. '불장난'과 '사랑'(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로)과의 연관은 상투적이다. 불같은 사랑. 뭐 그렇다. 어쨌든 담배에 화상을 입고 보니 문득 첫사랑의 상처가 떠올랐다고 하면, 어느정도 말이 되는가? 잘 모르겠다. 담뱃불에 의한 화상 때문에 문득 첫사랑이 생각 낳는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일정 기간 동안 보지 못 본다는 것. 나를 괴롭히는 것. 때문에 첫사랑의 기억이 생각났는지 말이다.
담배라는 것 또한 묘하다. 담뱃불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 담배라는 것은 성인에게 허용된 마약이다. 사랑은 어떠한가? 담배-사랑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사랑과 첫담배에 대해서도 말이다. 첫담배의 쓴 고통.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참. 그리고 첫사랑.
뭐. 대충 담뱃불에 디였다. 그런데 문득 첫사랑이 생각났다. 이 중간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첫사랑 생각이 났고. 조금은 우울했다.
나는 그녀를 매일 보았다. 그녀가 나를 매일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녔다거나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나는 조금 귀찮음증 환자였다. 그녀는 나를 꽤 좋아했고, 나는 그 당시 꽤 조용했음으로. 그녀가 주로 떠들고. 나는 주로 들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말을 했음으로, 나는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그녀가 원하는 것들과. 그녀의 하루일과.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들. 그녀의 부모님. 그녀의 동생. 그녀의 걱정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나에 대해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죽음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무관심했음으로. 내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할 이야기도 없었다. 나는 항시. 죽음과 피와 파괴와 신과 악마와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만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음으로.
그녀는 항상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속으로. 내가 훗날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의 이미지란. 너무 뻔하고 심심한 것 이였기 때문에. 그다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도대체가 그 때는 결혼을 하는 사람이란 뭐든 뻔하게 멍청한 자들로써. 오직 유신론자들이나 무신론자들 중 일부 멍청한 이들만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짐짓 너 바보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잡지에서 잘 생긴 모델을 오려서 방의 거울에다 붙여 놓거나, 어떤 영화배우의 팬클럽에 든다고 야단이었다. 그 당시 나는. 모델이나 영화배우라면 모두 멍청한데다가 하루라도 섹스를 하지 않으면 -그것도 매일 다른 여자와- 미치는 인간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으로.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또 너 바보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나는 '너 바보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그래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떠들었다.
그렇게 얼마간 우리는 비슷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끔 그녀는 '키스해 보고 싶지? 내 가슴 보고 싶지?' 라는 등의 말을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면 하고는 했다. 나는 '너 바보냐?' 라는 표정을 짓는데 익숙해 졌다.
그러다가, 그녀가 온 동네에 자기의 남자친구 자랑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멍청하고 형편없는 -물론 착하기는 했다. 그런데 멍청함에 부속된 착함이 무엇인지는 극명하지 않는가!-녀석이었다. 그저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실실 웃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온 동네 떠들고 다녔다. 물론 그전처럼 나에게 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스쿨버스에서 내 대각선 왼쪽에 앉아서. 내일 그 녀석과 파티를 가기로 했는데, 치마를 입어야 되겠다고 큰 소리로 그녀의 여자친구한테 얘기하고는 했다. 사실 나는 그녀가 치마 입은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고. 그전에 그녀는 공공연히 치마를 입는 여자들을 경멸하는 발언들을 했던지라, 나는 새삼 더욱 기분이 나빴다. 아.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미국 교육제도하에서 중학교 1학년) 이었다.


그 당시 나는 환경보호 써클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해서. 방송국에 나가기도 하고. 우리가 다국적 사람들로 구성된 것을 이용해서. 여러 국제 행사 때. 마스코트 비슷한 것으로 초청되어서 많이 돌아다녔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 나라에서 특권층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외국인 학교였음으로. 매우 바쁘게 불러 다녔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 사람들을 모두 경멸했고.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들과 향수 통들과 같은 '사치'와 '반지구적인' 것을 사용하는 뭐든 것을 '멍청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연관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마'라는 것도 무언가 '멍청한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인지. 나는 죽음의 문제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되었고. 매일 밤, 잠을 자기를 두려워했다. 잠에서 깨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에 온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어쩌면. 그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서 그 멍청한 그녀의 남친과 헤어졌다. 그 당시에 여러 소문으로 알게 된 바로는 그녀는 그애와 사귀기 전에도 몇 명과 사귀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친과 헤어진 이후로. 그녀는 어떤 뚱뚱한 고등학생이랑 사귀기 시작했고. 그녀와 친한 줄 알았던 여자아이들은 뒤에서 그녀를 '창녀'라고 불렀다. 모두들 그녀가 고등학생이랑 사귄다는 것에 어이없어 했다. 그 고등학생은 공부만 하고 뚱뚱한 왕따였는데, 그녀가 수학이나 작문을 물어보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뒤 얼마 후에. 나는 그 왕따와 같이 스쿨버스를 애프터 스쿨 (방과후 서클 활동)이 끝난 뒤 둘이서만 타고 오게 되었는데.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매우 어이없이 했고.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울었고. 버스 기사는 무슨 일이냐고 했다. 다음날 그는 유기정학을 받았다. 그녀는 나를 비난하는 듯이 말했지만. 그다지 강한 비난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왕따를 골려주었다는데, 모두들 통쾌해 했음으로. 나는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을 바보 만들었다고. 나름대로 영웅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그녀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나는 월반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가 어쩌면 월반을 해서 중학교 2학년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내 스스로에게는, 중3 문법은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녀도 월반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었고.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서로 친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나와 그녀는 골프를 같이 배울까. 테니스를 같이 배울까.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내 생각으로는. 골프를 치면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닐 듯싶어서. 테니스를 배울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녀와 내가 같이 선생님한테 배웠다. 2:1 수업을 하다가. 그 다음날 그녀는 기존에 한 달간 배웠던 것이 있어서. 나와 같이 수업을 받는 것보다 단독 교습을 하자고 선생이 그래서. 나와 그녀는 따로따로 수업을 받게 되었다. 나는 곧 테니스에 흥미를 잃었다. 그 당시 엄마에게 했던 말은. 강사가 너무 늙었다. 인종차별을 한다. 성실하지 못하다. 등이였다. 엄마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골프나 같이 치러 다니자고 했지만. 나는 싫다고 했다. 그녀는 테니스를 잘하게 되었고. 매일 테니스를 쳤다. 나는 조금 울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끝나자. 나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은 더러웠고 항상 시끄러웠다. 선생들은 회초리를 가지고 다녔고. 여자들은 모두 못생기고 멍청하거나 못생기고 잘난척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나는 한문 시험을 20점을 받았고. 수학은 30점대였다. 나는 언제나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의 책을 끼고 다녔고, 모든 사람들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물상 선생과 매시간 싸웠고. 그 선생은 화장을 찐하게 하는 노처녀였기 때문에. 나는 화장을 찐하게 하는 노처녀가 물상 선생을 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다닌다는 것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공주병 환자였다. 가끔 예전에 자기 제자 중 한명이 자기에게 사랑고백과 결혼하자는 말을 했다는 것을 말했고. 나는 토하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때쯤이 되면. 노을이 졌고. 눈물이 났다. 밤하늘에는 별도 하나도 없었고. 과외 선생들은 모두가 다 과외를 너무 오래했다.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고.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몰래 냉장고에서 맥주를 마셨다. 썼다. 뱉었다. 무라카미 류를 읽게 되었다. 섹스를 하고 싶었다. 돈이 없었다. 류는 계속 읽었다.
시는 고2때부터 많이 썼다. 대부분 사랑에 대한 시였다. 그리고 살인에 대한 시였다. 당연히도. 나는 하루키와 류를 읽고 있었음으로. 친구들이 많이 가져갔다. 사랑에 대한 시를. 살인에 대한 시는. 나만 읽었다. 죽기 전에 누군가 죽일 수 있을까. 밤이 되면. 그녀와. 살인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죽이고만 싶었다. 항상 이불을 덥고 잤다. 추웠다.



맑스를 읽게 되었다. 윤리 발표 때문이었다. 감동했다. 울었다. 윤리 발표를 했다. 다시 류를 읽었다. 에코의 전날의 섬을 읽었다.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읽었다. 카프라의 동양사상과 현대물리학을 읽었다. 장자 내편을 읽었다. 모의고사 때는 항상 제일 잘 보거나 두 번째거나 했고. 내신은 중간고사 때는 항상 제일 잘 봤지만. 기말고사 때는 전교 10등쯤을 했다. 수능을 보았다. 수능 보기 전날에 기뻤다. 그저. 이제. 다시 그녀를 찾아가리라 했다. 그녀는 고3일 터일 거니까. 전국 수석쯤 하면. 그녀를 과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는 중3때 한국에 왔다.
수능을 봤다. 망했다. 아무 생각 없었다. 장자 내편을 읽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임 선생이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이제. 그녀와 동기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수능을 보았을 때. 언어만 틀렸음으로. 언어만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언제나. 내 답이 옳다고 믿었다. 답이 틀렸다. 답이 틀렸다. 모두들 바보다. 언어학원에. 그녀가 다녔다. 우연히 학원 앞에서 마주쳤다. 나는 크게 놀랐다. 우리는 인사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원외고를 다니고 있었음으로. 나는 대원외고 반을 물어봐서. 그 반에 들어갔다. 20명 정도 수업을 듣고 있었다. 두근거렸다. 첫날. 그녀가 왔다. 놀랐다. 우리는 인사하지 않았다.
둘째 날. 나는 용기를 냈다. 안녕. 안녕. 혹시. 네 옆에 앉아도 되니? 어. 그녀는 웃었다. 나는 집에 갔다. 웃었다. 시를 썼다. 잤다.
그저 그랬다. 우리는 같이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나는 회사원들처럼. 일요일을 항상 기다렸다.
수능을 봤다. 이번에도 언어만 틀렸다. 그녀는 고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갔다. 나도 고대 법대 특차를 쓸까 했다. 그 전에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그녀는 창밖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했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조용했다. 나도 조용했다. 나는 안녕.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고대 특차를 넣지 않았다.
가끔 그녀에게 연락이 온다. 나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그녀가 보고 싶지 않다. 다행이다. 가끔 그녀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만난다. 그녀의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고대 교수였기 때문에 고대에서 공부를 잘 하고 있다. 나는 가끔 시를 썼고. 그녀에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가끔 내게 연락했고. 나는 편지를 썼다가, 지웠다. 그녀는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가 법대를 간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법대생들을 경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고시 공부를 한다는 사람과는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나는 많은 것을 경멸하는데. 사실 언제부턴가 관심이 없다. 많은 것들에 대해. 마음을 닫았다. 비가 내리면 말을 조금 한다. 눈이 내리면 말을 조금 한다. 이제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