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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형식 - 2003 제3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방현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감동적이다.
'그대 계속해서 가라. 그러면 어딘가에 닿게 되리라.'라는 레지투이, 시인 반레의 말이 가슴에 울린다.
'무언가를 꿈꾸려는 자는 그 꿈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줄기차게 묵묵히 투쟁하는 창은의 말.
의심의 눈초리로, 아니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목소리를 문태는 레지투이에게 던진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싸운 건 아니잖아요?'
나는 중국에 잠깐 다녀왔을때, '공산주의'의 흔적을 보기 위해 애썼다. 중국 대학생들, 회사원들에게 중국 현재를 물었고, 공산주의를 물었고 자본주의를 물었다. 당연한듯이 '많이 나아졌다, 자본주의화'되어야 한다, 고 답했다. 그래도 나는 어떤 징후, 어떤 소박한 행복의 징후를 찾기 위해 애썼을 때, 우리 가이드를 해준 조선족 누님은 한족과 조선족의 차별대우, 천안문 학살을 말해 주었다. 자금성 앞에 모택동 사진이 걸린 것이 바라다보이는 천안문. 경찰들이 사복차람으로 항시 근무하고 있단다. 나는 이들이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중국에서 떠오르는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명문대 대학생으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며 미국 유학을 꿈꾸는 경제학도가 이틀 동안 우리의 가이드였고, 다른 날 동안에는 중국에서 선망받는 '외국계 기업인 삼성'의 회사원이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과 베트남은 다르다. 내가 알기로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대외 정책을 펴지 않는다. 굳건히 공산주의 체제를 지켜나가고 있으며 자조자립의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준주변부 국가의 대표주자인 한국인이 보기에는 베트남은 턱없이 가난하다. 그래서 변호사-자본주의의 하수인의 대표적 직업!-인 문태는 이렇게 묻는다. 아마 자신에게 묻고 싶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자신의 현재가 묻고 확인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싸운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을 끝냈을 뿐이지요. 다음 세대에게는 또 다음 세대가 해결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요. 우리가 다 해버리면 다음 세대는 뭘 하고 살겠어요? 어떤 세대도 다음 세대가 할 일을 미리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들으니까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갈까요. 제가 보기에는 참 위태로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을 얻기위해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바친 희생은 너무 큰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후회가 없단 말이에요?'
'우리는 공산주의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를 살았어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쪽에서 우리는 십년을 싸웠지만, 최소한 그 십년 동안 나와 내 친구들은 공산주의의 삶을 살았어요. 자기가 살지 않은 것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겠어요? 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기르면서 가르쳐준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내가 군대에 지원해서 전쟁터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말했어요. '아들아,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고 욕할 수는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을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일까. 문태와 재우 사이에 있지 않았나. 아니 그 보다도 멀지 않았을까. 내 주위 창은과 레지투이들. 문득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