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변명
필립 시드니 / H.S MEDIA(한신문화사) / 1990년 9월
품절


시는 인간의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그리고 거기에서 다른 학문들이 시작되었으므로 가장 아버지다운 연조를 지니고 있나니, 그것은 개화된 어느 나라에서도 멸시받지 않고 또한 야만적인 어느 나라에도 없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이므로, 로마와 희랍이, 전자는 그것에 예언의, 후자는 제작의 거룩한 이름달을 부여하였고 그리고 다른 예술들이 그것들의 소재속에 스스로를 간직하고, 말하자면, 거기에서 그것들의 존재를 받아 들이는데 반하여, 시인만이 자신의 소재를 가져오고, 그리고 소재로부터 관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위해 소재를 만드는 것임을 생각할 때, 만든다는 이름이 실로 그것에 적합하므로, 그의 기술이나 목적이 어떤 악도 포함하고 있지 않아 표현된 것도 악이 될 수 없으므로, 그것의 효과는 선을 가르치고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만큼 선한 것이므로 그점에서, 즉 모든 지식의 으뜸인 도덕적 교훈에서 그는 역사가를 훨씬 능가할 뿐 아니라 가르치는 것에서는 거의 철학자와 비교할 만하고 그리고 감동시키는 것에서는 그를 앞지르므로, 어떤한 불결함도 없는 성서가 그속에 있는 전체적인 부분들을 시적으로 가지고 있고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까지도 황공하게 그것의 비유를 이용하였으므로, 그것의 종류들이 통합된 형태로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분리속에서도 충분히 칭찬받을만하므로, 나는 생각건대, 그리고 옳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데, 개선하는 장군들에게 약속된 월계관은 모든 다른 학문들 가운데서도 시인의 개선에 훌륭히 경의를 표한다.-72~73쪽

여기서 시는 지금의 ‘시’와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학’과도 외연과 내포가 일치하지 않는다. ‘희곡’도 ‘시’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지만 ‘시’의 합당한 ‘옷’은 운율이라고 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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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9
최인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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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아메리카의 경이로운 현실에 대하여'라는 마술적 사실주의 선언문을 썼다. 사실 그 때 그는 '경이로운 현실'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그것이 여차저차해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으로 용어가 변모했다. 아마 이 용어의 울림이 더욱 풍부하고 역설적으로 다가와서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경이로운 현실 혹은 마술적 사실주의. 어찌보면 물과 기름 같은 용어들의 결합인 것 같기도 하다. 'magic'과 'real' 이라는 용어. 현실과 마술의 결합. 그러나 실상 현실이야말로 마술의 근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경이로운 현실' 이다. 이는 초현실주의자의 경이로움과는 다르다. 그들의 경이로움은 그들 자신이 환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마술적 사실주의는 다르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럼으로 그것에서 매력이 발생한다. 자신이 거짓이라 믿는 것을 나열하는 것은 속임수일 뿐이다.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현실의 경이로움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것, 그것이 마술적 사실주의이다. 이를 루이스 레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의 핵심은 상상의 존재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신비스러운 관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에서 작가는 환상문학 작가들과는 달리 사건의 신비를 해명할 필요가 없다'

이제 <<타인의 방>>을 바라보자.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 아내가 집에 없음에 화를 낸다. 그는 집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것이리라. 자신이 열쇠를 가지고 있음에도 문을 절박하게 두드린다. 가정의 아내가 남편을 열어주기를. 그러나 아내는 '집'에 없다. 그는 화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밤이 찾아온다. 암흑이. 천개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어둠. 사물들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연회와 축제를 시작한다. 그는 처음에 저항한다. 철저히 저항한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술적인 그리고 경이로운 현실에 대해.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사물들과 공범이 되고 싶어한다. 그 순간 그는 경직되어 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방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서 사물들과 공범이 되려하는 순간 그는 방으로 化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하는 현실은 실로 '경이롭다'. 다른 아이들과 놀 때, 아이들은 왕자로 공주로 화하고 진짜 자신을 공주라 믿고 왕자라 믿고 생활한다. 그러면 주위 공간들도 바뀐다. 평범한 놀이터가 왕들의 궁전이 되고, 모래 덩어리가 진수성찬으로 화한다. 밤에 그림자들은 늙은 노파의 망토가 되고, 이를 믿고 울면서 어머니의 방으로 달려간다. 그가 만든 조립 장난감은 세계의 지배자가 되고, 동생이 만든 조립 장난감은 세계를 위협하는 악마가 되어 그 둘은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그들에게 이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경이로운 현실' '마법적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몸 또한 그 곳에 맞추어지게 된다. 그들의 몸 또한 변화한다. 때문에 그들이 왕자가 되었을 때는 그들은 품위 있게 행동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강한 사자라고 생각할 때는 그들은 으르렁되면서 친구들을 공격한다.

<<타인의 방>>에서 한순간 남자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경이로운 현실의 공모자가 되려 했다. 그러자 그는 이내 방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작가는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묘사했다. 즉 다시 태어남. 다시 아이로 돌아감! 마법적 세계로 그는 잠입했다. 그러나 방에 돌아온 '어른'인 아내는 어떠한가. 경이로운 현실로 인해 변화된 그를 그냥 물건으로 파악하고 사용하다가 버리고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간다. 그녀에게 현실에서 마법적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 또한 물적가치로만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경이로운 현실. 마법적 리얼리즘. 이것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아닐지. 그리고 이는, 나에게 어린 시절 마법적 세계에서 뛰어 놀던, 그 경이로움과 마술적 현실을 생각나게 했다.
마술적 사실주의,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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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끝나고 무게를 달았는데 77kg니까 진짜(?)로는 78kg이다. 미지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80kg대의 몸무게로! 정말, 탐구해보고 싶지 않다............ ㅜㅠ

아버지는 항상, 남자가 쌀 한가마니의 몸무게는 되야지라고 하셨는데, 이런 날이 정말로 올줄이야.

오늘 학교에 갔는데, 한 여자 선배가 '엄청 살쪘다'라고 해서 또 충격.

어제 먹은 피자 한판이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ㅡ.ㅡ;

 

오늘 저녁은 콘프레이크이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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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5-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세계, 제가 있어봐서 아는데 있을 곳이 아닙니다. 어제 운동 못해서 바지가 더 째이네요...ㅠㅠ

기인 2006-05-2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세계에 계시는 군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그 세계도 넘어스셨습니다. 요즘 어머니와 애인에게서 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진짜 빼야지... 라고 말만 하고 있습니다 ㅜㅠ

마태우스 2006-05-24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있을 건 아니어요!!!!!!

기인 2006-05-24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 저도 위가 아닌 아래로 가려고요 ^^;;;
 
 전출처 : mannerist > 마태우스님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

관련 페이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80965

제 댓글의 핵심은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을 외쳐온 노빠들이 승리 지상주의, 그것도 본질의 변화 없는 껍데기에 대한 숭상, 눈가리고 아옹으로 다시 한 번 속아달라고 호소하는 데 있습니다. 이미지정치에 대한 흐름의 지적은 인정하다 치더라도 그 이미지를 뒷받침할 정책집 자체가 전문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단언컨데, 둘은 오로지 카메라 앞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있다면 대한민국 1%의 집단과 10%의 집단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90%에게는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감세 정책 하나만 논해봅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TV토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게 법인세 인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이회창의 적극 찬성에 반하여, 한국 최상위층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감세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시간을 1년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2003년 8월  한나라당은 '27%~15%'였던 당시 법인세율을 '26~13%'로 각각 1%P, 2%P씩 인하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저 비율을 나누는 기준이 아마 1억일겁니다.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해도 모자랄 판에, 그해 12월 재경부 출신 여당 의원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25~13%로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과세표준 1억 이상 대상에 있어 한나라당보다 1%더 나아간 안건입니다. 노통은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감세된 돈의 대부분은 대기업의 호주머니 속으로 돌아갔고 2조가 넘는 그 돈은 서민들 삥 뜯어 채웠습니다.

2004년의 소득세와 특소세 감세를 이야기해볼까요? 다시 감소된 소득세 1%를 뜯어보면 자영업자 상위 10%가 세금 감면액의 70%이상을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소세 물품 24개 종목, 골프채나 PDP같은 제품들 특소세 감면과 월소득 200 ~ 300만원의 서민 경제 활성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부동산 대책도 한 번 이야기해봅시다. 아파트에 규제를 하면 주상복합을 풀어주고 주상복합을 규제하면 재개발을 풀어주는 등, 투기처 잃은 돈의 사용처를 정책으로 지적해 가며 풀어준 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참여정부입니다.

외평채 문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팔아치울때마다 떨어지는 환율을 방어하려고 원화 풀어놓고, 그렇게 달러가 방어되면 다시 대기업들이 달러 팔아치워 자사주 매입하고, 그렇게 떨어진 환율 다시 원화 풀고... 이런 악순환을 계속 하는 동안 현재 외평채가 30조원인 걸로 압니다. 2000년의 자그만치 다섯 배인가 여섯 배인가 그럴겁니다. 감이 잘 안오실지 모르니 쉽게 이야기해서, 국민들 세금 빨아내서 대기업 수익 채워주는 보조로 쓰인 돈이 2000년에 비해 다섯 배인가 여섯 배가 늘었다는 이야깁니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고용 효과가 그렇게 늘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기술집약적 사업, 비용 절감 등을 통해 고용창출 효과는 전시대에 비해 미미한 수준입니다.

FTA? 자신감 운운하며 재경부 관료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귀 막고 있습니다.

국보법 폐지 못했습니다.

사학법 절름발이 만들어놓고 그나마도 못하겠다고 '협의의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과 협의해서 처리한 것이라고는 최근의 국민소환제 뿐입니다. 그나마도 하다하다 막판에 울며 겨자먹기로 생색낸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입만 열면 개혁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한나라당과 손을 잡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벌이는 열린우리당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대놓고 자신들의 욕망을 부르짖는 한나라당보다, 개혁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뒤에서 저런 짓을 벌이는 데 한나라당보다 더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태우스님께 감히 여쭙습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차이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개별 정책과 노선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문지상에 오르고내리는 말잔치 말고, 실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보인 행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결과가 없는 수사란 정치적 책임의 소재일 뿐입니다.

 

제가 열린우리당과 강금실을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개혁 팔아 자신들의 권력과 잇속 챙기는 것 말고는 철저한 무능력과 구태를 보인 집단이, 반성 없이 얼굴마담 내세워서 면피해보려는 모양새를 또 보이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강금실의 비정치적 장점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선거 승리를 위해 모인 비한나라당 잡색군)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결과를 되새겨보고도 얻는 게 없다면, 다시 한 번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일단 제 댓글의 핵심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제 주장에 대해 충분히 논증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퇴근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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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使人也. 論語 陽貨篇 중에서

군자가(즉 다스리는자)가 도(지배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음?)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즉 다스림받는자)가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

음. 처음에는 재미로. 라고 생각을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알튀세르의 분석이 당연히 논어에도 해당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항상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 라는 상태를 정신분석적으로 어떤 상태일까 공상하고는 했는데, 헤겔이 말하는 국가와 왕의 관계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듯 해요. 결국 상징계 자체에 완벽한 진입, 상징계 자체로 되는 군주(성현) 혹은 군자(군주의 보조자) 쯤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종심소욕불유구 라니!



당신을 보았습니다. -공자가 프로이트와 라깡에게


나는 억압이 없음으로 무의식이 없습니다. 하루는 개그맨 시험을 보러 갔는데,

'억압이 없는 자(者)는 무의식이 없다. 무의식이 없는 너에게 무슨 농담이냐'라고 말하면서 나를 떨어뜨리려는 방송국 pd가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抗拒)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한니발, 쉬레버, 부쉬는 벽에다 똥칠만 하는 병자(病子)인 줄을 알았습니다.

뇌수술을 할까, 예수될까, 제엔장 사람이나 디립따 죽일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_-a


논어도 물론이지만, 노자마저도 치세술과 군자(왕을 돕는 정치인) 혹은 성현(왕)의 통치를 위한 정치술로 보는 견해도 참 흥미로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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