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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9
최인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아메리카의 경이로운 현실에 대하여'라는 마술적 사실주의 선언문을 썼다. 사실 그 때 그는 '경이로운 현실'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그것이 여차저차해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으로 용어가 변모했다. 아마 이 용어의 울림이 더욱 풍부하고 역설적으로 다가와서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경이로운 현실 혹은 마술적 사실주의. 어찌보면 물과 기름 같은 용어들의 결합인 것 같기도 하다. 'magic'과 'real' 이라는 용어. 현실과 마술의 결합. 그러나 실상 현실이야말로 마술의 근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경이로운 현실' 이다. 이는 초현실주의자의 경이로움과는 다르다. 그들의 경이로움은 그들 자신이 환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마술적 사실주의는 다르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럼으로 그것에서 매력이 발생한다. 자신이 거짓이라 믿는 것을 나열하는 것은 속임수일 뿐이다.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현실의 경이로움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것, 그것이 마술적 사실주의이다. 이를 루이스 레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의 핵심은 상상의 존재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신비스러운 관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에서 작가는 환상문학 작가들과는 달리 사건의 신비를 해명할 필요가 없다'
이제 <<타인의 방>>을 바라보자.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 아내가 집에 없음에 화를 낸다. 그는 집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것이리라. 자신이 열쇠를 가지고 있음에도 문을 절박하게 두드린다. 가정의 아내가 남편을 열어주기를. 그러나 아내는 '집'에 없다. 그는 화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밤이 찾아온다. 암흑이. 천개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어둠. 사물들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연회와 축제를 시작한다. 그는 처음에 저항한다. 철저히 저항한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술적인 그리고 경이로운 현실에 대해.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사물들과 공범이 되고 싶어한다. 그 순간 그는 경직되어 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방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서 사물들과 공범이 되려하는 순간 그는 방으로 化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하는 현실은 실로 '경이롭다'. 다른 아이들과 놀 때, 아이들은 왕자로 공주로 화하고 진짜 자신을 공주라 믿고 왕자라 믿고 생활한다. 그러면 주위 공간들도 바뀐다. 평범한 놀이터가 왕들의 궁전이 되고, 모래 덩어리가 진수성찬으로 화한다. 밤에 그림자들은 늙은 노파의 망토가 되고, 이를 믿고 울면서 어머니의 방으로 달려간다. 그가 만든 조립 장난감은 세계의 지배자가 되고, 동생이 만든 조립 장난감은 세계를 위협하는 악마가 되어 그 둘은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그들에게 이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경이로운 현실' '마법적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몸 또한 그 곳에 맞추어지게 된다. 그들의 몸 또한 변화한다. 때문에 그들이 왕자가 되었을 때는 그들은 품위 있게 행동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강한 사자라고 생각할 때는 그들은 으르렁되면서 친구들을 공격한다.
<<타인의 방>>에서 한순간 남자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경이로운 현실의 공모자가 되려 했다. 그러자 그는 이내 방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작가는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묘사했다. 즉 다시 태어남. 다시 아이로 돌아감! 마법적 세계로 그는 잠입했다. 그러나 방에 돌아온 '어른'인 아내는 어떠한가. 경이로운 현실로 인해 변화된 그를 그냥 물건으로 파악하고 사용하다가 버리고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간다. 그녀에게 현실에서 마법적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 또한 물적가치로만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경이로운 현실. 마법적 리얼리즘. 이것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아닐지. 그리고 이는, 나에게 어린 시절 마법적 세계에서 뛰어 놀던, 그 경이로움과 마술적 현실을 생각나게 했다.
마술적 사실주의,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