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구판절판


자전거 속도가 느리니 경치가 더 오래 눈에 머물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봤는지,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안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의 진한 느낌이 있다. 자전거는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다. 넓고 긴 연속성에 잠수하는 경험이지, 단편적인 장면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으면 객체를 인식해낼 수 없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신과 세계가 미분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은 의식적으로 그 구분을 허물고 미분화된 상태로 들어가는 행위다. 나는 그 경치의 일부가 된다. 심해에서 수영하는 것과 똑같다. 해변으로 돌아오면 무엇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는 바다의 일부였던 것이다.-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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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때 이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이 영화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도 없네요. 잔잔한 휴머니즘 영화이면서, 또 성장영화입니다. 퇴역군인인 프랭크(알 파치노)는 실질적으로 맹인으로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가족들이 멀리합니다. 가족이라고 해 봤자, 누이동생네 부부이고요. 추수감사절날 누이동네 식구는 자기끼리 여행을 떠나고, 그 동안 프랭크를 봐줄 모범생 찰리(크리스 오도넬)이 그와 함께하면서 프랭크가 돌연 뉴욕으로 떠나 좋은 호텔에서 좋은 음식, 탱고, 심지어 스포츠카 드라이빙 까지 하면서 스스로의 자살을 예비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해피 앤딩으로 찰리와 프랭크 모두 서로에 의해 변화된 삶으로 끝납니다.

일종의 두 남자의 버디 영화일 수도 있고, 성장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노련하지만 시각적 장애가 있는 프랭크와 젊고 튼튼하지만 세상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찰리라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보완해 나간다는 것일 터입니다.

소년-청년의 이행기에 있는 찰리에 관객들은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인생의 황혼기에 한창 때를 회고하면서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이, 지위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프랭크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도 그렇고,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의 우정을 그린 점도 그렇고 약간 편향된 남성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프랭크는 아버지와 같이 찰리에게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 찰리는 아들처럼 프랭크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이를 덜어줍니다. 그 와중에 '여성'이란 프랭크를 사랑하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어느새 자기 가족들의 움직임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그의 여동생이나, 프랭크가 멋지게 함께 탱고를 추는 젊고 어여쁜 여성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즉 부-자 관계에 있어 '어머니'는 타자로만 존재할 뿐인 것이죠. 그럼에도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것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을 바로 '여인'으로 삼은 것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사실 위대해 보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외롭고 약한 고독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 영화는 거꾸로, 무뚝뚝하고 옹고집이면서 보잘것 없이 보였던 늙은이가, 사실은 위대하면서 동시에 외롭고 약하고 고독한 존재라는 것, 그것이 아버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여성'이라는 타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죠.

여성을 타자화시키는 것은 이런 구조의 '부-자' 관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부-자' 관계는 '모-자' 관계처럼 원초적인 관계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적 노력에 의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서로 이해를 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기도 하는, 그런 망설임과 멍들 속에서 점차 진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말이 길어졌는데 ^^;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910357

 

비자림님 이벤트로 쓴 건데, 내가 다른 서재에 쓴 글을 어떻게 퍼가는지 몰라서 그냥 긁어옵니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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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자림 > 기억나는 영화 이야기 올려 주세요(이벤트)

저번에 번 돈도 있고 해서 작은 이벤트를 저도 처음 해 보려고 합니다. (쏜다고 했지요? 근데 이거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약간 어색하네요. 호호)

여러분이 본 영화들 중 가장 기억나거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에 대하여 소개하는 말씀을 하시면 되구요, 추천이나 댓글을 많이 받은 분 5명을 선정하여 만 원 이내의 책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올리신 분께도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7월 말이면 다락방을 조금 비울 것 같아 기간은 조금 짧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다음 주 수요일(7월 12일)  밤 12시로 마감하겠습니다.

 

 

뱀꼬리 : 알라딘 초보 폐인이라 지기님께서 이벤트가 잘 진행될 지 사뭇 염려하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지만, 여러 선배님들의 내공을 믿으며 한 번 열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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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구판절판


자식 이름을 따서 아버지를 부르는, 널리 퍼진 풍습은 간혹 외견상 과거 모계사회에서 어머니가 소유했던 자식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부권을 내세우려는 아버지 쪽의 욕망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자식 이름을 따서 어머니를 지칭하는 유사한 풍습은 해명해 주지 못한다. 그런 풍습은 보통 자식 이름을 따서 아버지를 지칭하는 풍습과 공존하고 있다. (...) 그러나 그것이 직접 상대하는 당사자의 본명을 부르는 데 대한 거부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모든 관습을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해명할 수 있다. 그러한 거부감의 근저에는 아마도 악령의 주의를 끄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일부 있을 것이고, 마법사들이 그로 인해 이름의 소유자에게 해를 끼칠 수단을 얻게 될까 우려하여 마법사들에게 이름을 알리지 않으려는 생각도 일부 있을 것이다.-271쪽

폴리네시아 추장의 몸에 부여된 신성함은 자연스럽게 이름에까지 연장되었다. 원시적 관점에서 볼 ‹š, 이름은 그 소유자의 신체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줄루 왕국과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미 본 것과 똑같이 폴리네시아에서도 우리는 추장의 이름이나 그와 유사한 일상어를 말하는 데 대한 체계적 금제를 발견한다. 이를테면 뉴질랜드에서는 추장의 이름이 일상적 단어와 우연히 일치하면, 그 단어를 언어영역에서 폐기하고 다른 단어로 대체할 정도로 그 이름을 신성시한다.-284쪽

왜 아버지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면 안되는지, 또 옛 어른들은 왜 호를 썼는지 등을 설명해준다. 왕의 이름을 피하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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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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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왕의 신체 일부분이 불구가 되면 신하들도 독같이 불구자가 되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규칙은 아마도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왕을 살해하는 관습을 폐지할 때 제정했을 것이다. 예컨대 이빨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왕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대신에, 모든 신하가 똑같이 이빨을 하나씩 빼도록 의무화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괘씸하게도 신하들이 왕보다 우월한 지점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종류의 규칙은 다르푸르 술탄의 궁정에서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다. 술탄이 기침을 하면 모든 사람이 윗니 뿌리에 혀를 부딪쳐 "쯔쯔" 소리를 낸다. 술탄이 재채기를 하면 한 자리에 있던 사람이 모두 원숭이 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술탄이 말에서 떨어지면 모든 수행원이 똑같은 방식으로 떨어진다. 누구든 안장에 그냥 앉아 있으면 지위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으로 끌어내려 두들겨 팼다.-310쪽

중앙아프리카 우간다 왕의 궁정에서는 왕이 웃을 때 모든 사람이 웃고, 왕이 재채기할 때 모든 사람이 재채기를 하며, 왕이 감기에 걸렸을 때 모든 사람이 감기에 걸린 시늉을 하고, 왕이 머리를 깎으면 모든 사람이 머리를 깎았다. 셀레베스에 있는 보니의 궁정에서는 모든 신하가 왕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따라하는 것이 관례다. 왕이 일어나면 그들도 일어나고, 왕이 앉으면 그들도 앉는다. 왕이 말에서 떨어지면 그들도 말에서 떨어진다. 왕이 목욕을 하면 그들도 목욕을 하며, 지나가던 행인들도 좋은 옷이든 나쁜 옷이든 입은 옷 그대로 물 속에 들어가야 한다.-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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