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학교 때 이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이 영화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도 없네요. 잔잔한 휴머니즘 영화이면서, 또 성장영화입니다. 퇴역군인인 프랭크(알 파치노)는 실질적으로 맹인으로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가족들이 멀리합니다. 가족이라고 해 봤자, 누이동생네 부부이고요. 추수감사절날 누이동네 식구는 자기끼리 여행을 떠나고, 그 동안 프랭크를 봐줄 모범생 찰리(크리스 오도넬)이 그와 함께하면서 프랭크가 돌연 뉴욕으로 떠나 좋은 호텔에서 좋은 음식, 탱고, 심지어 스포츠카 드라이빙 까지 하면서 스스로의 자살을 예비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해피 앤딩으로 찰리와 프랭크 모두 서로에 의해 변화된 삶으로 끝납니다.

일종의 두 남자의 버디 영화일 수도 있고, 성장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노련하지만 시각적 장애가 있는 프랭크와 젊고 튼튼하지만 세상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찰리라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보완해 나간다는 것일 터입니다.

소년-청년의 이행기에 있는 찰리에 관객들은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인생의 황혼기에 한창 때를 회고하면서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이, 지위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프랭크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도 그렇고,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의 우정을 그린 점도 그렇고 약간 편향된 남성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프랭크는 아버지와 같이 찰리에게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 찰리는 아들처럼 프랭크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이를 덜어줍니다. 그 와중에 '여성'이란 프랭크를 사랑하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어느새 자기 가족들의 움직임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그의 여동생이나, 프랭크가 멋지게 함께 탱고를 추는 젊고 어여쁜 여성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즉 부-자 관계에 있어 '어머니'는 타자로만 존재할 뿐인 것이죠. 그럼에도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것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을 바로 '여인'으로 삼은 것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사실 위대해 보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외롭고 약한 고독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 영화는 거꾸로, 무뚝뚝하고 옹고집이면서 보잘것 없이 보였던 늙은이가, 사실은 위대하면서 동시에 외롭고 약하고 고독한 존재라는 것, 그것이 아버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여성'이라는 타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죠.

여성을 타자화시키는 것은 이런 구조의 '부-자' 관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부-자' 관계는 '모-자' 관계처럼 원초적인 관계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적 노력에 의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서로 이해를 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기도 하는, 그런 망설임과 멍들 속에서 점차 진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말이 길어졌는데 ^^;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910357

 

비자림님 이벤트로 쓴 건데, 내가 다른 서재에 쓴 글을 어떻게 퍼가는지 몰라서 그냥 긁어옵니다. ㅜ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