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구판절판


자전거 속도가 느리니 경치가 더 오래 눈에 머물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봤는지,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안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의 진한 느낌이 있다. 자전거는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다. 넓고 긴 연속성에 잠수하는 경험이지, 단편적인 장면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으면 객체를 인식해낼 수 없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신과 세계가 미분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은 의식적으로 그 구분을 허물고 미분화된 상태로 들어가는 행위다. 나는 그 경치의 일부가 된다. 심해에서 수영하는 것과 똑같다. 해변으로 돌아오면 무엇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는 바다의 일부였던 것이다.-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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