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 전 (9월 14일)에 60kg대로 되기는 할 듯. 원체 돌아다니기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노냐 싶어서 내일은 새로 개장한 오션월드에 가기로 했다.

애인은 개강하면 열공 모드일 꺼고, 1년 후에는 연수원 들어갔다가, 외교부에 가는데, 일이 죽어라 많다고 한다. 결국 요즘이 최대의 황금기(?) 중 하나일터.

근데 역시 열심히 공부/일 하다가 짬짬이 노는 것이 꿀 맛이지, 맨날 노니까 계획도 없고 그냥 축 늘어져서 멍하니 있다가, 카이스트 보다가 오락이나 하다가, 시 쫌 읽다가 끄적대다가 한다.

아이고 피곤해~

내일은 재미있게 놀아야지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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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시간 되세요~~~~~~~

기인 2006-08-2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넷 ㅎㅎ 잘 다녀왔습니다 :)
 
 전출처 : 로쟈 > 라캉 읽기에 관하여

2002년 가을에 라캉 읽기에 대해서 몇 자 적어둔 글을 옮겨놓는다. '라캉 읽기의 몇 가지 방식'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말투로 보아 라캉 입문서를 묻는 질의에 대한 응답이었던 듯하다. 그 사이에 변화된 사정에 대해서 얼마간 보충하도록 하겠다.

 

 

 

 

현재 라캉 읽기에 있어서 대표적인 선두 주자들이라면, 슬라보예 지젝과 브루스 핑크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출판계에서도 프로이트 전집 발간 이후 차츰 라캉 읽기쪽으로 독서층의 관심을 이동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물론 그 독서층이라는 것이 몇 줌이나 되랴 싶지만, 푸코나 들뢰즈의 대한 열광적인 반응을 재연할 수만 있다면(그래봐야 1만부 미만일 거라는 제 짐작이지만)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그것이 출판계의 요구/관심일 테고, 다른 한쪽에는 서구의 첨단 이론이나 철학을 수입/소개하는 데에 어떤 소명의식을 느끼는 일련의 지식인(지식분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플라톤이나 프로이트 등과 같은 '거장'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라캉은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난해한 저작(들 중의 하나)의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치 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대학이란 제도 안에서 박사/교수들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었듯이 라캉 또한 알 듯 모를 듯한 이론과 도식(수학소)들을 통해서 (라캉을 아는)지식인들과 (라캉을 모르는) 일반인들을 가르는 준거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입니다.

물론 현재로선 라캉에 대한 앎이 우리 사회에서 대단한 상징적 권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의 이론이 대중화될수록, 그래서 대중에게 라캉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중요한 사상가로 각인될수록, 즉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수록 라캉에 대한 지식은 곧 권력화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겠지요. 아시다시피 이미 프랑스 정신분석학과 라캉에 대해서는 셰리 터클의 <정신분석적 정치>(<라캉과 정신분석혁명>(민음사, 1995)으로 번역됨) 같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다시 지젝과 핑크로 돌아옵시다. 혹자는 지젝에게서 임상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데, 사실 그것이 지젝의 라캉 읽기/해석에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모든 라캉 읽기가 결여하고 있는 것이 임상입니다. 임상은 임상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또 프랑스에서 라캉식 정신분석의 자격증을 따온다는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내에서 법적으로 그러한 정신분석이 공인되어 있지 않는 한 말입니다. 국내의 일부 정신분석의들이 라캉식 치료법을 어깨너머로 응용/적용한다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 해야 '흉내'이고 대개는 '사이비'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지젝은 라캉을 임상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갔고, 그의 생산성이 보여주듯이 그러한 접근은 꽤나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향락의 전이>에서 지젝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가 대중문화 텍스트를 읽는 데 라캉을 이용한 것은 일차적으론 그 자신이 라캉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례를 찾듯이, 아니 사례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듯이, 지젝은 (자신이 읽기에도) 난해한 라캉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나 대중소설들을 동원한 것인데, 뜻밖에도 성공을 거둔 것이고, 그것은 라캉 이론을 더 풍부하게 확장시켜 나가는 데 기여합니다.



보다 정통적인 의미에서 라캉의 '주석가' 역할을 하는 핑크는 이러한 지젝의 작업을 상당 부분 보완해 주는 듯합니다(이들은 알렝 밀레르가 모는 라캉 정신분석학이란 쌍두마차의 두 마리 말과는 같아 보입니다). 핑크는 이미 국내에 번역된 <라캉과 정신의학>(원제는 <라캉식 정신분석에 대한 임상적 입문>)과 <라캉의 주체>를 통해서(*국역본이 근간예정이다), 그리고 세미나에 대한 주석서들의 편찬을 통해서 새로운 라캉 읽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곧 그가 새로 번역한 영역판 <에크리>도 다시 나온다고 하지요(*핑크의 완역본 <에크리>는 올해 출간됐다).

이 두 마리 말, 지젝과 핑크는 꽤 절친한 사이로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똑같이 밀레르의 세미나를 통해서, 즉 후기 라캉을 통해서 라캉에 접근해 나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라캉에 대해 다시 흥미를 갖게 된 것도 순전히 이들의 작업 때문이고, 이들에 의해서 소개받은 후기(70년대의) 라캉 이론이 갖는 파워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라캉 이론은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수십년간 몇 차례의 탈바꿈, 혹은 이론적 방점의 이동에 따라 진화해 온 것입니다. 단순화시키면, 상상계-상징계-실재(계) 순으로 그 방점이 이동해 왔고, 밀레르 사단은 실재에 대한 라캉의 이론을 중심에 놓고 그 이전의 작업들은 재해석 혹은 '번역'(핑크 자신이 쓴 용어입니다)합니다. 그리고 이 후기의 라캉은 사실 <에크리>(1966) 이후의 라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에크리>가 국역된다고 해서 라캉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이해(구조주의자 라캉!)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고, 후기의 세미나들이 마저 번역돼야 할 듯합니다. 물론 그 세미나들에 대한 주석서들과 참고서들도 함께 소개돼야 하겠지요.

 

 

 


지젝과 핑크, 그리고 다리언 리더의 만화책(<라캉>)을 제외하면,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라캉 연구서들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중심으로 라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근거해서 라캉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진행합니다(<철학의 외부>에서 이진경도 그렇게 한정된 라캉의 상을 소개하고 그의 '구조주의'를 비판하더군요).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것은 어떤 동일한 라캉이 아니라 라캉'들'입니다(*지젝은 '라캉 대(對) 라캉'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라캉 이해에 가장 시급한 것은 그 라캉'들'을 윤곽지어줄 수 있는 교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왜냐하면 라캉 자신은 그러한 차이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해명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부분적인 라캉에 대한 소개로 이해를 대신하려는 시도들은 그간의 것으로 충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젝과 핑크의 책들이 보다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번역되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작업에서 비춰지는 라캉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유용할 거 같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한 유용성에 비추어 볼 때, 몇몇 라캉 연구자들의 젠체하는 태도도 충분히 용인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마저 없다면, 무슨 보람으로 그 머리아픈(!) 일들을 해나간단 말입니까?...

02. 09. 30/ 06.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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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2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한 때 홍준기 선생님께 라캉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으로서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서^^; 홍준기 선생님께서 '임상'을 실천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뽑아 볼까. 군대(?)라기는 뭐한 '공익'이지만. 흘러들어오는 소리로는 공익이 군대보다 좋은 것은 집에서 자는 것 외에는 없다고. -_-;

86년생 이후는 신체등급 4급도 현역으로 가서, 공익이 많이 줄었다. 중졸이거나 약간의 전과 (1년여의)가 있는 분들만 공익을 받는다. 흐음. 어쨌든 가면 기존의 경험 못했던 타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쫌 두렵기도 하고;;

어쨌든, 그래서 9월 14일 이전까지 꼭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1.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기.

아으. 백수의 장점이 무엇이냐 한다면. 역시. 자유취침, 자유기상. :) 그런고로 아침에 수영은 빠지기로 ㅋㅋ

2. 체르니 30번 끝내기.

사실 이것은 희망사항. 피아노 다시 치기 시작한지 3주째. 지금 9, 10번을 치고 있으니 사실상 빠듯.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30번 끝내놓고 갔다와서 40번 치면서 작품 좀 쳐야지;;

요즘 치고 있는 것은 하농, 체르니 30번, 소나티네 5번 3악장, Moon River(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주제곡).

3. 카이스트 드라마 다 보기

으음... 사실 그 밖에 하고 싶은 일은 별반 없다. 20일 정도니 무얼 시작하기도 그렇고. 재택 알바를 하면서 방에서 뒹굴거리며 가끔 게임도 하고 (노트북 사양이 낮아서 최신 게임은 못하고 -_-;;; ) 책도 널널하게 읽으면서 애인 맨날 보고, 애인이랑 스터디 할 것 계획도 짜고 하면서 살고 있다.

애인과의 스터디 계획

1. 푸코 읽기

2. 살림지식총서읽기. ㅋ

3. 애인 수업 듣는 것 필요한 것 읽기. :)

20일 남았구나.

 

공익 중에 하고 싶은 일/할 일

1. 피아노 꾸준히 잘 치기.

2. 스쿼시 치기.

3. 애인과의 세미나

4. 지도교수님과의 세미나

5. 1930년대 잡지읽기 세미나

6. 작품 쓰기

7. 돈 벌기 ^^;

우선(?)은 이정도. 먹고 살려면 7번은 꼭 해야되고, 4번 또한 해야 되고. 나머지도 하면 좋고.

으음... 만만치 않겠군;;;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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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22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지식총서읽기....하하하...^^
아무쪼록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기인 2006-08-22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ㅋㅋ '교양'을 쌓으려고용~ ^^

비자림 2006-08-2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기 전에도 독서와 공부이군요.
지리산이나 속리산이나 다도해나 몇 군데 다녀 보심은 어떠하온지?^^

기인 2006-08-2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 지론 중 하나가, 움직이면 돈 든다;;; 는 거라서요. 헤헤 ^^;
사실 제가 움직이는 거 싫어해요. 그래도 가끔 여행에 대한 몽상은 즐겨요. 호호 ^^a
다음주에는 제주도 다녀올꺼에요~ ^^*
 
 전출처 : 로쟈 >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

건드리면 덧나는 문제이긴 한데, 성매매 문제와 관려하여 스크랩해놓은 기명 칼럼 몇 개를 옮겨놓는다. 며칠전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의 칼럼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게재되었는데, 그가 이전에 쓴 칼럼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을 나는 읽은 바 있고 많은 대목에서 공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의 반론이 제기됐었던 모양이다. 생각할 자료서의 가치가 있는 듯하여 모두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7. 28)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

-성매매 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성매매처벌법으로 성병검진 대성 여성이 준 게 질병관리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최근 발표도 물의를 빚었지만, 이 법을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어긋난 법률이라고 비난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재계총수는 사회의 하수구가 있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중산층여성을 위해 한계층여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여성운동가도 있다. 반대로 여성단체는 엄격한 법집행을 요구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

 

 

 

 

-인간의 서비스는 대부분 훌륭한 상품인데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서비스다. 세계적으로 성매매는 옛날엔 합법적이었으나 현대에 와서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비로소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0년대에 성매매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기껏 교통신호 위반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그런 관행을 바꾸어 징벌을 강화하는 조처였다.

-그러면 이 법률의 효과는 어떠한가. 먼저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미국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만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거기선 성매매를 단속하는 다른 주에 비해 성매매의 거래량은 많다. 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공개장소에서 영업을 하며 정기적 검진을 실시하므로 성병 등 거래행위에 따른 위험은 현저하게 낮다. ‘어느 업소는 어떻더라’는 소문을 들을 수 있고, 서비스에 문제가 있을 때는 업주에게 항의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착취도 줄어든다.

-성매매가 불법화한 주에서는 성병 걸린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음성적 매춘행위에 대해선 서비스의 질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기선 폭력이나 부패와 같은 범죄가 자라나기 쉽다. 폭력배가 불법 매춘업에 기생하며 관련 업주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집창촌 지역을 담당했던 김강자 서장이 공창제도를 주창한 것도 이런 폐해들 때문이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둘 다 선망의 복지국가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불법화했고,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양성화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다. 성매매여성 비율은 네덜란드가 훨씬 높은 반면, 스웨덴에선 성매매여성이 뚜쟁이에게 종속된 정도가 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다.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이런 게 모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닐까. 물론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성매매 여성에게 다른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하고 건강한 노동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또 사회의 투명화로 술자리 접대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과 같은 성소외자에 대한 배려도 빠져선 안 된다.

-성매매처벌법 시행 이후 우리 집창촌 종사자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한 것도 분명하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법 제정 때 여론수렴이 충분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 역시 졸속정책의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엄중단속의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시행시기를 잘 잡았어야 했는데, 하필 경기가 나쁠 때였으니 부작용이 크고 저항도 거셌다. 조폭관련 업소부터 단속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집행단계도 신중히 밟아 나갔어야 했다. 이런 부분들을 경시해 정부는 결국 법도 흐지부지되게 만들었고 관련 하층서민의 지지도 잃었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6. 08. 12) '성매매 처벌법 논란'의 남성주의

-7월28일치에 실린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이라는 칼럼을 보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는 이에 앞서 ‘셩매매 특별법과 남신숭배’(6월23일치)라는 제목의 외부필자 칼럼에서도 성매매 방지법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실었다.

 

 


 


-김 교수의 칼럼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 방지법) 중 처벌법에 대한 문제를 주로 짚고 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고 현행법 또한 한계가 있는데, 법 취지에 맞게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와 자활지원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법 집행력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과 추측에 기반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김 교수는 마치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잘 관리가 되어 범죄 발생이 줄어든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성매매를 합법화해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것이 범죄 축소에 효과적인 양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가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과 오히려 합법화한 나라에서 불법 영역이 확대되고 국제적 인신매매 범죄의 온상지가 되고 있는 사실에 눈감으면서 다른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어느 주장이 팩트인가?).

-어느 성매매 여성도 대안이 제시된다면 성매매를 지속하지 않겠다고 한다(*미용사가 대안인가?). 성적 서비스를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또한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을 노리는 알선업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들을 모으고 이동시키면서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합법화가 대안인 양 선전하는 것은 또다시 모든 이에게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칼럼은 또한 성매매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성차별적인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성 구매자인 남성들의 안전을 위한 성병 검진의 필요성과 장애인(남성)의 성적 욕구 해결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성적 서비스로서의 성매매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쓰인 이 글은, 성매매와 성 구매자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성매매 여성의 건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논하기 전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성매매가 합법화하지 않아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것이 아니라 ‘성매매는 필요악’이라고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낙인을 가하는 이중적인 남성 중심적 성 의식과 문화가 성매매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구조에 유입된 순간부터 여성들은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

한겨레(06. 08. 18) 성매매 여성의 인권

-성매매처벌법을 다룬 필자의 7월28일치 칼럼을 두고 송경숙씨가 8월12일치 신문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토론이 활발해져야 성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사회가 앞당겨진다. 다만 송씨의 글에는 필자의 뜻을 오해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어 이를 해명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성매매에 관한 필자의 글이 남성주의라고 몰아세우면 남성이라는 원죄(?) 때문에 대응하기 난처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성매매처벌법이 중산층 여성을 위해 한계층 여성을 희생시킨다는 어떤 여성운동가의 지적과, 주류 여성계의 냉대 속에 성매매 여성들이 50일 동안 단행한 천막농성이었다. 여성 전체가 남성에 의해 차별받지만 동시에 여성 사이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는 자본에 의해 차별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연상시킨다(*여성 내부의 차별은 남성중심사회의 필연적인 결과인가? 때문에 나중에 처리되어야 하는? 혹은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를 혁파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성매매 불법화는 송씨의 주장과 달리 해당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 성매매 여성 중 에이즈 감염자는 성매매가 합법인 네바다주엔 거의 없는데, 불법인 워싱턴과 뉴저지주엔 절반가량이다. 또 합법인 네덜란드에선 투명한 거래 덕분에 인신매매 등 관련범죄가 잘 드러나는 반면, 불법인 미국에선 은폐되기 쉽다. 불법인 경우에 화대 갈취나 단속 공무원 부패도 더 심하다.

-성매매는 술이나 마약처럼 사람들이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s)다. 비가치재에는 국가가 여러 규제를 가한다. 성매매의 폐해는 성병 감염,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 인간관계의 황금만능화다. 그런데 술은 극소수 국가만 금지하고 마약은 극소수 국가만 허용한다. 성매매는 그 중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른 나라 중 네 나라에서만 불법이다. 근래 유엔도 모든 성매매를 범죄시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꿨다. 다수파가 항상 옳지는 않지만 다수 선진국이 성인의 자발적 성매매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 결혼여성은 전속 매춘부고 성매매 여성은 프리랜서 매춘부라고 말한 과격한 여성운동가도 있지만, 성매매 여성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주부도 없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성적 거래를 포함한 남녀관계의 실제상태다. 군산 매춘여성이 숨졌을 때 정부는 거래상태를 개선하는 대신 업종을 폐쇄하는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성매매를 더욱 음성화하고 관련 하층서민의 생활을 악화시켰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 비율은 네덜란드의 네 배,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불법인 미국이 합법인 네덜란드보다 비율이 높고, 또 한국은 그들보다 더 높다. 성적 서비스에 자원배분이 과다한 현실을 시정하는 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셈이다. 북한처럼 인민의 삶을 철저히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보장 제도의 충실화, 사회의 투명화가 관건이다. 그를 향한 과정에서 대안도 없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내몰아선 안 된다. 또 송씨는 장애인 남녀의 성욕을 하찮게 여기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성욕은 억압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이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에 대한 성적 자원봉사도 활발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성매매 여성을 외면했다. 이처럼 지지기반조차 챙기지 못하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성매매처벌법 재검토를 용기있게 제기할 다음 대선 후보가 있을까. 정치인은 민감한 문제를 피해 간다. 하지만 양극화에 신음하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란 성매매 여성 같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이 아닐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06. 08. 21.

P.S. 송경숙 대표의 이어지는 반론을 기대한다. 해법은 당위와 현실의 이분법을 넘어서 현실적합성을 갖는 당위를 찾아가는 데 있지 않나 싶다. 혹 이 문제에 해법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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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2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송경숙 대표의 반론이 기대됩니다. 성매매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까닭은 역시, 성노동이 다른 노동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전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질적'인 문제이고, 이 '질적' 문제는 '양적'인 차이들의 누적 때문에 생기는 것은 맞지만, 김교수의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라는 말은 폭력적인 것 같습니다.
 

20살. 누구에게나 20살은 있었겠지요. 라고 말을 한다면, 이미 20살을 지난 사람일 겁니다. 사진 속의, 그 때 미소. 어쩐지, 조금은 슬프게 만들기도 하는, 20살 때.

저는 서재 공개를 위해서는 역시, 20살 때의 낙서들, 또는 스스로 시라고 믿고 썼던 흔적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지요. 연예인들이 자신의 쌩얼을 공개하거나, 고등학교 졸업식 때 사진을 공개하듯이, 백수 인문학도로서 자신의 '서재'를 공개한다는 것은, 20살때 썼던 시들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아주 유명하고, 저의 조상은 아닐 것으로 믿어지는, 서구 어떤 작가는 자기가 죽으면 자신이 썼던 모든 글을 불태워달라고 했답니다. (이 말도 일종의 계획된 쑈였을까요?) 그리고 또 어떤 유명한 작가는 그 사람이 3류 작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20살때의 글을 공개하는지 안하는지로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 어쨌든 20살. 보아나 모짜르트가 데뷔한 것은 그 보다 훨씬 이른 나이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니 현대의 사람들에게, 역시 20살은 막막하던 때이겠지요.



그래서 또 다시, 갑자기 늦은 밤. 20살 때의 시들이, 20살 때의 추억들이 몰려옵니다.

 

밤 


어둠은 천개의 눈으로 조소하고

누군가 창을 때리곤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간다.

 

조그마한 아이는 겁에 질려

안방으로 베개를 부여잡고 달려가지만

붉은 눈의 어머니는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나를 구원해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세요. 치료해 주세요. 나는 죽어가요.

나는 죽어가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정말.

 

나는 죽어가요. 죽어가요. 손을 내밀어 주세요. 여기.

나는 죽어가요. 죽어가요. 손을 내밀어 주세요. 여기.

 

눈물이 나요. 무서워요. 나는 죽어가요. 힘이 없어요. 죽어가요.

무서워요. 그대. 나는 무서워요. 그대. 나를 무섭게 하지 마세요. 그대.

내 옆에 있어주세요. 그대. 꼭 안아 주세요. 그대. 무서워요.

 

죽어가요. 나는. 혼자서 죽어가요. 나는.

그대. 죽어가요. 그대. 혼자서 죽어가요. 그대.

안아주세요. 옆에서 있어요. 달래 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그대 항상 보이는 곳에 있어줘요. 너무 무서워서 숨을 크게 쉴수 없어요.

나는 죽어가요. 한숨 한숨 내쉴때 마다, 조금씩 늙어가요.

그리곤 죽어가요. 그러면서 죽어가요. 무서워요.

 

어디있나요. 어디. 그대.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모든 것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요. 무서워요. 모두들 죽어가고 있어요. 무서워요.

 

그대. 구원해 주세요. 그대. 치료해 주세요. 그대. 나는 죽어가요. 그대.

그대. 나는 죽어가요. 그대.

그대. 무서워요. 그대.

 

나는 죽어가요. 무서워요. 울어요. 지금.

어서 와서 안아주세요. 울고 있어요. 그대.

 

 


추억하는 행위 속의 우울


중늙은이 시체에 키스했다.

나는 두 손가락 만으로 죽은 자를 웃게 할 수 있다.

잇몸이 하얏다.

 

눈을 감고 너를 본다.

낡은 감정이다.

눈물이 많지만, 그렇다고 슬픔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익명으로 나는 수없이 고백했었다.

슬픔과 아픔은

서툼에서 오는 것이

겠지.

 

혼자 걷는 거리

이미 없어진 기억.

사라진 이들.

 

나는 헤어지자 말할수조차 없었다.

 

나도 조금뒤면 두 손가락 만으로 웃을 수 있을

 

 

눈물


적한 오후에. 네 생각에.

투명한. 그리움. 한 방울.

손등에. 차가운. 반짝.

 

내가. 널. 사랑하는 것처럼.

누군가. 날. 사랑한다면.

 

아주 작은. 순수에.

한때. 너였던. 것.

부끄럽게. 아름다운. 또륵.

 

사랑해.

 

눈물이 흐르듯,

입술이 흘렀다.

 

꽃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 냅킨 두르고 소란스럽게 식사를 하고 새들은 신문을 들고 어제 있었던 일들에 흥분해서 구름에게 지저귄다. 구름은 그 와중에 날씬한 번개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흰 구름이 말이다.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다. 입술이. 흘렀다. 눈물이. 흐르듯.

 

夢過現來 


夢-地上樂園

 

순결한 창녀들이 길거리에 만발해 웃음을 흘리고

약을 파는 그리스도들이 뒷주머니에 천국을 향한 열쇠를 넣어준다.

 

건물 안에는 나를 사랑하는 척 하는 내 지인들이

썩은물을 잔에 들고 퀭한 눈으로 나를 맞는다.

 

테이블에 올라선 발가벗은 소녀는

강제로 자위를 하며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울먹인다.

 

나는 이 모든 福된 것들의

중심에서 다스리지 않는 왕으로 射精한다.

 

過-酒酊

 

화장을 한 돼지들 사이에서

맥주를 마셨다.

아니 누구의 정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필요한 것은

나를 속여 줄 시나 소설 한 편.

그것 뿐이었다.


 

現-惡

 

죽음이 발기하여 날 강간해 줄 때까지

만 20년을 조심스레 기다려 왔다.

첫사랑을 시집보내는 오라버니마냥

매일 밤 질척한 꿈을 꾼다.


 

母子


이미 너무 늙어 버린 소녀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까마득함에

전족을 했다.


나는 옆에 누워

네 발은 고양이 발 같아

라고 말을 하면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는 있다.


그러다 이따금 전화벨이 울린다.


그럼 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이내 멎는다.


우리는 나름대로. 우울한 축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20살을 되돌아보니. 우울해지는 군요. 그래도 어찌저찌 하다보니 6년이 지났네요. 6년이라...

순수하고 티없이 맑은 문청이었던 시절... 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연애도 한 번도 못해보고, 대학 강의들에 설레고, 한국 근현대사를 읽으며 놀래던 그 시절.

 

ㅋ 다시 돌아가라고 그런다면, 역시 노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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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스무살의 쌩얼(스무살에 쓴 글)을 공개하는 건 용기있는 모습이네요. 그때의 어줍잖고 막막하고 기이한 얼굴을요.. 저의 경우랍니다.^^ 대학시절 끄적거려놓았던 일기장이 아직 있는데 어쩌다 들추어보면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그럽니다. 돌아가라고 하면 노 땡큐인 건 저랑 좀 다른 듯... 전 돌아가보고 싶어요.. 아무튼 기인님 지금의 그 나이가 가장 멋집니다.^^

비자림 2006-08-2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스무살을 살짝 엿보게 되어 반갑네요.
푸르디 푸른 젊음, 창백할 정도록 푸른 젊은 날의 고독과 번뇌...

기인 2006-08-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앗 그래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저는 지금이 더 나아요. ^^;
비자림님/ 20살은 젊은도 아닌 것 같아요. 뭐랄까, 충돌이랄까, 충격, 아니면 충동? 어쨌든 충충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