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누구에게나 20살은 있었겠지요. 라고 말을 한다면, 이미 20살을 지난 사람일 겁니다. 사진 속의, 그 때 미소. 어쩐지, 조금은 슬프게 만들기도 하는, 20살 때.

저는 서재 공개를 위해서는 역시, 20살 때의 낙서들, 또는 스스로 시라고 믿고 썼던 흔적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지요. 연예인들이 자신의 쌩얼을 공개하거나, 고등학교 졸업식 때 사진을 공개하듯이, 백수 인문학도로서 자신의 '서재'를 공개한다는 것은, 20살때 썼던 시들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아주 유명하고, 저의 조상은 아닐 것으로 믿어지는, 서구 어떤 작가는 자기가 죽으면 자신이 썼던 모든 글을 불태워달라고 했답니다. (이 말도 일종의 계획된 쑈였을까요?) 그리고 또 어떤 유명한 작가는 그 사람이 3류 작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20살때의 글을 공개하는지 안하는지로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 어쨌든 20살. 보아나 모짜르트가 데뷔한 것은 그 보다 훨씬 이른 나이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니 현대의 사람들에게, 역시 20살은 막막하던 때이겠지요.



그래서 또 다시, 갑자기 늦은 밤. 20살 때의 시들이, 20살 때의 추억들이 몰려옵니다.

 

밤 


어둠은 천개의 눈으로 조소하고

누군가 창을 때리곤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간다.

 

조그마한 아이는 겁에 질려

안방으로 베개를 부여잡고 달려가지만

붉은 눈의 어머니는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나를 구원해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세요. 치료해 주세요. 나는 죽어가요.

나는 죽어가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정말.

 

나는 죽어가요. 죽어가요. 손을 내밀어 주세요. 여기.

나는 죽어가요. 죽어가요. 손을 내밀어 주세요. 여기.

 

눈물이 나요. 무서워요. 나는 죽어가요. 힘이 없어요. 죽어가요.

무서워요. 그대. 나는 무서워요. 그대. 나를 무섭게 하지 마세요. 그대.

내 옆에 있어주세요. 그대. 꼭 안아 주세요. 그대. 무서워요.

 

죽어가요. 나는. 혼자서 죽어가요. 나는.

그대. 죽어가요. 그대. 혼자서 죽어가요. 그대.

안아주세요. 옆에서 있어요. 달래 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그대 항상 보이는 곳에 있어줘요. 너무 무서워서 숨을 크게 쉴수 없어요.

나는 죽어가요. 한숨 한숨 내쉴때 마다, 조금씩 늙어가요.

그리곤 죽어가요. 그러면서 죽어가요. 무서워요.

 

어디있나요. 어디. 그대.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모든 것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요. 무서워요. 모두들 죽어가고 있어요. 무서워요.

 

그대. 구원해 주세요. 그대. 치료해 주세요. 그대. 나는 죽어가요. 그대.

그대. 나는 죽어가요. 그대.

그대. 무서워요. 그대.

 

나는 죽어가요. 무서워요. 울어요. 지금.

어서 와서 안아주세요. 울고 있어요. 그대.

 

 


추억하는 행위 속의 우울


중늙은이 시체에 키스했다.

나는 두 손가락 만으로 죽은 자를 웃게 할 수 있다.

잇몸이 하얏다.

 

눈을 감고 너를 본다.

낡은 감정이다.

눈물이 많지만, 그렇다고 슬픔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익명으로 나는 수없이 고백했었다.

슬픔과 아픔은

서툼에서 오는 것이

겠지.

 

혼자 걷는 거리

이미 없어진 기억.

사라진 이들.

 

나는 헤어지자 말할수조차 없었다.

 

나도 조금뒤면 두 손가락 만으로 웃을 수 있을

 

 

눈물


적한 오후에. 네 생각에.

투명한. 그리움. 한 방울.

손등에. 차가운. 반짝.

 

내가. 널. 사랑하는 것처럼.

누군가. 날. 사랑한다면.

 

아주 작은. 순수에.

한때. 너였던. 것.

부끄럽게. 아름다운. 또륵.

 

사랑해.

 

눈물이 흐르듯,

입술이 흘렀다.

 

꽃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 냅킨 두르고 소란스럽게 식사를 하고 새들은 신문을 들고 어제 있었던 일들에 흥분해서 구름에게 지저귄다. 구름은 그 와중에 날씬한 번개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흰 구름이 말이다.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다. 입술이. 흘렀다. 눈물이. 흐르듯.

 

夢過現來 


夢-地上樂園

 

순결한 창녀들이 길거리에 만발해 웃음을 흘리고

약을 파는 그리스도들이 뒷주머니에 천국을 향한 열쇠를 넣어준다.

 

건물 안에는 나를 사랑하는 척 하는 내 지인들이

썩은물을 잔에 들고 퀭한 눈으로 나를 맞는다.

 

테이블에 올라선 발가벗은 소녀는

강제로 자위를 하며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울먹인다.

 

나는 이 모든 福된 것들의

중심에서 다스리지 않는 왕으로 射精한다.

 

過-酒酊

 

화장을 한 돼지들 사이에서

맥주를 마셨다.

아니 누구의 정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필요한 것은

나를 속여 줄 시나 소설 한 편.

그것 뿐이었다.


 

現-惡

 

죽음이 발기하여 날 강간해 줄 때까지

만 20년을 조심스레 기다려 왔다.

첫사랑을 시집보내는 오라버니마냥

매일 밤 질척한 꿈을 꾼다.


 

母子


이미 너무 늙어 버린 소녀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까마득함에

전족을 했다.


나는 옆에 누워

네 발은 고양이 발 같아

라고 말을 하면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는 있다.


그러다 이따금 전화벨이 울린다.


그럼 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이내 멎는다.


우리는 나름대로. 우울한 축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20살을 되돌아보니. 우울해지는 군요. 그래도 어찌저찌 하다보니 6년이 지났네요. 6년이라...

순수하고 티없이 맑은 문청이었던 시절... 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연애도 한 번도 못해보고, 대학 강의들에 설레고, 한국 근현대사를 읽으며 놀래던 그 시절.

 

ㅋ 다시 돌아가라고 그런다면, 역시 노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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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스무살의 쌩얼(스무살에 쓴 글)을 공개하는 건 용기있는 모습이네요. 그때의 어줍잖고 막막하고 기이한 얼굴을요.. 저의 경우랍니다.^^ 대학시절 끄적거려놓았던 일기장이 아직 있는데 어쩌다 들추어보면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그럽니다. 돌아가라고 하면 노 땡큐인 건 저랑 좀 다른 듯... 전 돌아가보고 싶어요.. 아무튼 기인님 지금의 그 나이가 가장 멋집니다.^^

비자림 2006-08-2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스무살을 살짝 엿보게 되어 반갑네요.
푸르디 푸른 젊음, 창백할 정도록 푸른 젊은 날의 고독과 번뇌...

기인 2006-08-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앗 그래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저는 지금이 더 나아요. ^^;
비자림님/ 20살은 젊은도 아닌 것 같아요. 뭐랄까, 충돌이랄까, 충격, 아니면 충동? 어쨌든 충충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