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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나는 정민 선생 같은 학자가 신기하다. 그는 대중교양서를 쓴다. 이제 겨우 박사과정에 들어간 나로서도, '공부'와 '글쓰기'가 항상 병존하는 것은 아님을, 그리고 항상 이를 경계하는 말들을 들어왔다. 학자는 '학문'을 해야 한다고.
그런 '학문'이라는 게 학자의 '본분'이고, 이것이 본분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맡은바 책무를 다 하는 것일수도 있다. '학문'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면 이는 국문학에 있어, 소수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고담준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어떤' 선생들은 종종 사회를 위해 다른 일을 하기도 하는데, 그 중 국문학, 그 중에서도 고전문학 전공한 선생들은 고전 번역을 보다 대중이 쉽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을 정민 선생만큼 대중의 눈물, 웃음, 감탄,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이는 없다. (준엄함으로 따지면 박희병 선생이, 유머로 따지자면 고미숙 선생이 있다) 그는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을 쓴다.
그렇다면, 그 책들은 단지 '잘 팔리는' 책일 뿐인가? 아니다. 적어도 나같이 학부 때 국문학을 선택하고 고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에게 이 책들은 눈물을 쏙 빼게 하고, 감동에 빠지게 하며, 다시금 날 시험에 들게 하는 (고전으로 전공을 옮길까? 하고. 예전 박희병 선생의 강의를 들었을 때 처럼) 그런 책들이다.
그럼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학자는 '학문'을 해야 할텐데, 왜 정민 선생은 이런 책을 쓰는 것일까? 아니, 이런 책을 쓰고 널리 읽히게 하는 것이야 말로 고전적 의미에서 '선비'가 해야 할 일이고 '선생'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시경, 춘추, 논어, 공자가 편집하면서 보태기도 한 책들. 널리 교과서가 되어서 선비들이 외우고 마음을 다스리고는 했다.
정민 선생의 글도, 마찬가지. 정민 선생과도 같은 '학자'가 왜 이런 책을 쓸까? 라는 의문 자체가 어쩌면 너무 서구 근대 편향적인 '학자'라는 규정. 그가 아니면 또 누가 이런 책을 써서, 우리를 울리고 또 감탄케 하겠는가.
200년도 더 옛날에, 주로 300여년전 18세기, 다산, 연암, 박제가 등의 대 지식인들의 희노애락. 그들의 일상, 후회, 감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아, 그런 그들은 이제 모두 어디로 갔는가.
*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생이 18세기를 정조의 문체반정이 일어날 만큼, 급작스러운 변화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시기이며 이 시기를 아우르는데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특이한 지식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역사, 사회적 원인/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암시나 언급이 없으니 선생의 생각이 궁금하다. 물론 이를 본격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책의 성격에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선생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암시나 언급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