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체호프-레이몬드 카버-하루키

한 학기 동안 한 독서모임의 강사를 맡게 됐다. 예전에 언질이 있었던 내용인데, 오전에 시간과 장소가 확정됐다는 메일을 받고서 대학강의처럼, 아니 그보다 '빡세게' 16주 강의안을 만들어 오후에 보냈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카테고리로 해서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읽기가 두루 포함돼 있는 그 강의안의 한 꼭지는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문학과 그 유산'에 대한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둔 건 미국작가 레이몬드 카버(1938-1988)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1949- )이다. "체호프는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이다"라고 말한 작가가 레이몬드 카버이고, (하루키의 독자들은 잘 알 테지만) 그 카버를 또 직접 번역하고 해설을 쓰기도 한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그렇게 해서 세 '단편작가'는 굴비처럼 엮인다.

 

 

 

 

레이몬드 카버의 책은 이전에 <숏컷>(집사재, 1996)을 사두었지만 아마도 박스에 들어 있을 듯하고, 이번에 새로 읽어보려고 하는 단편집들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집사재, 1996)와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집사재, 1996)이다. 이 작품집들은 문학동네에서 레이몬드 카버 선집이 기획되면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5)과 <제발 조용히 좀 해요>(문학동네, 2004)로 다시 출간됐다(역자는 다르다). 두 권 정도 더 출간되는 것으로 아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조만간 출간되는지 모르겠다.

 

 

 

 

풍문으로 듣는 하루키 문학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런 내게도 안면이 있는 문학평론가들이 적극 추천하던 게 그의 단편들이었다.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여러 단편집들 가운데 일차적으론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문학사상사, 1992)을 골랐다. 흥미가 생기면 더 읽어볼 것이다.

체호프 단편의 계보를 굳이 러시아 밖에서 찾는 건 러시아쪽 작가/작품들이 소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몬드 카버의 문학적 선배로 하드 보일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단편들이 있다면, 체호프의 문학적 후배로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에 이삭 바벨(1894-1940, 사진)이 있다(바벨의 단편들은 예전에 <기병대> 등이 소련동구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소개된 바 있지만 현재는 절판됐다. 새로운 번역본이 어쩌면 올해 출간될 것이다).

그리고 레이몬드 카버와 동시대 작가로 러시아 문학에선 체호프의 '문학적 적자'로 평가받는 작가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1941-1990)이다. 1971년 망명해서 1990년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도블라토프는 생전에 체호프가 자신이 닮고 싶은 유일한 작가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작품집도 아마 1-2년내로 출간될 수 있을 것이다. 체호프 단편문학의 계승과 변주는 그때 가서 좀더 충실하게 조망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몬드 카버에 관해서 검색하다 보니까 그의 한 단편집에 번역/소개돼 있는 '글쓰기에 대하여'가 눈에 띈다. 이때 '글쓰기'는 총칭어가 아닌 '단편소설 쓰기' 정도로 한정하여 읽는 게 내용에 적합해 보이는데(소위 단편과 (장편)소설은 종류가 전혀 다르다는 걸 이 글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다), 아무려나 유익하고 흥미롭다. 레이몬드 카버 입문에 가름할 수 있을 듯해서 다시 옮겨놓고 몇 가지 이미지를 덧붙여둔다.



1960년대 중반, 나는 긴 대화체의 소설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 상당히 힘겹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소설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한 번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바람에, 더 이상 소설을 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에는 얽힌 사연이 약간 있지만, 이 자리에서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지겨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내가 시나 단편 소설에 집착하게 된 이유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치고 빠지는 식의, 혹은 머뭇거림 없이 뛰쳐나가는 식의 방법만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무렵, 그러니까 20대 후반의 나이에 원대한 야심을 잃어버린 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렇게 된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가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야심과 약간의 행운이 큰 도움으로 작용한다. 지나치게 큰 야심과 지나치게 더러운 운세는 치명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작가들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정확하고 참신한 시선, 또한 그러한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하게 맥을 짚어내는 것 등은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가프가 본 세상(The World According to Garp)>은 존 어빙이 본 신비로운 세상에 다름 아니다. 그 밖에도 플래너리 오코너, 윌리엄 포크너,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이 바라본 또 다른 세상도 있다. 치버, 업다이크, 싱어, 스탠리 엘킨, 앤 비티, 신디아 오지크, 도널드 바셀미, 메리 로빈슨, 윌리엄 키트레지, 배리 한나, 워슐라 K. 르귄 등도 모두 특유의 독자적인 세상을 만들어 낸 작가들이다. 위대한 작가, 심지어는 아주 좋은 작가들도 모두 자신의 고유한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창출해 낸다.

이것은 스타일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스타일 하나만을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쓰는 모든 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백한 서명이다.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의 세계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주는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재능이 작가를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특별한 방법을 가진 작가, 또한 그러한 방법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작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삭 디네슨(Isak dinesen)은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조그만 카드에 그 말을 적어서 내 책상 옆 벽에 붙여 놓을 생각이다. 지금도 벽에는 그런 카드들이 몇 장 붙어 있다. ‘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은 글쓰기의 유일한 도덕이다-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한 작가가 ’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적어도 길은 제대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내 책상 맡에는 체홉의 단편에서 따온 문장 하나가 적힌 카드도 붙어 있다. “.... 갑자기 모든 것이 그에게 있어 명료해졌다.” 나는 몇 안되는 이 단어들이 경이와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그 단순한 명징성을 사랑하고, 그것이 암시하고 있는 계시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또 미스터리도 포함되어 있다. 그 전까지는 무엇이 그렇게 불명료했을까? 왜 그것이 지금에야 명료해졌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갑작스런 깨달음으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들이 있다. 나는 날카로운 안도감, 그리고 나름대로의 예감을 느낀다.

작가 제프리 울프(Geoffrey Wolff)가 문학도들을 향해 ‘값싼 트릭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얼핏 엿들은 적이 있다. 그 말 역시 카드에 적어서 붙여야 한다. 나 같으면 ‘값싼’이라는 단어 하나는 빼 버릴 생각이다. 그저 ‘트릭은 안된다’하고 마침표를 찍으면 그만이다. 트릭이란 결국에는 지겨운 것일 수 밖에 없다. 집중 시간이 짧은 것과도 관련이 되겠지만, 나는 원래 지겨운 것은 좀처럼 참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극도로 현란하게 기교를 부린 문장, 또는 시시한 농담 같은 글은 나를 금방 잠들게 만든다. 작가에게는 트릭이나 교묘한 잔머리가 필요 없다. 물론 작가가 반드시 그 지역 일대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작가라면 다소 멍청하게 보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가끔은 절대적이면서도 소박한 경이로움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입을 쩍 벌리고 이런저런 사물 - 일출도 좋고 낡은 구두 한 짝도 좋다 - 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몇 달 전 존 바스(John Barth)는 ‘뉴욕 타임즈 북 리뷰’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소설 창작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이 ‘형식의 혁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별로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1980년대의 작가들이 이른바 ‘구멍가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걱정은 실험 정신이 자유주의와 함께 그 기세를 잃어 가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나는 소설 창작에 있어 ‘형식의 혁신’이라는 우울한 논의를 접할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글쓰기에 있어 ‘실험’이 경박함과 가소로움, 혹은 모방에 대한 면죄부로 기능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실험이란 미명 아래 독자를 잔혹하게 짓밟고 소외시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그런 글은 세상 소식을 전혀 전해 주지 못하며, 혹은 모래 언덕 몇 개와 도마뱀 몇 마리는 있으되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 사막 풍경의 묘사에 그치고 만다. 그런 곳은 인간이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살고 있지 않는, 그저 극소수의 과학 전문가들에게나 흥미있는 장소일 뿐이다.

소설의 진정한 실험이란 원초적이고, 힘든 노력의 대가로 얻어지며,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 예를 들면 바셀미의 방식 - 을 다른 작가가 추구할 수는 없다. 그런 방법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단 한 사람의 바셀미가 있을 뿐, 만약 다른 작가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바셀미 특유의 감수성이나 무대 장치를 도용하려 했다가는 혼란과 재앙, 최악의 경우에는 자기 기만을 초래할 수 있을 뿐이다. 참된 실험이란 파운드가 주장한 것처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자 스스로의 힘으로 작가들이 멀쩡한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들과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기를 원할 것이고 자기네 세계에서 우리네 세계로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기를 바랄 것이다(*이 문장은 비문인데 확인해봐야겠다).

시나 단편 소설에서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여 지극히 상식적인 사물을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그러한 사물 - 이를테면 의자나 창문의 커튼, 포크, 돌멩이, 여자의 귀걸이 등 - 들에 거대하고 놀라운 힘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또한 독이 없는 대화를 통해 읽는 이의 등공에 오싹한 한기를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예술적 기쁨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작가로는 나보코프(Nabokov)를 들 수 있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는 것이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이다. 나는 실험이란 기치를 내걸건 혹은 애꿎은 리얼리즘을 내걸건 간에,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되는 대로 써내려가는 식의 글쓰기는 무척 싫어한다. 아이작 바벨 (Issac Babel)의 뛰어난 단편 ‘모파상의 친구’에서(*'이삭 바벨'이라고 읽어줘야 한다), 화자는 소설 쓰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어떠한 무쇠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사람의 심장을 관통할 수는 없다.” 이것 역시 카드에 적어 붙일 만한 말이다.

에반 코넬(Evan Connell)은 자신이 쓴 단편을 쭉 읽어 내려가며 쉼표를 하나하나 지웠다가, 다시 한 번 읽으며 쉼표를 원래 있던 자리에 되살려 놓는 과정을 거치면 단편 하나가 완성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하건 그런 식으로 일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자신이 해놓은 일에 대한 그 정도의 관심은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 어차피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단어들밖에 없으니, 이왕이면 구두점 하나라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제자리에 가 박히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만약 단어들이 작가 자신의 억제되지 않는 감정으로 뒤죽박죽이 된다면, 혹은 기타 다른 이유 때문에 정확하지 못하거나 명확하지 못하게 된다면, 독자의 눈은 바로 그 단어 위에서 미끄러져 버리고 만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독자 자신의 미적 감각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이러한 종류의 불운한 글을 ‘허약한 설명서’라고 표현했다.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혹은 편집자나 마누라의 성화 때문에 서둘러 책을 써야 한다고 털어놓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말하자면 그것들이 아주 뛰어난 글을 쓰지 못하는 변명인 셈이다.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좀더 좋아졌을 텐데.”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 사실은 안하지만 - 말문이 막힌다. 어차피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만약 작가가 자신의 모든 힘을 모조리 내어,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과 그 힘들었던 노동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말을 한 내 친구에게, 제발 부탁이니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좀 더 쉽고도 정직한 방법이 반드시 있을 터이다. 그러기가 싫으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글을 쓰고, 일단 쓴 다음에는 어떠한 정당화나 핑계도 내세워서는 안된다. 어떠한 불평도, 어떠한 설명도 필요치 않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는 ‘단편 소설 쓰기’라는 소박한 제목이 붙은 에세이에서, 글쓰기란 발견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단편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자기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기가 보기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무언가를 쓰기 시작할 때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을지 의심스럽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착한 시골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었다. 작품이 끝나기 직전까지, 자기도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목발을 짚은 철학 박사가 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두 여인에 대한 묘사 부분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둘 가운데 한 여인에게 목발을 짚은 딸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중간에 나는 성경책 판매원을 끼워 넣었는데, 나에게는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가 목발을 훔치는 장면의 10줄 위를 쓸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목발을 훔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제서야 나는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 전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거기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을 쓸 때 이런 방법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의 결점이 드러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해 털어놓은 글을 읽고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첫 문장밖에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지만, 꽤 괜찮은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던 적이 있다. 그 며칠 전부터 내 머리 속에는 첫 문장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그는 진공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레이몬드 카버 전집 제 2권 ‘숏컷’에 수록된 ‘당신도 내 입장이 되어봐’의 첫문장이다; 옮긴이) 나는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내가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것을 쓸 시간만 낼 수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시작되는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원래 시간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루 종일 - 12시간, 심지어 15시간도 좋다 - 시간을 낸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느 날 아침 책상에 앉아 그 첫 문장을 썼다. 그러고 나니 금새 또 다른 문장이 그 뒤에 달라붙었다. 나는 시를 쓸 때처럼 그 작품을 썼다. 한 줄 쓰고, 또 한 줄, 그리고 또 한 줄을 써나가는 것이다. 머지 않아 나는 단편 하나를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내 작품, 내가 쓰고 싶었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실상 단편쓰기란 곧 시쓰기이다).

나는 단편 소설에 어떤 위협이나 협박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는 약간의 협박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그 작품이 널리 유포되는데도 도움이 된다. 긴장 역시 꼭 필요하다. 무언가 절박한 상황, 처절한 행동이 곧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설 작품 속에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가시적인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단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다 털어놓지 않은 것, 그저 암시만 된 것, 사물의 평형한(때로는 망가지고 뒤집어진) 표면 아래 감춰진 풍경 등에서도 그런 긴장이 발생한다.

프리체트(V.S.Pritchett)는 단편 소설을 ‘눈꼬리로 힐끗 본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힐끗 본다’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언가를 힐끗 본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통해 생명력이 부여되고 그 순간을 조명하는 무언가가 탄생한다. 나아가 운이 좋으면 - 또 운을 들먹인다 - 보다 깊이 있는 결과와 의미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단편 작가의 임무는 자신의 모든 힘을 이 ‘힐끗 보는’ 데 투자하는 것이 균형 감각과 사물의 합당성에 대한 감각이 길러진다.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명쾌하고 구체적인 언어,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런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디테일은 구체적이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므로, 언어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구사되어야 한다. 단어는 지극히 평범하게 들릴 정도로까지 정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에는 변함이 없다. 제대로 사용된 단어는 모든 음계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07.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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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가벼움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다. '관광'은 일종의 광고 보기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품으로서의 타국을,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

여행은 이에 비해서, 일상을 벗어나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마주침들과 함께 하는 것일 터이다. 홀로 하는 여행은 더 그러할 것인데, 이번에는 애인과 함께 체코라는 공간을 다녀왔다.

철도와 비행기의 발달 이후의 여행은, 전근대의 여행처럼 낭만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 때의 사람들만큼 '외국'이라는 것이 타자로 나타나지도 않고, '새로움'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익숙한 새로움일 뿐이다.

연암의 '열하일기'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처럼 널리 알려진 명 여행기들은, 몇개월, 몇년에 이르기까지 걸어서 말을 타고, 또 배를 타고 가면서 풍경과 사람들과의 마주침과 이를 통해 자아의 원숙함, 새로움을 도모한 기록들이다.

이렇게 여행이라는 것은 최소한 1개월 이상 한 곳에 머물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과 마주치는 것이어야 비로소 '여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1년이상 외국에 산 곳은 코스타리카라는 중남미, 1주일이상 '다녀본 곳'은 미국, 중국, 그리고 이제 체코.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나는 외국에서 사는 것이나 유학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없고, 오히려 두려움과 걱정이 꽤 있다. 이번에 체코를 함께 간 애인은 외교관이 될 예정이라, 앞으로 40여년 중의 20년이상은 외국에서 생활해야 할 것이다. 걱정인데,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장점을 키우면 될 것이다.

체코 여행기, 프라하 여행기를 적어둔다. 5월말쯤에 다시 한번 가게 될 터인데, 1월말에 8일간 다녀온 체코와는 또 다를 것이다.

앞서 계속 밝혔지만, '여행'이라기 보다는 다녀온 것 정도. 그리고 애인과 함께 프라하라는 도시를 둘러본 것 정도이니 별반 적을 것도 없고, 감상도 없다. 나는 여행을 별반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적어볼 만한 것은, 기억할 만한 것은, 프라하에서 읽은 밀란 쿤데라 뿐. 싱겁지만,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대한 서평으로 프라하 '여행기'를 대체한다. 또는 내 프라하 '여행기'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대한 감상으로 대체될 수 있을 성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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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2-0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시기 전에 인사 드렸는데..
잘 다녀오셨군요.
어찌됐든 여러가지 부럽습니다.^^

기인 2007-02-0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소이부답님 저랑 동학이신 선배님 같아요 많이 배우겠습니다. ㅎ :)

프레이야 2007-02-0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이번엔 둘러본 정도이지만 다음엔 기대하고 있을게요.^^

기인 2007-02-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ㅋ; 여행은 적어도 1달은 있어봐야 되는 거라 생각되서, 그냥 표면만 훑고 왔습니다. ㅎ
 

문학이 반기억과 양립할 수 있나
[문학칼럼] 『요코 이야기』 번역마저 부실한 청소년도서

방민호_문학평론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라는 일본계 미국 여성이 저술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요코 이야기』(So far from bamboo grove)가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중학교 교재로까지 사용되고 있다가 지난 해 9월 보스톤 지역의 한국계 학부모들이 반대운동에 나서면서 파문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그 파문이 이제 한국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이 번역으로서 충실치 못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몇 개의 지명들이 나온다. 이 가운데 ‘라신’이라고 한 것은 내용상 일제시대 군항이었던 나진을, 탄천이라고 한 것은 주인공 가족들의 남하 스토리를 감안해 볼 때 단천을 가리키는 것 같다.
 
번역자는 요코가 한국 지명을 일본식 한자어 발음으로 기억하여 영어로 표기한 것을 원래 한국식 지명과 발음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한국어로 음만 따다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번역서에 서울이라고 나온 것이 원래 책에는 게이죠(京城)라고 되어 있었을는지도 알 수 없다.

번역 자체가 충실치 못하고 원래 지명이 제대로 등장하지도 못하니 이것을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번역했다면 일단 결격 사유가 크다. 어떤 책을 청소년용으로 문체와 내용을 첨삭, 교열하는 것은 물론 가능한 일이지만 이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더구나 『요코 이야기』처럼 역사의식과 관련성이 깊은 책이라면 훨씬 더 엄격한 주의가 선행되어야 했다.

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왓킨스 여인은 미국에서 이 책을 처음 출판할 때 북한 지역에서 자기들을 도와주었던 어떤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소설로 분류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원래 이 책의 내용은 실화인데, 어떤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의도에서 소설이라는 장르 명칭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문제적이다. 처음에 소설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이 이야기의 내용은 자기의 경험을 그대로 쓴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통상 소설은 허구성이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사실성이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본에는 사소설(私小說)이라는 소설 장르가 있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고백한다는 모순적 원리에 의해 주도되는 장르다. 사실이되 소설이라는 모순을 수많은 사람들이 합리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실 이 사소설이라는 것도 부가와 삭제 같은 기술적 처리를 통해 허구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

사소설이라 해도 사실 그 자체를 그대로 기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야기란 본래 사실이나 진실을 그대로 그릴 수 없는 법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사실이나 진실에 가까울 것을 규범으로 삼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 규범을 다 지킨다는 보장을 없다. 하물며 소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본래 실화였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허점이 많을 이 책을 지극히 문제투성이 책으로 만든다.

이 책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함경북도 나남에서 살다가 해방되기 약 한 달 전에 미군기의 폭격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남하를 결정하여 원산, 서울, 부산을 거쳐 후쿠오카로 건너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미 많은 허점과 허위성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위도상 나남에 아열대성 식물인 대나무가 과연 자생할 수 있느냐, 해방 전 한반도 지역에 미국의 공습이 있었느냐, 그녀의 가족을 추적했다는 북한 인민군이 해방 전에 창설되어 있기냐 했느냐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또 그녀의 부친이 만주 731부대 출신으로 생체 실험 등에 종사했다가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했던 어떤 기록에 남아 있는 자가 아니냐 하는 의혹까지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문학수첩』2005년 여름호에는 만주의 녹도촌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8월 9일, 10일경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하고 공습을 감행하는 바람에 서둘러 기차를 타고 두만강 국경을 거쳐 원산으로, 그리고 여기서 다시 평양을 거쳐서 서울로 남하한 회고담이 수록되어 있다. 전 국립국어원장인 송민 선생은 만주에 이주한 부친을 따라서 만주 북쪽 국경 가까운 곳에서 살다가 소련기의 폭격을 받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갓난아기 동생이 죽은 비극을 겪으면서 남하했었다.  

왓킨스 여인의 책을 검토해 보면 그녀의 가족이 해방되기 약 한 달 전에 나남에서 원산을 거쳐 서울까지 남하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들에 비추어 근거가 없다. 이 이야기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사실성이나 진실성이 있으려면 이 여인의 가족은 나남에서가 아니라 만주 어느 곳에서 탈출한 것이 되었어야 한다. 그것도 8월 9일이나 10일경을 전후한 어느 시점에 남하를 시작한 것이 되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소련기의 폭격을 받고 한만 국경을 건너거나 남하하는 과정에 전쟁 종결과 함께 일본인 색출에 나선 소련군의 검색에 시달렸어야 한다.

그러나 왓킨스 여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의 가족은 일본이 패전하기 한 달 전에 나남에서 남하하면서 미군기의 공습을 받고 일본인 색출에 시달리고 “반일공산군”이니 인민군이니 하는 세력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 어불성설이다.

이 여인의 가족이 패전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간 것이 사실이라면 추측컨대 이 가족의 출발지는 나남이 아니라 만주다. 그렇다면 왜 이 여인은 그 출발지를 나남으로 묘사해야 했던 것일까. 출발지가 만주라는 사실을 감추어야 할 어떤 중요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이 저술이 지닌 기본적인 의도에 대해서 더 깊이 분석해 볼 필요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 책은 하나의 허구 덩어리인 셈이다. 무엇을 위해서 이 여인은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

이 책에서 이 여인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 세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책의 전반부에 주로 등장하는 것으로 “반일 공산군”이라는 정체모를 집단과 인민군 같은 북한 사회주의 세력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의 후반부에 주로 등장한다. 이 여인의 가족이 서울과 부산에 잠시 피난민처럼 거주하고 있을 때 한국의 부랑자들이 일본인들을 못살게 하고 일본 여성들을 성폭행하기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 했다는 것이다.

『요코 이야기』의 영문판 표지

여기서 『요코 이야기』가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것이 1986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는 냉전체제가 아직 종식되기 전이어서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하면서 스매싱을 가하고 있을 때다. 소련을 비롯한 구 사회주의 국가와 집단을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가 범람하고, 사회주의 국가 및 세력과 자본주의 국가 및 세력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양분하는 반공 스토리가 하나의 장르적 규칙으로 통용되던 때다. 『요코 이야기』는 이런 이분법적 상상력에 ‘충실하다’.

또한 1986년경의 한국은 아직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배하던 5공화국 체제 아래에 있었다. 오늘날에는 일본에서도 한국과 북한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시각이 정립되어 가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북한보다 낫기는 하지만 야만적인 군사통치 아래서 인권이 가볍게 유린되고 기본적인 생존권도 확보되지 못한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이 일본에서는 주류적이었다. 지금도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결코 전향적이지만은 않다.

2007년 오늘의 시점만으로는 『요코 이야기』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1933년생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으면서 만주국까지 경영하던 일본의 관리의 딸이었던 이 여성은 자기 책의 후반부에서 전쟁이 끝나가고 또 끝나니까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때리고 빼앗고 성폭력도 서슴치 않았다고 쓴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국과 한국인들은 해방이 되고도 미군정 하에서 구 일본 경찰의 통치 질서를 타파하지 못했던 해방기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별로 사실에 부합하지 못한다. 이 책의 후반부 이야기는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어둡고 가난하고 야만적이라는 이미지의 멍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에 대한 지극히 일본인적인 인식과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항간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이 여인의 본래 의도는 전쟁의 폐해를 고발하고 평화의 가치를 선양하기 위한 것이었므로 선한 것이 아니냐는 인식은 순진하다 못해 지극히 반-기억적이다. 그녀가 말하는 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쟁 말기에 자기 가족이 미국의 폭격을 받고 반일 공산군 같은 사회주의 세력의 추적을 받고 무지몽매한 한국인들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자신들을 태평양전쟁의 피해자로 인식하기를 즐기고, 그런 인식틀로 후세대를 교육하고자 애쓰는 일본 우익 세력의 악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가 상징하듯이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이고 그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선택하게 된, 본질상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그들 자신을 인식한다. 이런 ‘자학사관’, ‘자학적’ 평화사상은 일본 바깥에 언제나 그들의 생명과 자산을 위협하는 세력을 창조해내는 상상력을 구비하고 있다.

오늘날 이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북한이다. 무라카미 류는 그런 악습을 그대로 수용하여 북한의 특공대가 어느 날 일본의 큐슈 지역을 점령해 버린다는 『요코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재미도 없는 책이 일본소설 붐을 타고 버젓이 번역되어 한국의 출판시장에 선을 보인다. 요코 가와카미 왓킨스라는 일본계 미국 여성의 『요코 이야기』도 이런 풍토를 배경으로 한국에 버젓이 상륙했던 것이다. 상륙하는 것은 어찌되었던 좋다. 그러나 그러려면 번역이 정확해야 한다. 청소년들 읽으라고 윤색을 가하거나 문장을 바꿔서 이 책의 기본적 성격을 호도하는 일은 옳지 않다. 

이러한 출판 현상들은 한국인들, 한국의 문학인들, 한국의 독자들에게 기억의 가치, 사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어떤 사람들은 한갓 이야기에 불과한 책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인들 특유의 민족주의적 심성과 편향을 또 한 번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요코 이야기』같은 반-기억적, 반-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무런 지성적인 검토도 받지 않고, 이것이 사실은 실화였노라는 작가의 주장과 함께, 번역도 충실하지 못한 것을 청소년 교육용이라는 명목으로, 출판시장에 버젓이 내놓을 수 있는 풍토를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종종 역사적 사실이야 어째도 좋고 또 역사적 사실 따위를 따져서 무엇하겠느냐는 무지막지한 견해를 펴는 사람들이 많다. 환금주의가 위력을 발휘하다 보니 무슨 책이든 돈을 벌게 해주면 좋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이야 사실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어떤 생각을 담고 있든 상관 없지 않느냐는 태도가 만연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를 용인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코 이야기』는 그러한 풍토에 부응하여 그런 형태로 출판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나 개인사적 사실 같은 사실과 진실의 차원이 중요하고 이것을 묻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허구와 사실을 적당히 결합시켜 놓은 팩션들, 역사소설들, 번역 환타지물이  번성하는 시대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더 맑고 투명한 판단력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1&title_down_code=002&area_code_num=113&article_num=7229

 

음. 누군가는 이미 했을 것이라고 했던 작업을 역시나, 방민호 선생님이 해주셨다. 물론 일문판등과의 꼼꼼한 비교는 아니었지만 일단 전체적 논지가 안정적이고 내 생각과도 부합한다. (문제는 나는 아직 요코이야기도 안 읽어보았다는 것. 논쟁만 살펴보고 있으니, 내 주장을 필 수도 없다.) 어쨌든 식민지시기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요코이야기'는 내 전공과의 관련성 때문에 어쨌든 '할 일이 생겼구나' 으싸! 하는 반가운(?)일이다.

방민호 선생님께서는 원체 사소설, 자전적 소설 쪽에 관심이 많으시고, 일어 책도 읽으시니. 이 분야에 글을 쓰기에 정말 적합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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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1-2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약간 오타가 난 것 같네요. 무라카미 류가 쓴게 '반도에서 나가라'였던 것 같은데 요코이야기라고 써졌네요^^;

기인 2007-01-2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 저도 그게 오타인지, 아님 그것도 또 하나의 '요코 이야기'라는 건지; ㅎㅎ

바라 2007-01-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자일 수도 있겠네요. 무라카미 류 책을 못 읽어봐서 같이 묶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따옴표가 아니라 겹낫쇠로 되어있어서 그 생각은 미처 못해봤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1-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그날이 오면>에 마지막 한 권 남은 이 책을 방민호 교수님이 사가셨다는데, 바로 이런 글을 쓰셨군요. 잘 보았습니다아= ^^

기인 2007-02-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
 
 전출처 : 이매지 > 여자들이 적게 먹는 건

 

출처 : http://marineblues.net/marine/index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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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2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때 <마린블루스> 패인이었어요. 이거 사람을 은근히 중독시켜요.^^

기인 2007-02-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ㅋ 근데 이 만화 중에도 은근히 짜증나는 정치성이 간혹 보여서 저는 팬이나 패인도 아니에요 ^^; ㅎㅎ
 
 전출처 : 바라 > 등록금 천만원 시대 꼭 대학에 가야할까?

[동아닷컴]

연간 대학등록금 최고 1000만 원 시대. 거액의 등록금 앞에서 돈 없는 서민들이 울고 있다.

학생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를, 부모는 보내야 하는지를 울면서 고민한다. 대졸 취업률이 낮아지는 것도 이들의 고민을 부추긴다.

지난 23일 미디어다음 토론 게시판에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한 고등학생의 글이 올라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틀 만에 조회수 1만 4000개를 기록한 이 글은 고민이 가득한 수많은 덧글이 붙으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연봉 2400만원인 가정의 경우 대학등록금으로 수입의 40%가 나간다. 교재비, 교통비, 숙식비, 기타 비용까지 합치면 엄청난 교육비다. 대학 4년 동안 등록금을 포함해 자녀 1인당 약 1억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는 세간의 푸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 국내 대학의 장학금 제도가 좋은 것도 아니므로 결국 대출을 받아야만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만일 4년 동안 대학교육을 시키는데 총 1억이 든다고 가정한다면, 연평균 2500만원인 셈이다. 하지만 이 4년을 사회에 나와서 동일한 가치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투자기간으로 볼 수 있느냐, 그건 아니다. 전국에 80만 이상의 백수들이 즐비하고 그 중 상당수가 대졸 출신이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직장도 중소기업일 경우 초임 연봉이 2000만원을 넘는 곳은 많지 않다. 지금 대학들이 내놓는 등록금의 현실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분통이 터진다. ”

여기에 25일 아이디 ‘U-NA’라는 누리꾼이 ‘이제 고3이 되는 한 학생입니다’ 라는 글을 올려 공감을 표했다.

“신문에서 등록금 인상 뉴스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수능이 며칠 남았나 계산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했는데 지금은 머리가 띵하고 등록금 걱정에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대학이 원하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돈 많은 학생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4년 등록금이 4000만원이라면 우리 집은 집을 팔아서 대학을 다녀야 한다. 부모님이 뼈 빠지게 일해서 모아둔 돈이 나 때문에 다 빠져나갈 것을 생각하면 대학을 꼭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10대들이 부모에게 가장 바라는 게 ‘경제력’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지금에 보니 돈 많은 부모님 밑에서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소망은 지탄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

누리꾼들도 이들의 글에 공감하며 많은 의견을 내놨다.

“대학 2학년생을 둔 아버지다. 등록금만 들어가나, 1년에 최소 2천만 원도(자취, 디자인재료비, 생활비등) 더 들어가요, 등골 휜다. ” (아이디 ‘살구’), “지금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있는 졸업반인데, 4년을 회상해보면 솔직히 돈이 아깝다. ” (taylor0), “집안형편이 어려워 국립대를 선택했는데 이번에 등록금을 39% 인상한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사랑해), “언니가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등록금 마련하느라 엄마 아빠 밤마다 힘들어하는 게 보인다. 우리가족은 팔 집조차 없다. ”(리틀잠만보ㅋ)

그러나 25일 자신을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라고 소개한 29세의 누리꾼이 “그래도 대학은 가야한다”며 두 학생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는 ‘고졸로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글을 올려 “사업은 성공했지만 내 평생의 한은 ‘대학 안 나온 것’“이라며 “돈벌레처럼 살기 싫으면 대학에 꼭 가라”고 충고했다.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자영업자다. 공고를 졸업한 뒤 특별한 학력 기술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용직 노가다나 유흥업소 웨이터 정도였다. 유일하게 양복입고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이었지만 다단계 비슷한 형태였다. 결국 6개월 동안 40만원 밖에 벌지 못했다. 고교 친구들 중에 잘 풀린 케이스는 공장에서 전자제품을 조립해 수당 포함 월 110~120 정도 받는 정도였고 이마저도 한 반에 4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답답한 친구들은 공장을 그만두고 대학을 목표로 뒤늦게 수능에 도전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지방학교에 대부분 들어갔다. 군 제대 후 사회에 나오니 대학 졸업장의 위력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졌다. 예전에 아무나 할 수 있던 단순 조립 일도 이제는 모든 구인란에 ‘초대졸 이상’이라는 문구가 붙어 나와 나를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람 구하냐고 전화를 걸고 싶어도 제 자신이 초대졸이 아니기에 전화 걸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25살 아직 창창한 나이, 대학 나온 친구들 보다 몇 년 앞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수중에 1000만원도 못 모았다. 고졸 학력으로는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기에 길어야 3개

월, 6개월 이리저리 옮겨 다녀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기엔 나이도 점점 어정쩡해지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중압감에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끽해야 연봉 1000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친구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좀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연봉 2000~2500에서 시작했다. 그 때 자본금 450만원을 가지고 모험을 한 것이 지금의 사업이었다. 꿈이 있어 한 게 아니라 고졸 학력으로 정말로 할 게 없어 시작한 것이다. 그간 고생도 많이 했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성공했지만 대학은 꼭 나오라고 강권하고 싶다. 왜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하루에 4~5시간 자고 여가 즐길 새 없이 돈벌레처럼 악착같이 살 자신이 없으면 대학을 가라’고 말하겠다. 대졸이 넘쳐나는 이 시기에 고졸로서 산다는 건 예전 고졸이 보편화된 시기에 중졸의 학력으로 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

이 글에는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의 공감한다는 덧글이 이어졌다.

“쓸데없는 졸업장은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아마 20대 초ㆍ중반일 것이다. 30대 초반이 되면 대학이 왜 필요한지 절실히 아시게 될 것이다. ”(Something real), “저도 고졸자인데 운이 좋아 좋은 직장에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 내 차별 때문에 이번에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 나이 마흔이지만 공부 안 한 게 얼마나 한이 되는지 모른다. 자식 보기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석사까지 받겠다. ”(Led제플린), “결혼할 때도 고졸은 하나의 장애가 된다. 3류 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 ” (쌈코), “돈이 없어 고등학교만 마치고 직장 옮겨 다니다가 미래가 걱정돼 일마치고 늦게까지 공부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고졸이라도 노력하면 된다. 기죽지 말자.”(현)

과연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학을 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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