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반기억과 양립할 수 있나
[문학칼럼] 『요코 이야기』 번역마저 부실한 청소년도서

방민호_문학평론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라는 일본계 미국 여성이 저술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요코 이야기』(So far from bamboo grove)가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중학교 교재로까지 사용되고 있다가 지난 해 9월 보스톤 지역의 한국계 학부모들이 반대운동에 나서면서 파문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그 파문이 이제 한국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이 번역으로서 충실치 못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몇 개의 지명들이 나온다. 이 가운데 ‘라신’이라고 한 것은 내용상 일제시대 군항이었던 나진을, 탄천이라고 한 것은 주인공 가족들의 남하 스토리를 감안해 볼 때 단천을 가리키는 것 같다.
 
번역자는 요코가 한국 지명을 일본식 한자어 발음으로 기억하여 영어로 표기한 것을 원래 한국식 지명과 발음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한국어로 음만 따다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번역서에 서울이라고 나온 것이 원래 책에는 게이죠(京城)라고 되어 있었을는지도 알 수 없다.

번역 자체가 충실치 못하고 원래 지명이 제대로 등장하지도 못하니 이것을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번역했다면 일단 결격 사유가 크다. 어떤 책을 청소년용으로 문체와 내용을 첨삭, 교열하는 것은 물론 가능한 일이지만 이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더구나 『요코 이야기』처럼 역사의식과 관련성이 깊은 책이라면 훨씬 더 엄격한 주의가 선행되어야 했다.

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왓킨스 여인은 미국에서 이 책을 처음 출판할 때 북한 지역에서 자기들을 도와주었던 어떤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소설로 분류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원래 이 책의 내용은 실화인데, 어떤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의도에서 소설이라는 장르 명칭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문제적이다. 처음에 소설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이 이야기의 내용은 자기의 경험을 그대로 쓴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통상 소설은 허구성이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사실성이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본에는 사소설(私小說)이라는 소설 장르가 있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고백한다는 모순적 원리에 의해 주도되는 장르다. 사실이되 소설이라는 모순을 수많은 사람들이 합리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실 이 사소설이라는 것도 부가와 삭제 같은 기술적 처리를 통해 허구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

사소설이라 해도 사실 그 자체를 그대로 기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야기란 본래 사실이나 진실을 그대로 그릴 수 없는 법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사실이나 진실에 가까울 것을 규범으로 삼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 규범을 다 지킨다는 보장을 없다. 하물며 소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본래 실화였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허점이 많을 이 책을 지극히 문제투성이 책으로 만든다.

이 책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함경북도 나남에서 살다가 해방되기 약 한 달 전에 미군기의 폭격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남하를 결정하여 원산, 서울, 부산을 거쳐 후쿠오카로 건너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미 많은 허점과 허위성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위도상 나남에 아열대성 식물인 대나무가 과연 자생할 수 있느냐, 해방 전 한반도 지역에 미국의 공습이 있었느냐, 그녀의 가족을 추적했다는 북한 인민군이 해방 전에 창설되어 있기냐 했느냐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또 그녀의 부친이 만주 731부대 출신으로 생체 실험 등에 종사했다가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했던 어떤 기록에 남아 있는 자가 아니냐 하는 의혹까지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문학수첩』2005년 여름호에는 만주의 녹도촌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8월 9일, 10일경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하고 공습을 감행하는 바람에 서둘러 기차를 타고 두만강 국경을 거쳐 원산으로, 그리고 여기서 다시 평양을 거쳐서 서울로 남하한 회고담이 수록되어 있다. 전 국립국어원장인 송민 선생은 만주에 이주한 부친을 따라서 만주 북쪽 국경 가까운 곳에서 살다가 소련기의 폭격을 받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갓난아기 동생이 죽은 비극을 겪으면서 남하했었다.  

왓킨스 여인의 책을 검토해 보면 그녀의 가족이 해방되기 약 한 달 전에 나남에서 원산을 거쳐 서울까지 남하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들에 비추어 근거가 없다. 이 이야기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사실성이나 진실성이 있으려면 이 여인의 가족은 나남에서가 아니라 만주 어느 곳에서 탈출한 것이 되었어야 한다. 그것도 8월 9일이나 10일경을 전후한 어느 시점에 남하를 시작한 것이 되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소련기의 폭격을 받고 한만 국경을 건너거나 남하하는 과정에 전쟁 종결과 함께 일본인 색출에 나선 소련군의 검색에 시달렸어야 한다.

그러나 왓킨스 여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의 가족은 일본이 패전하기 한 달 전에 나남에서 남하하면서 미군기의 공습을 받고 일본인 색출에 시달리고 “반일공산군”이니 인민군이니 하는 세력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 어불성설이다.

이 여인의 가족이 패전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간 것이 사실이라면 추측컨대 이 가족의 출발지는 나남이 아니라 만주다. 그렇다면 왜 이 여인은 그 출발지를 나남으로 묘사해야 했던 것일까. 출발지가 만주라는 사실을 감추어야 할 어떤 중요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이 저술이 지닌 기본적인 의도에 대해서 더 깊이 분석해 볼 필요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 책은 하나의 허구 덩어리인 셈이다. 무엇을 위해서 이 여인은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

이 책에서 이 여인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 세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책의 전반부에 주로 등장하는 것으로 “반일 공산군”이라는 정체모를 집단과 인민군 같은 북한 사회주의 세력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의 후반부에 주로 등장한다. 이 여인의 가족이 서울과 부산에 잠시 피난민처럼 거주하고 있을 때 한국의 부랑자들이 일본인들을 못살게 하고 일본 여성들을 성폭행하기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 했다는 것이다.

『요코 이야기』의 영문판 표지

여기서 『요코 이야기』가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것이 1986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는 냉전체제가 아직 종식되기 전이어서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하면서 스매싱을 가하고 있을 때다. 소련을 비롯한 구 사회주의 국가와 집단을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가 범람하고, 사회주의 국가 및 세력과 자본주의 국가 및 세력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양분하는 반공 스토리가 하나의 장르적 규칙으로 통용되던 때다. 『요코 이야기』는 이런 이분법적 상상력에 ‘충실하다’.

또한 1986년경의 한국은 아직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배하던 5공화국 체제 아래에 있었다. 오늘날에는 일본에서도 한국과 북한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시각이 정립되어 가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북한보다 낫기는 하지만 야만적인 군사통치 아래서 인권이 가볍게 유린되고 기본적인 생존권도 확보되지 못한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이 일본에서는 주류적이었다. 지금도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결코 전향적이지만은 않다.

2007년 오늘의 시점만으로는 『요코 이야기』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1933년생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으면서 만주국까지 경영하던 일본의 관리의 딸이었던 이 여성은 자기 책의 후반부에서 전쟁이 끝나가고 또 끝나니까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때리고 빼앗고 성폭력도 서슴치 않았다고 쓴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국과 한국인들은 해방이 되고도 미군정 하에서 구 일본 경찰의 통치 질서를 타파하지 못했던 해방기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별로 사실에 부합하지 못한다. 이 책의 후반부 이야기는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어둡고 가난하고 야만적이라는 이미지의 멍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에 대한 지극히 일본인적인 인식과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항간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이 여인의 본래 의도는 전쟁의 폐해를 고발하고 평화의 가치를 선양하기 위한 것이었므로 선한 것이 아니냐는 인식은 순진하다 못해 지극히 반-기억적이다. 그녀가 말하는 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쟁 말기에 자기 가족이 미국의 폭격을 받고 반일 공산군 같은 사회주의 세력의 추적을 받고 무지몽매한 한국인들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자신들을 태평양전쟁의 피해자로 인식하기를 즐기고, 그런 인식틀로 후세대를 교육하고자 애쓰는 일본 우익 세력의 악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가 상징하듯이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이고 그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선택하게 된, 본질상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그들 자신을 인식한다. 이런 ‘자학사관’, ‘자학적’ 평화사상은 일본 바깥에 언제나 그들의 생명과 자산을 위협하는 세력을 창조해내는 상상력을 구비하고 있다.

오늘날 이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북한이다. 무라카미 류는 그런 악습을 그대로 수용하여 북한의 특공대가 어느 날 일본의 큐슈 지역을 점령해 버린다는 『요코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재미도 없는 책이 일본소설 붐을 타고 버젓이 번역되어 한국의 출판시장에 선을 보인다. 요코 가와카미 왓킨스라는 일본계 미국 여성의 『요코 이야기』도 이런 풍토를 배경으로 한국에 버젓이 상륙했던 것이다. 상륙하는 것은 어찌되었던 좋다. 그러나 그러려면 번역이 정확해야 한다. 청소년들 읽으라고 윤색을 가하거나 문장을 바꿔서 이 책의 기본적 성격을 호도하는 일은 옳지 않다. 

이러한 출판 현상들은 한국인들, 한국의 문학인들, 한국의 독자들에게 기억의 가치, 사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어떤 사람들은 한갓 이야기에 불과한 책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인들 특유의 민족주의적 심성과 편향을 또 한 번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요코 이야기』같은 반-기억적, 반-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무런 지성적인 검토도 받지 않고, 이것이 사실은 실화였노라는 작가의 주장과 함께, 번역도 충실하지 못한 것을 청소년 교육용이라는 명목으로, 출판시장에 버젓이 내놓을 수 있는 풍토를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종종 역사적 사실이야 어째도 좋고 또 역사적 사실 따위를 따져서 무엇하겠느냐는 무지막지한 견해를 펴는 사람들이 많다. 환금주의가 위력을 발휘하다 보니 무슨 책이든 돈을 벌게 해주면 좋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이야 사실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어떤 생각을 담고 있든 상관 없지 않느냐는 태도가 만연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를 용인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코 이야기』는 그러한 풍토에 부응하여 그런 형태로 출판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나 개인사적 사실 같은 사실과 진실의 차원이 중요하고 이것을 묻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허구와 사실을 적당히 결합시켜 놓은 팩션들, 역사소설들, 번역 환타지물이  번성하는 시대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더 맑고 투명한 판단력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1&title_down_code=002&area_code_num=113&article_num=7229

 

음. 누군가는 이미 했을 것이라고 했던 작업을 역시나, 방민호 선생님이 해주셨다. 물론 일문판등과의 꼼꼼한 비교는 아니었지만 일단 전체적 논지가 안정적이고 내 생각과도 부합한다. (문제는 나는 아직 요코이야기도 안 읽어보았다는 것. 논쟁만 살펴보고 있으니, 내 주장을 필 수도 없다.) 어쨌든 식민지시기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요코이야기'는 내 전공과의 관련성 때문에 어쨌든 '할 일이 생겼구나' 으싸! 하는 반가운(?)일이다.

방민호 선생님께서는 원체 사소설, 자전적 소설 쪽에 관심이 많으시고, 일어 책도 읽으시니. 이 분야에 글을 쓰기에 정말 적합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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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1-2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약간 오타가 난 것 같네요. 무라카미 류가 쓴게 '반도에서 나가라'였던 것 같은데 요코이야기라고 써졌네요^^;

기인 2007-01-2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 저도 그게 오타인지, 아님 그것도 또 하나의 '요코 이야기'라는 건지; ㅎㅎ

바라 2007-01-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자일 수도 있겠네요. 무라카미 류 책을 못 읽어봐서 같이 묶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따옴표가 아니라 겹낫쇠로 되어있어서 그 생각은 미처 못해봤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1-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그날이 오면>에 마지막 한 권 남은 이 책을 방민호 교수님이 사가셨다는데, 바로 이런 글을 쓰셨군요. 잘 보았습니다아= ^^

기인 2007-02-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