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공개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이상한 일이다. 우선 첫째, 나는 디카가 없다. 디카가 없는데 무슨 놈의 서재 공개냐 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욱 요상한 일은 나는 단칸방에 산다는 것이다. 단칸방에 사는 독신남이 난데없이 서재를 공개하겠다고 드는 것은, 강아지가 자신의 애완견을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이상한 일임에는 틀림 없다.
어쨌든, 단칸방에 살고 있는 독신남에 디카도 없는 소심한 A형인 나로서, 야밤에 느닷없이 '서재공개'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자기도 싫고, 요즘 읽고 있는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라는 소설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백수는 매일 책만 보는데, 이 소설은 그 백수가 읽은 책이 계속 인용되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사실 스토리라는 것도 필요없을지 모른다. 읽으면서 나도 그런거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보르헤스 적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러면 어떻게 서재 공개를 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단칸방에 살면서 디카도 없는 소심한 A형군은 문학도이다. '문학'하면 제일 먼저 어떤 작품이 떠오르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을 정체를 알 수 있을지 모르나, 어쨌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어울리는 작품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다.

그러면, 나는 불문학을 전공하거나, 불문학을 좋아하거나, 아니라면 심지어 프랑스 여자랑 사귀어봤거나 프랑스를 가봤거나, 파리를 몇마리 잡아봤거나 한 사람인가 하면, 내가 아는 한은 모두 아니다. 그냥저냥 문학도이다 보니 이래저래 들춰본 책들이 많고, 어린시절 친구가 별로 없어서 세계문학전집을 열심히 읽었을 뿐. 프랑스는 커녕 유럽도 가본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유럽' (이거 스펠링이 UFO인가?)을 갔다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아직 '유럽'을 믿지 못한다. 아, 물론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조금 공부한 바가 있고, 68혁명이나, 알튀세르나 라깡이나 소문이 무성한 프랑스 아저씨들에 대해서 일면식은 없지만 그들의 책들이 나를 꽤나 괴롭힌 전적이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어쨌든 "레미제라블'과 서재 공개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학이란 무엇이냐 한다면, 문학은 묘사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을 법하다. 아니면 내가 말하겠고. 어쨌거나 위고라는 아저씨의 "레미제라블"의 그 유명한 하수도 묘사가 있다. 장장 몇페이지인지는 책의 도판마다 다를 것이지만, 어쨌든 길다고 소문나고 전체 스토리와 전혀 상관없는, 그래서 "담화의 놀이들"이라는 이론서의 저자가 이 또한 '여담'으로 분류해마지 않는, 그런 묘사가 줄창 이어진다.

그렇다. 서재 공개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서재이니까 말이다. 만약 화장실 공개라면, 유한락스에 대한 경애심과 함께 공개되어야 하듯이, 마굿간이라면 예수에 대한 경배와 함께. 서재 공개는 서재를 빛나게 하는(?)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와 함께 공개되어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어쩌면 보르헤스가 더 걸맞는지도 모른다. 그의 책과 도서관들이 허공에서 떠돈다. 사실 나는 위고보다는 보르헤스에게 더 감탄을 하는 독자인데, 이 소설의 진행 방식은 스턴식으로 될 것이다. 왜냐. 내 책들의 아우성을 찬찬히 들어가면서 진행될 것임에.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저 놈은 서구 문학 전공자 중 하나일 것, 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야말로 그 이름도 찬란해서 뭍 거리의 대중들은 잘 보지도 못하는 '국문학'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전공에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도 서구문학 쫌 알어'라고 빌빌대는 것은, 우리 그 위대한 국문학 선배들의 전통을 답습해서일까, 아니면 서구문학 전공 한국인들이 역사적 사명을 품에 안고 한국에 들어와 '니네가 서구문학 들어는 봤냐?'라고 했을때 슬픈 표정 짓던 선배들의 울분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요즘 국문학 전공자들 역시 외국 소설과 이론서만 읽는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의 서재 공개는 언제쯤 시작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 시간에...
to be continued. (이거 스펠링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