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묵향 > * 미술판 셜록 홈즈

  2년 전 글을 다시 정리한다. 서재 → 북플 전환기에 공연한 고생을 하였다.



  잘 쓴 소설이다. 흥미진진하다.


  작가는 『키드내퍼스(キッドナッパーズ)로 2003년 제42회 '오루 요미모노(オール讀物)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오루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은 1962년(제1회)부터 2007년(제46회)까지 수여되었다. 2008년부터는 '오루 요미모노 신인상'(1952년부터 시상하여 2008년이 88회째였다)에 통합되었다. 『오루 요미모노』는 주식회사 문예춘추(文藝春秋)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이다. 나오키상(直木三十五賞) 수상작이 위 잡지에 실리는데[상반기 수상작이 9월호에, 하반기 수상작이 다음 해 3월호에. 아쿠타가와상(芥川龍之介賞) 수상작은 월간『문예춘추』에 실린다]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献身』은 2003년부터 위 잡지에 연재되다가 2005년 하반기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추리소설 신인상 수상자(작) 중에는 1976년(제15회)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郎, 『유령열차 幽霊列車』), 1987년(제26회)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우리 이웃의 범죄 我らが隣人の犯罪』), 1997년(제36회) 이시다 이라(石田衣良,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池袋ウエストゲートパーク』), 2002년(제41회) 슈카와 미나토(朱川湊人, 『올빼미 사내 フクロウ男』, 그의 첫 단행본인 『도시전설 세피아 都市傳說セピア』에 수록됨) 등이 있다. 일본이 가까이에 있어 속 썩는 일도 많지만, 우리와는 다른 감수성의 것들을 비교적 쉽게, 빨리 입수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들...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는 태동출판사의 2010년 구판이 절판되고 2012년에 씨엘북스에서 다시 나왔다.




  이번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 짝도 몇 권을 가졌는데, 1년에도 몇 권씩 쏟아져 엄청나게 쌓였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미여사'의 작품 세계는 넓고 깊다. 이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속기 전문학교와 법률사무소에서도 일했다. 『이유』로 제12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쓸어담았다(일단 많이 쓰고 봐야 한다). '박람강기 프로젝트' 시리즈 중 하나로 『에도 산책』이란 책이 있다.

  



  '박람강기 프로젝트' 시리즈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포트폴리오가 흥미롭다. 매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책들이다.




  이시다 이라도 만만찮다. 그런데 상당수는 절판되었고, 일부는 다시 나왔다.




  끝으로 슈가와 미나토의 책들... 『꽃밥』으로 제133회 나오키상을 수상하였다.




  다시 돌아와서, 가도이 요시노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국내에는 『천재들의 가격』 한 권만 번역되어 있는 것이 의아하여 찾아보았다(추가: 2018년 2월에 『이에야스, 에도를 세우다』라는 책이 나왔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사한 책을 여러 권 시리즈처럼 냈다[후술. 『천재들의 가격』의 주인공도 가미나가 미유(神永美有)이다]. 그런데 저자의 책 중에 『竹島』가 있는 것이 찜찜하다(알라딘에서도 검색이 된다. 위 제목 클릭). 내용은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천재들의 가격』에서 언뜻 비치는 시각에 비추어 보면, 우리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천재들의 가격』 국역본에서도, 그런 점이 있음을 역자가 굳이 후기에서 해명 조로(?) 언급하여야만 했다]. 아마존 저팬 책 소개에는 '역사 서스펜스&콘 게임 소설'이라는 설명이 있고[사전에서 '콘 게임(コン・ゲーム)'을 찾으니, "순진한 사람을 상대로 사기의 수단을 써서 타격을 주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독자평 중에는 영유권에 관한 책이 아니라 협상소설이라는 평이 있다. 가도이 요시노부는 역사소설도 많이 쓰는 것 같은데(역시 각각의 내용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저자의 입장 때문에 책이 소개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아마존 저팬과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 중에서 그림 얘기다 싶은 것들 위주로 몇 권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순서대로  『천재들의 거리 미술탐정 가미나가 미유 天才までの距離 美術探偵・神永美有』, 『주문이 많은 미술관 미술탐정 가미나가 미유 注文の多い美術館 美術探偵・神永美有』, 『여기는 경찰청 미술범죄 수사대 こちら警視庁美術犯罪捜査班』, 『우리의 근대건축 디럭스! ぼくらの近代建築デラックス!』, 『마법의 히스토리 투어 미스테리와 미술로 읽는 현대 マジカル・ヒストリー・ツアー ミステリと美術で読む近代』, 『혈통 血統』, 『찾으시는 책은 おさがしの本は』, 『세상에 한 권의 책この世にひとつの本』, 『소설 있습니다 小説あります』, 『호텔 컨시어지 ホテル・コンシェルジ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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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카도조 로스쿨의 Peter Neufeld와 Barry Scheck이 주도하여 시작된 미국의 '이노센스 프로젝트 Innocence Project'는,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에 관하여 DNA 재감정을 통해 2017년 6월까지 351명의 유죄 확정자가 무고함을 밝혀냈고, 그중 20명은 사형수였다. 억울함이 밝혀진 사건들의 40% 정도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DNA 감정결과만 가지고도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었고, 그 때까지 그들이 교도소에서 복역한 기간은 평균 13년 정도였다. DNA 검사를 통해 150여 명의 진범을 찾아내기도 했다. 매년 3,000명 정도의 기결수가 이노센스 프로젝트에 자신의 결백함을 밝혀달라고 편지를 쓰고, 이노센스 프로젝트는 이를 포함하여 6,000에서 8,000건 정도의 사건을 들여다 보는데, 그중 22% 정도 사건은 DNA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공식 사이트를 참조 https://www.innocenceproject.org/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들 한 명 한 명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전락자백』은 일본 '진술증거 평가의 심리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회'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위 연구회는 2008년 9월 구상되어, 2009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일본의 형사법학자, 심리학자, 변호사 등이 20회에 달하는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거짓자백하는가'를 심리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아시카가足利 사건, 도야마히富山氷見 사건, 우쓰노미야宇都宮 사건, 우와지마宇和島 사건 네 사건을 주로 다루었는데,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슬픈 자백'이 이루어진다(책 94~100쪽).

  a. 일상생활로부터 격리된 고립무원의 상태(일상에서는 당연했던 심리적 안정을 잃고, 수사기관은 주변 사람들 모두 너를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의 정보 혹은 심리적 압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러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 범죄사건을 보도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b.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 상실(구금되고 나면 식사, 배설, 수면 등 기본적 생활에서 자유의 범위가 크게 줄어들고 피의자신문을 위하여 반복하여 불려나가야 하게 된다)

  c.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수사관들은 객관적 증거가 없어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더욱, 보다 안심하고 기소할 수 있는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피의자들을 비난하고, 매도하면서 심리적으로 도발하는데, 피의자가 계속하여 부인하는 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된다)

  d.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결혼적령기를 지난 비혼으로 이성과 안정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거나 충실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이 사건과 무관한 사항에 관해서 자꾸 비난받다 보면 사건과는 무관하게 죄책감이 생기고, 실패자로 낙인찍힌 기분이 되어 저항력을 상실하게 된다)

  e.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아무리 열심히 변명해도 변명은 변명처럼 들리고, 수사기관은 결정적 증거가 있는 양 말하며 설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상에서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설득하기를 단념하고 떠날 수 있지만, 피의자신문은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된다)

  f.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언제 확실히 끝날지 모르는 상태를 사람들은 더욱 버티기 어렵다)

  g. 부인할 경우의 불이익 강조(계속 부인하면 오히려 형이 무거워진다고 타이른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무 죄가 없더라도 자백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h. 수사관과의 '자백적 관계'(물론 피의자와 수사관은 경쟁적 관계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정이 통하는 일종의 동료의식으로 묶여버려 법정에서조차 자백철회가 그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심리적 구속이 유지된다)


  여기에는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는 (일본) 형사절차의 구조적 문제도 크게 작용하는데(이는 우리 사법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과 같은 추궁형 신문방식 하에서 수사관은, 자백함으로써 느끼는 불안감을 증대시키지 않으면서도 부인을 계속함에 따른 불안감만 증대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고, 그래서 d, g와 같은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우월한 조직력을 가진 수사기관과 대치할 때 독립한(그래서 고립된) 재판관이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여론의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이는 가중될 것이다) 혹은 때로는 (무)의식적 동료의식, 과거에 행해진 DNA 검사의 기술적 한계(그리고 그 해석방법에 관한 법률가들의 무지), 실제 체험을 말할 때와 체험하지 않은 것을 말할 때의 차이에 대한 간과(체험기억을 진술할 때는 자기와 타자를 번갈아 고르게 말하지만, 거짓자백을 할 때는 자기의 운동행위를 쭉 이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범행현장에서도 피해자나 피해품은 범인의 주요한 관심사일 것이므로 나 아닌 것에 관한 진술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체험진술에서는 수사기관이 몰랐던 '비밀'이 폭로되는 반면 비체험진술에서는 피의자의 '무지'가 폭로되기도 하는데, 이를 사법기관이 섬세하고 공정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피의자에게 크고 작은 지적장애가 있는 경우(이들은 자신이 질책받고 야단맞고 있다고 느낄 때 수사관에게 심리적으로 구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 목격자나 피해자에 의하여 범인을 식별할 때의 위험(피해자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도망갈 수 있는 길이나 흉기에 주목하기 때문에 범인의 용모에 관한 기억은 불확실할 가능성이 높은데, 수사기관이 보여주는 인물은 진범일 것이라는 암시를 받기 쉬우므로, 엄격한 범인식별절차가 준수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하는 것은 어느 것이든 위태롭고, 재판절차에서는 위험하다)과 같은 것들도 거짓자백에 의한 재판을 보충하는(?) 요소로 책은 다루고 있다.


  따라서 자백의 신용성을 판단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책 199쪽).

  ① 범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심증을 형성할 때에는, 인간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오류를 더 적게 하기 위해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 진실 앞에 겸허하고 우직할 것.

  ② 자백이 있는 사건에서도 특히 피고인과 범행을 연결지을 때, 정황증거의 정확성과 한계를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을 '제1차적 작업', 즉 출발점으로 할 것. 자백의 검토는 그 후의 '제2차적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③ 심증 형성의 과정에서는 스스로 세운 '가설' 위에 항상 새로운 '가설'을 던지고, 예외에 눈감지 않고 시야를 넓게 가지며 끊임없는 '검증'을 거듭해갈 것(인간은 하나의 관점을 가지면 다른 관점을 가지기 어렵다. 특히 그것이 확신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이것이 평소에도 입장을 즉자적으로 세우기 전에,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검증하는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다만, 재판관은 과학자를 가장하거나 과학에 정통한 태도를 취하여 '전문가인 척하는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확신은 위험하다는 동일한 이유에서다.).

  ④ 재판관이 행하는 증거의 종합적 판단은 최종적으로는 재판관의 '전인격적 판단'이 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도 개별적인 증거에 대해 충분한 조사와 분석을 반복하여 검토하고, 거기에 더해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항목을 체크하여야 한다(상세는 책 200~204쪽).

  a. 자백의 성립 과정-자백과 부인이 뒤섞인 경우, b. 자백 내용의 변동과 합리성, c. 자백의 체험진술성, d. '비밀의 폭로', e. 자백과 객관적 증거가 부합하는 정도, f. 뒷받침해야 할 물적 증거의 부존재(관련성이 희박하고 불확실한 증거를 아무리 모아도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 확실한 물적 증거가 '왜 없는지'를 문제 삼아야 한다), g. 범행 전후의 수사관 이외 사람에 대한 언동(피의자, 피고인이 된 사람은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해야), h. 피고인의 변명, i. 정황증거와의 관계.


  일본에서는 '설원雪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원죄冤罪 피해 근절과 피해 회복을 목표로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공식 사이트를 참조 http://setuen-project.com/


  일본에서 2012년에 쓰였고, 번역작업도 꽤 일찍 시작된 것 같은데, 2015년에야 책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옮긴이가 덧붙인 "김인회의 한국 이야기" 부분은 국내의 최신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이 철 지난 이야기에 오도될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예컨대, 책 255쪽 유죄율 통계 등. 약식사건을 빼고 제1심 공판사건 재판결과를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사법연감』http://www.scourt.go.kr/portal/news/NewsListAction.work?gubun=719 자료를 통해 계산해 보면, 한국에서 유죄판결(선고유예 포함) 비율은 2011년 70.0%, 2012년 67.0%, 2013년 74.5%, 2014년 80.5%, 2015년 83.4%, 2016년 87.1%, 2017년 86.0% 정도로,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유죄판결이 9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다. 검찰에 불기소재량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검찰과 법원 사이의 밀당게임인 측면이 있다. 국민참여재판도 책 곳곳에 지적된 것과 같은 여러 한계로, 확대되기보다는 사양화에 가까운 길을 걷고 있다고 알고 있고, 참심제를 시행하는 나라들에서도 특히 현대사회에 와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서증을 꼼꼼히 비교, 대조하여 보기가 거의 어렵고, 검사나 변호인이 가공, 요약한 프리젠테이션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일 개정하는 데 현실적 제약이 있어 '일격성'(일회적 공격) 사건이 아니면 제대로 된 심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일본의 최신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형사법 영역에서는 책에 나온 것과 같은 고질적 문제들도 있어서, 모르긴 몰라도 일본은 사법제도가 우리보다 점점 뒤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특히 형사절차에서는 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법률가들의 노고로, 일본보다 빠른 성과를 쟁취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도 엄벌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실은 어느 나라나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형량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높은 형량이 총기범죄 등 범죄 예방에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언뜻 접하는 언론기사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게 되는 '제1종 오류'와 진범을 방면하는 '제2종 오류'를 함께 줄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실증적 근거에 터 잡은 냉철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예컨대 개방형 교도소까지 운영하는 핀란드는, 실은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좌파 탄압 등을 목적으로 장기구금형 중심의 형사정책을 유지하다가, 그것이 재범방지와 범죄예방에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사회적 결론을 내리고 1960년대부터, 불필요하게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행위들에 대한 형벌을 폐지하고, 있는 법정형을 줄이고, 재소자들을 빨리 사회로 복귀시키는 등 목적의식적으로 형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도 형사정책은 좋은 사회(복지)정책의 뒷받침 없이 달성될 수 없다는 믿음하에, 범죄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재소자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데 목표를 둔, 'as open as possible'한 교정행정을 견지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관광명소인 헬싱키의 수오멘리나 섬에는 개방형 교도소가 있는데, 여행 중에 수감자와 마주치더라도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2010년 9월에 무죄가 확정된 무라키 아쓰코村木厚子 씨는 "...취조라는 것은 링에 아마추어 복서와 프로 복서가 올라가 시합을 하는데, 심판도 없고 세컨드도 붙지 않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책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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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 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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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내용이 많다. 기본적인 표현도 신경써서 정확히 가려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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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벗겨지면 큰일

https://korean.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83526&ctg=

일반적으로 머리 숱이 적은 사람을 가리켜 ‘머리가 벗겨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머리가 벗겨지면 큰일난다. ‘머리가 벗어졌다‘고 해야 옳다.

‘벗겨지다‘는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외부의 힘에 의해 떼어지거나 떨어지다‘(신발이 꽉 끼어 잘 벗겨지지 않는다), ‘사실이 밝혀져 죄나 누명 따위에서 벗어나다‘(죽어서야 자식들에 의해 오명이 벗겨졌다)의 뜻인 반면, ‘벗어지다‘는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흘러내리거나 떨어져 나가다‘(신발이 커서 자꾸 벗어진다), ‘머리카락이나 몸의 털 따위가 빠지다‘(머리가 벗어지다), ‘피부나 거죽 따위가 깎이거나 일어나다‘(넘어져서 무릎이 벗어졌다), ‘때나 기미 따위가 없어져 미끈하게 되다‘(촌티가 벗어지다)의 뜻이다.

‘벗겨지다‘는 ‘벗다‘의 사동사 ‘벗기다‘에, ‘벗어지다‘는 ‘벗다‘에 피동의 뜻을 가진 ‘-어지다‘가 붙은 말이다. 그러므로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한 경우라면 ‘벗겨지다‘라고 쓸 수 있지만, 강제적인 힘이 아니라면 ‘벗어지다‘라고 써야 옳다.

첫 문장에서처럼 ‘머리가 벗겨졌다‘고 하면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는 끔찍한(?) 뜻이 되고 만다.

그 밖에 ‘옷이 커서 자꾸 벗겨진다/햇빛에 그을어 살갗이 벗겨진다‘처럼 일반 사람들이 강제성이 없는 경우에도 ‘벗어지다‘보다 ‘벗겨지다‘를 훨씬 더 많이 쓰고 있지만 이는 어법에 어긋난다.

한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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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6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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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병원에서 대기 중이다. 사람이 많다.
책장에 꽂힌 여러 책 중에 골라 읽고 있다.

인터넷에도 기사를 모은 페이지가 있는데, 다음은 15쪽 일부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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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참가, 참여
https://korean.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68971

①(회의.결혼식 등)에 참석했다.

②(올림픽.전국체전.서예대전.월드컵 대회 등)에 참가했다.

③(현실.경영)에 참여했다.

‘참석‘은 ①번 문장의 사용례처럼 어떤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긴 한데 비교적 작은 규모이며 구체적이고 친밀한 모임에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석‘이라는 단어에 ‘자리 석(席)‘자가 있는 걸로 봐 분위기가 정적(靜的)이고 정돈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참가‘는 ②의 예문에서 보듯이 ‘참석‘보다는 규모도 크고 움직임이 활발한 경연 성격의 모임에 더 잘 어울림을 알 수 있습니다. ‘참여‘는 추상적인 형태의 활동까지 포함한 말입니다. ③의 예문에서처럼 ‘어떤 일에 끼어들어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국회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죠. 활발하게 의정 활동을 하는 사람은 국정의 ‘참여자‘가 될 수 있지만 세비(歲費)는 받되 의미 없는 목소리만 큰 사람은 방관자적 ‘참석자‘일 뿐입니다.

김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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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핵심'만 적절한 분량에 간결하게 추렸다. 어쩌면 당연한 상식을 뒤늦게나마 확인한 사례들이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였다고 평가받게 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다른 생각을 인내하고 (겉으로, 전략적으로, 교악하게라도) 환대할, 확고한 다짐과 수양이(때로는 전략적 태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뒤늦은 성취조차 되레 허물어뜨려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사건 수, 사법제도 덕분에 "생각할 시간"을 갖고 이런 "생각"을 벼리시게 된 것이겠지만, 며칠 전 경향신문에 실린 스티븐 브라이어 미국 연방대법관의 다음 인터뷰를 새겨볼 만하다. 이범준 기자, "[초국적 인권사회]<1> 스티븐 브라이어 미 연방대법관 '가짜뉴스·혐오표현이라도 누구나 하고픈 말 하는 게 민주주의'", 경향신문 (2018. 12.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2040600035.  


  "(생략) 서로를 죽이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유지됩니다. 증오표현에는 그저 당신의 생각이야말로 증오스럽고 역겹다고 말해주면 됩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인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권리 및 고충 구제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마음에 드는 발언을 보호하려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규제를 시작하면) 앞으로는 판사가 어떤 발언이 문제인지 정하게 됩니다. 이것을 진정 원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발언은 허용되고 어떤 발언은 금지되는지 누군가 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a very dangerous step)입니다."

  "수정헌법 1조는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바라는 바가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 낫다고 설득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안된다, 그 얘기도 안된다, 이건 지나치다, 저건 너무 위험하다, 사회에 위협이 된다 식으로 정하기 시작해보십시오. 조만간 권력자가 당신의 얘기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이 옵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가짜뉴스 규제를 주장하며 예로 든 명백하고 악의적인 허위사실의 미국판을 찾아 질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어서 피선거권이 없다는 얘기처럼 기록으로 허위가 증명되는 표현들도 마찬가지인가요." 브라이어 대법관은 변화가 없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바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게 하면 오히려 그걸 두 배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가짜뉴스, 혐오표현이 성가시고, 거슬리고, 심지어 혐오스럽다면, 그것이 왜 가짜이고 혐오스러운지를 실증적 근거와 보편타당한 설득력을 갖추어 말해주고 지지를 얻으면 될 일이지, 그 입이 밉다며 틀어막을 일이 아니다. 당장 평온함을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더라도, 그것은 언제라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특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등 형사처벌은 없애고 줄이고 제한하여야 한다.



  장마다 나온 참고문헌과 그 언저리의 책들이다.




  덧붙여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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