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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묵향 > 싸움의 기술

3년 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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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쓴다.

  길게 쓰다 만 글들이 몇 개 있었는데, 다른 많은 일들에 전념하고 돌아와보니 어디에 저장해두었는지도 모르겠고, 찾은들 이어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한계를 짜내야 하는 삶 안에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따금 옛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 덕분에, 내가 이전에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것을 새삼 상기받는다.


  아이가 보통 깨는 시각보다 한 시간 정도 이른 새벽 5시에 깼기에, 머리를 좀 씻을 생각으로 저 책을 잡아보았다.

  구색은 얼추 갖추었으나, 잘 간추린 책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

  127쪽에 Mary Wollstonecraft의 사망연도가 1997년으로 되어 있는데, 당연히 1797년의 오기이다. 133쪽 Phillippa Foot의 이름 표기, 135쪽 Judith Jarvis Thomson의 이름 표기도 잘못되었다(그 밖에 아주 많지만 생략).

  포스트 페미니즘의 흐름을 크게 여성해방운동(MLF; Mouvement de libération des femmes https://en.wikipedia.org/wiki/Mouvement_de_lib%C3%A9ration_des_femmes)의 두 분파, 즉 '평등'을 강조하는 '혁명적 페미니스트' → 영미 페미니즘과, '차이'를 강조하는 '정치와 정신분석'(Politique et psychanalyse, 줄여서 po et psyche) → 프랑스 페미니즘으로 대별하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한 마디가 어떻게 페미니스트들에 의하여 재전유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다룰 내용이 방대해서 그런지, 다른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에 비하여는 실망스럽다.


  지은이 Sophia Phoca는, 런던예술대학(UAL, https://en.wikipedia.org/wiki/University_of_the_Arts_London)을 구성하는 Camberwell, Chelsea, Wimbledon의 미술대 학장님이다(https://www.arts.ac.uk/colleges/chelsea-college-of-arts/people/sophia-phoca). UAL은 Camberwell, Chelsea, Wimbledon 외에도 Central Saint Martins, 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 London College of Fashion 등 6개 학교가 연합한 종합 예술대학인데, 유럽에서는 가장 크고,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20에서 Royal College of Art에 이어 Art & Design 분야에서 2019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https://www.topuniversities.com/university-rankings/university-subject-rankings/2020/art-design 3위가 미국 Parsons School of Design at The New School, 4위가 미국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 5위가 미국 MIT이다. UAL은 한국에서도 유학을 많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이다(학생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https://youtu.be/lXyGLox_D04).

  Phoca 학장님은 위 책 외에 특별히 남긴 저서가 없다. 대학 프로필에도 The Routledge Reader on Feminism and Postfeminism (2007)에 기여하였다는 것과, 엘렌 식수(Hélène Cixous)를 인터뷰하였다는 정도가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덕 이론'(Virtue Theory)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너스바움 Martha C. Nussbaum이 덕 이론 계열의 신세대(?) 철학자로 분류되는 모양인데, 나는 특히, '도덕적 객관성이나 선험적 견해는 모두 허구이고, 도덕적 고려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이해득실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Phillippa Foot과, 비트겐슈타인의 제자로서 '도덕 역시 사회적 조건 속에서 구성된 것이기에 사람들이 도덕에 대한 감정적 속박, 헌신에 관하여 어떻게 느끼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 즉 사람들의 동기와 욕망을 검토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Elizabeth Anscombe에 관심이 갔다. 대의명분이 정파의 이해득실을 은폐하고, 자신들과 추종자들의 정신분열을 봉합하는 알리바이로 전락해버린 시대 아닌가.


  어떤 책들이 나와있는지 보자.




  책에 언급되거나 소개된 책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책이 나오고도 20년이 지난 만큼, 새로 출간된 책들을 내 마음대로 덧붙였다. Juliet Mitchell의 선구적인 저서, 『정신분석과 페미니즘 Psychoanalysis and Feminism』(1974)은 언제라도 번역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




  문화 연구와 문학 연구, 탈식민주의



 

  성, 퀴어 이론 등




  영화 연구




  예술 연구




  무용




  사상가별[이번 포스팅의 맥락상 지나치게 일반적(?)인 책들은 제외하고, 덕 이론 사상가들을 위주로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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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미지를 실수로 지웠다가 다시 넣었더니 썸네일 이미지로 다른 책이 뜬다.)


  이상하고 '후진' 생각과 실천들에 대하여 그것이 왜 이상한지를 설명하여 납득시켜 주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동시에 그런 차별적 인식은 우리 안에 너무 깊이, 켜켜이 뿌리박혀 있어서 끝없이 성찰하고 정정해 나가지 않으면 어느새 차별과 권력을 실천하는 것이 된다. [예컨대, 어제 링크한  "조나단, 한현민, 라비 '흑형'이란 말에 상처 받는 이유", BBC News 코리아 (2019. 9. 4.) https://www.youtube.com/watch?v=QnTPdBMLzOo 영상을 보면, 한국에서 백인들에게는 "혹시 어디서 공부하시냐?"라고 묻지만,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한테는 "혹시 어디서 일해요? 어느 공장?"이라고 묻는다는 장면이 있다. 유쾌하고 발랄하게 우리 내면의 그릇된 코드를 성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영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위와 같은 장면은 은연중에 노동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내포한 것일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영상을 블루 칼라 노동자나 그 자식들에게 보여준다면 그 또한 상처를 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차별과 권력의 코드를 파헤치고 드러내는 최일선에 있는 사유로서, 우리의 일상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는 가장 실천적 투쟁이 된다.


  재작년 말에 양성평등 강연을 준비하면서 참고할 목적으로 절반을 읽다가 이번에 마저 읽었다(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557605). 최근 들었던 강연에서 참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가, 한국 사람들 다수는 백주 대낮의 언론사 인터뷰나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차별적 인식과 혐오 발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스란히 발화한다는 것이었다(자기 얼굴이 노출되는데도). [역시 어제도 링크한 세계가치조사 http://www.worldvaluessurvey.org/WVSContents.jsp를 보면, '다음 사람들을 이웃으로 맞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라별로 집계하고 있다. 질문한 항목은 약물중독자(Drug addicts), 다른 인종의 사람(People of a different race), AIDS 환자(People who have AIDS), 이민자/이주노동자(Immigrants/foreign workers), 동성애자(Homosexuals), 종교가 다른 사람(People of a different religion), 폭음자(Heavy drinkers), 비혼 동거 커플(Unmarried couples living together),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People who speak a different language), 전투적 소수자(Militant minority), 전과자(People with a criminal record),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Emotionally unstable people), 무슬림(Muslims), 유대인(Jews), 전도사(Evangelists), 출신국에서 오지 않은 사람(People not from country of origin, 맥락을 정확히 모르겠다), 정치적 극단주의자(Political Extremists)이다(이들 범주 하나하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위와 같이 범주화하는 것이 적확한지, 심지어 정의할 수나 있는 것인지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 인식 지형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이므로 그러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자). 우리는 다른 인종과 이민자/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AIDS 환자 등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전반적으로 아주 높다(특히 AIDS 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보건의료 관점에서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양에서 AIDS는 더 이상 치명적이거나 전파되는 질병이 아니게 되었음에도, 한국에서 AIDS 환자는 병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는 서글픈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흔히 인종차별, 소수자 차별이 우리보다 심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도 그런 인식을 우리처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나라들에서 그런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하면 질 떨어지는 수준 낮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친구를 잃게 된다. 나아가 직장을 잃을 수 있고 법적으로 처벌받는 일도 생긴다. 지금 미국에서 각종 총기로 무장하고 거리에 나와서 "COVID-19에 관한 언론 보도는 모조리 '가짜 뉴스'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낙선시키고 우리 경제활동과 자유를 억압하려는 민주당의 '음모'"라는 식의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적어도 낮에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든 리버럴이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외국에서는 그 비슷한 취급을 받는 언행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좌파 정당은 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시류에 타협하는 모습이 보이고, 특히 남성 중에 차별적 태도를 곧잘 드러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국뽕 마케팅'은 주의 깊게 자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당장 중국의 자화자찬이 엄청난 백래시를 맞고 있지 않은가. 트뤼도 총리가 여러 면에서 오락가락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음 연설은 우리가 곱새겨 볼 만하다. 캐나다 정부에서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 관행을 역사적, 공식적으로 사과한 연설이다. "Full Speech: Justin Trudeau offers formal apology to LGBTQ community for government discrimination," Global News (2017. 11. 29.) https://www.youtube.com/watch?v=xi23IL3b6cs]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의 차이, 술집에서 '이모'라는 호칭, 아침드라마의 사회학과 같이 평소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지적이 흥미롭다. 아무튼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우리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요, 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직면하자("남성들이여, 우리가 악어임을 받아들이자"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398432). 그래야 우리도 더 행복해진다.


  곧 『민원을 제기합니다!』라는 신간을 내실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책들이 인용되어 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쓴 리베카 솔닛의 책이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나와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어둠 속의 희망』과 『걷기의 인문학』은 각각, 2006년 창비, 2003년 민음사에서 나왔다가, 2017년 창비와 반비에서 다시 나온 것이다.




추가)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할 때까지 신도들이 미사 참여를 보이콧하는 건 어떨까... 지은이처럼 그 때문에 이미 떠난 이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미사 전례에서 가부장제적 어휘들이 불편하다. 여성 사제 불허 방침이 영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한상봉, "여성사제, 여전히 남은 숙제", 가톨릭 일꾼 (2018. 12. 3.)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463; "여성의 역할 존중하지만 여성 사제는 허용 안 돼", 가톨릭평화신문 (2016. 11. 13.)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59584&path=201611; 조광태, "여성+기혼 사제의 등장?…가톨릭 전통, 천년의 빗장 열릴까", UPI 뉴스 (2019. 10. 2.)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1910020062; 이미령, "가톨릭 구하려면 여성 사제 허용하라", 한국일보 (2019. 10. 2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231500342581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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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사회에서 있었던 여러 젠더 이슈들을 "인식"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는데, 생각의 도구들을 많이 충전할 수 있었다. 완벽한 답까지는 아니어도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여야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좋은 안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도 있다.

  실린 글 다섯 개와, '들어가는 글' 모두 챙겨 둘 만한 생각꼭지를 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제주지검장 사건을 '퀴어 범죄학(Queer Criminology)' 관점에서 다룬 루인 님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 퀴어 범죄학은 생소한 분야였는데,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하여 2010년대 들어서부터 활발해졌다고 한다. 찾아볼 필요를 느꼈다. 다만, 루인 님의 글에서, 잘 차려진 질문들 위에(이를테면, '공적 공간'과 '공공성' 내지 '공연성' 개념이 관찰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우발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임과 동시에, 관찰자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 달리 규정된다는 점에 대한 지적. 예컨대, "제주지검장의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덩치 좋은' 성인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책 83~86쪽), 결론부에 해당할 87쪽 이하 "'괴물'을 보호하라" 부분은 논지가 충분히 서술되지 않았다고 느꼈다("쾌락을 생산하는 음란 행위와 성행위를 범죄로 판결하는 현행법, 혹은 사회 규범이 정말로 보호하는 것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바로 그 자신 아닌가? 지배 규범의 윤리에 따라 괴물로 추방된 존재인 나는 나와 같은 괴물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을 보호하는 사회에 질문하고 싶다. 괴물을 보호하라. 그런데 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책 90쪽).




  정희진 님의 글은 책 제목을 이루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나도 전략적 차원에서 간혹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양성평등은 여성주의의 덫이다. 여성주의의 목적 중 하나는 사회 정의로서 성차별을 철폐(완화)하는 것이지,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집단과 집단이 평등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49쪽)]. 한국 사회의 근대성 지향에 기댄 양성평등 담론을 성찰하고 비판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였으나,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다음과 같이, 조금 허탈하게(?) 끝맺고 계신다. "현재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성차별이 극심한 사회에서 남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모색을 제안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정의의 문제이자, 남성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남성에게는 '양심의 자유'보다 '양심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 문제에 대한 '외면의 정치'가 인간 본성으로 굳어질까 두렵다. 사회는 '여성 문제'를 부담이나 갈등으로만 여기지 말고, 여성주의에서 대안적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책 56쪽). 이전에 쓰셨던 다른 글들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인용 표시가 충실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권김현영 님의 글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의제강간 기준연령이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되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조치는 되지 못할 것이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이 달리 처하는 성별화된 조건과, 청소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함께 따라야 한다. 메갈리아 미러링과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를 다룬 류진희, 한채윤 님의 글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다뤘다. 다른 도란스 기획 총서들도 제목이 눈길을 끈다. 모두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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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남성우월주의, 남성중심주의를 넘는 결의 '마초', '마초이즘'에 관한 내용이 다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다락방" 님 리뷰처럼 입문서 중의 입문서다.

  프랑스어, 프랑스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프랑스 좌파 전선(Front de gauche) 소속 정치인인 지은이가 파리 부시장을 지냈다는 사실 정도를 특기할 만하고,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다.

  [Simone Weil라는 철학자 말고, Simone Veil라는 정치인이 따로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둘 다 시몬(느) 베이(유)로 쓰는데, 후자는 1975년 데스탱 대통령 시절 복지부 장관으로서 낙태허용법안을 발의,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던 인물이다. 의회 토론 당시 베이 장관에 대한 보수 정당 의원들의 공격과 모욕, 여성 혐오 발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철학자 베이가 "불꽃의 여자"로 더 알려져 있는데(아버지 서재에도 옛날 책이 있었다), 정치인 베이의 책도 번역되어 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둘을 헷갈리지 말라는 말이 앞에 나온다. https://en.wikipedia.org/wiki/Simone_Weil]

  프랑스적 배경에서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 즉 '평등주의'(보편주의) 대 '본질주의'(자연주의), 성매매에 관한 '폐지론' 대 '제도론'('성노동론') 사이 논쟁이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나저나, 109쪽에서 "누나는 평등주의자야 보편주의자야?"라는 문장은 맥락상 "누나는 평등주의자야 본질주의자야?"의 오기 아닌가? [누나(지은이 클레망틴 오탱)는 평등주의자라고 대답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이 여럿 번역되어 있는데, 그에게 공쿠르상을 안긴 『만다린 사람들 Les Mandarins』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Geneviève Fraisse의 『동의에 관하여 Du consentement』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본인 의사에 반해 타인에 의해 행해지는 남성 성기의 삽입은 그 성격을 막론하고 강간이라 한다." - ‘강간‘에 대하여 최초로 정의내린 프랑스 1980년 판결- P58

개인의 내면이나 사생활에 관한 사안일수록 사회운동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높다고 볼 수 있어.- P61

가족 정책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재정비되어야 해.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말이야. 가족주의적인 논리와 결별하고, 가족이 부를 재분배하는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당장 시급한 문제는 3살 미만의 모든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보육 시설을 확충하는 거야. 이 방안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가정에도 가장 적은 비용 부담이 들고, 교육적 차원에서도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올바르고 적합한 방안이라 생각해.- P76

우린 페미니스트로 태어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P99

"나는 한 번도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된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나는 사람들이 나를 흙이나 터는 발판 취급하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을 뿐인데, 그런 행동을 두고 나를 페미니스트로 대한다는 것이다." - Rebecca West- P100

사람들의 오해는 페미니스트들이 차용한 도구나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댜.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광장에서 행주나 브래지어를 태우는 퍼포먼스를 너무 엄숙하고 비장하게 볼 필요는 없어. 단지 조금 새로운 재기 발랄한 방식으로 기성 질서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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