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인, 『현상학과 해석학: 후썰의 초월론적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제목 그대로이다. 특히 후썰의 미발간 유고들과 후기 발생적 현상학에 주목하면서 하이데거 철학과의 근원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해명하려는 작업이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작업에 근거를 두고 있고, 원래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까지 세 개의 기둥을 세우려고 구상하셨다가 분량상 다음 책으로 미루셨다고 한다.)을 읽다가 넘어왔는데,

언제라도 이렇게 근원에 기댈 수 있게 도와주는 길잡이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다.


사람들이 오를 수 없는 높은 도서관에 진귀한 책들이 있다면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나날의 절실함 속에서 절박하게 피어오르는 사람들의 생각에 철학이 동참할 수 없다면 그것은 철학의 수치 아닌가? 이런 안타까운 상황의 종말을 희구하며 이 책은 출발했다. - P10

 철학은 늘 두뇌의 고통을 요구한다. 운동을 시작한 이가 근육통을피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앓는 몸으로 지나가면, 땀을 건네받은 모래밭도 싹을 틔워줄 것이다. - P11

"철학은 어디에서든지 존재한다. 사실들에서도 철학은 존재한다. 어떤 철학의 영역도 삶으로부터 전염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은 없다." - 메를로퐁티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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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서지정보에 엉뚱한 책의 이미지가 연결되어 있어 위와 같이 떴지만(앞의 이미지가 1996년판에 연결된 이미지, 뒤의 이미지는 맞게 올라온 2003년 개정판의 이미지.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87057033, 구글북스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ED%98%84%EB%8C%80%EC%82%AC%EC%83%81%EA%B0%80_50_%EB%AC%B8%ED%99%94%EC%97%B0%EA%B5%AC%EB%A5%BC_%EC%9C%84.html?id=vOGDMQAACAAJ&redir_esc=y 에도 똑같이 잘못 올라와 있다),


  1996년판은 실제로 이렇게 생겼다.



  "현실문화(연구)"가 기획자(정성철, 박노영) 서문에 쓴 다음과 같은 문장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이 책은 숲 전체와 그 숲의 윤곽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몇 그루의 큰 나무들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는, 찬탄할 만한 그물코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그 그물코는 그 윤곽이나 나무들에 상처를 주지 않을 만큼 상냥하다. 간간이 보이는, 지금까지의 상식적인 해석을 깨뜨리는 저자의 독특한 해석과 예리한 비판적 안목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전기적 사항을 다루는 부분은 알맞은 양으로 요령있게 각 본문에 통합되어 있고 말미의, 원저와 영역서를 모두 포함한 서지정보 역시 더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끔 꼼꼼하게 작성되어 있다. 다루는 범위에서 서지정보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모든 장점들은 결국 이 책을 단순한 사상가 약전이라기보다는 구조주의 혁명과 그 여파에 대한 비판적 입문 '사전'으로 만든다. 이 책이 서점에서 사전류칸에 분류되더라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초기 구조주의, 구조주의와 구조주의 역사, 포스트구조주의, 기호학, 2세대 페미니즘(특히 뤼스 이리가레를 이렇게 분류하는 것이 맞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모더니티, 포스트모더니티라는 분류하에 50명의 사상가를 소개한다. "나는 하이데거의 본을 따라,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얻는 데 도움을 주려 할 따름이다."라고 쓴 저자의 말처럼, 50인 사상가의 이론적 핵심에 더하여 간략한 전기와 더 읽을 문헌까지 소개되어 있어 공부를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된다. 옮긴이들께서, 원작에는 포함되지 않은, 당시까지 국내에 나온 우리말 번역본과 논문까지 친절하게도 읽기 목록에 함께 소개해주셨다. 지금은 모두 절판되었지만, 2003년 개정판으로 읽으면 유익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문화연구를 위한"이라는 제목을 "한 권으로 보는"으로 바꾼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에 책 소개가 실린 적이 있다(1996. 7. 6. 자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3295161


  지은이가 책을 구상하는 데 아래 Diane Collinson의 『Fifty Major Philosophers』가 본보기가 되었다고 한다. 『~ 현대사상가 50』에서 다루는 시기 이전에 해당하는, 탈레스부터 사르트르까지(Thales, Pythagoras, Heraclitus, Parmenides, Zeno, Socrates, Democritus, Plato, Aristotle, Plotinus, Augustine, Maimonides, Aquinas, Duns Scotus, Ockham, Machiavelli, Bacon, Galileo, Hobbes, Descartes, Spinoza, Locke, Leibniz, Berkeley, Hume, Rousseau, Kant, Bentham, Hegel, Schopenhauer, Mill, Kierkegaard, Marx, Peirce, James, Nietzsche, Frege, Husserl, Russell, Moore, Wittgenstein, Collingwood, Heidegger, Popper, Quine, Merleau-Ponty, Ayer, Rawls, Sartre)를 다룬 책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50인 사상가는 다음과 같다. 실존주의나 현상학 등 주체성 철학은 거의 빠졌지만, 아도르노와 아렌트, 하버마스가 (구조주의 혁명에 대한 비판적 반향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들어가 있으며, 총 50명이나 되다 보니 반드시 친숙하지만은 않은 Jean Cavaillès, Gerard Genette, Michèle Le Dœuff(이상 국내에 소개된 책이 없다), Algirdas Julien Greimas(『정념의 기호학』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다), Louie Hjelmslev (『랑가주 이론 서설』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다) 등이 포함되어 있다. Georges Dumézil은 『대담』 외에 해설서도 한 권 나와있다. '초기 구조주의' 장에 프로이트를, '모더니티' 장에 니체를 넣은 것이 의외인데, 역시 시대가 좀 앞서는 소쉬르를 차마 뺄 수는 없었을 테고(정작 '초기 구조주의' 장이 아니라 '기호학' 장에 포함시켰다. 그러다 보니 퍼스도 함께 들어갔다.), 나머지 사상가들에 미친 프로이트와 니체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뭐 반드시 빼야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Diane Collinson의 책에도 니체와 메를로-퐁티, 퍼스가 나오기는 한다).


초기구조주의: 가스통 바슐라르, 미하일 바흐찐, 조르쥬 깡길렘, 쟝 까바이에, 지그문트 프로이트, 마르셀 모스, 모리스 메를로-퐁티


구조주의/구조주의 역사: 루이 알튀세르, 에밀 방브니스트, 삐에르 부르디에, 노엄 촘스키, 조르쥬 뒤메질, 제라르 쥬네트, 로만 야곱슨, 쟈끄 라깡,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크리스띠앙 메츠, 미셸 세르, 페르랑 브로델


포스트구조주의: 조르쥬 바타이유, 질 들뢰즈, 쟈끄 데리다, 미셸 푸코, 엠마누엘 레비나스


기호학: 롤랑 바르트, 움베르토 에코, 알기르다스 줄리앙 그레마스, 루이 옐름슬레우, 줄리아 크리스테바, 챨스 샌더스 퍼스, 페르디낭 드 소쉬르, 츠베탕 토토로스


2세대 페미니즘: 뤼스 이리가라이, 미쉘 르 되프, 캐롤 페이트먼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테오도르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에르네스토 라 클라우, 알랭 뚜렌


모더니티: 발터 벤아민, 모리스 블랑쇼, 제임스 조이스, 프리드리히 니체, 게오르그 짐벨, 필립 솔레르스


포스트모더니티: 쟝 보드리아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카, 장 프랑스와 리오따르



  책을 지은 존 레흐트는 본인 스스로 여러 철학서를 내기도 했다. 『~ 현대사상가 50』 자체의 개정판도 2006년경에 나왔는데, 종래 부제 (Fifty Contemporary Thinkers:) "구조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티까지 From Structuralism to Postmodernity"가 제2판에서는 "구조주의에서 포스트휴머니즘까지 From Structuralism to Post-Humanism"로 바뀌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관한 연구서를 여럿 냈고, 2015년에는 아감벤에 관한 책을 냈다. 저자의 보다 상세한 연구 목록은 다음 페이지 참조 https://researchers.mq.edu.au/en/persons/john-lechte.



  "현실문화(연구)"가, 90년대 말, 2000년대 초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열풍(?) 중에 좋은 책들을 여럿 냈는데, 이 책 제1판과 개정판을 비롯하여 여러 책들이 절판된 것이 아쉽다. 다만, 출판사 운용에 매우 큰 보탬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스타니제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1997년, 2006년에 이어 2011년 개정판이 다시 나왔고, 1999년에 나온 존 스토리, 『문화연구와 문화이론』도 아직 팔리고 있다[위 책의 원제는 "An Introductory Guide to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였다가 제2판에서 "An Introduction to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로 바뀌고, 제3판부터는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 An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을 쓰기 시작하여 현재 제8판까지 나와 있는데(제5판까지 나온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 A Reader"와는 다른 책이다), 제3판이 2004년 경문사에서 『대중문화와 문화연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2012년 제5판, 2017년 제7판이 나왔다]. 경문사에서 나온 『문화연구의 이론과 방법들』은 무슨 책을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현실문화(연구)"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96년에 나왔던 『스펙타클의 사회』는 번역 문장을 읽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러웠는데, 2014년에 울력출판사에서 유재홍 번역으로 나온 것은 번역이 괜찮다는 것 같다.



  그 밖에 추억의 책들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문화연구' 시리즈가 유명한데,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1992), 『TV: 가까이 보기 멀리서 읽기』(1999),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1993), 『혼돈과 질서』, 『섹스, 포르노, 에로티즘: 쾌락의 악몽을 넘어서』(1994), 『공간 문화 서울: 공간의 문화정치』, 『회사가면 죽는다』, 『여성 망명정부에 대한 공상』(이는 '문화교양' 시리즈로 글로리아 스타이넘 역시 대학가에서 엄청 많이 읽혔는데, 위 책은 1995년, 1999년에 나오고 절판되었다) 등은 이미지나 책 정보가 없다. 1999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올해 새로 나왔다.



  만화책도 여럿 있는데, 『설국열차』는 이제 세미콜론으로 판권이 넘어갔다(번역자도 다르다).




  최근에 낸 여러 책들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The Korean War: A History, 2010)은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1981, 1990)과는 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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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이상돈 지음 / 법문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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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지 않고 빼어남이 느껴지는데, 지나치게 거창하고, 지나치게 심각(?)하다. 다른 층위, 다른 차원의 논의가 과도하고 무리하게 엮인 느낌이랄까. 문장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이제는 이러한 이론의 ‘아우라‘마저 희화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Arme Rechtsphilosop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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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정의 -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안경환.김성곤 지음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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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재미있는 글이 많이 나온다.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 영화가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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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주의의 승리라 이름할 수 있을 웅혼한 서사. 인문학자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도저히 생산해낼 수 없을 것 같다. 562쪽부터 647쪽까지에 걸친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발표지면은 책이 나오기까지 지은이가 인고한 세월을 응축하고 있는 것같아 자못 경이롭다. 책은 3·1운동이 어떻게 우리 "존재의 기초"이자, "불회귀적 사건"인지를 설득력 있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책 543 ~ 544쪽). 우리 헌법이 왜 첫머리에 '3·1운동'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작년 6월경 책의 80% 정도를 읽고 덮어두었다가 오늘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율이 돋았고,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가 나왔다(당시에 남겨 둔 리뷰는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923232).


  우리도 Project Gutenberg (http://www.gutenberg.org/)와 같이 여러 1차 자료와 문헌들을 디지털 아카이빙하는 작업에 더 투자하면 좋겠다. 20세기 이전 자료들이 대부분 한문으로 남아있는 탓에 우리 자신에 대한 연구에 진입장벽이 존재하지만, 중국, 대만, 일본과 협력하여 발전된 한자인식(OCR) 기술을 나누었으면 좋겠다(현재까지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http://archive.history.go.kr/ 참조). 여러 언어간 번역 자료를 부지런히 디지털화하여 번역기의 정확도를 높여나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런 연구가 더 많이 쏟아지고 또 외국에도 소개되면 좋겠다. 자료 더미에 묻힌 원석을 발굴하여 빛나는 보석으로 꿰는 작업이 많아지면 좋겠다.


  국문학, 국어학, 국사학은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개척하여야 할까. 국어국문학의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우리 정신의 근간이라는 당위적 언설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국영수"의 앞자리를 아직 '국어'가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국어'의 특권적 지위를 보장한 것이 도리어 혁신을 가로막아 도태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중고등학교 교과목으로서 '국어'는 미래세대에게 우리 말과 글의 비전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가. 아무리 가장 높은 비중을 둔들 2, 30대에 이르러 꾸준히 한국문학을 읽는 인구가 얼마나 될까.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려 쓰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광호, "국어국문학, 미래 한국의 救命艇 될 수 있을까?", 교수신문 (2018. 10. 8.)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2793 등 참조.

  작가가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이고, 문학이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문예지가 첨단 논쟁의 무대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실기 위주의 문예창작학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문학도, 작가도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 자체가 20세기에 비하여 심각하게 쪼그라들어 있다. 이는 곧 사고의 단순화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우리말을 보존하는 노력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학술지에 우리 어휘를 살려 투고한 적이 있었는데, 가독성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수정을 권고받은 일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언어생활의 거대한 빙산이 급속히 녹아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호기,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20)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 경향신문 (2015. 8. 1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182207085&code=210100; 신효령, "[기자수첩]문학의 위기, 만화·영화는 멀쩡하건만···", 뉴시스 (2018. 10. 18.) https://newsis.com/view/?id=NISX20181017_0000444984 등 참조.

  [유수의 영어 언론과 잡지들은 영어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많이 쓴다. 아름다우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장들이 전 세계 독자들로 하여금 기꺼이 지갑을 열어 컨텐츠를 사보게 만든다. 우리도 순우리말 어휘, 옛말을 포함한 거대한 유의어 사전을 만들면 어떨까. 비슷한 단어들을 적절히 교차하여 구사하고, 또 전달하려는 뜻에 따라 그 단어들간 미묘한 차이를 가려쓰려는 노력이 많아지면 언어 세계의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영어로 글을 쓸 때 자주 참고하는 유의어 사전 사이트인데, https://www.thesaurus.com/을 써보면,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자질구레한 단어들까지, 비록 연결선의 강약은 다를지라도, 어휘의 그물망을 정말 촘촘하게 연결해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erriam-Webster 사전을 보아도,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과는 그 폭과 깊이에서 차원이 다르다. 예컨대 "love" 같은 말을 찾아보면, 이것이 라틴어나 고대 영어, 고대 상류 독일어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12세기 전부터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가 나온다. 최신 용례와 풍부한 유의어, 반의어 목록이 제공됨은 물론이다. https://www.merriam-webster.com/. 한글이 최고야 하면서 국뽕에 취해 있기에는, 우리말이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백 년 전까지만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는 것 자체가 과제였지만, 국립국어원(https://www.korean.go.kr/)에서 지금 벌이는 말뭉치 구축 사업 등 여러 사업에 더하여 어휘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보존하는 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민간 활용이라는 측면을 더 신경써주면 좋겠다. 지금 웹상의 사전 시스템으로는, 예컨대, 처음부터 "다홈"과 같은 말을 모르면 이를 찾아 쓸 도리가 없다. '도리어', '오히려', '차라리', '그래도' 같은 말들을 찾았을 때 이들을 연결해서 보여주어야 비슷한 뜻을 가진 말들을 교환하여 쓸 수 있다. 언어 순수주의가 역설적으로 우리 언어를 빈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여야 한다. 언어는 자꾸 이어 버릇하여야 풍부해진다. 유연석, "국립국어원, 중단됐던 '국가 말뭉치 구축사업' 10년 만에 재개", 노컷뉴스 (2018. 12. 6.) https://www.nocutnews.co.kr/news/5072089 참조.]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워낙 밀도가 높은 대작이라 선뜻 요약하기가 힘들지만 오늘 읽은 부분에서 몇 가지만 아래에 밑줄긋기 식으로 갈무리해 본다(제3부 제4장 이하에서 제4부 제2장 '이중어' 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당대의 잔다르크들을 복권시킨 제3부 제4장 '여성' 편은 감동적이었고, 이광수와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심훈, 또 제3의 길로서 엄상섭에 대한 서술도 흥미로웠다. 조소앙이 베르그송을 만나고 와서는 "쥐뿔도 모르는 놈!"이라고 내뱉었다는 일화도 나온다[책 442쪽, 「베르그송과 조소앙」, 『동아일보』(1936. 3. 18.), 이철호, 「한국 근대소설과 '의식의 흐름', 『상허학보』 36, 2012. 10.에서 재인용].


  권보드래 교수님도 정말 부지런히 쓰고 계신다. 공저가 많으신데, 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실지 기대가 많이 된다.


박원경은 19세 소녀로 "천황폐하께 불경이요 (...) 부모님께도 불효" 운운하며 설득하는 심문관에게 "내 앞에 천황폐하가 어디 있"냐고 반박하면서 "우리 부모님 생각은 (...) 칭찬해주실 테니까 나는 효녀"라고 당당히 진술했다는데, 그 소문이 당시 황해도에 파다했다고 한다. - P397

"나는 3·1 운동 없으면 오늘은 없다." - 함석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저작집 6』, 한길사, 2009, 164쪽. - P431

엄상섭의 시각마따나 3·1 운동은 종착점보다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3·1 운동은 개인적·민족적 층위에서 공히 불회귀적 사건인 동시, 실패냐 성공이냐의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사건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나‘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존재의 기초이자 폭발적 성장의 계기인 것이다. 3·1 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비로소 집단적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서의 정체성을, 즉 저항하는 존재로서의 자존을 형성할 수 있었다. 조직망도 통신망도 저발달한 상태에서 사실상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운동은 지금까지도 부동(不動)의 민족적 알리바이다. ‘우리‘는 단연 일제에 반대했던 것이다. 비록 힘이 모자라 짓밟혔을지언정 그것은 식민지시기 내내, 그리고도 오래 더 살아남은 기억이었다. ‘3·1 운동이 없었다면 민족으로서의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 P543

그러나 동시에, 이광수 같은 인생과 대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독립운동가들의 존엄마저 박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고 이광수를 망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광수를 몰아내는 대신 그와 대결하고 싶다. 그는 아직 내게 맞설수록 새로운 대상이다. 그러므로 적대와 분할이 기승스러워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3·1 운동의 봉기 대중처럼, 대결할지언정 누구도 추방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죄를 묻고 벌을 정해야겠지만 궁극에는 모든 존재를 품는 그런 질서를.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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