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Made in America : An Informal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 in the United States이다.

폭넓은 어원학적 탐구이자 역사서이며, 동시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야사(野史) 모음이요, 잡식(雜識) 사전이라 할 만하다.


미국 영어 표현의 탄생과 변화를 추적하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미국 역사와 문화 지도가 펼쳐진다.


사회언어학 책이라 할 수 있을 이런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여느 번역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두 언어의 맛을 살리면서 그 뒤에 놓인 양쪽 언어 사회의 문화적 결까지 함께 보듬어야 하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방대한 지식의 타래를 수고롭게 한국어로 풀어내 주신 역자의 노고에 일단 감사드린다.


그러나 한국어 독자에 맞추면서도 공부를 더 하시고 책의 빛깔을 살려, 텍스트 너머의 맥락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번역을 시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중'을 자꾸 '그 중'으로 띄어 쓰는 것처럼 어문 규범에 어긋난 표기가 보이고(다만 요즘은, 출판계에 그때그때 유행하면서 재생산되었던 잘못된 교열의 경향 같은 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의아한 번역도 이따금 있다.


이를테면, 509쪽에 나오는 다음 문단이 턱 하고 걸렸다.


19세기는 정당들이 노예제도나 이민 같은 한 가지 문제로 쉴 새 없이 동맹을 맺었다가 결별하느라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정당은 실제로 헌법 제정 직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두 개의 주요 정당이 느슨하게 결성되어 있었다. 헌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연방주의자(Federalist)'로 부르며 언어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그것은 헌법을 반대하고 미국연합규약을 부활시키거나 복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원래의 명칭을 잃어버린 채 '반연방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명칭은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으로 들렸으므로 더 긍정적으로 들리는 연방주의자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반연방주의자들은 잘못된 명칭에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을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혹은 민주공화주의자라고 불렀다.


연방당과 민주공화당에 관한 서술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어 원문을 찾아보았다.


The nineteenth century also marked a busy time for political parties as alliances endlessly formed and reformed, often around a single issue like slavery or immigration. Political parties in America effectively date from the period immediately after the drafting of the Constitution, when the two main sides formed into loose associations. Those in favor of the Constitution pulled off something of a linguistic coup by dubbing themselves Federalists. In fact, the term would more accurately have described those who were against the Constitution and wished to revive or rejuvenate the Articles of Confederation. Deprived of the term, this faction became known by default as the Anti-Federalists, which was not only inaccurate but had a negative ring to it that the more positive-sounding "Federalists" were delighted to exploit. Saddled with a misleading name, the Anti-Federalists began, confusingly, sometimes to call themselves Democrats, sometimes Republicans, and sometimes Democrat-Republicans.


특히, 논리적 연결 고리가 되는 "Deprived of the term"을 옮기면서, 등장하지 않는 "원래의"라는 의미를 더하고 "Deprived of"를 "잃어버린 채"라고 옮기니 뜻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faction"이라는 말도 살리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Bill Bryson이 재치 있게 쓴 표현인 "(pulled off something of) a linguistic coup"을 '언어적 대성공' 정도로 가볍게 보아 넘긴 것도 문제였다. 문단 첫 문장부터 다시 새겨보자.


첫 번째 문장

The nineteenth century also marked a busy time for political parties as alliances endlessly formed and reformed, often around a single issue like slavery or immigration. 

번역 제안: 19세기는 정당들에도 바쁜 시기였다. 흔히 노예제나 이민 같은 단일 현안을 둘러싸고 동맹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번역: "19세기는 정당들이 노예제도나 이민 같은 한 가지 문제로 쉴 새 없이 동맹을 맺었다가 결별하느라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풀이: "often" 성분을 빼고 "한 가지 문제로"라고만 옮기니 거듭된 이합집산의 계기가 되었던 쟁점이 보통 단 하나였음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장

Political parties in America effectively date from the period immediately after the drafting of the Constitution, when the two main sides formed into loose associations. 

번역 제안: 미국에서 정당의 기원은 실질적으로 헌법 초안이 마련된 직후의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의 주된 진영 두 개가 각각 느슨한 결사체를 형성한 것이다.

원래 번역: "미국의 정당은 실제로 헌법 제정 직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두 개의 주요 정당이 느슨하게 결성되어 있었다."

풀이: "effectively"는 '형식보다 실질(또는 기능)'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실제로"보다는 '실질적으로', '사실상'과 같은 말로 옮기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drafting"을 "제정"으로 못 박은 것도 초안을 둘러싼 두 진영의 논쟁 과정을 담지 못하는, 지나치게 나아간 번역이다. "sides"를 미리 "정당"으로 규정한 것 역시 정당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서술하려는 문단에서는 이르고, '진영', '세력' 정도가 좋을 것 같다. "two main sides"가 정관사 "the"로 한정되어 있어서 "당시'의'", "각각"을 넣어 보았다.


세 번째 문장

Those in favor of the Constitution pulled off something of a linguistic coup by dubbing themselves Federalists. →

번역 제안: 헌법을 지지하는 쪽은 자신을 '연방주의자(Federalist)'라고 부름으로써 일종의 언어적 쿠데타를 성공해 냈다.

원래 번역: "헌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연방주의자(Federalist)'로 부르며 언어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풀이: 위에 쓴 것처럼 Bill Bryson에게는 회심의 단어(kick)였다고도 할 수 있을 "coup"이 번역에서 빠졌다. 그리고 "Those"는 "사람들"보다는 '진영'이나 '세력'의 의미가 담기는 말로 옮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문장

In fact, the term would more accurately have described those who were against the Constitution and wished to revive or rejuvenate the Articles of Confederation. 

번역 제안: 사실 이 말은 헌법에 반대하며 미국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을 살려내거나 다시 활성화하고자 했던 쪽을 가리키기에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원래 번역: "사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그것은 헌법을 반대하고 미국연합규약을 부활시키거나 복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풀이: 'Federalist'는 아직 뜻과 느낌이 덧붙는 과정에 있는 새말이었으므로, "일컫는 말이었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would ... have described'라는 가정법이 쓰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부분 미국사를 조금만 확인해 보셨어도 좋았을 텐데,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장을 이어 나가다 보니 바로 다음 문장에서 "원래의 명칭", "잃어버린 채"라는 엉뚱한 번역이 나오게 되었고, 문단의 논리도 엉클어졌다.


다섯 번째 문장

Deprived of the term, this faction became known by default as the Anti-Federalists, which was not only inaccurate but had a negative ring to it that the more positive-sounding "Federalists" were delighted to exploit. 

번역 제안: 이 명칭을 빼앗긴 파벌(주: 헌법 반대 진영)은 자동적으로 '반연방주의자(Anti-Federalists)'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정확하지도 않았지만 부정적인 어감을 풍겼기 때문에, '연방주의자'라는 훨씬 긍정적으로 들리는 이름을 가진 쪽(주: 헌법 찬성 진영)은 이 점을 기꺼이 이용했다.

원래 번역: "이들은 원래의 명칭을 잃어버린 채 '반연방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명칭은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으로 들렸으므로 더 긍정적으로 들리는 연방주의자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풀이: "Deprived of"는 그저 '상실'이라기보다는 '빼앗긴'이고, 여기서는 '선점당한'에 가깝다. "연방주의자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라는 뒷부분은 완전히 잘못 번역한 것이다.


여섯 번째 문장

Saddled with a misleading name, the Anti-Federalists began, confusingly, sometimes to call themselves Democrats, sometimes Republicans, and sometimes Democrat-Republicans

번역 제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을 떠안게 된 반연방주의자들은 혼란스럽게도 스스로를 때로는 '민주주의자', 때로는 '공화주의자', 또 때로는 "민주공화주의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 번역: "반연방주의자들은 잘못된 명칭에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을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혹은 민주공화주의자라고 불렀다."

풀이: "Saddled with"을 "책임을 느끼고"라고 옮긴 부분도 오역이다. "began"과 "confusingly"의 의미도 번역문에서 빠졌다.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민주공화주의자'는 '민주당원', '공화당원', '민주공화당원'이라고 옮겨도 될 것 같다.


260103 BEHMD


후일의 독서를 위해 Bill Bryson이 참고한 책들을 갈무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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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민주주의 2 대우고전총서 44
알렉시스 드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 아카넷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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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중국에서 재산은 쉽게 잃을 수도 있고 다시 얻을 수도 있다. 국토는 무한하고 자원은 고갈될 염려가 없다. 국민은 성장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든 욕구와 모든 욕망을 다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을 다하더라도 그들이 움켜쥘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 그들 주변에 널려 있다. 이런 나라에서 치명적인 것은 쉽게 회복될 수 있는, 몇몇 개인의 파산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게으름과 무기력이다. 상공업 활동에서의 대담성은 이 나라의 급속한 발전과 영향력과 위대함의 주요 원인이다. 이 나라에서 상공업은 말하자면 거대한 복권 추첨과도 같은 것인데, 이 운수에 따라 소수의 개인은 매일같이 돈을 잃지만 국가는 언제나 돈을 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국민은 상공업 분야에서의 대담성에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며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담한 사업은 사업을 벌이는 사람의 재산과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재산에 항상 위험을 수반한다. 사업상의 대담성을 일종의 덕성으로 간주하는 아메리카인들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그러한 무모함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 불명예의 낙인을 찍지 않는다.
합중국에서 사람들이 파산한 사업가에 대해 두드러질 정도로 관용적인 자세로 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파산을 하더라도 파산자의 명예는 결코 손상되지 않는 것이다. - P417

정말이지 상인의 습속만큼 혁명의 습속에 반대되는 것이 있을까. 상업은 본래부터 모든 격렬한 열정과 정반대이다. 상업은 절제를 좋아하고 타협을 즐기며 애써 성급함을 피한다. 상업은 참을성과 유연함과 융통성을 중요시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다. 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서로 독립성을 갖게 만들고, 그들 개개인의 가치에 대해 매우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의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하게 이끌고 거기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요컨대 상업은 사람들을 자유로 이끌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혁명으로부터 떼어놓는다. - P448

군대의 폐단에 대한 치유책은 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pays)에 있다. 민주 국가의 국민은 자연적으로 소요나 진제정치를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본능적인 성향이 성찰과 지성을 동반한 안정적인 취향으로 바뀔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시민들이 마침내 자유를 평온하고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법을 익혔을 때, 그리고 자유가 주는 실질적인 혜택을 맛보았을 때, 더 나아가 질서에 대한 강인한 애착을 몸에 익히고 기꺼이 규칙에 순응할 때, 이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비록 군대에 몸을 담더라도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습성과 생활 태도를 따르게 될 것이다. 국민의 일반적인 정신이 군대의 특별한 정신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군대 문화에서 생기는 견해와 욕망을 누그러트리기도 하고, 또는 여론이라는 막강한 힘으로 그것을 억제하기도 할 것이다. 지식을 갖추고 절제할 줄 알고 확고하며 자유로운 시민들을 양성하라. 그러면 규율 잡히고 명령에 순응하는 군인들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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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민주주의 2 대우고전총서 44
알렉시스 드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 아카넷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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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식으로...)

시대를 감안해야 할 테고, 1권만큼의 번뜩임은 적었지만,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1권을 읽을 때는 토크빌의 1831년 연말 여정과도 묘하게 겹쳐, 이용재 교수님 역자 해제까지 대단히 만족스러운 해넘이 독서였다.

260102 BEH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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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인은 자기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거절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도로에서 예기치 않게 사고가 발생하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희생자를 도우려고 몰려든다. 한 가정에 예기치 않은 큰 불행이 닥치면,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며, 수많은 소액 기부금이 재난을 도우려 답지한다. - P316

조건의 평등은 인간에게 독립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인간은 자유로운 반면 수많은 우발적인 사건들을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가 일상적으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남의 도움 없이 지낼 수 없는 순간이 항상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 P317

매너의 진정한 위엄이란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게 항상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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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특히 민주 시대에는 종교들이 외형적인 의식에는 관심을 덜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인들의 철학적 방법에 대해 논하면서 나는 평등의 시대에는 형식에 순응한다는 관념만큼 인간 정신을 성가시게 만드는 것도 달리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형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징물이란 이들이 보기에 자연스럽게 낱낱이 밝혀져야 할 진실들을 은폐하거나 외면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는 부질없는 고안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종교 의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으며, 예배 행사에도 부차적인 중요성밖에 두지 않는다.
민주 시대에 종교의 외형적인 의례 행위를 관장하는 사람들은 인간 정신의 이러한 자연적 본능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며 그것과 불필요하게 충돌하는 일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 P64

나로서는 형식의 필요성을 단호하게 인정한다. 형식의 도움을 받아 인간 정신은 추상적인 진실들을 심사숙고할 수 있으며 또 그 진실들을 확고하게 포착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외형적 의례 없이 종교가 유지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에 종교 의 례들을 지나치게 늘리는 것은 정말 위험하며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배가 종교의 형식 여건이라면, 교리는 종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 의례는 종교의 실체에 해당하는 교리 자체의 영속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 국한해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더욱더 평등해지는 바로 이 시대에 종교가 갈수록 더 사소한 일들에 간섭하고 융통성을 잃고 자잘한 의례에 몰두한다면, 이런 종교는 머지않아 회의하는 대중의 한복판에 있는 일단의 광신도 무리만을 보게 될 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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