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가 프레시안에 2001년부터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0639).

 

  '사유체계'로서 음양오행설과 그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은 일단 OK.


  동북아시아 문화의 양대 축이 '유교'와 '음양오행'인 이상(또 '불교'와 '도교'인데, 특이하게도, 무학대사의 예에서 보듯 '역사적으로는' 유불도를 잇는 것이 음양오행이기도 하다), 서양문화를 공부할 때 그 근간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우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양오행설을 모르고서는 적어도 19세기까지의 동북아 철학과 문화, 정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만 해도 단적으로 '한글'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창제되었고, '태극기'를 국기로까지 삼았다. 또 '을사늑약',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을 60갑자에 입각한 연도로 표기했다. 김만태,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역학사상: 음양오행론과 삼재론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제45권 (2012) http://s-space.snu.ac.kr/handle/10371/79624; 뢰귀삼, "한국 ‘태극기’와 송대 유학자 소옹의 선천역학의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규장각, 제40권 (2012) http://s-space.snu.ac.kr/handle/10371/82281 [그러나 유불도에 비하여 전하는 책이 별로 없는데, 주류로 자리잡은 유교가 음양오행의 주장을 부단히 '이단'으로 눌러왔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김태규, "鄒衍, 음양설과 오행설을 최초로 종합한 사람" (2011. 7. 5.) http://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646]


[한편으로는 『주역』 '계사전'에 이미 태극의 개념이 나오고,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북송의 주돈이가 『태극도설』을 짓고(저우언라이가 그 방계 후손이다) 남송대에 주희가 이를 자신의 理學 체계에서 형이상학적 틀로 받아들여 『태극해의』를 쓴 것 등 유학자들도 (진한시대에 이미 생명력을 잃은 공자의 가르침에 비하여 오히려) 음양오행을 자신의 이론에 흡수하였다(심지어 도교에서는 본체가 되었고, 김태규, 위 링크, 불교 매체와 서적에서도 음양오행이 자연스럽게 언급되곤 한다). 김한상, "주희의 태극 개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제30권 (2002) http://s-space.snu.ac.kr/handle/10371/11820; 소진형, "주희(朱熹)의 극(極) 해석에서 드러난 도덕과 정치의 분리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 제24권 제3호 (2015) http://s-space.snu.ac.kr/handle/10371/95037 등. 지은이는 '유교가 중국문화의 상층에 자리잡은 중국문화의 정신이라면, 음양오행은 중국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중국문화의 몸'이라고도 한다(책 21쪽).


그러나 엄밀한 견지에서 유가 경전인 『주역』과 음양오행은 그 기원과 이론 체계가 다르다(책 21쪽). 음양사상과 오행사상도 정확히 말하면 그 연원이 다르지만,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추연鄒衍이라는 사람이 종합하였다고 본다(『염철론』에서 추연의 주장을 논한 '논추論'를 참조. 추연은 중국이 세계의 전부도 아니고, 중앙에 있지도 아니하며, 세계의 1/81, 그러니까 1.2%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오늘날 중국 면적은 지구 전체 육지 면적의 6.3% 정도이고, https://www.worldometers.info/geography/largest-countries-in-the-world/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18.5%에 달하니, https://www.worldometers.info/world-population/china-population/ 추연의 위와 같은 주장은 당대 중국에서는 더욱 파격적인 주장이었을 것이다. 『사기』의 '맹순열전'에도 추연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리고 전한 중기의 동중서가 『춘추공양전』에 제시된 '대일통大一統 사상'을 받아들여 음양오행사상을 유가의 기본 이론 체계로 편입시킨다(책 21~23쪽, 동중서가 공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만든 사도 바오로라고 비유하기도 하였다, 책 95쪽). 동중서는 '천인감응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후한 초기 왕충은 『논형』에서 실증적, 유물주의적 태도에 입각하여 음양가를 비판하면서도 '운명론'을 취한다. 이상은, "왕충, 비판철학의 새로운 장을 열다", 공업화학 전망, 제22권 제3호 중 '인문학 칼럼' (2019) https://www.cheric.org/PDF/PIC/PC22/PC22-3-0031.pdf]




  한편 음양오행 이론이 천, 지, 인 삼재에 관한 실무에 적용된 것이 각각 '사주명리'와 '풍수지리', '한의학'이다. 이들을 위에서 본 '강단講壇 동양학'과 구별하여 '강호江湖 동양학' 3대 과목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반드시 제도 '밖'의 학문이었다 치부할 수만은 없다. 셋 모두가 1910년까지 조선의 과거시험에서 실용 학문에 대하여 치렀던 '잡과雜科'의 과목들이었기 때문이다[잡학은 유학儒學과 무학武學 이외의 모든 학문을 뜻했는데, '사법시험' 내지 '변호사시험'이 고려대에는 '명법업明法業', 조선조에는 '율과律科'라는 이름으로 치러졌고, 고려 시대 잡과에는 '공인회계사시험'인 '명산업明算業'도 있었다].

  세 분야 모두는 '구획 문제(demarcation problem)'를 다룬 최근까지의 여러 이론(논리실증주의, 반증주의, 또 토머스 쿤, 임레 라카토슈, 폴 쌔거드Paul R. Thagard 등)에 따를 때 '공히' 과학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점성술이나 연금술은 근대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지만, 강호 동양학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책 93쪽 이하에 나오는 "위를 보아 아래를 살폈던 사람들 - 천문과 역법"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10655?no=110655 및 이어진 글들과 김원구, "과학은 진화하는가, 교체되는가?", 성대신문 (2019. 3. 24.) http://www.skkuw.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32 등 참조].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지위가 동등하지 않다. 이에 관하여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강호 동양학자'를 자처하고 있는 조용헌 선생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의학은 일찌감치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해 강단의 세계에 들어간 반면 풍수는 이제 겨우 영주권을 딴 상태이고(인용자 주: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던 최창조 교수 덕분에) 사주명리학은 여전히 불법체류자 신세[이다.]" 이한우, "[학술] 강단 밖에도 한국학 고수들 있다", 주간조선, 1895호 (2006. 3. 13.) http://weekly1.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3/09/2006030977026_2.html; 서화숙, "[문화포커스] 사주명리학 연구가 조용헌 교수", 한국일보 (2003. 5. 28.)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305280016640609 한편 조용헌 선생의 박사학위논문은 "『楞嚴經』 修行法의 韓國的 受容 : 耳根圓通과 性命雙修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http://www.riss.kr/link?id=T8874873 에서 볼 수 있고, 국토개발연구원(KRIHS)과 전북대 지리교육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되었다가 1993년에 사직한 최창조 선생의 비교적 최근 인터뷰로 이길성, "[이길성 기자의 人사이드] 나의 明堂은 신도림이지요 내 맘이 편하니까…", 프리미엄 조선 (2013. 12. 21.)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0/2013122002022.html (조용헌은 조선일보에 2004년부터 지금껏 '조용헌 살롱'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조금 찾아보니 조중동이 이쪽 기사를 많이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한의학을 공부하는 지인들을 통해 들어보면 최근 한의학계에서도 이른바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다른 치료법을 써야한다는 입장이어서, 무작위 대조군 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를 주된 근거로 삼는 EBM과 끝내 조화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의학과 커리큘럼에 관한 논란은 다음 기사를 참조. 김은영, "[커버스토리]한의대에서 한의학은 도대체 언제 배우나", 청년의사 (2015. 1. 26.)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916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에서야말로 다양한 대체의학이 소개되고 또 활발한 검증을 받고 있는데, 미국 국립 보완통합의약센터(National Center of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Health; NCCIH, https://www.nccih.nih.gov/)에서는 비주류의학을 '대체의학(Alternative)', '보완의학(Complementary)', '통합의학(Integrative)'으로 분류하여 그 유용성과 안전성을 검증한 뒤 현대의학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고, 하버드 의대도 침술을 연구하고 있다. https://www.health.harvard.edu/medical-tests-and-procedures/acupuncture-a-to-z 국내 학술지 등에도 미국의 보완대체의학(CAM) 정책을 다룬 글들이 꽤 보이는데, 김일훈, "미국의 보완대체의학 흡수대책", 의협신문 (2005. 2. 2.)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63; "미국 보완대체의학 및 한의학 동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8. 12. 6.) https://www.khidi.or.kr/board/view?pageNum=1&rowCnt=10&menuId=MENU01124&maxIndex=00487375669998&minIndex=00001512729998&schType=0&schText=&categoryId=&continent=&country=&upDown=0&boardStyle=&no1=73&linkId=48737558 등. 다음 통계자료도 참조. 미국 CDC, "미국 보완대체의학(CAM)의 비용과 보완대체의학(CAM) 의사를 찾는 빈도" (2007) http://khiss.go.kr/board/view?pageNum=7&rowCnt=10&no1=15&linkId=64397&menuId=MENU00310&schType=0&schText=&boardStyle=&categoryId=&continent=&schStartChar=&schEndChar=&country=


  다시 돌아와서, 이전에 쓴 다른 리뷰에서 명리학의 '반증불가능성'에 관하여 쓴 적이 있다. "음양오행 명리학의 미래?"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768025 그것은 이론 체계 내에 대립적인 것의 융합과 통일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친 설명이지만, "음, 양은 태극에서 분리된, 수렴과 발산이라는 대립적인 기운이지만, 음 속에 이미 양이 있고, 양 속에 이미 음이 있기 때문에, 양의 기운이 충만해질 때 바로 음의 기운이 시작되고, 그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할 때 다시 양의 기운이 생성된다."[강헌, "[ESC] 음 속에 양이, 양 속에 음이!", 한겨레 (2018. 2. 22.) http://m.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33163.html에서 참고함]고 하는 논리 체계하에서는 반대증거조차 자기완결적 폐쇄 순환에 포섭되어 반대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어떤 반론에 대해서도 '과유불급'이고, '극과 극은 통한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대의 흐름이 시작된다(물극필반物極必反)'고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 논리를 탈출할 수가 없게 된다.


  "조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생相制함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상제相制함이 없어서도 안 된다. 상생하지 못하면 발육될 수 없고, 상제되지 못하면 지나쳐 화를 입는다." - 중국 명대 의사 장경악(책 57쪽)


  위와 같은 논리는 변증법과 유사한 일면이 있는데,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반듀링론』 등 자연변증법에 대한 비판논리가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백훈승, "자연변증법 비판: F. Engels의 『자연변증법』과 『반뒤링론』을 중심으로", 범한철학, 제28집 (2003)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157263; 권기환, "F.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 대한 비판적 논쟁: G. 루카치의 자연변증법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헤겔연구, 제43호 (2018)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8775989 등.



  엠페도클레스의 시편도 논리가 비슷하다(책 254쪽 및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41912?no=41912 참조).


  "나는 이 리듬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겠다. 하나의 운동에서는 다수의 것으로부터 통일되어 유일한 존재를 만들고, 다른 운동에 있어서는 통일되어 있는 것을 분해시켜서 다수의 것을 만들어 낸다."


  "이 영구적 상호운동은 멈추는 일이 없다. 하나의 운동에서는 만물은 사랑으로 일체가 되고, 다른 운동에서는 만물은 서로 싸우는 적의에 의해 각기 분산한다. 이리하여 다수의 다양한 것에서 단일한 것이 생기고, 단일한 것에서 다수의 다양한 것이 생기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시초는 있으나 그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영구히 멈추는 일이 없는 교호운동으로 인하여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고 그 순환과정에 있어서도 부동이다."


  "과거에 그랬듯이 미래에도 역시 그렇다. 무한한 시간을 통하여 두 가지는 항상 존재한다."


  "우리들은 사랑이 싸움에 의해 우주에서 추방됨을 본다. 그러나 싸움이 차츰 증대하여 그 정해진 시기가 차서 영광의 위치를 차지하면, 다시 역전이 시작된다."




  명리학에서는 오행이론도 목화/토/금수로 음양학적 순환 구조를 띠고 있는데, '십신', '십이운성', '신살' 같은 것들이야 오행의 특성에서 연역추론한 결과로 볼 여지가 있지만, '합合'과 '충冲'에 '지장간' 같은 예외이론, 또 '대운'과 '세운', 주변환경과의 관계 등 겹겹의 '메타적'(?) 상호작용이 합쳐지면 설명 불가능한 것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은 '신강'과 '신약'을 점수화하기도 하던데, '극신강과 극신약은 맞닿아 있다'고 하는 순간 다시 앞서와 같은 문제에 빠지는 것도 같다. 이전 리뷰에 쓴 것처럼 경기순환을 직선(장기 추세)적 틀의 싸인파로 표시하면 어쨌든 좌표를 따고 주기를 계산하고 어쩌고 하겠지만, 순환을 원형으로 모델링하면 시작점을 잡기가 힘들어지는 것도 같다(정리된 생각이라기보다는 아직 이런저런 인상을 갖고 있는 정도다. 지은이는 "변화의 과정을 설명해 주고, 변화의 끝을 알려 주며, 다시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는 기미를 말해 주는 것이 음양오행이다."라고 한다. 책 127쪽). 여하간 위 '강호 동양학 3과'는 모두 다소간의 귀납적 단서를 바탕으로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연역추론을 전개하고, 이것이 다시 경험적 증거로(혹은 '확증편향'으로) 되먹임되면서 수정되고 정립된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프톨레마이오스가 지구 중심의 천동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주전원들을 도입한 것처럼, 위와 같이 예외에 대한 예외 이론이 겹겹으로 쌓인 것 같은 형상을 띠게 된 것이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관점에서 논리의 불건전성을 시사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한 문단 정도로 얼른 쓰고 다른 책의 리뷰에 더 공을 들이려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아무튼 '윤리학'이나 '(인)문학'의 차원에서라면 참고하거나 흥미를 갖고 읽을 만한 내용이 있고[예컨대, 일을 벌리다 병이 나면 애태우지 말고 자중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여 좀 쉬라는 내용(책 76쪽 이하), 한자에서 수數와 probability를 연결짓고, 피타고라스의 수數 또는 로고스를 동북아시아의 이理에 빗댄 내용(책 15, 250쪽), "음양오행으로 본 삼국지"(책 210쪽 이하, 특히 위촉오 세 나라가 문패를 내린 시점에 관한 내용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0699?no=110699), 중동 지역 국기에 초록색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그들에게 숲이 바로 낙원, 즉 오아시스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종의 비전을 나타낸 것이 된다는 점(책 85쪽) 등], 상당히 과감하게 '예측'을 한 부분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보면 결국 틀린 것들이 많다(예컨대, 파나마 운하 확장공사가 2012년 임진壬辰년에야/에는 완공될 것이라 썼는데, 실제로는 병신丙申년인 2016. 6. 26. 완공되었다. 책 145쪽). 이전 리뷰에도 비슷한 내용을 썼는데, 이 책에도 대한민국이 2024년부터 새로운 양적 성장의 길로 들어서서 30년간 황금시절을 맞는다는 내용이 나오고, 그쯤 되면 남북이 통일될 것이라고도 한다(책 43, 52쪽, 과연???!). 세계 여러 나라에서(지역별로) 심장병, 신장질환, 위암 등 어느 병이 많이 생기는가 하는 문제나, 어느 해에 어떤 병의 발병률이 높아지는가 하는 문제는(책 64, 175쪽) 통계로 확인 가능한 문제이나, 아직 데이터를 찾아 검증해보지는 않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묵향 2020-08-0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0. 8. 5. 추가) 이코노미스트 誌 The World in 2020를 읽다가 ˝Personalized Medicine˝의 논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Vogenberg FR, Isaacson Barash C, Pursel M. Personalized medicine: part 1: evolution and development into theranostics. P T. 2010;35(10):560-576.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957753/ 등 참조. 인간의 지놈 정보에 대한 개별화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일종의 ‘맞춤의학‘인 한의학이 검증(또는 반증)되고, 근거중심의학(EBM)으로 편입될 수도 있을까? 이전 리뷰에도 썼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다루고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 규모에 달린 문제 같기도 하다.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유가 더 없어지기 전에 최근 읽은 책들에 관하여 메모를 남겨두려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는 책에 관한 그만한 생각을 떠올릴 수조차 없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문학계 동향을 꾸준히 추적하여 온 것도 아니라서 최근 문학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시인이 되겠답시고 기형도, 오규원 전집과 이성복, 문인수, 엄원태 등 시인들의 시를 필사하고, 시학회를 기웃거리며 신춘문예 일정을 챙기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살다 보니 흥미가 거의 떨어졌다. 한 달에 못 읽어도 한두 권은 꾸준히 읽던 시집도 요즘은 드문드문 읽을 따름이다. 책을 골고루 읽으려고 열댓 개 분야를 정하여 열다섯 권에 한 권꼴로는 문학 책을 꼭 읽게 되도록 배려(?)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 한가롭지(?) 않게 되었다. '쓸모'를 따지는 이런 말이 문학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을 펼칠 시간과 여유가 나더라도 汎用性이 상대적으로 큰 고전이나 세계문학을 집게 되지, 개중에서도 한국소설은 적어도 내게는 점점 순위가 많이 밀려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의무감에서가 아니라면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문장에 빠져들 필요와 동기가 잘 일지 않는다. 긴 시간을 들이기엔 '가성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어느 작가의 이런저런 작품들은 다르더라는 것이 있으셨다면 추천해 주시길...)


  그렇게 내가 '편협한' 관점을 가진 '문외한'인 것을 전제로... 오늘날 '작가', '소설가', '문학'과 같은 말들이 주는 '아우라'는, 비교적 최근인 『토지』가 완성된 1994년 즈음과 비교하여도 상당히 왜소하고 스산해졌다. 30년 전, 50년 전, 100년 전과, 지금의 창작환경을 어떤 기준을 갖고 비교해야 하는지, 비교할 수나 있는지 어려운 문제지만, 문학이 지식의 최전선에 있고 작가가 곧 지식인이었던 시절과 지금은... 어떻게 보아도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은유, "[삶의 창] 작가의 연봉은 얼마일까", 한겨레 (2018. 10. 19.)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6586.html; 민동용, "억대 연봉에 수십만 독자… 우리도 베스트셀러 작가랍니다: 웹소설 작가 3인 ‘밀차-강하다-달콤J’", 동아일보 (2020. 1. 8.)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0108/99127701/1


  간혹 거리에서 사진기를 멘 모습을 뵙기도 했지만 조세희 선생께서도 '글로서는' 오래 침묵하고 계신다. 최재봉, "[최재봉의 문학으로] 조세희의 침묵", 한겨레 (2018. 1. 18.)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8404.html 87년 체제를 열어젖힌 데 대한 보상(?)으로 명예와 권력을 넘어 경우에 따라서는 富와 그 세습까지 보장받은 이들이,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시대를 스스로, 비가역적으로 강제 '폐막'시키고 있는 동안, 보수주의자로 분류되었던 소설가 김훈이 오히려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추락사와 산업재해 문제에 관하여 꾸준히 발언하고 계신다. 김훈, "[왜냐면] 아, 목숨이 낙엽처럼", 한겨레 (2019. 5. 14.)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93771.html

  대하소설만 위대하고 거대담론을 다뤄야만 가치있는 문학은 아니지만, (또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오늘날 박경리 선생님이나 작가 최명희 님처럼 그야말로 목숨 걸고 쓰시는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다(오히려 만화 같은 장르에서 그 비슷한 경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박상현, "문학은 민족 생존권 깨닫게 할 거대담론 다뤄야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출간", 연합뉴스 (2020. 2. 24.)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4122300005정영훈, "사람들이 토지·태백산맥 안 읽는 진짜 이유는…", 프레시안 (2012. 9. 1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8066 (갈수록 갸웃할 때가 많아지는 것 같지만, 여러 논란과 평가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40년, 50년 넘도록 꾸준히 '소설'을 내고 계시는 김주영, 조정래, 황석영 같은 분들은 가히 노익장이라 할 만하다. 문순태 교수님께서는 재작년 두 번째 시집을 내시기도 했다.)

  가치 혼란,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한때 존경받았던 분들이 다양한 갈래로 '흑화'하고 판단이 흐려진 모습, 혹은 민주-반민주의 단순한 전선하에서는 용케 덮일 수 있었던 진면모(?)를 드러내어 보이며 실망에 실망을 안기고 있다. 최근 '문학동네'는 젊은작가상 수상작에 대한 삭제와 수상 취소 요청, 또 이를 접한 독자들의 문제제기를 받고 입장을 조금씩 후퇴해가다가 어제는 판매중지를 공지하기까지 했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토지』와 『혼불』을 함께 다룬 논문들을 몇 개 발견하여 기록해 둔다. 김희진, "최명희 『혼불』과 박경리 『토지』의 인류학적 연구", 2013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m201_id=10042338; 김희진, "최명희 『혼불』과 박경리 『토지』연구 - 풍속을 중심으로 -", 인문사회 21, 7(3), 20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17170; 이경, "겁탈과 여성인물의 생존서사 : 『태백산맥』, 『토지』, 『혼불』을 중심으로", 여성학연구, 26(3), 20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63871; 우수영, "박경리 『토지』와 최명희 『혼불』을 통해 고찰한 한국의 음식문화", 현대소설연구, 58, 2015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85392김순례, "한국여성대하소설을 통해본 ‘여성의 가문의식’ 연구 -토지와 혼불을 중심으로", 국제한인문학연구, 1(1), 201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93603 오세은, "여성 가족사 소설의 '의례와 연대성'-토지미망혼불을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7, 200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888529; 이덕화, "『토지』와 『혼불』의 비교연구", 여성문학연구, 2, 1999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69184 (박경리와 최명희 두 여성적 글쓰기』, 태학사, 2002라는 책도 내셨다)]



  다시 찾은 박경리기념관에서 이 책이 눈에 띄어 샀다. 『토지』를 연재하면서, 또 『토지』 완간 이후에 틈틈이 쓰셨던 글들로, 직접 '미완'으로 표시하신 부분이 있는 등 계획을 갖고 '일본론'을 다듬어 나가셨던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토지』 자체가 '소설로 쓴 일본론'이고, 작가께서 일본 평론가와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철두철미 반일작가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도 하다.

  책 끝에 실린 강원일보 인터뷰를 보면, 『토지』 완간 이후의 계획에 관하여 "앞으로는 실제적인 이론이 서는 일본론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우리 세대 지나면 쓸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두 번 입 못 떼게 철저하게 조사해 쓸 겁니다. 어중간하게 칼 뽑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온다(책 205쪽). 말씀 그대로 통렬하다. 삶을 걸고 내뿜는 일갈 앞에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나 실증주의 같은 것을 차마 들이대지 못하겠다. 특히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田中明]의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책 158쪽)에 대한 지상 반론(紙上 反論)인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책 173쪽)는, 정연한 글에서 벼락이 치는 것만 같다. 1부 다섯 번째 글 "출구가 없는 것"과 2부 "美의 관점"은 내용이 상당히 겹치는데, 뒤의 글이 좀 더 종합적이다. 일본문화를 분석한 글로, 대작가의 통찰이 빛난다. 책에서 글 하나를 고른다면 위 "美의 관점"을 추천하고 싶다. 일본문화의 허무주의와 탐미주의, 현실 도피와 쾌락 추구,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을 꿰는 논설로,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 힘든 글이다. 청산하는 독일과 청산하지 않는 일본의 차이를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의 부재'에서도 찾고 계신다(책 76쪽 이하).

  작가께서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우려하신 대로(책 17쪽), 일본 우익이 통치 위기를 모면하고자 혐한 감정을 조장하고, 한국 학자들까지 동원하는 양상이 걱정스럽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 무서운 것이 차음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인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씨가 마르게 사내들이 죽어간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의 악몽은 사람이 현인신(現人神)으로 존재하는 거짓의 그 황도주의 때문이다. 가타비라 같이 속이 비어 있는 신국사상에 매달려온 일본인의 역사의식 그것의 극복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으로, 야심 없는 이웃으로 마주 보기 위하여,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책 29~30쪽)


  "저는 과거에 원한을 갖고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본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일본의 민족성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체제입니다. 체제가 뭐냐를 물어야지요."(책 202쪽)


  박경리 선생님의 문장들이 반드시 어법에 맞지만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끈덕진 말맛이 감돌고, 절로 설복되는 묵직함이 있다. "나는 인생만큼 문학이 거룩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책 148쪽)라고 말씀하시며 "결코 사사오입의 인생을 살지 않[고] 내부에서 가장 치열한 사고의 반란을 겪었던"(책 121쪽) 분이시기에, 역설적으로 문장에도 인생 그 이상의 무게가 실릴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아니 모든 생명은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살기 위하여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도 삶의 투쟁, 삶의 인식, 삶의 조화 그 모든 삶에 수반되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신묘한 본질적 삶의 교향악 위에서 군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술은 삶의 추구며 방식이다.- P59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지만 결코 반일본인은 아[닙니다].- P84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P87

후일 일본론을 쓸 생각입니다마는 너무나 학생들은 일본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사회 자체도 일본의 정체에 무관심하며 또는 일본을 모범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확대되는 양상을 보며 걱정을 한 나머지 나로서는 이나마도 성급하게 엉성하나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일본을 모른다는 것이 학생들의 잘못은 아닙니다마는 마지막 꼭 해두고 싶은 말은 결코 일본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P109

하기는 우리 민족 전부가 겸손하고 고상하고 객관적이고 했으면 오죽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하다 해서 함구령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은 학자의 독점물은 아니며 사람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역사에 동참해온 것만큼 알 권리, 말할 권리는 있다. 설령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이 우쭐해서 과잉 표현을 좀 했다 하자. 그들의 천진한 자랑 때문에 일본의 땅 한 치 손실을 보았는가, 금화 한 닢이 없어졌는가, 왜 그렇게 못 견뎌 할까. 그같은 자랑조차 피해로 받아들이는 그들이고 보면 우리 한국의 천문학적 물심양면의 피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안이 벙벙해진다.- P181

그러나 나는 어리석고 느슨한 내 겨레를 슬퍼하지는 않는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도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190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P192

"나앉은 거지가 도신세 걱정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이 얘기는 일본의 경우일 수도, 우리의 경우일 수도 있다.- P193

저는 『토지』를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토지에는 왜 농부가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전 인류적인 삶을 다루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토지』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나무나 돌도 제 역할합니다. 저는 바람과 물에도 다 필연성을 부여했습니다.-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성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P78

냉철한 비판이란 공평함을 뜻합니다. 최소한의 공평을 소지했던들 그와 같이 머리만 따고, 혹은 꼬랑지만 잘라서 말해버리는 것은 무책임입니다.-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레마 사운드업'에 대하여 남긴 다음 후기가 종종 "좋아요"를 받고 있어서(마침 오늘 하나를 더 받아서) '크레마 카르타G'에 대해서도 평을 남겨둔다.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정상 작동 중 액정 절반이 나갔다. 킨들에 비해 실망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닌데, 달리 대안이 없어 슬프다."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437743


  지금 돌이켜보면, '크레마 사운드업'을 택한 것은 행동경제학적으로 '타협효과(Compromise Effect)'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무 싸거나 비싼 제품, 기능이 너무 없거나 불필요한 기능까지 쓸데없이 갖추고 있는 '것 같은' 제품들의 양 극단을 피하고 가격과 사양 면에서 타협, 절충을 한 것이다. (횟집에서 3만 원, 5만 원, 8만 원 세트 중 5만 원 세트를 고르고, 피로연을 준비하는 혼주들이 광어회, 문어 숙회, 전복 갈비탕이 나오는 A 코스나, 갈비탕이 나오지 않고 잔치국수가 나오는 정도인 C 코스를 피하고, 스테이크 또는 LA갈비와 갈비탕이 나오는 B 코스를 압도적으로 많이 고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횟집 주인이나 예식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5만 원 세트나 B 코스의 마진을 높여두는 것이 현명하다. 전자제품도 세 가지 정도 모델을 유지하면서 가운데 사양 제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위 후기와 같이 액정이 나갔고, 첫 구매 시에 아꼈던 금액 이상으로 '수리비'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전자제품은 부수적인 기능에 신경 쓰느라 '기본적인 내구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다. '크레마 사운드업'을 고를 때는 편리한 휴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한데,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싸들고 다녀야 하고, 책상 위에서만 도서관 귀중본 넘기듯 경건하게 다뤄야 한다면 전자책 단말기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알라딘'의 후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 '기본적 신뢰'를 배반당한 기분이 들었고, 외국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수리는 바로 맡기지 못하고 '크레마 카르타G'를 다시 살 수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아마존 킨들을, 역시 '타협전략'에 따라 구매했고 훨씬 오래 썼지만, 아무리 험하게 다뤄도(이 정도면 망가졌어야 하지 않나 싶었던 순간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


  '크레마 카르타G'를 고른 이유는 '너부리' 님의 다음과 같은 평 덕분이었다. "카르타, 카르타+, 사운드, 그랑데, 엑스퍼트 다 써봤는데 겉보기에 카르타G가 제일 튼튼해 보이네요." https://blog.aladin.co.kr/ygbaby/11038054 사실상 오로지 안 망가지는 제품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지금까지 망가지지는 않고 있어서 비교적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 위로 배치된 물리키의 기능 설정이 (적어도 나의) 직관에 반한다. 오른손으로 키 쪽을 잡고 읽는다고 할 때, 내 생각에 위의 버튼은 앞쪽으로, 아래 버튼은 다음쪽으로 넘어가는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반대다. 설정을 바꿀 수도 없다(뭐,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하였다).


  나는 주로 알라딘에서 전자책을 사보기만 했어서 모르겠지만(대출을 많이 해보지 못했고, PDF 파일들은 한글이더라도 킨들로 본다), 낮은 스펙과 2020년 4월 1일부터의 한국이퍼브 서비스 종료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전자책 기기와 컨텐츠가 아직 '충분히 편리하고 다양해지지 못한 덕분에' 서점사 등 여러 업체들이 안주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넷플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이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 번역을 해내기 시작하는 순간 모두 문 닫을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정부는 익숙한 습관과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고 예산은 예산대로 들면서 결론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이상한 일을 벌이고 있다. 류은주 기자, "정부 '2년내 한국판 넷플릭스 5개 만들겠다'", IT조선 (2020. 6. 22.)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9/2020061903219.html 언제쯤 우리는 "K-", "한국판", "토종" 이런 말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일단 5개를 만들겠다는 것부터가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에 '네트워크 효과'가 놓임을 간과하고 있다. 위 기사의 부제는 "2022년 국내 미디어 시장 10조, 콘텐츠 수출 16.2조 목표"인데, 이용자들이 왜 넷플릭스를 찾는지도 모르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부터 잘못 선택하고 있다.


  순진한 걸까. 아니면 이번에도 정말 한 몫씩 골고루+쏠쏠히 '해먹은' 뒤 사람들의 망각 속에 흐지부지하려는 걸까.


  다음 글들을 함께 참조...


  김은지 기자, "넷플릭스, 뉴미디어시장 장악… 체면 구긴 토종 미디어 초비상", 디지털타임스 (2020. 6. 17.)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0061802150931032001

  주성호 기자, "'한국판 유튜브' 키운다던 KT '두비두' 결국 접는다", 뉴스1 (2017. 4. 28.) https://www.news1.kr/articles/?2980354

  도안구 기자, "오픈소스 OS에 대한 티맥스의 한결같은 ‘토종’ 타령", 테크수다 (2018. 7. 4.) https://www.techsuda.com/archives/115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묵향 > [마이리뷰] 3월 1일의 밤

다시 1년 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