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카도조 로스쿨의 Peter Neufeld와 Barry Scheck이 주도하여 시작된 미국의 '이노센스 프로젝트 Innocence Project'는,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에 관하여 DNA 재감정을 통해 2017년 6월까지 351명의 유죄 확정자가 무고함을 밝혀냈고, 그중 20명은 사형수였다. 억울함이 밝혀진 사건들의 40% 정도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DNA 감정결과만 가지고도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었고, 그 때까지 그들이 교도소에서 복역한 기간은 평균 13년 정도였다. DNA 검사를 통해 150여 명의 진범을 찾아내기도 했다. 매년 3,000명 정도의 기결수가 이노센스 프로젝트에 자신의 결백함을 밝혀달라고 편지를 쓰고, 이노센스 프로젝트는 이를 포함하여 6,000에서 8,000건 정도의 사건을 들여다 보는데, 그중 22% 정도 사건은 DNA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공식 사이트를 참조 https://www.innocenceproject.org/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들 한 명 한 명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전락자백』은 일본 '진술증거 평가의 심리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회'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위 연구회는 2008년 9월 구상되어, 2009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일본의 형사법학자, 심리학자, 변호사 등이 20회에 달하는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거짓자백하는가'를 심리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아시카가足利 사건, 도야마히富山氷見 사건, 우쓰노미야宇都宮 사건, 우와지마宇和島 사건 네 사건을 주로 다루었는데,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슬픈 자백'이 이루어진다(책 94~100쪽).
a. 일상생활로부터 격리된 고립무원의 상태(일상에서는 당연했던 심리적 안정을 잃고, 수사기관은 주변 사람들 모두 너를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의 정보 혹은 심리적 압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러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 범죄사건을 보도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b.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 상실(구금되고 나면 식사, 배설, 수면 등 기본적 생활에서 자유의 범위가 크게 줄어들고 피의자신문을 위하여 반복하여 불려나가야 하게 된다)
c.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수사관들은 객관적 증거가 없어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더욱, 보다 안심하고 기소할 수 있는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피의자들을 비난하고, 매도하면서 심리적으로 도발하는데, 피의자가 계속하여 부인하는 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된다)
d.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결혼적령기를 지난 비혼으로 이성과 안정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거나 충실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이 사건과 무관한 사항에 관해서 자꾸 비난받다 보면 사건과는 무관하게 죄책감이 생기고, 실패자로 낙인찍힌 기분이 되어 저항력을 상실하게 된다)
e.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아무리 열심히 변명해도 변명은 변명처럼 들리고, 수사기관은 결정적 증거가 있는 양 말하며 설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상에서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설득하기를 단념하고 떠날 수 있지만, 피의자신문은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된다)
f.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언제 확실히 끝날지 모르는 상태를 사람들은 더욱 버티기 어렵다)
g. 부인할 경우의 불이익 강조(계속 부인하면 오히려 형이 무거워진다고 타이른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무 죄가 없더라도 자백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h. 수사관과의 '자백적 관계'(물론 피의자와 수사관은 경쟁적 관계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정이 통하는 일종의 동료의식으로 묶여버려 법정에서조차 자백철회가 그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심리적 구속이 유지된다)
여기에는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는 (일본) 형사절차의 구조적 문제도 크게 작용하는데(이는 우리 사법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과 같은 추궁형 신문방식 하에서 수사관은, 자백함으로써 느끼는 불안감을 증대시키지 않으면서도 부인을 계속함에 따른 불안감만 증대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고, 그래서 d, g와 같은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우월한 조직력을 가진 수사기관과 대치할 때 독립한(그래서 고립된) 재판관이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여론의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이는 가중될 것이다) 혹은 때로는 (무)의식적 동료의식, 과거에 행해진 DNA 검사의 기술적 한계(그리고 그 해석방법에 관한 법률가들의 무지), 실제 체험을 말할 때와 체험하지 않은 것을 말할 때의 차이에 대한 간과(체험기억을 진술할 때는 자기와 타자를 번갈아 고르게 말하지만, 거짓자백을 할 때는 자기의 운동행위를 쭉 이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범행현장에서도 피해자나 피해품은 범인의 주요한 관심사일 것이므로 나 아닌 것에 관한 진술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체험진술에서는 수사기관이 몰랐던 '비밀'이 폭로되는 반면 비체험진술에서는 피의자의 '무지'가 폭로되기도 하는데, 이를 사법기관이 섬세하고 공정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피의자에게 크고 작은 지적장애가 있는 경우(이들은 자신이 질책받고 야단맞고 있다고 느낄 때 수사관에게 심리적으로 구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 목격자나 피해자에 의하여 범인을 식별할 때의 위험(피해자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도망갈 수 있는 길이나 흉기에 주목하기 때문에 범인의 용모에 관한 기억은 불확실할 가능성이 높은데, 수사기관이 보여주는 인물은 진범일 것이라는 암시를 받기 쉬우므로, 엄격한 범인식별절차가 준수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하는 것은 어느 것이든 위태롭고, 재판절차에서는 위험하다)과 같은 것들도 거짓자백에 의한 재판을 보충하는(?) 요소로 책은 다루고 있다.
따라서 자백의 신용성을 판단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책 199쪽).
① 범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심증을 형성할 때에는, 인간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오류를 더 적게 하기 위해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 진실 앞에 겸허하고 우직할 것.
② 자백이 있는 사건에서도 특히 피고인과 범행을 연결지을 때, 정황증거의 정확성과 한계를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을 '제1차적 작업', 즉 출발점으로 할 것. 자백의 검토는 그 후의 '제2차적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③ 심증 형성의 과정에서는 스스로 세운 '가설' 위에 항상 새로운 '가설'을 던지고, 예외에 눈감지 않고 시야를 넓게 가지며 끊임없는 '검증'을 거듭해갈 것(인간은 하나의 관점을 가지면 다른 관점을 가지기 어렵다. 특히 그것이 확신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이것이 평소에도 입장을 즉자적으로 세우기 전에,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검증하는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다만, 재판관은 과학자를 가장하거나 과학에 정통한 태도를 취하여 '전문가인 척하는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확신은 위험하다는 동일한 이유에서다.).
④ 재판관이 행하는 증거의 종합적 판단은 최종적으로는 재판관의 '전인격적 판단'이 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도 개별적인 증거에 대해 충분한 조사와 분석을 반복하여 검토하고, 거기에 더해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항목을 체크하여야 한다(상세는 책 200~204쪽).
a. 자백의 성립 과정-자백과 부인이 뒤섞인 경우, b. 자백 내용의 변동과 합리성, c. 자백의 체험진술성, d. '비밀의 폭로', e. 자백과 객관적 증거가 부합하는 정도, f. 뒷받침해야 할 물적 증거의 부존재(관련성이 희박하고 불확실한 증거를 아무리 모아도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 확실한 물적 증거가 '왜 없는지'를 문제 삼아야 한다), g. 범행 전후의 수사관 이외 사람에 대한 언동(피의자, 피고인이 된 사람은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해야), h. 피고인의 변명, i. 정황증거와의 관계.
일본에서는 '설원雪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원죄冤罪 피해 근절과 피해 회복을 목표로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공식 사이트를 참조 http://setuen-project.com/
일본에서 2012년에 쓰였고, 번역작업도 꽤 일찍 시작된 것 같은데, 2015년에야 책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옮긴이가 덧붙인 "김인회의 한국 이야기" 부분은 국내의 최신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이 철 지난 이야기에 오도될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예컨대, 책 255쪽 유죄율 통계 등. 약식사건을 빼고 제1심 공판사건 재판결과를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사법연감』http://www.scourt.go.kr/portal/news/NewsListAction.work?gubun=719 자료를 통해 계산해 보면, 한국에서 유죄판결(선고유예 포함) 비율은 2011년 70.0%, 2012년 67.0%, 2013년 74.5%, 2014년 80.5%, 2015년 83.4%, 2016년 87.1%, 2017년 86.0% 정도로,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유죄판결이 9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다. 검찰에 불기소재량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검찰과 법원 사이의 밀당게임인 측면이 있다. 국민참여재판도 책 곳곳에 지적된 것과 같은 여러 한계로, 확대되기보다는 사양화에 가까운 길을 걷고 있다고 알고 있고, 참심제를 시행하는 나라들에서도 특히 현대사회에 와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서증을 꼼꼼히 비교, 대조하여 보기가 거의 어렵고, 검사나 변호인이 가공, 요약한 프리젠테이션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일 개정하는 데 현실적 제약이 있어 '일격성'(일회적 공격) 사건이 아니면 제대로 된 심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일본의 최신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형사법 영역에서는 책에 나온 것과 같은 고질적 문제들도 있어서, 모르긴 몰라도 일본은 사법제도가 우리보다 점점 뒤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특히 형사절차에서는 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법률가들의 노고로, 일본보다 빠른 성과를 쟁취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도 엄벌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실은 어느 나라나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형량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높은 형량이 총기범죄 등 범죄 예방에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언뜻 접하는 언론기사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게 되는 '제1종 오류'와 진범을 방면하는 '제2종 오류'를 함께 줄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실증적 근거에 터 잡은 냉철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예컨대 개방형 교도소까지 운영하는 핀란드는, 실은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좌파 탄압 등을 목적으로 장기구금형 중심의 형사정책을 유지하다가, 그것이 재범방지와 범죄예방에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사회적 결론을 내리고 1960년대부터, 불필요하게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행위들에 대한 형벌을 폐지하고, 있는 법정형을 줄이고, 재소자들을 빨리 사회로 복귀시키는 등 목적의식적으로 형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도 형사정책은 좋은 사회(복지)정책의 뒷받침 없이 달성될 수 없다는 믿음하에, 범죄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재소자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데 목표를 둔, 'as open as possible'한 교정행정을 견지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관광명소인 헬싱키의 수오멘리나 섬에는 개방형 교도소가 있는데, 여행 중에 수감자와 마주치더라도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2010년 9월에 무죄가 확정된 무라키 아쓰코村木厚子 씨는 "...취조라는 것은 링에 아마추어 복서와 프로 복서가 올라가 시합을 하는데, 심판도 없고 세컨드도 붙지 않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책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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