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릴 정도로 분석적이고, 체계적인데... 별 감동은 없었다.


  자연법론(비실증주의) 대 법실증주의 논쟁을 접할 때마다, 그래서 '무슨 쓸모?' 하는 생각이 앞선다. 서로의 논리적 궁지에 변태적 쾌감을 느끼며 결국은 상대의 약점을 가장 큰 논거로 삼는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렇게 '우리 편 아니면 적군' 식의 경직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나 싶다.

  특히 비실증주의는, 법실증주의를 지극히 좁게 규정하여, 법체계의 자족성, 완결성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없을 것이라면 절대로 실증주의 편에 서서는 안 되고 우리 편에 서야 하고 설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강변한다는 느낌이 든다(자신의 입장은 좁은 실증주의 아닌 모두를 포괄하는 '非'실증주의로 넓게 잡아 예외를 폭넓게 허용한 뒤에...).

  나치에 부역하거나 유신정권에 협력했던 자들 일부가 '법'을 '법률'과 동일시하여 더 이상의 사고를 애써 멈추어 버렸다는 것도 맞지만(이른바 '법률적 불법'의 용인), '정의', '역사적 사명', '시대적 과제'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제한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버린 결과가 인류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 것 아닌가. 대표적인 법실증주의자 한스 켈젠은 오히려 나치의 박해를 받아 해직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자유주의,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과제로 삼은 카를 슈미트야말로 '황제법학자'로 불리며 반유대주의의 선봉에 서지 않았던가. 더 위험한 쪽은 이성과 군중을 마비시키는 이론의 낭만화 아닐까. 정의는 과연 투명한 개념인가.


* 심헌섭, <서평> Hans Kelsen: Leben-Werk-Wirksamkeit (R. Walter, W. Ogris, Th. Olechowski 공편 Wien 2009, 395면), 서울대학교 법학 제51권 제3호 (2010)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71030/1/0x702004.pdf

* 심헌섭, <서평> Matthias Jestaedt, Hans Kelsen-Institut, 『Hans Kelsen im Selbstzeugnis (Mohr Siebeck, 2006, 126쪽), 서울대학교 법학 제48권 제3호 (2007)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10175/1/law_v48n3_278.pdf

* 박은정, 한인섭 엮음, 『5.18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5), 279-280쪽 등


  비실증주의가 중요한 논거로 드는 것이, 법의 외피를 띤 '극단적 불의'를 단호하게 불법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참여자(특히 법관)들이 그러한 예외상황에서 언제라도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평시에 전선의 우위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 이를 떠나 어쨌든 법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인데...

  '무엇을 극단적 불의라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러한 판단의 정확성 내지 타당성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더군다나 그러한 자세를 평소에도 준비시켜 놓는다고 한다면, 어떤 가치에 복무하겠다는 의욕의 과잉이 오늘날과 같은 진영주의, 종파주의, 인민주의와 결합할 때, 상대편을 말살하기 위한 이념전쟁에서 법관들조차 홍위병 노릇 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법의 빈틈을 섣부른 신념으로 채우려다 사실까지 왜곡하게 되는 결과와(프레임이 강할수록 사실을 그에 끼워 맞추어 보게 될 우려가 당연히 커진다), 실제 사실에 집중하여,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다듬어져 대박은 못 쳐도 크게 잘못될 위험도 적은 '있는 법'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바뀌기 전까지는 충실하게 적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해악이고 치명적일까. 입법에 이르는 정서가 열정, 바람, 분노보다 후회에 기초하는 것이 반드시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 자신이 주관적으로 어떻게 믿는지와는 무관하게 개인적 가치관을 잠시 접어 두고 꼬장꼬장하게 증거와 절차부터 따지는 법관과, 대의를 위해 약간의 억울함은 희생될 수 있고 구체적 사건의 세부가 큰 틀에서는 무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법관(즉, '누구 편을 들고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가 사건을 직접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 속에 어느 정도 서있는 법관) 중, 내가 재판 받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때 어느 쪽의 재판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꽤 분명하지 않은가. 내가 지더라도 승복할 수 있는 쪽은 전자의 재판 아닐까. 매사에 입장이 분명하고 강하게 서있는 심판자가 공정하고 공평할 수 있을까. 어느 한 쪽 입장이 언제나 빈틈 없이 선(善)이고 정의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 아닐까. 욕망덩어리인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인가. 인간세상이 전래동화나 마블 유니버스처럼 선악이 분명하기만 한가.


  바야흐로 진실이 흔들리고 가치가 혼란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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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악 펭귄클래식 39
앙드레 지드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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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도 아래 리뷰도, 베토벤이나 전원교향곡과는 무관한 이야기)


  집을 책장으로 두르고 책을 겹겹이 꽂았는데도 집이 책으로 가득 차 보관할 공간이 없다. 산 책을 또 사는 일이 자주 생기고,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 박스 안에 들어가 잊힌 책들이 많다. 한동안 서재를 떠나 있었던 터라 틈틈이 책장을 정리하며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상기하고 있던 중...

  리뷰를 쓰지 않은 이 책을 발견했다. 작년 예비군 훈련장에서 읽었다. 군복 옆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 책을 챙겨가는 편이다. 박태원의 소설을 읽은 해도 있었고 랭보를 읽기도 했다. 대기하는 시간에 틈틈이 읽다 보니 맑게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날 바로 메모하고 정리하지 않았더니 어렴풋한 느낌-약간의 '혐오'와 분노-만 남아있다.

  전자책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책을 조금씩 버려야 하나도 싶다. 누가 버린 책을 줍고 모으긴 했어도 책을 버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아기가 '도서관'이라 여기는 서재에 드나들다가 책이 와르르 쏟아질까 걱정도 된다. 어떡하나.


  우리말로 옮기면 그 연관이 드러나지 않지만, 목사, 목자 pasteur (pastor), 그러니까 '파스퇴르'는 전원교향곡 La Symphonie pastorale (Pastoral symphony)이라 할 때 전원 pastoral과 같은 라틴어 단어(목동, 풀 먹이다)에서 왔다.


  아래 '밑줄긋기'에서 지드의 사도 바오로(바울)에 대한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교리와 관습이 근원을 떠나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비판, 경계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지금도 예수를 팔아 인간적 잇속만 차리며 신도들을 오도(誤導)하는 늑대같은 무리들을 너무 많이 본다.



사흘 전부터 계속해서 눈이 내리더니 길이 막혔다. - P9

‘정신은 자주 마음에 속는다‘ - 라로슈푸코 - P81

"예수의 구원의 복음이 성 바울의 교리적 도덕주의(moralisme doctrinal)를 받아들인 교회들에 의해 왜곡되어 버렸고 심각하게 변조되었다." - 앙드레 지드 (작품해설 중에서) - P115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뜻에 반하는 기독교(le christianisme contre le Christ)‘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는 예수보다는 성 바울이, 복음서보다는 바울 서(書)가, 자기들이 믿는 그리스도보다는 교회가, 신앙보다는 윤리가, 미래보다는 관습이, 그리고 사고의 자유보다는 교리가 더 중시되고 강조됨으로써 예수의 기독교 정신이 성 바울의 교리에 의해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 작품해설 중에서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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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이야기다 보니, (우리 감성에서는) 살짝 삼국지 느낌으로(?) 각색되었는데...

  일단 국내서에서는 (의외로) 잘 접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 서점에서 역사 코너를 가보면, 이른바 Founding Fathers 일대기를 요리 다루고 조리 분석한 책들이, 말 그대로 매달 '쏟아진다'. 하나의 대중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도 3.1운동과 임시정부, 제1공화국 시기를 재조명하는 연구가 진전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병력을 손에 쥐고 있던 조지 워싱턴이, 1783. 11. 25. 영국군이 물러난 뒤 12월 지휘권을 내려놓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사실이나(위 책은 여기까지만 다룬다. 관련 자료 https://www.mountvernon.org/library/digitalhistory/digital-encyclopedia/article/resignation-of-military-commission/),

  분위기와 여건상 얼마든지 세 번째 임기를 도모할 수 있었음에도 1797년 물러나 낙향함으로써 미국 대통령은 중임만 하도록 하는 '전통'을 확립한 것 등은 생각할수록 놀랍다(어느 정도는 본인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예감한 영향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만일 그가 세 번째 임기 중에 사망한다면 미국 대통령직이 종신직이라는 인상을 줄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는 1799. 12. 14.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논에서 사망했다).


  지금은 수정헌법 제22조가 명문으로 3선을 금지하고 있지만, 그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조지 워싱턴이 확립한 관례와 전통을 후대 대통령들이 따른 것일 뿐이었다. 조지 워싱턴보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감히 두 번 넘게 대통령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나. 수정헌법 제22조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사상 처음 3선에 나서고 1944년 선거로 4선까지 하였다가 네 번째 임기 시작 석 달도 안 되어 뇌출혈로 사망한 후인, 1947년 의회를 통과하여 1951년에야 각 주 비준절차를 마쳤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장기 재임할 수 있었던 것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정세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COVID-19는 각국 레짐과 국제정세를 또 어떻게 바꿔 놓을지... 여하간 초대 대통령으로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기준을 세운 것이다.


  사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상대해야 했던 카운터 파트너들은 모조리 유럽 군주들이었기 때문에, 가급적 긴 임기로 보조를 맞추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 때 살던 유럽인(미국인)들에게 사망하거나 추방당하지 않은 '퇴직 군왕'이란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요순(堯舜)의 선양(禪讓)처럼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역사서에 따라서는, 요임금은 순임금에 의하여 감금, 축출당했고 '선양'이란 순임금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였을 가능성도 제기되어 있다.)


  실은 조지 워싱턴이 1774. 6. 15. 만장일치로 총사령관에 선출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인품 덕분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장군으로서 능력보다 인격이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다행히 여기에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도덕적이며 상냥하고 용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명예를 중히 여기며 상호간에 신뢰를 존중합니다. 그는 공익을 우선하고 분파를 거부하며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군사적 독재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지역적 라이벌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대륙의 통일을 촉진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 그는 바로 조지 워싱턴이라 생각합니다."

  - 존 애덤스(초대 부통령으로 후일 제2대 대통령이 된다)가 대륙회의에서 조지 워싱턴을 천거하면서 한 말 [Ron Chernow, Washington: A Life, New York: Penguin, 2010, p. 186, 번역되어도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같은 지은이가 쓴 알렉산더 해밀턴 평전은 번역되어 있고(초대 재무장관으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공저자 중 한 명), JP모건, 록펠러의 전기도 나와있다. 그나저나 위 말은, 조지 워싱턴에게 장군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말이었다기 보다는, 다른 경쟁자들과 대조되는 그의 인품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전쟁 중이던 1782. 5. 22. 부하로부터 미국 최초의 군주가 되어달라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른바 '왕관 편지(Crown Letter)'의 한 대목이다.


  "저는 공화국 형태의 정부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이러한 문제(인용자 주: 참전군인들의 급여, 연금문제 등)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 저는 지금 이 나라에는 공화국의 지혜보다 군주국의 에너지가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유럽의 군주국들이 나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 총사령관님이 미국 최초의 군주가 되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 Lewis Nicola 대령이 조지 워싱턴에게 보낸 편지


  조지 워싱턴은 크게 놀라 그날 바로 답장을 보낸다.


  "그동안 군이 이룬 폭넓은 정의는 대단한 것입니다. ... 그 누구라도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이룬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 나라에 그 어떤 불행한 일도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군대 내에 이런 생각이 있다는 귀관의 편지에 놀라움과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만약 귀관이 이 나라와 그대 자신 그리고 후손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또는 나에 대한 존경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성격의 말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조지 워싱턴의 답장(https://founders.archives.gov/documents/Washington/99-01-02-08501)


  이후에도, 부사령관 중 한 명인 Horatio Gates 등이, 조지 워싱턴의 온건한(어쩌면 수동적인) 리더십에 불만을 품고 주도한 '뉴버그 쿠테타 기도 사건'이 있었지만, 조지 워싱턴은 단호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를 지혜롭게 무마시킨다.


  "나는 여러분의 헌신적 봉사와 희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여러분의 동지이며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명서]는 비군사적이고, 모든 질서와 원칙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 동기와 목적이 사악하며, ... 이성과 선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울화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익명의 선동가(인용자 주: 당연히 게이츠 도당이었지만 워싱턴은 이렇게 표현했다)가 여러분에게 배반을 하라고 요구한 그 나라는 다름 아닌 여러분의 나라, 곧 우리 아내와 자식들의 나라이며, 우리의 재산이 있는 곳입니다. 좀 더 인내심을 가지라는 말을 무시하고 선동하는 그 말은 우리에게 이성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군과 시민 사이를 분리하는 주장이 옳단 말입니까? 그런 글을 쓴 자가 진정 군의 친구란 말입니까? 그런 자가 이 나라의 친구란 말입니까? 그는 진정 사악한 적보다도 못한 자입니다. 만약 그 선동가가 말한 대로 된다면 우리는 자유를 잃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될 것입니다. ... 대부분 심의기구가 그러하듯이 대륙회의는 조치가 늦지만 결국 정당하게 일을 처리하리라 믿습니다(인용자 주: 연금법 개정 등). 여러분!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를 내란의 홍수 속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에게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했냐고 물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만약 오늘이 없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단계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 1783. 3. 15. 조지 워싱턴이 쿠데타를 잠재울 수 있게 한 '덕의 사원' 연설(https://www.mountvernon.org/education/primary-sources-2/article/newburgh-address-george-washington-to-officers-of-the-army-march-15-1783/https://constitutioncenter.org/blog/george-washington-calms-down-the-newburgh-conspiracy)


  통치형태라고는 군주제밖에 없던 시절의 사고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나아가 인류 미래까지 내다 본, 초대 대통령이 가져 마땅한 너무나 바람직한 '정답'같은 생각 아닌가?


  그러면서 조지 워싱턴은 "여러분! 내가 안경 쓰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랍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동안 머리도 희어지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주뼛거리며 자신이 받은 편지를 읽기 위해 더듬더듬 안경을 꺼내 썼다는데, 존경받는 총사령관의 이 꾸밈없고 인간적인 모습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던 장교들을 단념시켰다는 것이다.


  아무튼 조지 워싱턴은 총사령관으로 선출될 때 기대되었던 바로 그 이유 그대로, 휘하에 있던 군사력을 자신의 권력 추구에 사유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와 관련하여 토머스 제퍼슨(초대 국무장관이자 제2대 부통령이자 제3대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혁명들이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였던 자유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단 한 사람의 자제와 덕성이 우리 혁명이 그런 식으로 막 내리는 것을 막았다." https://founders.archives.gov/documents/Jefferson/01-07-02-0102),


  조지 워싱턴의 결단은 미국 입장에서는 큰 복이었다. 덕분에 세계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세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지 워싱턴은 1787. 5. 25.부터 9. 27.까지 열린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도 의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그 덕분에 세계 최초 헌법으로 철저한 권력분립 원리에 입각하고 있는 미국 헌법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참고로, 조지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 독립 직후가 아니라 미국 헌법이 제정, 발효된 1789. 4. 30.부터다. 군 통수권을 의회에 반납하고도 5년이 더 지난 뒤의 일인 것이다).


  조지 워싱턴 외에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공저자인 제임스 매디슨이 회의에 매일 참석하였다. 그는 미국 헌법의 초안이 된 Virginia Plan을 만들었고, 제헌회의 경과를 속기하였다. 매디슨은 미국의 제4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조지 워싱턴도 제임스 매디슨도 버지니아주 대표였다(건국 초 제10대 대통령까지 무려 여섯 명이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고,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여덟 명 대통령이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단, 남북전쟁 후에는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유일하다. 1620년 미국에서 처음 주조된 위스키 때문이긴 하지만 버지니아주는 'the Birthplace of the American Spirits'라고도 불린다. 아래에서 보듯 서부 출신은 단 한 명뿐인데, 그마저 최악의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닉슨이다. '정치적 기반'으로 따지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뉴욕주가 오하이오주와 더불어 각 7명씩으로 가장 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주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주에서 태어났지만,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출신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residents_of_the_United_States_by_home_state).



  헌법을 만든 이들이 이렇게 연달아 대통령이 된 덕분에, 지금까지도 미국 정치논쟁의 중심에는 '무엇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가'가 놓이고, 법원 판결 또한 그렇다(이도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미국 헌법이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에는 '헌법이 모든 법규범의 지도원리가 되는 최고규범'이라는 생각조차 생소한 것이었다. 참고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세 저자 중 남은 한 사람인 존 제이가 미국 초대 연방대법원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절차의 릴레이 발언에서, 민주당 의원들도 공화당 의원들도 모두 '헌법'을 근거삼아 상대가 '위헌적'이라며 공격했다. 따져 보진 않았지만, 당시 받은 인상으로는 헌법을 언급하지 않은 의원이 단 한명도 없지 않았나 싶다.

  미연방대법원 변론기일을 보기 위하여 아침 6시부터 줄을 서서 5시간을 기다려 오전 두 번째 사건을 본 적이 있는데[매년 10월부터 다음해 6월 말 7월 초 시작되는 여름 휴정기까지, 평일 오전 10시, 11시 각 한 건씩 진행된다(가끔 특별기일을 열기 위해 오후 시간을 비워둔다, 이번 회기에는 대통령 탄핵절차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오후에는 의회에 가있어야 했다, COVID-19로 3월 둘째주부터는 변론기일을 아예 열지 못했다). 첫 사건에 안전하게 입장하려면 오전 5시에는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이목을 끄는 사건은 전날 가서 줄을 서도 입장하지 못할 수 있다.], 법'학'과 전혀 거리가 먼 필부필부들이 자기와 전혀 무관한 사건 재판을 보겠다고 서서 '헌법'을 놓고 토론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개중에는 단지 대법원 재판을 보고, 의회 회기를 방청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관광'왔다는 미국 시민도 있었다(내가 만난 분들은 추운 날 그렇게 장시간 줄을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들이었다. 일리노이였나 미시건이었나 위스콘신이었나 아무튼 훨씬 추운 중북부 지역에서 오신 그분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고 있다."고 했다). 이 글 직전에 미국 의료보험, 빈부격차 등에 관한 짧은 글을 썼지만, 헌법에 관한 살아있는 관심은 그 글과는 반대로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숨은 저력임이 분명하다(한편 애리조나에서 만난 어떤 우버 기사는 '자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을 너무 잘 이끄는 것 같다'고 역설했고, 미국인 절반은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COVID-19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재선을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론 우리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민주주의 역사를, 시민의 힘으로 빠르고도 충실하게 쌓아가고 있고,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는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다만, 전직 대통령들의 선택은 조지 워싱턴과는 달랐고, 측근 비리 없었던 대통령이 없었다. 거기다가, 최근 '시민'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표출되는 민의들은 반드시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아 안타깝고, 때로 위험하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 미화는 있었겠지만 이들 일화 대부분은 미의회 도서관 등에 보관된 '실물' 문서로 직접 뒷받침되는 것들이고, 그렇다면 흥미로운 것은, 우리처럼 유교 같은 윤리 중심 정치이념이 있었던 것도 아닌(것 같은)데, 조지 워싱턴은 어떻게 그런 인품과 덕성을 갖출 수 있었고, 미국 건국의 주역들은 어떻게 그 점을 가장 앞세우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그렇게 보는 견해도 있지만) 기독교 윤리가 이를 '직접'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르침인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리스 7현인의 이상? 영국의 폭정에 비춘 반면교사? 그냥 사람이 원체 훌륭해서?


  미국이 세워질 때, 다른 자질도 아니고 '도덕성'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기준과 덕목이 되었다는 점은 이후에 펼쳐진 미국사를 생각하면 조금 뜻밖인 면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극단으로 흐를 때마다 돌아갈 '원점', '이상적 지도자상'이 되어준다는 점에서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큰 행운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언제나 세종대왕의 재림을 기대하듯이.


[덧붙여,]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역대 대통령 순위를 꼽으면, 링컨 대통령이 보통 가장 앞에 오고, 그 다음으로 조지 워싱턴 또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꼽힌다. 케네디, 오바마 등 인지도(혹은 인기?)가 더 높은 대통령이 많기 때문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그 정도였어?' 싶은 분도 있겠지만, 심지어 조지 워싱턴이 가장 앞서는 조사도 있고, 최근 그 순위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다. 한편 아래에서 보듯, 미국이 명실상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뒤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통령들이 대거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다. 어찌 보면 링컨 대통령이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그나마 그런 패권주의적 경향에 균형을 잡아주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C-Span https://www.c-span.org/presidentsurvey2017/?page=overall



Siena College https://scri.siena.edu/2019/02/13/sienas-6th-presidential-expert-poll-1982-2018/



NY times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8/02/19/opinion/how-does-trump-stack-up-against-the-best-and-worst-presidents.html



US NEWS ('최악 대통령' 조사로, 역순) https://www.usnews.com/news/special-reports/the-worst-presidents/articles/ranking-americas-worst-pres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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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0-04-1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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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 젊은 지성과 교감하는 전통의 힘 살림지식총서 241
황선희 지음 / 살림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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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마음 속 별점이 점점 내려갔다.

가이드북인지 뭔지 알기 힘든 책이 되어버렸다. 보스턴 지리를 잘 알거나 지도를 펴놓고 읽지 않으면 내용을 충분히 새기기 어렵다.

책 전반이 거의 응집되지 않는다.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국문학을 가르치신다는 분의 문장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말 문장이 착잡하고 투박하다. 예를 들어, 맨 마지막 문장만 한번 보자. ˝젊은 지혜와 교감하는 전통의 힘이 이 도시의 영원한 미래의 원천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의 찬연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얻은 믿음 때문인 것일까?˝ ...... 아무튼 그래서 하나를 더 내렸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끼워넣은 듯한 잡다한 내용이 논리와 생각의 흐름을 끊곤 한다.

그마저 10년 넘게 지난 정보들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 직접 확인하여야 할 것만 같은 대목이 자꾸 나온다.

어처구니 없게도, 보스턴 보스톤 표기조차 오락가락한다.

결국 지금 읽기엔 쓸모가 적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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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3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20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쉬려고 잡았는데 잠이 확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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