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풍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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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라는 제목만 보면 무슨 뜻인지 궁금할 수 있는데 실상 폴란드와도 풍차와도 큰 상관이 없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 유명한 나무를 심은 사람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두 책 사이의 간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충격을 받게 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내 머리에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때문이다.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부드러운 그림 한 점 한 점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우아하게 넘어가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감탄하며 봤었는데... 그 모습은 꼭 루벤스 명화를 보고 감탄하는 네로의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표지 그림은 에드바르 뭉크의 1984년 작품인 '재'이다. 그야말로 뭉크의 작품이 어울린다.
다른 작품도 아니고 딱 이 작품을 뽑아낸 편집자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아무 정보가 없다면 그냥 이 책의 삽화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인간과 운명의 대립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지는 작가마다 다른데 이 두 작품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 양쪽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작가의 본심일 수도 있고.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나무를 심은 사람이 계속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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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의 목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7
조르주 시므농 지음, 민희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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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메그레경감이 나오는 두 개의 소설이 실려있다. 메그레경감은 ITV에서 미스터빈으로 유명한 로언 앳킨슨이 주인공 메그레 역할을 맡아 제대로 된 정극연기를 보여준다는데 ITV의 마플 시리즈를 감탄하며 본 지라 기대가 된다. 한번 봐야지. 마플 시리즈는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재치있게 각색했는데 메그레 시리즈는 어떨지 궁금하다.
저자인 심농은 벨기에 사람인데 벨기에 탐정인 푸아로가 떠오르기도 하고... 물론 심농의 메그레는 크리스티의 푸아로와 다르다.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간혹 터져나오는 웃음이나 로맨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 말고 다른 작품에서는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농도 크리스티만큼이나 다작을 한 작가인 것 같은데 하나하나 읽어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여기에 실린 사나이의 목도 황색의 개도 독특한 재미가 있다. 제목인 사나이의 목도 황색의 개도 맥거핀이라고 하기에는 대체되기는 어렵지만 주제를 관통한다고 하기도 애매해서... 일단 이 부분은 독자들 나름의 판단.
메그레의 방식은 사립 탐정에게는 어울리지만 경찰로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결말의 내용도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라 전형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기발하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고. 탐정은 밋밋하게 느껴지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훨씬 매력적이고. 어쨌든 특유의 분위기는 메그레 경감 시리즈만의 것이다. 중독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건 좀 더 메그레의 이야기를 더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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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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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띠지 설명을 먼저 보겠다.

 

현학적 게임, 반 다인의 세계

예의바르고 격조높은 하버드 영어로 직조된 가슴조이는 서스펜스와 페이소스의 교차

반 다인 3대 걸작 으뜸으로 꼽히는 특 A급 미스터리!

 

예의바르고 격조높은 하버드 영어는 과연 어떤 것인가?

 

표준어의 정의인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보다도 더 와닿지가 않는다.

 

아마도 예의바르고 격조높은 하버드 영어가 현학적 게임, 반다인의 세계에 상당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데,

무엇보다도 하버드 영어로 직조된 가슴조이는 서스펜스와 페이소스의 교차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설령 서로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읽다 보면 현학의 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고전에서 따온 말들이 범람하고

살짝살짝 클래식 이야기도 나오고 미술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그야말로 현학의 끝판왕이다.

그냥 제낄까 하다가 혹시 사건의 실마리와 관련이 있는지 일일이 주를 읽다 보면

서스펜스로 가슴이 조이다가도 주를 읽으면서 가슴이 풀어지며 편하게 숨을 쉬게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주가 너무 많고, 하나하나의 주도 획획 넘어갈 수 있지를 못하다 보니 의도치않게 서스펜스에게 강제로 휴식을 내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반 다인 3대 걸작은 뒤에 해설을 찾아보니 비숍, 카나리아, 그린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영미권 독자들로부터 1위를 차지한 것이 그린살인사건이라고 한다.

일단 어느정도는 공감이 간다. 일단 재미가 있다. 비숍살인사건은 전에 읽었었는데 그보다 더 재미있었다.

 

집 안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옛날 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이른바 바깥주인의 사망 이후 10여년간 잠겨진 특정 방에 대해서는 안주인이 열쇠를 주기 까지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방에서 결정적인 증거들이 발견되는데 그 방에 대한 수사는 전체 소설의 반이 지나서야 이루어진다. 500쪽이 안 되는 소설인데 280쪽이 넘어서야 그 방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이게 대체 요즘 관점으로는 말이 되는 소리인지 싶다. 그 시대니까 그랬겠거니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시대라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될 것 같다.

그저 '추리'소설의 어떤 틀에 작가 자신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굴다 보니 전체 '소설'의 흐름이 약간 삐딱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재미가 있다.

 

반 다인도 비숍 때보다는 확실히 존재감이 있어서 반가웠고.

이 소설 다음으로 비숍 살인사건이 나왔는데, 어쩌면 반 다인이 뒤로 가면 갈 수록 병풍이 되어가는 것인지?

 

참고로 다시 한번 훑어 보는 반 다인 작가의 살인 사건 시리즈 출판 순서이다.

 

벤슨 살인사건 (Benson Murder Case, 1926)

카나리아 살인사건 (Canary Murder Case, 1927)

그린 살인사건 (Greene Murder Case, 1928)

비숍(주교) 살인사건 (Bishop Murder Case, 1929)

스카라베(스케라브, 딱정벌레) 살인사건 (Scarab Murder Case, 1930)

케닐 살인사건 (Kennel Murder Case, 1933)

드래곤 살인사건 (Dragon Murder Case, 1934)

카지노 살인사건 (Casino Murder Case, 1934)

가든 살인사건 (Garden Murder Case, 1935)

유괴 살인사건 (Kidnap Murder Case, 1936)

그레이시 앨런 살인사건 (Gracie Allen Murder Case, 1938)

겨울 살인사건 (Winter Murder Case, 1939)

 

차례차례 읽으면 좋겠지만 나는 동서미스터리북스의 순서대로 읽고 있어서 그렇게는 어려울 것 같고.

우리나라에 출간 안 된 소설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읽을 수 있기를.

 

아, 참고로 P.259 cortex cerebri(뇌피하세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거 혹시 푸와로의 회색뇌세포를 의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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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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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무슨 내용이지? 하고 책을 한번 훑어보려고 스륵 책장을 넘기는데 로빈슨, 항해일지, 이런 단어가 획획 지나갔다. 이거 로빈슨 크루소가 떠오르는데? 하고 책 뒤표지를 봤더니, 세상에, 그 로빈슨 크루소가 맞다. 아니 디포가 지은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은 패러디 문학이다.

 

로빈슨 크루소야 뭐 현재 시대에서 고전이 되었지만, 그 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그러니까 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유명은 한데 내용은 잘 모르고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 아닌가) 로빈슨 크루소는 보통 아이들이 읽는 세계 동화 전집에 꼭 포함된 이야기라서 세세하게는 몰라도 대강의 이야기는 다 안다. 우리 세대라면 노빈손 시리즈도 알 테고.

 

방드르디는 뭔고 하니 금요일이라는 불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줬던 흑인에게 구해준 요일이 금요일이라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하인으로 삼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하인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것만 봐도 아, 이 소설이 뭘 비판하겠구나 하는 감은 어느 정도 올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99.9%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내용에 대해 자기 스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일단 소설이 상당히 재미있다. 어쨌든 모험기니까.

 

총 390쪽의 책에서 320쪽부터 작품 해설이 시작된다. 내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작품 해설의 비중이 제일 많다. 참고로 작품 해설 전까지는 오히려 쉽게 읽히고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읽힌다. 그만큼 이 책이 학술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은 책이겠지만, 또 그 반면에 이런 저런 내용을 깊게 음미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로빈슨 크루소를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던 방드르디가 결말에서 그런 식으로 퇴장한다는 것은, 방드르디 또한 로빈슨 크루소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도구적인 존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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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병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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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의사 같은 군인 타입의 신사가 있다. 물론 군의임에 틀림없다. 얼굴은 새까맣지만 본디 살갗이 검지 않다는 것은 손목이 흰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열대 지방에서 돌아온 것이리라. 고생 끝에 병을 얻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초췌한 얼굴이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왼쪽 팔에 부상을 입고 있는 모양이다. 놀리는 폼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우리 육군 군의가 고생을 하고 팔에 부상까지 입은 열대 지방이 어딜까? 물론 아프가니스탄이다. 이 정도 과정을 지나는 데는 1초도 안 걸렸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했더니 자네가 놀라더라 이 말일세.

자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을 상기시키네 그려. 그런 인물이 소설의 주인공 외에 실지로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모햇어.

물론 칭찬할 셈으로 자넨 뒤팽에다 비교해 주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뒤팽은 훨씬 더 인물이 떨어지네. 15분 동안이나 잠자코 있다가 느닷없이 적절한 말을 하여 친구들의 사색을 깨뜨려서 놀라게 한다는 그 친구의 수법은 매우 천박한 겉치레야. 물론 천재적인 재능은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겠지만, 포가 생각했던 만큼의 경이적인 인물은 절대로 아니네.

자넨 가볼리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나? 루콕은 탐정으로서 자네의 이상에 맞을 것 같은가?

루콕 따윈 불쌍한 얼뜨기지.

나 같으면 24시간에 처리했을 것을 루콕은 여섯 달이나 걸렸으니 말이야. 그건 차라리 탐정이 피해야 할 사항을 가르치는 데 쓸 교과서가 될 만한 책이야.

이 친구는 머리가 좋을지는 모르지만 자만심도 어지간하군.


왓슨과 홈즈의 첫 만남이다. 이러던 왓슨이 홈즈에 대한 마음을 애정과 존경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은 홈즈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니까요.

원우드 리드가 이 문제에 대하여 멋진 말을 했어, 하나하나의 인간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지만 집단으로 보면 수학적 확실성을 갖춘 존재라고 했다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의 미래의 행동은 절대적으로 예측할 수 없으나 평균적인 한 무리의 행동은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지. 개인은 종류도 많고 다양하지만 평균치는 언제나 일정하다는 것이 이 통계학자의 주장이라네.

 

역시 뭐니뭐니해도 클래식은 영원한 법이다. 옮긴이의 글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시대적으로 보아서는 고색창연한 느낌이 들지만, 이 시리즈만큼 추리소설의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도 드물며, 영구히 신선한 놀라움을 지닌 고전으로서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맞는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셜로키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왓슨의 상처 입은 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첫 작품 주홍색 연구에서는 왼쪽 어깨의 부상을 언급하는데 이 모순을 가지고 셜로키언들 사이에서는 왓슨이 부상을 입은 자리가 어디냐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답은 명확하다. 작가가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가지고 갖가지 견해가 등장하는데,
첫째, 두 번째로 입은 상처는 없다. 왓슨이 거짓말을 한 것이고 사실 왓슨은 치질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둘째, 다리 상처는 왓슨이 어깨 상처가 나는 시점에 방어하는 과정에서 자기 실수로 생긴 상처이고 시간이 흐르자 두 개의 상처의 원인을 한데 묶었다.
셋째, 사실 다리가 아니라 국부에 입은 상처이다.
넷째, 사실 다리가 아니라 발뒤꿈치에 입은 상처이다.
다섯째, 홈즈가 권총 쏘는 연습하다가 실수로 왓슨에게 상처를 입혔으나 홈즈의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해 왓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쓸데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셜로키언들은 아주 진지하다.
이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다. 그냥 작가가 실수한 것이다.

이제 홈즈 시리즈는 창조해낸 작가마저 집어삼킨 것이다. 다른 소설처럼 탐정으로 인해 창조주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스스로 빛나면서 작가의 존재가 희미해졌다.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결말을 알아도 재미있다. 그게 홈즈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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