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dts] - 할인행사
소피아 코폴라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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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들어요.

나이가 들면 나아지나요?




불확실한 미래만큼 두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지가 보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하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도 정해진 양을 조금 조금씩 채워나가는 모습을 확인하면 느리고 서툴러도 결국엔 다하게 된다. 문제는, 정해지지 않았을 때이다. 대체 어느 정도를 해야 할 지 전혀 감조차 안 잡힐 때, 그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20대 기혼 여성 샬롯은 세 가지 고민으로 힘들다. 겉도는 결혼 생활, 확신이 서지 않는 장래, 타국에서의 부적응. 50대 기혼 남성 밥 해리스는 자녀를 둔 왕년의 영화 스타이다. 30여년을 더 살면서 샬롯의 고민을 이미 겪었을 것이다. 그 또한 그 나름대로의 답답함을 해소하지 못해 더 답답해하던 차에 샬롯을 만나고 묘하게 위로받는다.




원제인 “Lost in Translation”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고 번역한 것에 아쉬움을 드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한국 제목만 보아서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느껴지는데 제목만 보고 영화관에 왔다가 실망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대체 “Lost in Translation”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를 이 제목의 의미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잔잔하게 물결처럼 와 닿는다.




인간관계에서 길을 잃는 것이 어디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간격 때문만일까. 한때는 열렬한 사랑의 말을 다양하게 쏟아냈을 샬롯과 남편의 모국어도 결혼 2년차인 지금에 와서는 같은 말로 대화하는 것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공허하게 뜬다.




일본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하게 여길 장면이 존재한다. 만약 도쿄가 아닌 서울을 배경으로 이 영화가 촬영되었다면? 아마도 한국 관객들의 평가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서구로 여행을 해본 사람으로서, 혹시나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가면서, 또 그런 티를 안 내려고 무진장 노력하며 부러 당당하게 서양인들 사이를 활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주제(?)에 너무도 당당하게 도쿄 대로를 자기네 뉴욕처럼 활보하는 미국 남녀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고작 그 정도(?)의 어려움 때문에 타국 생활에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모습은 얄밉기도 하다. 원래 여행은 내가 떠나온 곳과 다른 것을 때론 놀랍고, 때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기본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둘은 자발적으로 도쿄를 찾은 여행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또 걸린다.




Translation은 생화학 용어이기도 하다. 핵산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큰 과정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수많은 오류가 생기고,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지만 그걸 바로잡아가며 최종 산물을 만들어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실수로, 오해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다가도 다양한 변주로 인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귀에 속삭이는 말을 들으며 마침내 미소를 짓는 샬롯의 얼굴은 그래서인지 훨씬 발랄해 보인다.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을 충분히 쏟아낸 밥의 얼굴이 한층 후련해진 것도.




처음에는 둘 사이의 뭔가 썸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간에 샬롯이 잠깐 질투한 것 말고는 담백하게 끝난 것도 인상적이었다. 꼭 아버지와 딸 같았다. 빌 머레이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는 탄탄한 중견 배우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표정 연기와 절제된 감성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섹시함의 대명사로만 인식되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너무 많은 여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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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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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일단 제목이 독특해서였고, 또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장르였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아도 안다. 이미 네스터는 죽었으며, 그를 죽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 중 과연 살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이런 설정은 지겹도록 반복되어 온 설정이고, 정말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질 이 이야기 속에서 흔해 빠진 결말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작가들은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는 아마도 '요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것도 별 것 없다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열차 살인사건은 이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된다. 아가사의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마지막 결말을 읽기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끝에 다다라서는 완벽한 구성과 세세함에 감탄했고 작가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겼던 기억이 난다.(어떻게 이런 작품을 생각해 내었으며, 더 대단한 것은 이 정도의 작품을 수십 편을 더 써낼 수 있었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후대에 이 작품은 많이도 리메이크되고 오마주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화 중 '8명의 여인들'이라는 작품과 우리나라 영화 중 '친절한 금자씨'도 이 추리소설 대가의 영향을 받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책 소개만 놓고 보면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고, 스페인 최고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뭐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는 것이야 책을 팔아야하는 출판사 소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스페인의 최고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체 그 상이 진짜 스페인의 대단한 상이기는 한지, 아니면 원래 이쪽 문학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떻게 된 게 추리 소설(혹은 추리 소설 비스무레한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최소한 책의 절반 넘게 읽을 때까지는 결말에 대해 일정 부분은 몰라야 되는 것 아닌가? 초반부터 모든 것이 공개되고, 남은 분량의 책읽기는 이미 예정된 흐름을 확인하는 것뿐이라니... 만약 이게 추리 소설이 아니라고 쳐도, (그럼 독자가 이미 예측한 부분도 크게 중요하지 않을 테니)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 소설에 남는 부분이 대체 뭐가 있는지 싶다. 예술, 자기의 완성, 삶에의 의지,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살인을 미화하는 것은 이미 프랑스 소설에서 수없이 본 장면인데다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고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그 프랑스 소설들에서조차도 그렇다.) 더군다나 등장인물의 소개를 장황하게 하면서 할리우드 무비 스타(영화배우가 아니라 무비 스타라는 말이 절대적으로 어울린다)에 대입하는 공식은 어이가 없다. 나는 그 무비 스타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세대도 아닌데다가 이미 알려진 사람의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가의 표현력이 부족하단 말인가?

가장 살인의 이유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결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진부할뿐더러 끝부분이 소설의 첫 부분과 이어지는 이른바 '수미쌍관'(;;)의 구조조차도 덜 진부하다 뿐이지 식상하기는 똑같다. 거기에 캐릭터에 대한 심리묘사는 우리도 모르고 있었던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는 정도는 절대 아니고, 누구나 알 만한, 그 상황이라면 작가가 아니라 독자 수준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서 그친다.

한국, 미국, 일본, 영국(여기에 간혹 중국과 프랑스)에만 치우친 독서 편식을 조금이라도 고쳐보고자 생소한 남미 책을 골랐는데 이래저래 실망이다. 그냥 스페인 소설을 읽었다는 것에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이 책을 읽고 나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동인 문학상이나 황순원 문학상이 얼마나 격조 있는 정통한 문학상인지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보는 편이 어쩔 수 없이 안전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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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합창 - 문학 ㅣ 파랑새 클래식 이삭줍기주니어 8
아벨 산타 크루스 지음, 명수정 그림, 정선옥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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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별명이 붙으면 살에 피부가 붙듯 달라붙어 도저히 그 별명을 떼어 내는 일은 불가능해지기 마련이다. 말라깽이라는 별명은 교육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맥 빠지는 이름도, 그렇다고 눈부신 이름도 아니었다. 영웅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겁쟁이도 아닌 평범한 병사의 별명으로 알맞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의 20~30대라면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드라마가 있다.

1990년대에 방영되었던 외화시리즈 '천사들의 합창'.

먼저 KBS에서 방영되었고, 이후에 EBS에서 방영되었다는데 KBS에서 방영되었다는 건 잘 모르겠고 EBS에서 방영되었던 것을 띄엄띄엄 시청했었던 기억은 난다.

매번 시청하지 않아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아마도 어린이 드라마 치고는 꽤 주제가 무거운 편이라서 그 나이에는 꾸준히 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참 생소한 나라인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였는데, 사실 멕시코 드라마라는 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고 그 때는 히메나, 마리아 호아키나 등의 이름이 발음할 때 참 예쁘면서도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책 뒤편의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원래 아르헨티나의 작품으로 나중에 멕시코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이것이 미국으로 수출된 후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의 역사적 배경 때문에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많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실 중남미 쪽은 여행 가본 적도 없고 주변에 다녀온 사람도 없고 해서 아는 게 전혀 없는 미지의(?) 세계인데, 얼마 전 한국과 아르헨티나 월드컵 조별 리그 2차전을 보고 갑자기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책도 참 좋지만, 그래도 드라마 쪽이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오프닝 곡, 회전목마를 타며 빙글빙글 돌던 아이들(그런데 드라마의 원제인 '회전목마'는 무슨 뜻이었을까?), 천사 같던 히메나 선생님, 늘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던 경비 아저씨, 재잘대며 아이들이 들어가던 학교 앞 입구, 하늘색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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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엔젤(비트윈66종가을할인)(City Of Angels)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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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독일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여러모로 원작에 못 미치긴 하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천사 연기는 어색하지는 않지만 배우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느끼하다. 화면 구성(그걸 전문 용어로 미장센이라고 하나?)도 감탄할 정도였던 원작에 비하면 뭔가 엉성하다. 원작에서의 사랑은,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천사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이것이 이 영화를 원작보다 더 가볍게 만들어 버린 대신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사게 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자들이 바라보는 끝이 있는 삶이라는 것, 죽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던 1987년의 영화는 그 역설적인 면 때문에 큰 울림을 던졌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오했던 독일 영화가 1998년에 할리우드로 넘어오면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로 바뀐 셈이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 천사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와서 터치함으로써 그들의 임무를 하는 천사들, 그리고 먼저 천사에서 사람이 된 사람 등 상당 부분을 원작 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문제는 원작에서는 인상적이었던 장치들이 주제가 바뀐 영화에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겨지다 보니 뒷부분에 가서는 다소 혼란스럽기도 호러(horror)스럽기도 하다는 것이다. 의외의 부분에서 묵직한 감동을 주던 영화가 미국에서 다시 만들어지면서 다소 우스꽝스럽게 변한 부분이 있다.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종종 대중의 호응을 일정정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점일 수도 있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너무 진지해서 다소 지루하기조차 느껴졌던 원작에 비해 이 영화는 약간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훨씬 더 말랑말랑해졌다.

 

마음에 남는 장면 하나.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맛이냐고 묻는 세스에게 메기는 배(pear)맛이라고, 배 맛을 모르냐고 묻자 세스는 말한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나와 같은 것인지 궁금하다며 묘사해 보라고. 그 당시를 모면하고자 순간적으로 한 말일 수 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유효한 말 아닌가.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똑같이 느끼는지. 우리가 입으로는 똑같은 단어를 말하고 있지만 가슴에 떠올리는 느낌도 같은 것인지.

 

마음에 남는 장면 둘. 현미경으로 피를 관찰하며 둘이 나누는 말. 현미경으로 보이는 혈액 속 세포 하나하나가 나이고, 그 사이사이도 나라는 말. 이 영화에서는 feeling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도 나오는데 feeling이란 결국 세포 하나하나의 떨림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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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2disc) - 할인행사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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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ma always said,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쓴 글에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어느 것을 집을지 모른다고 한 구절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명대사로 꼽을 이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정말 유명한 이 영화를 나는 이제야 보았다. 물론 너무나 유명해서 영화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더라도 그 내용과 의의와 무엇보다도 수염이 덥수룩한 포레스트가 뛰는 장면은 잘 알고 있었다. 영화 주인공이 톰 행크스라는 것도, 그가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영화배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 몇 분도 보지 않은 영화가 마치 본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미식축구 스타에서 전쟁 영웅으로, 새우 잡이 배 선장에서 큰 회사 사장으로, 정말 그보다 몇 배는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발버둥 쳐도 되지 않는 인생을 포레스트는 살게 된다. 그의 인생 여정과 함께 맞물리는, 미 현대사의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는 가슴 뜨거워지는 장면들은 아마도 이 영화를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의 목록에 올려놓게 했을 것이고, 톰 행크스를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배우로 만들었을 것이다. 지극히 미국적인 (또한 보수적인) 영화라고 폄하하고 싶은 부분도 솔직히 없지는 않지만, 성실함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영화는 충분히 훌륭하다. 60-70년대 미국인 전체의 삶을 대변하는 포레스트의 삶, 그리고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 없는 그 자신이라고밖에 믿어지지 않는 톰 행크스의 연기는 왜 그가 가장 미국적인 배우인지 알게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여권 신장을, 환경을, 동물 보호를 위해(이 대사들을 통해서 이 당시의 미국이라는 나라의 화두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세심함이 또 이 영화의 매력이다.)서가 아니라 ‘그냥 뛰고 싶어서’ 뛴다는 포레스트. 역설적으로 이 계획 없는 달리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자신의 아들을 보면서 혹시나 똑똑하지 못한 자기를 닮았을까봐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보다 훨씬 똑똑하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나쁜 아버지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산다는 것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지능 지수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많은 지식들이 과연 인간답게 사는 데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포레스트가 살아오면서 그에게는 많은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각종 지침들에 파묻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면, 연애를 잘 하려면, 결혼을 잘 하려면, 좋은 부모가 되려면...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대한 지침이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우리 모두에게는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인생이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다는 포레스트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미리부터 정해진 운명에 집착하지 말고, 그렇다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이, 포레스트처럼 열심히 사는 것이 유일한 정답일 것이다. 물론 정답을 아는 이들이 다 실천하지고 살지는 않지만.

* 영화에서는 포레스트의 지능 지수가 75로 나오는데 정말 75의 수준으로도 저 정도의 지능을 갖출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돌고래가 그쯤이라고 들었는데 최소한 언어로 소통하는 데에 문제가 없고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는데 그보다는 높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제니가 걸린 바이러스성 질환은 아마도 STD 중 하나일 것 같다. 제니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짐작이 가는데, 그러고 보면 그녀 또한 포레스트와는 정반대편에서 미국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온 그녀의 삶과 아무 의식 없이 살아온 포레스트의 삶이 대비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 영화가 한쪽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정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의 어떠한 주의나 주장의 위험성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목표를 역전하거나 하위 방법으로 인해 퇴색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의 반전 주장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 버스 정류장에서 아들을 배웅하면서 잠시 멈칫하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앞 대사가 “Never...”였던 것으로 보아 분명히 다른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꿀꺽 삼키고 그냥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겠지. 포레스트 주니어는 식스 센스에서 놀라운 연기력을 보였던 할리 조엘 오스먼트인데 정말 최근 사진을 보면 안타까운 모습을 금할 수 없는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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