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일단 제목이 독특해서였고, 또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장르였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아도 안다. 이미 네스터는 죽었으며, 그를 죽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 중 과연 살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이런 설정은 지겹도록 반복되어 온 설정이고, 정말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질 이 이야기 속에서 흔해 빠진 결말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작가들은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는 아마도 '요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것도 별 것 없다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열차 살인사건은 이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된다. 아가사의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마지막 결말을 읽기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끝에 다다라서는 완벽한 구성과 세세함에 감탄했고 작가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겼던 기억이 난다.(어떻게 이런 작품을 생각해 내었으며, 더 대단한 것은 이 정도의 작품을 수십 편을 더 써낼 수 있었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후대에 이 작품은 많이도 리메이크되고 오마주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화 중 '8명의 여인들'이라는 작품과 우리나라 영화 중 '친절한 금자씨'도 이 추리소설 대가의 영향을 받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책 소개만 놓고 보면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고, 스페인 최고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뭐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는 것이야 책을 팔아야하는 출판사 소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스페인의 최고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체 그 상이 진짜 스페인의 대단한 상이기는 한지, 아니면 원래 이쪽 문학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떻게 된 게 추리 소설(혹은 추리 소설 비스무레한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최소한 책의 절반 넘게 읽을 때까지는 결말에 대해 일정 부분은 몰라야 되는 것 아닌가? 초반부터 모든 것이 공개되고, 남은 분량의 책읽기는 이미 예정된 흐름을 확인하는 것뿐이라니... 만약 이게 추리 소설이 아니라고 쳐도, (그럼 독자가 이미 예측한 부분도 크게 중요하지 않을 테니)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 소설에 남는 부분이 대체 뭐가 있는지 싶다. 예술, 자기의 완성, 삶에의 의지,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살인을 미화하는 것은 이미 프랑스 소설에서 수없이 본 장면인데다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고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그 프랑스 소설들에서조차도 그렇다.) 더군다나 등장인물의 소개를 장황하게 하면서 할리우드 무비 스타(영화배우가 아니라 무비 스타라는 말이 절대적으로 어울린다)에 대입하는 공식은 어이가 없다. 나는 그 무비 스타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세대도 아닌데다가 이미 알려진 사람의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가의 표현력이 부족하단 말인가?

가장 살인의 이유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결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진부할뿐더러 끝부분이 소설의 첫 부분과 이어지는 이른바 '수미쌍관'(;;)의 구조조차도 덜 진부하다 뿐이지 식상하기는 똑같다. 거기에 캐릭터에 대한 심리묘사는 우리도 모르고 있었던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는 정도는 절대 아니고, 누구나 알 만한, 그 상황이라면 작가가 아니라 독자 수준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서 그친다.

한국, 미국, 일본, 영국(여기에 간혹 중국과 프랑스)에만 치우친 독서 편식을 조금이라도 고쳐보고자 생소한 남미 책을 골랐는데 이래저래 실망이다. 그냥 스페인 소설을 읽었다는 것에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이 책을 읽고 나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동인 문학상이나 황순원 문학상이 얼마나 격조 있는 정통한 문학상인지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보는 편이 어쩔 수 없이 안전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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